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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May 12. 2024

관리하는 여자

여자는 평생 관리해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엄마는 항상 화장을 하지 않고 대충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니는 나의 모습에 잔소리를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다녔다. 옷에 관심이 없어 부족한 나의 안목보다는 엄마의 안목이 나았다. 옷도 당연히 엄마가 사주니까 난 그저 골라주는 걸로 입었다. 비단 우리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대학교 남자 강사 선생님 한 명은 자신도 단벌 신사면서 나한테 옷을 좀 잘 입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수님 한 분은 나에게 요즘도 화장을 안 하냐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진다. 나는 괜찮은데 다들 난리일까. 나만 괜찮으면 되는 거 아닌가.


몸무게도 마찬가지다. 몸무게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등학교 때 최고조에 달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무용이었다. 백조 같은 발레리나의 길고 얇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원푸드 다이어트도 해보고, 청소기 같은 기계로 살은 쫙쫙 흡입하는 마사지도 받아봤다. 커다란 통 속에 들어가서 전기구이 통닭처럼 몸은 지져도 봤고, 1인용 사우나 실에서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 흘리려 발버둥 치다 몸을 데인적도 있다. 단 1그램이라도 줄여보려 한 여름 에어컨 없는 무용실에서 랩을 감고 타이즈를 입고 그 위에 또 땀복을 입고 티셔츠까지 걸쳐가며 불타오르는 고구마처럼 헉헉 거렸다. 평양냉면 육수 같은 땀을 흘리며 끝나지 않는 살과의 전쟁을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하체는 변하지 않았다. 갖은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건 세상에 존재한다. 누군가의 외향을 바라보며 노력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발레를 포기하고 한국 무용으로 전공을 정했을 살로부터 해방됐다. 한국무용은 한복으로 하체를 가릴 수 있었고, 하체가 튼튼해야 버틸 수 있는 동작들도 많았다. 발레를 할 때는 콤플렉스였던 튼튼한 하체가 한국 무용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피자, 치킨, 떡볶이를 얻었다. 아이 셋을 낳으면서도 30킬로그램씩 번을 쪘다가 뺐다. 임신을 하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기에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 나잇살이 늘어 몸무게 앞자리가 자꾸 바뀌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돼지 국밥을 먹었고, 피자를 먹고, 회에 매운탕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디저트로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며 달콤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했으니 오늘은 양심상 조금 늦게 자려한다. 내일은 오늘 보다 좀 더 걸어볼 예정이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닌 나의 건강을 위해서.




맛있는 초코 케이크를 먹으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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