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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May 10. 2024

아줌마, 그게 바로 나예요.

며칠 전, 집에 날아온 마트 전단지를 본 첫째가 금요일에는 꽃게가 4마리에 만원에 판다고 꼭 사달라고 한다. 집 바로 앞에 있는 마트도 아니고 꽃게를 사러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다니.


오늘은 드디어 금요일이다. 꽃게 타령에 장단을 맞추려 마트로 향했다. 장바구니를 배낭에 챙겨 넣고 밀짚 선캡까지 쓰고 집을 나섰다. 여유롭게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 고개를 넘고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익어갈 때쯤, 성북천에 도착했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피어있는 장미 한 송이가 눈에 띈다. 좀 더 걸어가니 햇볕 좋은 곳엔  분홍색 장미가 활짝 피었다. 아기 얼굴만큼 커다란 장미꽃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넋을 잃고 바라봤다.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까지 맡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며 5월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았다.


성북천 장미가 제철


장미 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조그마한 식당의 콩나물국밥 냄새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던가. 조금 걸었다고 금세 배고파하는 배꼽시계를 멈추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가한 식당에는 백발의 중년 아저씨 한 분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릇 가득 담긴 뜨끈한 콩나물 국밥을 후루룩 짭짭 맛나게 들이켰다. 왠지 저 아저씨랑 주거니 받거니 배틀을 뜨는 것 같다. 후루룩 짭짭. 쩝쩝 후루루루룩. 속도를 붙여 봤으나 아저씨는 먼저 그릇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혼밥의 친구, 커다란 태블릿 pc를 여유롭게 접으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한다. 잠자리 날개처럼 옆으로 팔 벌리는 변신 선글라스이다. 혼밥 아이템 태블릿 pc에서 1판, 아줌마 밀짚모자 보다 더 핫한 선글라스에 또 1판. 완전히 K.O 당했다. 의문의 1패를 뒤로하고 씩씩하게 콩나물국밥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다시 꽃게를 향해 걸어간다. 마트에 가니 수산물 코너에 꽃게가 여러 조각으로 잘라 예쁘게 포장되어 있다. 작년 가을 톳밥에서 살아 숨 쉬는 꽃게를 두 박스 사서 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아이가 원한 건 살아있는 꽃게 일 것이다. 안 사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몇 마리를 집어 들었다. 꽃게 옆에는 전복이 꼬물꼬물 살아있다. 어릴 때, 전복이 비싸서 아플 때만 엄마는 전복죽을 끓여주셨다. 그렇게 귀했던 전복이 오늘은 10마리에 1만 원 밖에 안 한다. 2팩을 냉큼 집었다. 계산을 하다 비닐을 뚫고 나온 꽃게 다리에 찔려 피를 흘렸다. 오늘도 꽃게랑 싸우다 졌지만 든든한 장바구니를 보니 흐뭇하다. 귀찮아도 발품 팔아 다녀오길 잘했다.


나는 선캡을 쓰고 꽃 사진을 찍으며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의 행복한 아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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