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멜모스

철학적 연구 - 제3권

by 글섬

작품 배경


〈회개한 멜모스(Melmoth réconcilié)〉는 1835년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아일랜드 작가 찰스 로버트 매튜린(Charles Robert Maturin)의 소설 〈멜모스 혹은 방황하는 인간(Melmoth ou l'Homme errant)〉을 각색한 중편이다. 1821년에 발표된 매튜린의 소설은 같은 해 프랑스어로 번역될 만큼 영국 못지않게 프랑스에서도 대중의 인기를 누리던 작품인데, 발자크는 1828년 출판업에 종사할 무렵 그 소설의 재출간 판권을 산 적이 있을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파산으로 재출간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은 7년 후 일종의 창조적 모방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발자크가 매튜린의 〈멜모스〉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매튜린의 멜모스의 계약 속에 저주 받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튜린의 멜모스는 자신의 권능을 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발자크는 그곳이 바로 파리임을,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유혹의 도시, 그리고 지옥의 도시, 파리임을 잘 알고 있다. 발자크는 매튜린의 소설이 끝나는 지점으로부터 이야기를 새로이 전개하면서 소설의 무대를 파리로 옮긴다. 그리고는, 매튜린의 악마와는 달리, 사회질서와 가치체계가 무너진 근대의 악마를 제시함으로써 1815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의 타락상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매튜린의 〈멜모스〉는 괴테의 〈파우트스〉, 바이런의 〈맨프레드〉와 함께 악마와의 계약을 주제로 하는 환상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발자크의 〈회개한 멜모스〉와 매튜린의 〈멜모스〉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매튜린의 주인공은 자신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파기하려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는 반면, 발자크의 주인공은 자신의 초능력을 팔아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 매튜린의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발자크의 소설에서는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개한 멜모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 삶에서의 초자연적 요소의 기능이다. 이 작품에서 멜모스라는 악마적 인물은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그 메커니즘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한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의 삶에 개입한다.


1831년에 발표한 〈나귀 가죽〉은 과다한 욕망에 따른 자기파괴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 작품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황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에 의해 타락해 가는 한 사회의 단면이다. 그런데 〈나귀 가죽〉 이후 〈회개한 멜모스〉를 발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발자크의 관심이 점점 지상에서의 현실적인 삶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개한 멜모스〉 이후 발자크는 더 이상 하늘이나 지옥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바야흐로 『인간희극』은 시작되었으며 ‘인물 재등장’ 기법과 더불어 작가의 시선은 현실세계로 고정된다. 누구보다도 예리한 관찰자였던 발자크는 형이상학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삶으로 관심의 시선을 돌린 것이다.




무대 배경은 왕정복고시기이다. 이야기 전개에 앞서 작가는 사건의 발생 시기가 사회발전의 시기임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발전이란 과학, 그리고 특히 자본의 축적을 의미한다. 나폴레옹 황제의 치하에서 기마대장을 지내고 명예훈장까지 탄 후, 뉘생겐(Nucingen) 은행 금고의 회계원으로 있으면서 부당한 수법으로 돈을 모으는 로돌프 카스타니에(Rodolph Castanier)는 발자크의 지적대로 “명예가 돈으로 대치되는” 한 시대의 한 전형적인 인물이며, 이 인물의 타락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짐을 통해 왕정복고라는 특정시대의 타락상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둑한 어느 가을날, 저녁 다섯 시 무렵”, “모든 것이 질서정연”한 가운데 파리에서 명성이 자자한 뉘싱겐 은행의 출납계원 까스타니에는 정부인 아킬리나(Aquilina)의 사랑을 얻기 위해 비밀리에 어음을 할인하여 재산을 축적하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영국인 존 멜모스(John Melmoth)가 홀연히 나타나 마치 파우스트 앞의 메피스토텔레스처럼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나에게 저항할 만큼 강한가? 지상의 모든 것은 나에게 복종하고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나는 마음을 읽으며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를 알지. 나는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어! 나는 시간에도, 공간에도, 거리에도 구애받지 않지. 세상은 나의 하인이야.”


두려움을 느낀 까스타니에는 도피 계획을 세우지만 멜모스는 그때마다 나타나 그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시선을 던진다. 까스타니에는 멜모스의 마술적인 출현에는 분명 “악마가 개입되었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초월적인 것”이라고 단정한다.


어느 날, 까스타니에가 아킬리나와 함께 극장에 가는데, 까스타니에의 관람석으로 멜모스가 들어온다. 그러더니, 예정된 연극 대신 까스타니에의 범죄 사건과 더불어 그가 결국 체포되고 마는 내용의 연극을 보여준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가스타니에는 온갖 권능을 과시하며 유혹하는 멜모스에게 버티다가 멜모스의 다음과 같은 설득 때문에 마침내 계약을 받아들인다. “만일 악마가 자네의 영혼을 요구한다면 자넨 신의 권능에 필적할 권능을 받고서 그걸 내어줄 것 아닌가? 간단히 말하지, 자넨 조금 전 훔친 오십만 프랑을 뉘싱겐 남작의 금고에 채워 넣을 수 있단 말일세. 그리고 자네의 약속어음을 찢어버리면 죄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는 거지. 자네에겐 돈이 철철 넘칠 거란 말일세. 잘 안 믿기지? 좋아! 이 모든 것이 일어나면 자넨 최소한 악마를 믿게 될 거야.”


가스타니에는 멜모스가 제안하는 계약을 받아들여 멜모스 대신 영혼을 팔고 신의 능력과 동등한 그의 능력을 부여받는다. 다시 말해, 멜모스는 카스타니에가 횡령한 오십만 프랑에 해당하는 약속어음에 서명을 하고 카스타니에의 영혼을 산다. 초월적 능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은 〈마법의 가죽〉의 라파엘과 유사하다. 그러나 라파엘이 환상성을 부여하는 부적이라는 사물을 통해 절대 권력을 부여받았듯이, 까스타니에는 멜모스라는 현실에 존재하는 악마적 인물과의 계약을 통해 절대 권력을 물려받는다. 물론 〈마법의 가죽〉에는 골동품상의 노인이라는 중개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회개한 멜모스〉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인물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현실과 환상은 공존하게 된다.


게다가 〈회개한 멜모스〉의 경우 초자연적인 요소의 거래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멜모스와 까스타니에의 계약은 은행금고에서 이루어지고 까스타니에의 거래는 증권거래소에서 행해진다. 영혼의 거래를 하고 난 후, 까스타니에는 영혼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오십만 프랑짜리 약속어음과 교환된 그 믿기 어려운 계약의 실체를 납득하기 어려워, 잠깐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교환된 가치의 속성을 마침내 깨닫고 “공채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기뻐한다.


악마와의 계약 후 까스타니에는 완전히 변해버린다. 모습부터 변하여 음산하고 매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붉은 피부는 이상한 창백함으로 변하였고, 그러한 창백함은 그를 음산하고 냉정하게 보이게 했다. 그의 눈은 어두운 불울 내뿜고 있었으며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빛을 발하였다. 친절했던 그의 태도는 전제적이 되었고 거만해졌다.” 그는 이제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졌다. 부와 전능을 획득한 그는 향연 속에서의 쾌락의 현기증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여인에 대한 사랑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자 그는 사랑도 원하지 않고 식욕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 전부였던 것이 이제는 무가 되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그에게 오로지 신앙과 기도만은 거부된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금지된 것, 계약이 부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인 천상의 행복을 열망한다. 그에게 부와 초능력은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하다. 그는 천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전임자인 멜모스의 운명을 알고 싶어 멜모스를 찾아간 까스타니에는 죽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천사의 모습을 본다. “그는 행복하다 [...] 하늘나라로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죽었으니까”라고 외치는 그에게 하늘을 향한 소망은 점점 더 커진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악마적 능력을 넘겨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이때부터 악마의 계약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오후 4시, 카스타니에는 증권거래소로 달려가 클라파롱(Claparon)과 매매계약을 맺는다. 카스타니에는 클라파롱에게 “당신이 가진 천국의 몫을 파시오. 그것도 여느 사업과 같은 하나의 사업이 아니겠소? 우리는 모두 영원이라는 거대 기업 속의 주주들이오.”라고 권유하며 50만 프랑으로 영혼의 거래를 체결한다. 악마적 능력을 팔아버린 후의 까스타니에는 늙고 병든 육체를 가진, 껍데기만 남은 듯한 모습이다. 그는 생-쉴피스(Saint-Sulpice)의 신부를 찾아가 회개할 시간이 있는지 물으며 도움을 청한다.


클라파롱은 빚을 갚고 나자 악마의 어음이 두려워진다. 클라파롱의 공증인은 악마의 어음을 50만 프랑에 한 건축 청부인에게 되팔고, 건축 청부인은 한 철물상에게 10만 에퀴에 양도해 그것에서 벗어나며, 철물상은 그것을 20만 프랑에 한 목수에게 되판다.


그리고 오후 5시, 이 이상한 계약을 믿는 이가 없어 신용부족으로 계약을 원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5시 반에야 페이도(Feydeau) 가의 임시 증권거래소 출입문 옆에 몸을 기대고 있던 도장공에게 넘겨진다. 순박한 이 도장공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계속되는 판매 속에서 계약의 가치는 감소되고 악마적 능력은 감퇴된다. 이상한 느낌을 주는 힘이 남아 있지만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정도로 가치를 상실한 종이 조각으로 전락한 악마의 어음은 마침내, 고급 숄을 가지고 싶었던 유녀 유프라지(Euphrasie)의 환심을 얻기 위해 만 프랑이 필요했던 공증인 사무소의 한 하급 서기에게 넘겨진다. “계약이 이루어지자 열에 들뜬 서기는 당장 달려가 숄을 사서는 유프라지에게로 갔다. 그리고, 몸에 악마가 준 절대적 힘이 씌운 그는 거기서 꼼짝도 않고 열이틀을 보냈다.” 신에 도전한 사탄의 선물은 유녀를 유혹하기 위한 만 프랑 짜리 장신구로 바뀌며 시공을 초월했던 권능은 육욕과 쾌락으로 소진되어 버린다. 멜모스의 “발견으로 얻어진 그 거대한 힘은 그렇게 소멸되었다.” 카스타니에에게 약속어음의 형태로 건네진 멜모스의 권능은 이렇듯 증권거래소에서 유가증권으로 거래가 거듭되어 마침내 폭락 장시의 휴지 조각처럼 사라지고 만다. 황음에 빠져 얻은 성병을 치료하던 서기는 수은 중독으로 시커먼 시체를 남기고 죽는다.




분석


〈회개한 멜모스〉가 환상을 다루는 방법에는 몇 가지 특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악마와의 계약은 있으나 전통적으로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 곧 인간 조건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나아가, 진정으로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에 대한 도전이 주제로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런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런 형이상학적 문제 제기라는 것이 무참하게 조롱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온갖 권능을 과시하며 유혹하는 멜모스에게 버티던 카스타니에가 정작 계약을 받아들인 것은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멜모스와 카스타니에 사이의 거래에는 더 이상 형이상학적 고뇌가 남아있지 않다. 오십만 프랑 횡령에 따르는 죗값을 모면해 보려는 치졸한 동기가 거래의 성사를 이루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배경 묘사에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세부묘사 대신에, 고작해야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땅은 질척거렸으며, 대기는 무겁고, 하늘은 어둑했다.”라는 다소 구질구질한 표현이 전부이다. 오히려 결정적인 거래의 순간에도 동행한 카스타니에의 정부 아퀼리나가 신경질적으로 카스타니에를 재촉하는 대사가 의도적으로 끼어든다. 아퀼리나에게 멜모스는 보이지만 멜모스가 카스타니에에게 보여주는 환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카스타니에의 반응은 급기야 그녀에게서 “정말이지 미쳤군”이라는 푸념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정황은 거래의 신비감을 일거에 불식시킨다. 영혼의 거래 장면이 전혀 구체적인 묘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거래의 신비로움을 배가시키기는커녕 그 진지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영혼을 팔았다는 카스타니에의 말에 아퀼리나가 “어떻게?”라고 묻자 그의 대답은 “말해도 모를 거야”가 전부이다.


인물이나 대상의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도 악마와의 거래라는 효과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환상 장르에서 묘사의 중점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형상이나 인물의 디테일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관찰자의 상태에 놓인다. 형상과 인물들은 가능하면 모호하고 암시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러나 발자크의 작품에서는 정반대이다. 멜모스와 같은 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아무리 그의 두려운 인상을 강조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신비적 분위기를 반감시킨다.


요컨대 발자크는 파리라는 일상의 현실에 환상 속의 인물이 등장했다는 틀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정작 그 환상의 인물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색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에는 “세상을 하인”으로 거느린 멜모스가 카스타니에에게 준 능력이 “세상의 원칙과 메커니즘을 알”게 된 것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한 군데 있지만, 멜모스나 카스타니에나 실제 그 어마어마한 능력의 발휘가 작품 속에 언급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고작 발휘되는 능력은 어이없게도 금전의 위력 수준을 결코 넘지 않는다. 독자는 거기서 초자연적인 악마의 권능에 ‘돈’의 권능이 겹치는 것을 본다.


주목할 사실은 매튜린의 〈멜모스〉를 다시 쓰려한 발자크의 의도가 결코 원작의 핵심 구조인 악마와의 계약을 부정하고 그 허구성을 밝히려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발자크는 매튜린의 작품에 대해 “괴테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그 까닭을 “보다 극적인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발자크가 고쳐 쓰려 한 것은 계약 자체가 아니라 계약의 성격인 것이다. 발자크는 매튜린의 작품에서 “되풀이 될 수 있는 계약”이라는 모티브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을지 모른다. 그 역시 그 마적인 힘에서 한순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돈이라는 이 새로운 원칙의 정체를 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그 “돈의 원칙”, 즉 멜모스로부터 수은 중독으로 죽은 서기에 이르기까지 50만 프랑으로 시작해 70만 프랑으로 올랐다가 종내는 만 프랑으로 종결되는 과정이 형상화하는 이 시대 사회, 경제의 기계장치를 악마라고 부른 것이다. 악마는 이제 종교 재판소의 감옥에서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서, 증권거래소에서 발현한다. 현대판 지옥의 계약이란 다름 아닌 약속어음의 체결이거나 유가증권의 거래이다. 승계자를 찾지 못하던 멜모스가 카스타니에를 찾아내 악마와의 계약을 벗어버릴 수 있었던 장소가 파리의 유명 은행인 뉘싱겐 은행이며, 카스타니에가 수세기를 찾아 헤매던 멜모스와는 달리 단 한 순간에 계약의 승계자를 찾아낸 곳이 증권거래소였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발자크 자신의 지적대로 “명예의 원칙을 대신한 돈의 원칙”이 바로 매튜린의 작품을 다시 쓰고자 했던 발자크의 명시적인 동기인 것이다.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악마 주제의 부재, 환상을 환상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해하도록 여지를 남긴다는 점 등, 〈회개한 멜모스〉를 환상 장르에 속한다고 보기에는 현실이 과도하게 개입되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비평가들은 이를 당시의 부르주아 합리주의와 실증주의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환상 속에 난입한 현실은 승리한 부르주아들의 상상력 빈곤 혹은 고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자크는 19세기가 발명한 하나의 비판의식으로서의 환상 장르에서 모순과 역설로만 보이는 현실과 자신이 겪는 지적 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양식을 발견한다. 프랑스와 가이야르(Françoise Gaillard)가 지적했듯이 “환상을 침범하여 그것을 변질시킨 것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속성 그 자체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환상적이 된 것”이라면, 문제는 발자크가 자기 시대 현실에서 무엇이 환상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라고 여겼는지 찾아보는 일일 터이며, 그럴 경우 발자크가 환상 장르의 규범들의 위반과는 무관하게 얼마나 환상 장르의 문제제기 핵심에 닿아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발췌 논문 :

1. 〈발자크 작품에 나타난 환상의 의미 - 『마법의 가죽』과 『회개한 멜모스』를 중심으로>,

송기정(이화여대)

2. 〈발자크 문학에서의 환상과 현실 - 『회개한 멜모스』의 경우〉, 이철의(상명대)

▶ 참고 사이트 : 영어판 야후 〈발자크의 인간희극〉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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