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하염없이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나라, 인도네시아.
여기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 어이없는 아파트의 실태를 이야기하고 무슨 대책이라도 내달라 요구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의심부터 하고 포기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포기는 무나 자를 때 쓰라지. 최소한의 단어로 사태를 해결해 보고자 머리를 굴려본다.
어제의 말도 안 되는 일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번 비가 내리면 누군가 세숫대야로 물을 퍼붓는듯한 열대지방의 폭우. 어쩌다 도로 위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차가 막혀서 1시간도 서 있을 수 있는 곳, 비로 인한 기다림이 허용되는 나라이기도하다. 어쩌다 출근길에 빗방울을 만나기라도 하면 지각을 걱정하기는커녕, 그날은 계 탄날이다. 늦어도 용서가 되는 운수 좋은 날이다.
그러나 집으로 들이닥치는 폭우는 달랐다.
퇴근 후 여유를 즐기며 텔레비전이나 보자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때.
톡 톡 톡 똑 똑똑 똑똑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빗방울은 전주도 없이 바로 절정으로 치닫는 운명 교향곡처럼 거세게 내리쳤다. 뭐 이런 비쯤 이야 이제 눈도 깜짝하지 않는 프로 적응러는 대수롭지 않게 리모컨을 누르며 채널 돌리기에 집중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뭔가 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른 소리가 방에서 나는 듯하다.
똑 똑 똑 똑 똑똑 똑똑 또도도독 쏴~~~~~~아
비, 많이 오면 벽이 좀 젖을 수 있겠지. 누수가 생길 수 있겠지.
비가 샌다. 아니, 집에서 비가 내린다.
창문 틈으로 내리고, 벽에서 내리고, 천장에서도 내린다.
그냥 물이 철철 흘러내린다.
여기는 인도네시아, 집에도 비가 내린다.
@photo by pixabay
믿기 힘들지만 신축 아파트 7층에서도 홍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대야도 받치고 몇 개 없는 수건도 깔고...
비만 그치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그러나 지금은 한번 비가 왔다 하면 몇 시간도 내리는 우기이다. 이 비는 언제 그칠지 하늘만 알 수 있다.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내 걱정도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결국 방 한 편의 물난리는 밤새도록 반복되었다. 소파에서 쪽잠을 잔 퀭한 몰골의 추녀는 일단 관리사무소에 전화부터 해본다.
없는 말 있는 말 할 말 안 할 말 다 끌어다가 요리조리 섞어서 어제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대답은 아주 잘한다. 알았다고 한다. 분명히 알아듣긴 했을 거다. 네 네네네 네네 소울리스좌의 랩처럼 영혼 없는 대답이라도 들었으니 일단은 기다려본다.
그 뒤로 집에 찾아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 이 맛 아닙니까. 한 번에 되면 이게 한국이죠.
암요. 압니다. 다시 걸어볼까요.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관리 사무소의 일처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일단 출근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자.
지친 몸을 이끌고 또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때, 벽에 보이는 선명한 물자국이 뚜렷해졌다.
무섭다. 오늘 또 비가 올까. 오면 또 쏴 쏴 쏴 쏴 쏴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도를 닦아야 하는 건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천장의 갈라진 틈이 딱 처량한 외국인 노동자 내 신세와 사뭇 닮아서 짠내 나는 눈물을 훔쳤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사무실 직원에게 홍수 나는 집 사진을 보여주며 개발새발 설명을 했다. 역시 위기상황에서 언어 능력은 상승한다. 궁지에 몰리면 살아남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생존 본능은 드디어 관리사무소에서 보내준 인부들을 보내주었다.
청년 두 명이 대충 천장에 구멍을 내더니 뭔가를 바르는 듯했다. 대충 구멍을 메꾸고 여기는 공사 중이란 티만 내놓고 돌아갔다.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믿어봐야 하는 이 천장은 왜 내 처지 같을까.
침대에 누워 천장에 대충 칠해진 얼룩진 페인트 자국을 보니 마음만 더 심란해진다.
뭐 하나 끝마무리가 안 되는 건 천장이나 내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갑자기 마음 한편에 얼룩진 그림자들이 솟아올라 요동친다.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게 해 달라는 마음속 외침은 어쩌면 인생의 폭우를 견디기 싫다는 투정 같은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물에 푹 젖어 흐물흐물 불어 터진 라면 면발처럼 질척거리는 눈덩어리를 비벼본다.
오늘은 빗방울 소리를 듣지 않고 편하게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