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때문에 누나가 다치는 바람에 제가 좀 쫄기는 했지만, 저는 여전히 똥꼬 발랄하게 잘 지냈어요.
가을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남자는 모름지기 가을 아닌가요? 다행히 엄마도 가을을 좋아한답니다. 엄마가 가을생이라 가을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봄 여름동안 다소 들떠 있던 마음이 가을이 되면서 차분해진다고 해요. 인생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네요. 저는 물론 견생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답니다.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가을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계절이라 산책하기도 좋고, 놀이터에서 놀기에도 좋아요. 엄마는 매일 하는 산책이지만, 가을이 되면 좀 더 기분 좋게 하는 것 같더군요. 놀이터에도 더 자주 데리고 갔어요.
그때 엄마는 제 견생 처음으로 바바리코트도 사줬답니다. 바바리코트 입은 제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게요! 간지 나지요?
사실 엄마가 바바리코트 사 준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매일 흙바닥에서 뒹굴고 놀았더니 씻기기가 너무 힘들어서 사줬대요. 그래도 코트 입고 뒹굴면 흙이 온몸에 묻지는 않으니까요.
이유야 어쨌건 그때 제 바바리코트 입은 모습보고 저에게 반한 여견들이 많았어요. 덕분에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됐답니다.
첫 번째는 ‘꽃순’이에요. 골든과 진돗개 믹스라고 했는데, 꽃처럼 이쁘죠? 엄마는 방송작가, 아빠는 방송국 PD래요.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시간여유가 있는 편이라 놀이터에 자주 왔답니다. 꽃순이는 저랑 생일도 비슷해서 쉽게 친해졌어요. 저는 여성적인 꽃순이가 좋았어요. 말하자면 꽃순이가 제 첫사랑이에요.
왼쪽이 꽃순, 오른 쪽이 하니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꽃순이랑 데면데면해졌어요. 저는 사춘기가 되면서 좀 더 활동적이고 짓궂게 변했는데, 꽃순이는 좀 더 여성스럽고 더 얌전하게 변하는 바람에 제 장난을 꽃순이가 싫어하더군요. 물론 저는 처음에는 몰랐죠. 왜 싫어하는지를요. 그래서 막 들이댔는데, 들이댈수록 꽃순이가 저를 멀리하더라고요. 견생 최초로 실연을 맛보았지요. 하여튼 남자는 막 들이대면 안 된다는 교훈을 저는 얻었답니다.
두 번째 여친은 ‘마린’이었어요. 마린이는 꽃순이와 정 반대 성향이었답니다. 저보다 한 살 정도 어린데, 어려서 인지 에너지가 넘쳤어요. 몇 시간씩 놀아도 지치지 않더군요. 헤엄도 잘 치고, 다이빙까지 하는 만능 스포츠우먼이었어요. 마린이 엄마도 그렇다네요.
왼쪽이 하니, 오른 쪽이 마린
저는 마린이랑 놀고 들어오면 완전히 지쳐서 쓰러졌어요.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모습 보이시죠?
어쨌거나 마린이는 제가 감당을 못해서 헤어졌어요. 굳이 제가 차였다는 표현은 안 할게요. 이번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인 게 사실이지만, 저도 마린이를 감당하기 힘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개도 사람도 자신에게 맞는 인연이 따로 있답니다.
어쩌면 저는 그냥 독신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그 이후 종류불문하고 저랑 놀이코드가 맞는 개친구들이랑 놀았어요. 주로 입크기 자랑을 하면서요.
오른쪽이 하니.
이 친구는 래브래도 레트리버인데, 이름은 마루예요. 저보다 나이가 좀 많아요. 제 입이 더 커보이지요?
그래고 얘는 혜수예요. 3개월 된 케인 코르소인데, 에너지가 넘치더군요. 아니, 여자애들이 왜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흐미, 무서워. 첫사랑 꽃순이가 그리워요.
그리고 이 형아는 ‘올드잉글리시쉽독’이죠. 이름이 선구랍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이 형아가 너무 커서 무서웠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저랑 대적할 정도가 됐지요.
하여튼 그렇게 잘 놀고 잘 먹은 덕분에 저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지요. 몸무게도 30kg이 넘었고요.
그런데 그 무렵 엄마는 저에 대해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답니다. 뭐냐 하면요. 개도 방귀를 뀐다는 사실요.
엄마가 어느 날 저랑 둘이서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독한 방귀 냄새가 나더래요. 엄마는 저를 의심하고 돌아봤지만, 제가 시침 뚝 떼고 워낙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어서 차마 저를 의심하지 못했다네요.
방귀 뀌고 시침 뚝 떼는 하니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방귀를 딱 뀌는 순간 엄마가 그 소리를 들어버린 거예요. 그리고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를 맡은 거죠. 제 엉덩이에 코를 들이대고 말이에요. 이럴 때 보면 우리 엄마도 참, 엽기 기질이 있지 않나요?
엄마가 코를 감싸 쥐면서 “하니, 너 방귀 뀌었지?” 하더군요. 저는 그냥 모른척하고 고개를 돌렸어요. 사실 좀 창피하긴 하지만, 방귀 뀌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개도 사람이 하는 건 다 해요. 트림도 하고 방귀도 뀌고.
어쨌거나 그때 바로 제 옆에 공기청정기가 있었는데요. 그 공기청정기까지 빨갛게 변하지 뭐예요. 그 공기청정기가 냄새에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저는 똥쟁이 하니에 이어 방구쟁이 하니가 되어 버렸지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우리 엄마도 수시로 방귀를 뀌더라고요. 엄마는 주로 도둑 방귀를 뀌어서 잘 들리진 않지만, 가만히 있던 공기 청정기가 빨갛게 변하는 걸 저는 자주 봤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방귀 잘 뀌는 건 순전히 엄마를 닮아서 그래요.
오늘은 이만 쓸게요. 엄마 방귀 뀌는 거 제가 고자질했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하니의 견생일기는 다음주에 쉽니다. 10월이 한해 중 가장 이동거리가 많다고 하더니, 저도 그렇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