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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좋아하던 맛이 궁금했다.

by Hee언니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마주 한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 아니, 먹고 싶지 않았다.


보통의 이별이 그러하듯,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이별이라는 후회, 더는 안 될 것을 아는 슬픔, 모든 열정을 함께하지 못한 미련은 음식을 거부했다.


이런 날에는 그냥 이불속에 파묻혀 눈물, 콧물 범벅을 먹어가며 모든 후회들을 삼켜야 하는데, 하필 사람 많은 공연장엘 가야 한다. 겨우 2학년이 된 대학생은 남자랑 헤어져서 아무것도 못합니다라고 교수님한테 대놓고 이야기할 배짱이 없다. 물 한 모금 머금으며 현실로 돌아오란 신호를 입으로 보내본다.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며 한 걸음을 뗐다. 정신 차려라.








사람 많은 대학로 한복판의 스타벅스, 우루루루 눈도장 찍은 동기들과 공연 시작을 기다린다. 일단은 앉아서 몇 시간 버틸 요량으로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그린티 프라푸치노.

그가 좋아한다던 것.

스타벅스만 오면 이것만 먹는다던 그것. 눈에 띈다.


그가 좋아한다던 프라푸치노 한 번을 같이 못 먹었다. 첫사랑, 아니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도 짧은 만남이었다. 설렘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해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밟히는 짧은 만남이라 아쉬움은 더 짙어진다.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정설에 위로받아본다. 못다 한 사랑, 이뤄보지 못한 시간들을 위해 그 사람의 취향을 따라가 보고 싶다.


휘핑크림을 올리겠냐고 물어보는 직원의 물음에 많이 올려 달라고 했다. 가득 채워진 푸르스름한 음료 위에 하얀 눈처럼 소복한 크림을 만났다. 폭신해 보이는 새하얀 구름 같은 그 모습에 또 그가 아른거린다. 사람 많은 그곳에서 눈물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친구들이 던지는 농담 한마디에 눈물은 폭포수처럼 터져버렸다. 이별이 억울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크림의 느낌.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주는 본연의 친절함은 그와 닮았다.

컵 언저리에 묻은 생크림을 빨대 끝으로 긁어본다. 하얀 티끌이 남아있지 않도록 최대한 눌러 초록빛 얼음 알갱이가 닿도록 밀어 넣는다. 잘 섞이지 않는 생크림, 미련과 후회, 아픔으로 뒤범벅되어 있는 마음 언저리에 솟아나는 냉정함 같다. 지금 다시 차가워질 시간이다.

달달한 휘핑크림의 고칼로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아찔할 만큼 단내 나는 하얀색의 유혹은 그를 기억하는 뇌세포들에게 잠시나마 기억의 정지장치를 만들어준다. 혓속에 겉도는 달달함이 그를 잠시나마 머릿속에서 사라지도록 버튼을 눌렀다.


잠시 잠겼던 수도꼭지가 초록색의 차가움을 느끼자마자 또 열려버렸다. 한 모금에 웃고 한 모금에 울다가 한 모금에 멍하다가.






쌉싸름하고도 달콤한 그 초록빛 얼음 알갱이 물을 한 모금 넘길 때마다 그가 또 기억났다. 입속으로 들어가자 사라져 버리는 작은 알갱이들. 그 서투른 알갱이들은 그렇게 녹아내렸다. 처음 만난 설렘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달달한 크림을 먹고 나면 뒤이어오는 녹차의 씁쓸함은 만남의 설레임 뒤에 찾아오는 이별의 맛이다. 흰색과 초록의 비율 3:7. 만남 그리고 이별, 그 이후 잊혀가는 기간과도 엇비슷하다.



달콤하지만 뒤끝이 씁쓸한 그 맛, 나의 첫사랑과 똑 닮았다.




그린티 프라푸치노


그린티 푸라프치노

: 스타벅스 어느 지점에 가던지 레시피가 동일하기에 맛이 똑같습니다. 휘핑크림 올려드릴까요?라는 물음에는 무조건 '네. 많이 가득 올려주세요.'라고 합니다. 테이크아웃 컵에는 뚜껑을 닫지 않아요. 뚜껑에 묻은 생크림 놓칠 수 없으니깐요.

음료를 받으면 일단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한입 크게 생크림을 앙! 베어 먹습니다. 생크림을 입으로 솨솨삭 먹은 후, 빨대를 꽂습니다. 생크림을 먹는 동안 녹아버린 음료를 살짝 빨아들입니다. 물기가 조금 없어지면 빨대를 한번 휘익 저어서 티끌 같이 남아있는 생크림까지 섞어서 쭈욱 마십니다.

시원한 음료는 무조건 원샷! 얼음이 녹을 틈을 주지 않아요.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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