금요일 저녁, 뜬금없이 신랑은 두리랜드에 가자고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뜨던 주말 비 예보는 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토요일, 아마도 1호는 친구들과 놀겠다며 놀이터로 갈게 뻔하다. 1호가 가면, 2호도 가고, 3호도 가겠지. 그럼 또 우린 탕후루 꼬챙이를 들고 놀이터를 서성이고 있겠지. 할 일 없어 보이는 어른들에게 머릿 수가 부족하니 축구를 하자고 하겠지. 신발 던지기를 하며 또 맨발로 신발을 주우러 가야겠지.먼저 어딜 가자고 하지 않는 집돌이는뻔한 놀이터 순회가 싫었던지 교외로 나가자고 했다. 이게 웬 떡인가. 놀이동산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신났고, 나도 신났다. 내일 하루 종일 밥을 안 해도 된다.
9시 30분에 출발을 하자고는 했지만, 역시나 출발은 30분이나 늦어졌다. 오전 10시, 이 정도면 양호한 출발이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마자 신랑이 오늘은 핸드폰 충전을 했냐 물어본다. 오늘은 배터리가 80프로나 된다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보냈다.
생각보다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고, 차만 타면 자는 2, 3호는 금방 잠이 들었다. 1호는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며 만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얼마 안 걸리니깐 가는 길에 좋은 경치나 보자고 했다.
"응. 그러지 뭐. 나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별거 아닌 말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5분 아니 1분에 한 번씩 언제 도착하냐고 물어보던 아이는 없고 창 밖풍경을 즐길 줄 아는 아이가 옆에 있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방심할 수가 없다. 4세, 7세, 9세 아들 셋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는 건 처음이다. 1시간을 달려 임채무 아저씨의 두리랜드에 도착했다. 20년 전 대학 친구들과 같이 갔다는 신랑은 그새 많이 바뀌었다며 놀라워했다. 그럼 20년인데 암만.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보자마자 흥분했다. 차문을 여는 순간 아차 싶었다. 뛰어다니면 더울 거란 생각에 얇은 바람막이를 입었건만, 꼭 덥다가도 나들이하는 날에는 춥다. 하늘은 왜 또 어둑어둑해지는 걸까. 날씨 요정은 다른 이들과 나들이 갔나 보다. 다행히 실내 놀이터가 보였다. 감기 걸릴 걱정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이들은 없다. 입장을 하자마자 야외 놀이 기구부터 야무지게 골라 탄다.
1호는 겁이 많은 편이다. 6살 때 친구와 함께 어린이 바이킹을 탔다가 겁에 질린 울음을 터뜨려 바이킹을 멈추고 내린 적이 있다. 유전이겠지. 나 또한 바이킹 트라우마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소풍을 갔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탔다가 누군가 내려올 때 내 가슴을 후벼 파서 심장을 집어던지는 줄 알았다. 그 이후로는 친구들의 가방 순이가 되었다고 한다. 의외로 1호는 용기 있게 어린이 바이킹을 탔고, 언제든지 무서우면 그만 타도 된다는 말에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입을 앙다문 채로 출발을 했고, 위아래로 움직임이 격해질 동안 긴장 했던 입술이 풀어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1호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오늘도 성장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하며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 귀엽다.
항상 인형 뽑기가 문제다. 취학 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7세 남아는 자신이 원하는 인형이 없다며 투덜대고 있었다. 인형을 못 뽑아서일까. 정녕 자신이 원하는 인형이 없는 걸까. 의문이다. 인형 뽑기를 백만 번 외치며 계속 뛰어다닌다. 다행이다. 놀다가 한 번씩 얘기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한번 원하는 게 있으면 불굴의 의지로 울음을 터뜨리며 백만 번 이야기하던 고집쟁이가 떼쓰는 걸 멈추는 어린이가 됐다.
3호는 로봇이 좋을 나이다. 입구에 있는 커다란 로봇을 타느라 다른 곳은 갈 수가 없다. 이제 막 36개월이 된 아이는 이제 방방장도 혼자 들어가고, 정글짐에도 혼자 모험을 떠난다. 연신 아빠 엄마를 부르며 감탄하며 자신의 뜻을 당당히 말로 표현할 수도 있는 어린이가 됐다.
36개월이 지나서 독립 했습니다. 야호.
실내 놀이터와 야외를 오가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첫째, 둘째만 데리고 놀이동산을 갔을 때는 셋째 하원 시간이 걱정돼서 안절부절못했지만, 오늘은 그럴 걱정이 없어 마음도 편하다.
영업 종료 저녁 6시, 직원들과 함께 퇴근하느라 몸은 힘들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감돈다. 다음에는 나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이들과 바이킹을 함께 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