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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Nov 16. 2023

마음 근육 키우기

오늘은 1호의 학급 학예회가 있는 날이다. 오늘만은 쌩얼과 회색 트레이닝 복 세트에서 벗어나 화장을 하고 옷장의 코트도 꺼내 입었다. 평소에는 꾸물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도 오늘만큼은 재빠르게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2호, 3호를 데려다주고 신랑과 1호의 교실로 향했다. 문 앞에는 우리가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이가 있었다.


오늘 학예회는 각 반 교실에서 아이들이 준비한 노래, 춤, 연주 등을 발표하는 조촐한 자리이다. 1호는 태권도 시범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4명의 빨간 띠 틈에서 밤색 띠를 매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 바로 우리 1호이다.



초상권이 있어 사진은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어제, 긴장하는 아이에게 평소에 하던 데로 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재미있게 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었다. 잘할 수 있겠지.


쭈뼛쭈뼛 인사를 하는 듯했다. 아직은 귀여운 2학년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1호와 남자 친구 한 명이 먼저 동작을 시작했다. 기합 소리가 우렁찼고, 꽉 쥐어진 주먹에는 힘이 느껴졌다. 걱정한 것보다 늠름한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도 잠시. 발차기를 한번 하는 순간 친구와 박자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박자는 계속 벌어지기 시작했고, 누가 봐도 우리 아이는 친구를 따라 하기 바빴다. 급기야 아이는 순서가 혼동되어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두 눈은 어쩔 줄 몰라 좌우를 살폈다.


친구들은 속삭였다. 오른발, 왼발, 아니, 오른쪽 위로 위로 발차기.






순간 당황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서 해내야 하는 몫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당황하는 아이에게 손을 뻗어 번쩍 안아 당황스러운 순간 밖으로 내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참아내야 했다. 어떻게 위기를 견뎌나갈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안타까웠다.  


담임 선생님은 당황한 아이의 마음을 재빨리 알아차려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주셨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해볼까?"


선생님의 감사한 외침 덕분에 혼란의 공기는 분해됐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1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고, 아이는 다시 허리를 펴고 당당히 주먹을 쥘 수 있었다.


무용을 하면서 느꼈던 무대의 압도감이 떠올랐다. 그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의 실수가 아찔했다. 작은 교실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시선들이 쫓아다니는 길에서 헤매지 않고 동작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는데, 부담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는 무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반박자 정도 친구와 어긋났지만 무사히 동작을 끝마쳤다. 실수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늘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이 모여 끈기라는 커다란 마음으로 자라나는 게 아닐까. 쿵쾅대던 아이의 마음은 어제보다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학예회가 끝나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다시 눈물이 차오르려 한다. 주책맞은 엄마다.





대문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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