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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Jul 26. 2024

비교 불안에 빠져 자신감을 잃은 너를 보며

우리는 평생 배우고 성장하는 인생 학교 학생!

딸아,


호주에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다. 평소에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카톡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번에는 연락이 없어서 좀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방학기간에 너는 여러 가지로 엄마를 불안하게 하더구나.


너는 토론토에서 오자마자 머리를 자르고, "변하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라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 모든 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빌어먹을 숙제였지.


토론토에서 실시한 '중고 명품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써내야 하는 4천 자 리포트. 너는 오자마자 그걸 써야 한다면서 4박 5일 동안 엄마 고향에 다녀오는 것도 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엄마 고향에 갈 때도 컴퓨터를 챙겨 가서 틈틈이 썼건만, 결국 1차 마감기한이었던 7월 20일까지 다 써내지 못했다. 그날 너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지.


결국 교수한테 전화를 해서 사정 설명을 하고, 마감 기한을 늦추었다고 했던가, 24일 밤까지로?


너는 7월 20일까지 숙제를 끝내면 타이완에 가자고 하더니, 그게 물 건너간 것은 물론이요, 그 이틀 뒤 엄마 친구 정수이모랑 점심 먹기로 한 약속조차 펑크 내고 말았다. 숙제를 못해서 점심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했지. 이 말도 너는 울면서 했다.


몇 년 전, 시드니에 함께 갔던 정수 이모는 너를 유난히 이뻐했지.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잡았다. 너도 정수 이모를 보고 싶어 했고. 그런데 결국 숙제 때문에 못 갔다. 물론 미리 연락해 정수 이모의 양해와 이해는 받았지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거였다.





엄마는 너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어서 참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거지. 너도 인정하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완벽할 필요도, 완벽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너는 은근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데다, 어딘가에 막히면, 돌아서 갈 줄을 모르는 기질을 갖고 있다. 마냥 그걸 붙잡고 앉아서 끙끙대는 문제가 있더라.


엄마가 글 쓰는 사람이다 보니,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름 '조언'이라는 것을 해줬다.


원래 머리말을 쓰는 것이 제일 어려우니, 일단 본문 내용부터 써놓고 머리말은 나중에 써라는 식으로. 머리말에서 멈춰 버리면 결국 본문은 써보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 버리거든. 엄마도 다 경험해 봤지. 사실 본문을 써다 보면, 머리말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는 거야.


영어로 쓰는 논문인지라 엄마가 그 논문을 읽고 코칭해 줄 정도는 아니지만, 글 쓰는 방법이야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게다가 너는 마감 날짜를 다시 한번 연기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 말에는 "아서라, 마감을 한번 연기했는데, 또 연기하면 어쩌니? 너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질 거고 그럼 더 부담이 돼서 쓰기 힘들어. 그냥 쓰는 데까지 써서 보내라"고도했다.


마감은 어떤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엄마 역시 마감이 있는 직종에서 10년 넘게 일했기에 마감 스트레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면서. 2차 마감 하루 전에는 "이제 좀 정리가 됐다"면서 금세 4천 자를 다 쓸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 위로와 조언이 도움이 된 듯하여, 엄마로서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나 나름 뿌듯해하고 있는 참이었다.


너는 출발 전날 밤에도 거의 밤을 새우는 것 같기에, 이제 논문을 다 써서 보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마는 네가 호주로 출발하는 당일 아침에도 평소대로 하니를 산책시키고 왔다. 그날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더웠다. "폭염이 당신을 먼저 죽일 수 있다"는 기후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환히 웃는 너의 얼굴을 기대하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땀이 무색할 정도였다.


너는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펑펑 울더구나. 땀 냄새 싫어하는 네가, 그때는 엄마의 땀 냄새조차 문제가 안되었던가 보더라.


엄마는 너의 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있다가, "아직도 숙제를 못 끝내서 스스로 한심하게 여겨지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너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바보 같다"라고 입을 삐죽이면서.


네가 어릴 때 입을 삐죽이며 우는 모습은 참 귀여웠는데, 이때는 별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그냥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털어놓는 말에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 나는 너무 에너지가 부족해. 전부 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돼. 다른 아이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건 단순히 숙제를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닌 듯싶었다. 무슨 말이냐고 너에게 되물었다. 무슨 또 다른 일이 있는지, 뭘 그렇게 '' 잘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너는, 이번에 토론토에 함께 갔던 아이들은 일종의 '장학생 그룹'이라고 했다. 입학할 때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라, 학교에서 일종의 특혜로 토론토 연수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비행깃값과 기숙사비를 학교에서 내주는 식이라고 했지.


"그 아이들은 다 똑똑한 아이들이야. 항상 얘기할 때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껴.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 잘 안돼!"


허 참. 그 장학생 그룹에 너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인데, 어쩌자고 본인 빼고 전부 다 똑똑하다고 느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너의 문제가 파악되더구나. 너는 처음부터 '너무'잘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우니 스스로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글 쓰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엄마가 아무리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해도 그게 네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고 본다.


엄마는 또 "다른 문제는 뭔데?"라고 물었다.


너는 네가 하다가 중단한 유튜브도 다른 아이들은 이미 구독자가 엄청 많아졌는데, 너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럼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했더니, 그걸 전부 다 하기에는 네 에너지가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너는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도 했지.


그러고는 그동안 너의 대학 생활 전부를 잘못된 것처럼 폄하하고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하더구나.


그 말에 엄마는 기가 막혔다.  


나는 그동안 네가 잘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록 원하는 미국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꽤 좋은 성적으로 호주에 있는 대학에 가서 나름 잘 적응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대학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줄 알았지.


너는 방학 전에도 크리스찬 디오르 향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 생활 하는 게 보람차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시간도 오히려 알차게 사용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도대체 너를 어떡하면 좋단 말이니.







그 순간, 최소한 그 순간에 너는 불행의 구덩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작은 파리처럼 보였다.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온다'라고 했는데, 너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너 자신을 폄하하고 있었다.


사실 비교 자체는 문제가 없다. 비교하면서 자신이 부족한 점을 찾고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과정이 곧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는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게 문제인 것 같더라.


욕심은 많은 데 능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물론 이때의 능력은 너의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네가 생각하는 너 자신의 능력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부족한 거다!


불행이 생기는 또 하나의 원리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인데, 이 역시 네가 사로잡혀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너는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면서 불행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엄마는 그 순간 그렇게 느꼈다. 그러다 보니 네가 안쓰러우면서도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그런 네 말은 엄마의 인생조차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그동안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수십 편의 글을 써서 네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당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그동안 해 온 모든 말들이 '허공에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에 찾아온 또 하나의 감정! 그건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가'였다. 내가 과연 너를 한심해할 자격이 있는가?


사실 엄마도 잘 못하고 있다. 엄마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한다. 매일 10편씩 글을 쓰는 사람, 매일 5시에 글을 올리는 사람을 보면 엄마도 부럽다. 심지어 하루 한편도 글을 못 쓸 때도 있다. 그런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는 다만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대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엄마 역시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기에, 네가 자신에 대해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서 흠칫 놀랐다. 그런 것도 닮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안타까웠지.


그래서 엄마가 너에게 해 준 말 기억나니?


"사실 엄마도 딴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안 할 수는 없더라. 그리고 엄마도 에너지가 부족해서 더 잘하고 싶은 데 잘 안돼. 그런데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우리는 에너지가 부족하게 태어났으니, 선택하고 집중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단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뭐가 돼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너무 한꺼번에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선택해서 집중해 보고, 잘하면 또 조금씩 늘려보라고 했지.


너는 엄마의 이 말에 나름 안도하는 표정이던데, 그런 것 맞지?


엄마는 다행히도, 과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폄하하는 습관은 없다. 엄마가 가진 몇 개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과거의 잘못은 잘못일 뿐, 그것에 사로잡힐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단점에 집중하는 것도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마도 나이가 주는 교훈이겠지 싶다.


엄마가 환갑을 앞둔 나이에, 수많은 경험과 시련, 수많은 책을 통해 깨달은 것을 지금 20대 초반의 네가 깨닫기에는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너는 네 나름대로 너만의 인생을 경험하면서 깨달아야 될 일이다.


그러니 엄마도 너무 많은 기대를 내려놓고, 너무 많은 말조차 아끼면서 그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겠지?


다만 이 말만은 해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인생 학교 학생이야.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엄마도 마찬가지고. 엄마도 아직 많이 부족하거든. 언제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이 생기든, 그 사람 또는 그 일에서 배우려는 자세를 잊지 마. 그런 자세로 살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겠지. 그러니 지금 부족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거든. 네가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엄마의 이런 말들이 너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딸아,


사실 엄마는 네가 걸핏하면 우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어쩌면 울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슬픈 감정은 표현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니 말이다.


이번에 네가 흘린 그 눈물이 언젠가 네 웃음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2024년 7월 26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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