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사고 싶은 게 없는 나란 사람도 소비 욕구가 유독 샘솟는 곳이 있다. 서점만 가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냥 지나가다 잠깐 둘러만 볼까 하고 하고 들려도 사고 싶은 책을 주섬주섬 계산대로 가져가고 있고, 계산을 하고도 자꾸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아른거려 얼른 밖으로 도망갈 때도 있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는 몇 백만 원어치 책이 항상 담겨있다. 왜 책은 사도 사도 또 사고 싶은 걸까.
엄청 마음에 들어 사온 책들인데, 다 읽지 않는 책도 많다. 그냥 책꽂이에 꽂아만 놔도 흐뭇한 책도 있고, 집에 와서 다시 보니 너무 빨리 읽으면 이 책과 영영 헤어지는 것 같은 아쉬움에 아껴서 읽는 책도 있다. 그냥 책이 좋다. 새 책 냄새가 코끝으로 살랑이며 책장 넘기는 소리도 좋다. 첫 장을 꾹 눌러 접을 때의 쾌감이란.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아직도 많다. 내가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행위가 있다는 자체가 좋다. 책을 고르는 것부터책을 사는 것,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까지 모두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랑한다. 책과의 만남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의 집합체이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서점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원 없이 책을 사면 좋겠다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어쩌다 백화점상품권 100만 원어치가 생겼다. 백화점에도 교보문고가 있고, 상품권으로 결제가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엄청난 흥분이 샘솟았다.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걸로 책을 사야겠다고 했다. 그는 어이없어했다.
"100만 원을 다?"
왜 안되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조용히 야금야금 책을 사들이고 있다. 그냥 사랑에 빠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