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 계단에 층층이 밝혀진 불빛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간이었다. 북적북적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 한산하던 아웃렛 야외 계단을 지나치고 있었다. 여유로운 풍경을 깨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유독 거슬린다.
"이리 와봐. 뛰지 말랬지. 위험해. 뛰지 말라고. 동생 데려와."
마치 아들 둘을 훈련시키는 조교 인듯한 그의 말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자꾸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한쪽 눈알이 그 사람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검정 야구모자를 쓰고, 검정 트레이닝 복을 세트로 맞춰 입고 까마귀처럼 자꾸 소리를 질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날렵해 보이는 몸, 조용한 듯하면서도 단호한 음성, 머리부터 발 끝까지 초등학교 때 수련회에서 만난 열심히 pt 체조를 시키던 조교처럼 생겼다. 그냥 애들을 데리고 가, 그냥 따라가면 애들이 아니지, 그래도 뭘 그리 자꾸 뭐라 하는 걸까, 그냥 빨리 가라, 차마 말은 못 하고 혼자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 남자를 못마땅하게 힐끔거리던 눈알을 수습하고 막내의 손에 이끌려 계단 제일 위까지 올라갔다. 자기가 지켜보겠다는 신랑의 말에 안심하고 막내의 손을 놓고 몇 초나 지났을까. 한 발자국 성큼 아래 계단을 디디던 아이는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서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루 종일 뛰어다닌 발에 힘이 풀린 건지 영유아 검진 상위 1프로 머리 둘레의 막중한 머리 무게가 앞으로 쏠렸다. 순간 얼어붙은 몸뚱이를 움직일 새도 없이 아이는 다시 한번 공중제비를 했고, 붙잡을 수도 없는 그 공간에서 더 멀리 날아가는 아이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악 소리와 함께 눈을 찔끔 감았다. 공중에서 360도 회전 두 바퀴를 하고 가까이 있던 신랑이 겨우 아이를 붙잡았다.
그의 말은 일종의 경고였던 걸까. 항상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아이는 다행히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곳이 없었고, 머리도 부딪히지 않았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혹 하나를 이마에 남겼고, 유성 매직으로 그은 듯이 선명한 멍자국 하나는 볼에 남겼다.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엉엉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소리 죽여 속으로 울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 남자의 꽥꽥 거림이 다시 귓가를 스쳤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얼어붙어버린 몸에 실망하며 자책했다. 나는 이제 그 사람처럼 연신 위험하다는 말로 꽥꽥 거리며 불안을 달랠 것이다. 사연 있는 사람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