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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Jul 23. 2024

직장 상사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너에게

남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를! 


딸아, 


네가 호주로 돌아갈 날도 머지않았구나. 네가 토론토에서 집으로 와서 엄마와 함께 생활했던 약 3주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네가 아르바이트하는 직장 상사와의 문제를 엄마한테 털어놔 준 것이 엄마는 고마웠다. 너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거든. 엄마라고 딸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엊그제 너는 하니 두나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직장 다닐 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랑 어떻게 지냈어?"


엄마는 잠시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야. 엄마가 직장을 그만둔지 오래되기도 했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뉘앙스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너에게 물었지. 너는 지난번에 너를 심하게 질책했던 그 직장 상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꼴도 보기 싫다고 했지. 


게다가 그 한 사람 때문에 '크리스찬 디오르' 향수도 싫고 브랜드도 싫어진다고 하더구나. 향수를 맡으면 그 싫은 사람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그렇게 선망하던  '크리스찬 디오르' 향수 매장에서 일하게 됐다고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쩌다가 크리스찬 디오르란 향수도, 브랜드도 싫어졌는지... 


엄마는 조금 놀라웠다. 아니 사실 많이 놀랐다. 얼마나 사람이 싫으면 그렇게 되나 싶어서 말이야.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싫으면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그냥 나와 버리면 될 것을 너는 또 그 상사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물으니 그것도 참 이상하더구나. 딱히 이해는 안되지만, 기특했다고나 할까?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엔젤리스 CEO)라는 유명한 미국 투자가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싫어할 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바꾸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받아들이거나!'


내로라하는 미국 기업들을 상장시킨 이 사람은 언뜻 보면 많은 것을 바꿀 것만 같은 데, 의외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많이 한대더라. 바꾸고 떠나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라서 그렇다지 아마? 


어쩌면 너도 바꾸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쉽지 않으니, 받아들이겠다고 한 걸까? 다만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아직 경험이 부족한 너에게는 숙제였겠지. 


엄마는 잠시 엄마가 직장 다닐 때를 떠올려 봤다. 이미 30년도 훨씬 지난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했지만, 기억나는 게 한두 개 있긴 했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직장 상사를 2가지 정도로 분류해 보자면, 그 한 가지는 능력이 있지만,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야. 지나친 의욕과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작은 잘못도 일일이 지적하면서 곧잘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거든. 


엄마 역시 직장 초년병이던 시절, 엄마 생각에는 아주 사소한 일로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 그 선배를 피해 다닌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선배나 상사가 너를 야단칠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때는 배우겠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그리고 설사 너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평소보다 지나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이런 사람 앞에서는 네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뭐든 물어보는 게 제일이다. 대부분의 직장 선배들은 몰라서 물어보는 후배를 내치지는 않으니 말이다. 엄마도 그렇게 했다. 덕분에 나중에는 관계가 좋아졌고. 


두 번째는 일도 잘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서 존경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직장 상사를 만났을 경우다. 그건 바로 무시하는 거지.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고 봐도 좋고. 


"엄마, 그게 어떻게 가능해? 어떻게 무시하면 되는데?" 


그 말에 엄마는 한 명의 직장 선배를 떠올리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어떤 인간적인 유대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 앞에서 무례하게 대하진 말고, 기본적인 예의만 갖추라고 했지. 심지어 엄마는 그 사람 앞에서는 웃으면서 말하고, 뒤돌아서면 쌩까도 된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 엄마의 경험이었는데, 엄마는 실제로 그렇게 했거든.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 선배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단다. 마음속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우호적일 수는 없다는 거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10명 중 두세 명은 이유 없이 너를 싫어할 수도 있고, 다른 두세 명은 또 너를 거의 무조건 좋아할 수도 있단다. 나머지는 그냥 무관심하지. 상황에 따라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런 모든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사는 게 너무 힘들게 돼. 직장에선 직장에 맞는 처세법이 있을 거야. 네가 있는 자리에서 그 자리에 맞게 행동하는 거지. 능력이 부족하면 배우고, 예의가 필요하면 예의를 다하면 되지. 


직장 상사를 크게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거든. 그런 모든 인연에 연연해 하면 인생이 무척 고달프게 된단다. 


물론 일도 잘하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있지.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우고 따라야지. 


그런데 네가 말한 그 직장 상사는 의욕적이고 능력은 있지만 성격이 급하고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어. 아직 20대 후반밖에 되지 않았다며? 그럼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 


나이가 많다고 꼭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만, 엄마가 보기엔 너나 그 직장 상사나 그냥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겪어 보지 않았기에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만, 나이와 경험이 주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그 직장 상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단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짐이 있을 수 있거든. 


'차이웨이'라는 타이완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단다.


"인생은 쉽지 않다. 누구나 저마다의 행복과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만나는 사회 구성원들도 다르다. 그렇기에 내 입장만을 생각하고, 상대를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논리다. 당신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타인에게는 그저 엄살로 보일 수도 있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기> 중에서.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직장 상사가 내 모든 것을 이해해 주리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그 직장 상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네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기본적인 예의만 다 하면 되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너는 이 직장 상사가 많이 두려웠던가 보더라. 한국에서 호주로 돌아가는 당일 아르바이트 장소로 가야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더라. 그 직장 상사가 그렇게 스케줄을 짰다고 했지. 


엄마가 "스케줄을 바꾸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너는 "바꿔주지 않을 것 같다"고 고민만 하고 있었지. 예전에 한번 바꿔 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면서. 


엄마는 "그래도 한번 말해보라"고 했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끌고 아르바이트 장소로 간다는 게 말이 되냐라면서. 미리 짜인 스케줄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짠 스케줄이면 사정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도 했다. 


다행히 너는 그 스케줄을 바꾸었다고 했다. '엄마 덕분'이라고 좋아하기도 했고. 


그런 너를 보면서 엄마는 기쁘면서도 좀 안타깝더구나. 너는 강해지고 싶다면서 머리까지 잘랐지만, 실제로 강해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이다. 


무엇보다 네가 너무나 '남의 시선'에 얽매어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직장 상사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지위이다만, 그것조차 네 권리까지 포기하면서 볼 필요는 없단다. 


또 한 가지는, 어떤 사람을 한 가지 색깔로만 규정하면 안 된다는 거지. 누군가가 나쁜 행동 한 가지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거든. '나쁘다, 좋다'는 것도 내 생각일 뿐일 가능성이 크고. 물론 아주 드물게 악인도 있긴 하더라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힘'이란다. 아주 중요해 보이는 어떤 일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거든. 오죽하면 지혜의 왕으로 꼽히는 솔로몬조차 "이 또한 지나가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을까. 


그러니 화가 나 있을 때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조금 기다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그럼 그 사건도 사람도 달리 보이거든. 


너도 그랬다. "엄마, 그 매니저가 이번엔 친절했어!"라고. 그러면서 너는 이런 말도 했지. 


"엄마, 내가 좀 지나쳤던 것 같아. 이제 디오르 향수도 디오르 브랜드도 다시 좋아졌어!"


헐, 어쩜 이리 단순하고 순진한지. 내 딸이지만, 놀라웠다. 그게 어쩌면 네 장점일 수도 있겠지? 엄마는 그렇게 믿고 싶다. 


엄마가 보기에 너는 여전히 약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란다. 그리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해진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엄마도 알고 있거든. 많은 경험과 시련이 필요한 일이야.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인생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거다. 네 가치를 남이 판단하도록 하지 말라는 뜻이지. 너는 누구보다 가치있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사랑한다, 아가. 


2024년 7월 23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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