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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by Hee언니

우리 동네에는 맛있는 설렁탕 집이 있다.

(**설렁탕 : 내돈내산이지만 사람이 더 많아지면 사장님이 가게 문을 닫을 것 같아서 **처리합니다. 개인적인 문의 적극 환영합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한번 맛본 그 맛이 얼마나 맴도는지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곳이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면 10시 30분, 붐비는 시간을 피해 여유롭게 국물까지 싹싹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하루 온종일 든든한 마음이다.








탕이 나오기 전 밥공기 보다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국수사리 한 덩이가 나온다. 거기에 따로 접시에 담아주는 김치 국물을 쓱쓱 비벼 김치 한 점을 싸서 먹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는 이들의 마음을 어찌나 잘 아시는지 밥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 사장님은 훌륭한 애피타이저 먼저 내주신다. 배고픔을 살짝 달래 놓은 위장은 더 활발히 움직여 국물도 술술 잘 넘어간다. 보통 설렁탕에는 새빨간 국물 걸쭉한 깍두기가 함께 나오는데 이 집은 아니다. 배추와 무가 적절히 섞여 바로 한 겉절이도 아닌 푹 익은 묵은지도 아닌 새콤 달콤한 김치다. 푹 익지도 설익지도 않은 적절한 상큼함이 설렁탕 그리고 국수와 찰떡인 신기한 김치다.


드디어 국물이 나온다. 뚝배기에 가득 담긴 탕은 넘칠 듯이 찰랑거린다. 썰어놓은 파 듬뿍 넣고 소금 살짝, 후추 살짝 뿌려서 국물부터 한입 후후 불어 호로록 넣는다. 국수 먹은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탕을 한 두 숟가락 넣어 천천히 밥알을 식혀본다. 손님이 많아서 공깃밥을 그냥 줄 법도 한데, 항상 토렴 한 밥이 국물에 담겨 나온다. 사장님은 맨손으로 뚝배기 온도를 확인해 가며 식힌 밥에 국물을 일일이 넣었다 빼는 귀찮은 토렴을 항상 하고 계신다. 토렴을 기다리는 시간 그 잠깐의 차이가 정성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 밥이 국물에 불는 게 싫어서 국밥은 항상 따로국밥으로 먹는 편인데, 유독 이 설렁탕 국물 속 밥 알갱이는 정성이 전해지는 적당한 국물을 머금고 있다.


이상하게도 평소 국물을 다 먹지 않는 식성이지만, 이 집만 오면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깨끗이 먹는다. 뽀얀 국물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다는 의지로 김치 하나 같이 곁들여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밥과 국수는 무한리필. 학교 앞이라 인심도 후해서 가끔은 밥도 한 그릇 더 먹는다.



**설렁탕 김치와 김치국물. 밥이 나오면 먹기 바빠 사진이 없어요.




아빠가 모는 택시를 타고 설렁탕 집에 종종 갔었다. 그곳에는 설렁탕과 계란 한 알이 항상 같이 나왔다. 콩나물 국밥에 계란을 넣어 먹듯 계란을 탁 깨서 탕에 넣어 먹거나, 생으로 먹거나. 어린 꼬마는 펄펄 끓는 뚝배기에 계란을 톡 깨뜨려 넣고 라면에 계란을 풀듯 휙휙 져어 먹었다. 토렴 한 밥알을 보니 계란 하나를 함께 주던 정성이 묘하게 겹쳐 추억으로 떠오른다. 아빠와 밥 한 끼 먹던 따뜻함이 그리워 그곳을 찾아가려 해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것이 애달프다. 그곳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에 빠르게 변해만 가는 세상이 슬퍼지려 한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시간들이 아쉽다.


찬바람이 어색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시린 겨울날, 국물 한 모금이 노곤노곤 녹아내려 따스하게 가슴까지 채워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차가움이 다 사라져 버려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녹아버리기 전에 그곳으로 가야겠다. 오늘 겨울의 차가움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설렁탕집으로 오픈런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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