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붐비는 백화점에서 신랑은 아이들이 오락을 하는 동안 자기가 지키고 있을 테니 커피숍에 있으라 했다. 이런 고마운 순간에 바로 앞의 스타벅스에는 딱 봐도 사람이 많다. 오랜만에 방문한 백화점에는 주말이라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이다. 적응이 안 된다. 얼른 커피숍을 찾아야겠다는 의지로 제일 한가해 보이는 꼭대기 층부터 공략했다. 8층 커피숍은 저번에 보니 한가하더라고 했던가. 주말은 주말인가 보다. 꽉 찼다.
7층 식당가 옆에 자리 잡은 커피숍 역시나 자리가 없다.
6층은 아까 스타벅스.
5층 백화점 안 작은 커피숍에는 당연히 자리가 없다.
4층 여성복 코너가 한가해 보인다. 가장자리에 있는 베이커리 커피숍에는 물론 자리가 없다.
커피숍을 찾지 못하자 목표를 바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아이쇼핑을 운동삼아 한 바퀴 돌아본다. 백화점에서 옷을 안 산 지가 언제였더라. 기억조차 안 난다. 비싸고, 입을 일이 없고, 갈 일이 없고, 안 사는 이유는 백만 가지이지만, 봄도 왔으니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고 마음먹는 순간 예쁜 옷들이 서로 입어보라며 손짓을 한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시간도 많은데 모던한 게 딱 내 스타일인 T**** 매장 앞에서 서성여본다. 살짝 차가울 수 있는 간절기 바람을 적절히 막아줄 옅은 아이보리 트렌치코트가 보인다. 역시 봄에는 트렌치코트가 아니더냐. 시간도 많으니 입어볼까.
@burberry 홈페이지
매장의 직원은 다행히 환대해 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산다는 생각은 1도 없어 보이는 추리한 손님을 받아줘서 감사합니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를 가리키며 입어 볼 수 있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흔쾌히 입어보라는 대답과 함께 옷을 가지러 간 직원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제일 작은 사이즈 입으면 되시죠?"
"아. 아. 아니요! 더 큰 거 주세요."
"아. 잠시만요."
보기에만 왜소해 보이는 이 몸뚱이를 보여줄 수도 없고, 급하게 사이즈를 공표 한 뒤 기다렸다. 직원은 마네킹 가까이 가더니 옷을 벗기려 한다. 괜히 미안하다.
"그냥 작은 거 입어볼게요. 그거 벗기지 마세요."
직원은 미소를 띠며 작은 사이즈 옷을 가지고 왔다. 트렌치 코트니 작은 사이즈도 괜찮을 거란 말을 하며 옷을 펼쳐 입혀주신다. 한 팔이 들어갔다. 다행히 들어간다. 양팔을 끼워 넣자, 뭔가 불편하다. 한 치수 더 큰 걸 입어야 한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군살이 늘어서 그렇다며 괜히 팔을 팔락거리며 혼잣말을 해댔다.
"이 정도 괜찮으신데요? 괜찮은데, 조금 불편하시면 한 치수 큰 걸로 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기 저것도 입어보실래요?"
겨드랑이와 팔 사이 1미리의 압박으로 불편함을 느낀 나의 몸뚱이는 자존심을 살짝 긁어내는 중이다.(이런 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라는 압박인 건가.) 새로운 옷을 입어보라는 말에 자동으로 팔을 끼워 넣고 있었다. 이 옷은 한 사이즈 큰 사이즈로 주셨다. 약간 오버핏으로 입으시니 멋스럽다는 말을 하신다. 맞지 않는 작은 옷에 대한 기분 좋으라는 말이겠지. 나에게 맞는 사이즈는 분명 이 사이즈구나.(사이즈 공개는 차마 못함.)
겨울 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야식도 먹고 살찐 건 내 탓인데, 옷이 별로라며 속으로 투덜댔다. 친절한 점원은 생각해 보고 오겠다는 예의상 전하는 말에도 끝까지 다른 옷을 권해주신다.(살 빼고 올게요.)
여성복 매장 아이쇼핑을 뒤로하고 카페를 찾아 다시 3층으로 내려왔다. 3층에도 역시나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다. 배고플 아이들에게 줄 와플을 포장해서 6층으로 올라간다. 에스컬레이터 사이의 계단으로 혼자 씩씩하게 3층에서 6층까지 올라갔다.
급격히 숨이 차오른다. 아. 다리가 터질 것 같다. 고작 3층을 올랐을 뿐인데, 괜히 군살이 붙는 게 아니었다.
대문사진 @pixabay
안녕하셨어요?
브런치에서 알림을 받았어요. 글 쓰라고.
연재 이후로 계속 고민했어요. 쓸까 말까. 쓸까 말까. 그러다 써야지 하다가 쓰다가 덮다가 무엇을 쓰다가 망설이다가 그랬어요. 뭔가 근사하게 잘 쓰고 싶었나 봐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