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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29. 2024

단조로운 삶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쯤 세 아이를 학교, 유치원으로 보내고 현관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같이 날이 궂은날이면 어질러진 집을 모른척하고 일단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고민을 한다. 설거지가 먼저냐 청소가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지 보다 중요한 고민이다. 머릿속에서 그릇과 청소기 중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선택을 하려던 그때, 껍데기만 쏙 뒤집어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보인다. 주섬주섬 주워 담아 세탁기로 간다. 그릇과 청소기의 손을 뿌리치고 흰 빨래, 검은 빨래를 나눠볼까 고민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 함께 세탁기로 쑤셔 넣는다. 세탁기 버튼을 잽싸게 누르고 돌아서는 순간, 건조기와 눈이 마주쳤다. 빨래는 오늘도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일단 늦잠을 자라며 굳이 깨우지 않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을 발로 대충 모아놓고 청소기의 손을 잡았다. 오늘 같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빗방울 소리를 배경으로 청소기의 시끄러운 리듬으로 박자를 맞춰본다. 미세먼지 씻겨나간 깨끗한 공기가 얼마만인지. 흐리고 찌뿌둥한 먹구름이 손짓하는 포근한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길 잘했다. 청소기 먼지통의 뽀얀 먼지들이 쌓이는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도대체 이 먼지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괜히 청소를 했더니, 배가 고프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할지 설거지부터 하고 밥을 먹을지 또 고민에 빠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 배부터 채운다. 비 오는 날에는 칼국수가 마땅하나, 해먹을 재주가 없어 라면물을 올렸다. 보글보글 끓은 라면에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먹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먹었으면 당연히 소화를 시켜야 하는데 자꾸 졸음이 밀려온다. 오늘은 낮잠을 자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고 눈에 힘을 줘본다. 잽싸게 몸을 움직여 싱크대로 향했다. 미뤄둔 설거지를 한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그때, 셋째 임신 소식을 알았다. 셋째를 낳기로 결심한 후 제일 먼저 식기세척기부터 샀다. 신랑은 그게 왜 필요하냐며 못마땅한 눈초리와 잔소리를 보냈다.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고 들이기를 잘했다. 쏟아지는 설거지들 앞에서 이보다 더 좋은 가사도우미는 없다. 청소와 설거지까지 마쳤으니 모른 척 내버려 둔 빨래를 개야겠다. 건조기 문을 열고 동굴을 파헤쳐 바구니 가득 빨래를 담아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리모컨으로 TV를 튼다. 한 번 보면 멈출 수 없는 드라마를 눌렀다.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빨래를 개고 눈과 귀는 드라마에 집중한다. 드라마를 보려고 몰아서 빨래를 하는 건 아니다. 빨래는 다 갰지만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또 고민에 빠진다. 이걸 다 보고 음식을 할 것인가 여기서 멈추고 바로 요리를 할 것인가. 의도치 않게 바로 리모컨 전원을 눌렀다. 생각해 보니 내일은 신랑의 생일이다.


어머님, 신랑, 시누, 동생 생일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일주일 씩 시간차 공격을 해댄다. 케이크와 미역국에 질렸는지 작년에 신랑은 자기 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대충 밥을 먹다가 싸웠다. 올해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두 번 속을 수는 없다. 냉동실에 있는 고기를 꺼냈고, 이것저것 장을 봤고, 케이크도 예약했다. LA 갈비 양념을 믹서기에 갈며 복수의 칼을 가는 중이다. 내일 한식 9첩 반상을 차릴 것이다.


요리까지 끝내니 기가 막히게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들이켜 카페인으로 에너지를 채운다. 한 모금 넘기다 식탁에 놓인 다이어리도 넘겨본다. 1년을 알차게 지내보려 다이어리에는 군데군데 생일 표시만 겨우 적었다. 막상 빈 공간에 계획을 채워 넣기가 어려웠다. 이렇다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챗바퀴를 돌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것이다. 너무 단조로웠으므로. 



딸기 듬뿍 케이크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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