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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무용과는 처음이지.(2)

by Hee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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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발랄한 미대생들의 뒷모습을 부러움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강당으로 갔다. 배도 부른데 소화를 시켜볼까. 살찌면 안 되니깐요. 무용과 체중조절의 시간입니다. 칼로리 소모에는 또 무용 아닙니까까까.

아무래도 집에 갈 때쯤엔 저주받은 하체에서 탈출하여 상하체 사이즈가 같아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


누군가 또 노래를 못 불렀다. 에잇. 소화를 시키자. 피티체조,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이렇게 소화가 잘 되는 체질이었다니, 우리에겐 식체란 없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골고루 섞어서 조를 나눴다. 이제 조장을 뽑아야 한다. 가위, 바위, 보를 더럽게 못한 죄로 재수 없게 조장이 됐다. 조장은 조 깃발을 지켜야 한다. 그놈의 깃발을 지키느라 잘 때도 깃발을 끌어안고 잠들 수밖에 없는 조장의 숙명이 추가됐다.


두둥.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아우라의 언니가 나타났다. 왜 웃긴 거지. 그 와중에 왜 재미있지. 못 참겠다. 웃으면 혼내는 고도의 전략에 우리는 초토화되고 있었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속으로 욕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웃기지만 말아주세요.


깃발 잃어버렸다 혼나고. 대면식 인사 못한다고 혼나고. 노래를 아직도 못 외웠냐며 또 혼이 났다.

혼내는 방법도 가지가지. 무용 연습도 시켜준다. 돌고 돌고 또 돌고, 점프 점프 점프, 뛰고 뛰고 또 뛰고. 계속 한 동작을 반복, 반복 또 반복. 아주 이러다 세계 그랑프리 대회를 휩쓸고 올 프리마돈나가 되어서 돌아갈 것 같다. 공옥진 여사를 능가할 인간문화재가 될 것도 같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겨우 숙소에 잠시 널브러져 있었다. 우린 서로 머리를 맞대며 명탐정 코난은 저리 가라 할 실력으로 어떤 언니가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지 목소리와 신발로 범인을 추리했다. 체크무늬, 까만 스니커즈, 흰색 나이* 세명만 피하면 된다.


취침 시간 씻지도 못하고 고린내가 나는 그 좁은 방에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았다. 겨우 하루가 지나려 할 때,

잠깐 눈을 감았는데, 일어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아침인가. 참 창의력도 좋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구나. 별 보러 가자는 가수 적재가 뒤로 넘어갈 소리 하고 있는 이 언니들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오밤중에 자다 말고 깨우더니 차가운 흙바닥에 눕혀놨다. 별은 또 왜 예쁘고 난리. 극기 훈련에서 빠지지 않는 신파 감성 터지는 울음이 여기저기 눈물바다다. 자존심 상한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새벽 공기를 듬뿍 마시고, 돌아왔는데 아직도 밤이다. 시간은 이럴 때만 왜 기가 막히게 느리게 가는지. 아직도 우리는 엄마를 찾을 수 없는 엄마목장에 갇혀있다.








다음날, 여전히 미대 새내기들은 하하 호호 즐겁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여전히 떼굴떼굴 구르고 뛰고 격한 신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늦게 온 간 큰 친구가 한 명 등장했다.


어라. 근데 열외다.

그 친구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등장했다. 성형수술. 이왕 고칠 거 기가 막힌 날짜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너라도 살아남으라 열렬히 응원했다.


또 열외다. 발목을 삐끗한 친구.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언덕에서 할리우드 액션이라도 한판 해줘야 하나 고민이다.


저녁이 되자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구르는 줄만 알았더니 별 걸 다한다. 당근과 채찍을 자유자재로 쓰는 놀라운 밀당녀들.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 한 분위기에 취해서 룰루랄라 서로 즐거워하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

이제 끝. 바로 고개 숙여. 사이코패스인 줄.


이제는 조금 적응된 몸을 이끌고 잠을 자려할 때, 한 친구가 스르륵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설마. 너 설마.

샤워기 물을 틀었다. 아니지. 너 정말. 설마. 설마. 설마.

모두들 숨을 죽이던 그때, 말릴 틈도 없이 이 간 큰 아이는 3일 동안 풀지도 말라는 머리를 감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언니들의 눈을 피해 용감하게 머리를 감은 그 친구는 얼마나 개운했을까. 애 낳고 며칠 동안 못 감은 머리를 감는 기분 보다 더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함은 모든 이들을 만족시켰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날이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보니 집에 갈 날이 오긴 오는구나.

우리는 노래와 대면식 인사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A. I. 가 되어 버스를 탔다.

여전히 머리카락 한 올도 튀어나오지 않는 똥머리를 유지하며 지긋지긋한 극기훈련 오티가 끝났다.


우리는 무얼 위해 이토록 굴렀을까. 그들은 무얼 위해 죽도록 괴롭히는 걸까.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악습을 끊어낼 수는 없는 걸까.

알 수 없는 인과관계에 대한 물음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학교 정문을 나서는 그때, 어디선가 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끝난 줄 알았지.

어서 와, 무용과는 이제 시작이야.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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