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5권
〈강바라(Gambara)〉는 베를린(Berlin) 태생의 출판업자이자 편집장이었던 모리스 슐레징어(Maurice Schlesinger)의 요청에 의해 1837년 음악잡지 《리뷰(Revue et gazette musicale de Paris)》에 실리게 되었다. 《리뷰》는 슐레징어가 1834년 1월 5일에 창간한 《가제트(Gazette Musicale de Paris)》의 후신으로, 독일 낭만주의를 지지하던 슐레징어의 확고한 신념이 표방되었다. 발자크는 〈강바라〉에서 천재 작곡가 강바라의 입을 빌어 1831년에 파리에서 초연된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 1791-1864)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를 해석한다. 강바라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이 오페라를 극찬하고, 술에서 깨어난 뒤에는 힐난한다. 이는 대중의 취향과 이에 대비되는 출판업자 슐레징어의 의도 및 언론계의 움직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발자크는 궁극적으로 슐레징어의 의도에 부합하여 독일의 관념적 낭만주의를 지향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슐레징어는 19세기 초 베를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출판업자 아돌프 슐레징어(Adolf Martin Schlesinger)의 아들로서 1820년대에 파리로 건너와 정착하였으며, 베토벤, 마이어베어, 베를리오즈의 작품과 에.테.아. 호프만(E. T. A. Hoffmann)과 같은 낭만주의 문학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출판하였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파리 음악문화에 있어 ‘새로움’을 상징했으며 슐레징어는 이 새로운 음악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매개자로서 음악잡지를 활용했던 것이다. 음악회장의 주인으로 급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이 슐레징어 문학의 주된 독자층이었으며 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출판의도였다. 〈강바라〉의 주제인 천재 강바라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망은 다분히 슐레징어의 출판 의도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1815년 나폴레옹이 패배한 이후 왕정이 복고되면서 프랑스는 부르주아를 위한 사회로 전환되었고, 혁명적인 정신이 더 이상 덕목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발자크는 이러한 현실을 신랄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작품에 그려냈다. 음악학자 엘리스(Katharine Ellis)는 강바라의 이중적인 음악관이 발자크가 7월 왕정의 중도정치를 혐오했던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석한다. 당시 프랑스는 7월 왕정(July Monarchy, 1830-1848)이었다.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에 오른 루이 필립(Louis Philippe I, 1773~1850)은 귀족제와 세습제를 폐지하고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구축하였다. 영국의 산업혁명에 열광하면서 프랑스의 산업 혁명을 급속히 진행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철저히 소외된 채 부르주아의 이익만 챙기는 불평등한 사회를 초래하였다. 중도정치(Juste Milieu)라고도 부르는 이 시기에 극단적인 성향의 정치적 입장이나 문화는 금지되었다.
발자크가 파리에 정착한 시점은 1814년이다. 1837년 〈강바라〉를 출판하기까지 20여 년의 파리 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발자크는 어릴 적부터 지치지 않고 빨간 바이올린으로 이상한 소리들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음악에 대한 강한 애착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이후에도 그의 음악적인 관심은 지속되었으며 분주한 집필과 정치 행보에도 불구하고 격주로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파리는 유럽음악문화의 중심지였는데 1820년대에는 로시니, 마이어베어, 베를리오즈, 리스트가 입성했으며, 1825년에는 다니엘 오베르(Auber)의 〈르 마송(Le Maçon)〉, 1829년에는 로시니의 〈윌리엄 텔(Guillaume Tell)〉, 1831년에는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가 공연되었다. 발자크는 183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음악을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1820년~30년대의 파리 음악문화를 몸소 경험한 후 문학작품으로 옮겼다고 해석된다.
강바라는 악기 제조사 출신으로서 과학적인 사고를 갖춘 천재적인 이탈리아 음악가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환영받았던 자신의 음악이 프랑스 파리에서는 신통치 않은 반응을 얻는다. 이 때, 강바라의 아름다운 부인 마리아나(Marianna)에게 반해버린 이탈리아 귀족 안드레아 마르코시니(Andrea Marcosini) 백작이 강바라에게 접근하게 되고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를 함께 관람한다. 강바라가 〈악마 로베르〉를 해석하는 장면이 이 소설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강바라는 안드레아 백작과 함께 오페라 〈악마 로베르〉 관람을 가게 되고, 술에 얼큰 취해 이 오페라를 극찬한다. 특히 극의 전개에 맞추어 작곡된 화성의 흐름, 색다르게 접근하는 관현악법에 주목한다. 화성은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제한된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던 당시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발자크가 이 작품을 집필했을 당시에는 이미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가 대성공을 거두고 난 다음으로서 세간의 반응을 종합하였다고 보겠다. 술에 취한 강바라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에 열광하는 당시의 대중을 의미하며, 술에서 깬 강바라는 새로운 음악, 즉 독일의 낭만주의를 지향하는 슐레징어를 비롯한 관념론자를 대변한다. 술에서 깬 강바라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이 작품이 ‘걸작들의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음악학자들은 발자크가 열정적으로 기록한 음악적 분석에 대해 오류가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음악에 관한 성찰을 다룬 작품인 〈강바라〉와 〈마시밀라 도니〉를 집필하기 위해 발자크는 실제로 음악을 연구했으며, 바이에른 출신의 음악가 자크 스트런츠(Jacques Strunz) (1783-1852)와 상의했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는 발자크와 음악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는 음악에 대한 발자크의 방대하고 해박한 음악적 지식에 경탄한 나머지, 그녀 역시 발자크에게 음악에 대한 작품을 써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1831년 1월 1일 파리(Paris). 안드레아 마르코시니(Andrea Marcosini) 백작이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부근을 거닐고 있다. 안드레아 백작은 밀라노의 귀족으로 본국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피해 프랑스로 잠시 망명한 상태이다. 산책을 하던 그는 갑자기 군중 속에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다. 백작은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 그녀는 팔레 루아얄 뒤편의 음침한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백작은 곧장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본다.
그녀는 악기 제작자인 강바라라는 음악 작곡가의 아내 마리아나였다. 강바라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작곡하며 음악에 관한 이론과 관행을 모독하는 자였다. 강바라의 음악은 그가 술에 취해 있을 때만 아름다웠다. 마리아나는 남편의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아 자신을 희생한다.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녀는 길거리 여인들과도 일할 정도로 온갖 사람들을 상대로 온갖 천한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위대한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강바라는 이중적인 성격으로, 술을 마시지 않은 보통 때와 술을 마신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 추구하는 음악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숭고한 음악이고, 술을 마셨을 때 추구하는 음악은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다.
혁명가들의 표적이 되어 프랑스로 망명한 처지인 안드레아 백작의 예술관은 당연히 혁명적일 수 없다. “사치의 편안함에 쉽게 매료”되는 그는 “원칙에는 어긋나더라도 사회적 차별을 고수한다. 예술가, 철학자,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론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른 그의 취향, 감정, 습관과 자주 충돌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자신의 이중성을 파리 시민들에게서 발견하고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원칙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성향으로는 귀족정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서른 두 살의 안드레아 백작은 원칙적으로는 마흔 살의 강바라의 음악관에 동의하지만 취향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 없게 된다. 그는 파리의 취향 자체가 이중적이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진보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인 음악이란 독일의 낭만주의를 일컫는다.
안드레아 백작은 찢어지게 가난한 강바라 부부를 후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강바라를 후원하기에 앞서, 강바라의 음악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바라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는 당대 최고의 성공작인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를 함께 관람한다. 마이어베어의 대중적인 음악적 성향과 기술에 감동받게 하려는 심산이다.
오페라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아 백작은 고의적으로 마이어베어의 작품을 “극적인 악몽이며 감동을 주지 않은 채 청중을 억압한다”고 강하게 비난하며 강바라의 의중을 떠본다. 악평의 근거로는 악마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가진다는 것, 악마가 성자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 지옥의 모티브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것, 선율이 너무 광대하게 만들어져서 자주 자취를 감춘다는 것 등이며 이로 인하여 전혀 감동을 얻을 수가 없으며 “예술성 없는 장면”만이 난무할 뿐이라 혹독하게 평한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강바라는 안드레아 백작의 말에 강하게 반발하며, 트럼펫을 사용하는 새로운 관현악법, 제4막에서의 아리아, 제1막의 피날레 등은 초자연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했으며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년 ~ 1787년)조차도 만들어내지 못한 효과라 극찬한다. 이에 안드레아 백작은 “마이어베어가 많은 것을 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과학은 영감을 몰아낼 때에는 결함이 되며, 이 오페라에는 정교한 숙련공의 안타까운 노력만이 존재할 뿐... 다른 이들의 잊혀지거나 비난받은 오페라 작품에서 수천의 악구를 가져와서 연장하고, 수정하고, 압축하여 짜 맞춘 것”이라 단언한다. 사실 안드레아의 분석에는 모순이 있다. 마이어베어의 혁신적인 낭만주의를 비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의 ‘대중성’이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강바라는 작품의 처음부터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인 요소와 극적인 전개의 긴밀한 짜임새를 설명하며 마이어베어의 탁월함을 극찬한다. 이 작품에 열광했던 파리 대중의 시점이다. 강바라는 화성과 선율의 연관성을 ‘과학’이라 말한다. 이 때 구심점은 화성이며, 선율은 그 구조 위에서 형성된다. 안드레아가 우려하는 화성의 장악이 아니라 화성과 선율의 유기적인 공생이다. 안드레아가 본질적으로 비난하는 점은 화성의 과감성 자체가 아니라 그에 따른 대중적인 자극성이기에 강바라는 이에 대한 정당함을 연극적인 효과와 연결시켜 변론한다. 이와 더불어 강바라가 화성사용의 과학성을 주장하는 부분은 당시 파리 콘서트홀에서 진행되었던 과학 기술의 공개적 실연과 실험에 대한 대중적인 열광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화성에 따른 음색의 변화를 과학성으로 받아들이려는 파리 청중의 시각이라 하겠다.
강바라는 제3막에서 펼쳐지는 베르트랑과 알리스의 논쟁 장면이 이 오페라의 절정이라 말한다. 지옥과 십자가가 격돌한 것이다. 이 장면을 강바라는 “음악의 아발란체”라 부른다. 단순한 심벌즈의 울림에서 시작하여 결국에는 트리오의 격돌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 때, 베르트랑의 협박에 떨며 알리스는 떠나고 로베르와 베르트랑은 D장조에서 이중창을 부르며 ‘악의 승리’를 자축한다. 강바라는 이 주제를 ‘바쿠스적인’ 합창이라 하며, 흥에 겨워 즉흥적으로 주제를 변주시키고 판타지아를 자신의 피아노로 연주한다. 악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안드레아의 지적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강바라는 악마의 합창을 무아지경에서 연주한다.
강바라는 이어서 제4막에서 부르는 이사벨의 매력적인 카바티나, “당신을 위해 은총을”(grace pour toi)이 숱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라 하며 이 오페라에 있어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부분이라 한다. 모든 여성들은 자신을 무대 위의 이사벨과 동일화 시킬 것이며, 모험적인 사랑의 시련을 함께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청중에 있어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사벨이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그라나다 왕자가 아닌, 마력으로 무장된 악마 로베르도 아닌, 노르망디의 순수함을 지닌 로베르 자체라고 노래하는 것은 순수연애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의 정서적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적절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날레에 대한 강바라의 분석이 이어진다. 피날레가 〈돈 조반니〉의 그것과 지나치게 흡사하지만, 이사벨의 진정한 사랑이 로베르를 구원한다는 결말에서 확실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결점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장면이라 평한다. 베르트랑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로베르가 사랑을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알리스는 어머니의 환영을 부르면서, 영혼이 물질을, 선이 악을 물리치는 장대한 장면이 펼쳐질 때 음악이 지나치게 소심해진다는 지적이다. 오페라 전막에 걸쳐 펼쳐졌던 악마적이며 억압적인 음향을 전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로시니의 오페라에 비해 지나치게 어둡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술에 취한 강바라, 즉 파리 청중의 시각에서 판단하자면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비종교적이라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침내 강바라는 마이어베어의 대중성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강바라는 “프랑스인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이해한다면” 이 작품의 성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역설한다. 마이어베어 오페라의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곧 프랑스인들의 취향이자 철학이기에 매우 민감한 대목이기도 하다. 안드레아가 “이 작품이 관념(ideas)을 표현했기 때문입니까?”라고 반문하자, 강바라는 단호하게 “그것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투쟁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투쟁과 어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사실주의적인 작가의 입장을 고려하자면 ‘극찬’인 셈이다. 그러나 단순한 극찬만은 아닌 것이,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가 결코 독일의 관념론적인 작품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에 취해 밤늦도록 마이어베어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던 강바라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술에서 깨어나자 마이어베어의 오페라에 대해, “당신이 데려다 준 그 형편없는 오페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결론은 평범한 선율에 쓰여진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연주할 때 단숨에 마시게 되는 음료의 찌꺼기에 불과하고, 알만한 작품의 아리아들의 짜깁기”라며 혹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요컨대, 이 오페라는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것(작품 속의 요소들)을 빌어 와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이기 마련이다.”라며 〈악마 로베르〉의 성공을 조롱한다.
강바라의 혹평으로 인해 안드레아 백작은 결국 후원하려던 마음을 접는다. 강바라를 숭배했던 마리아나도 남편에게 실망해 안드레아 백작과 함께 떠나버린다.
그리고는 6년이 흘러 1837년 1월이다. 지난 5년간 강바라는 모든 이들의 버림을 받고는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천상의 음악을 꿈꾸며 자신이 직접 제작한 자신만의 악기 ‘판하모니콘(Panharmonicon)’도 처분했으며, 그 동안 작곡한 악보도 이제는 시장에서 버터, 생선, 과일을 싸는 종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바라의 눈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마리아나가 나타난다. 안드레아 백작이 어느 무용수와 결혼하게 되면서 버림받은 것이다. 재회한 강바라 부부는 거리의 악사가 되어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홉 시경, 이탈리아 베니스의 공주 마시밀라(Massimilla)와 왕자 에밀리오(Emilio)가 강바라 부부의 길거리 연주를 보고는 자선을 베풀게 된다. 술에 취하지 않은 강바라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탁월함으로 인하여 희생당했어요. 내 음악은 좋아요. 하지만 음악은 감정을 뛰어넘어서면 관념이 되기 때문에 오직 천재만이 반응할 수 있으며 오로지 천재들만이 적합한 청중이지요. 내가 천사의 합창을 듣고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나에게는 불행이었소. 이것은 마치 성스러운 사랑을 하는 여자와 같소. 남자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강바라의 마지막 대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물은 불의 산물이다”라는 문장이다. 공기, 물, 불, 흙이 세상을 구성하는 4원소라는 가설은 고대 그리스부터 믿어 왔지만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가 ‘산소의 순환’을 발견하게 되면서 비로소 원소들이 순환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게 되었다. 촛불이 연소되면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결합하여 물을 만든다. 물, 불, 공기가 순환되는 것이다. 발자크는 프리스틀리의 과학실험을 강바라의 예술관으로 옮겨놓았다. 강바라는 결코 환영에 젖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광인이 아니라 철저히 과학에 뿌리를 둔 미래주의 예술가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발자크는 오페라에 사용된 음악적인 요소에 집중하였으며 다소 복잡한 플롯을 통하여 논지를 애매모호하게 흐린다. 발자크는 이중성을 지닌 두 인물을 등장시킨다. 안드레아와 강바라이다. 술에 취한 강바라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에 열광하는 당시의 대중을 의미하며, 술에 깬 강바라는 새로운 음악, 즉 독일의 낭만주의를 지향하는 슐레징어를 비롯한 관념론자를 대변한다. 안드레아는 술에 취한 강바라를 공격하는가 하면, 술에서 깬 강바라를 공격하기도 한다. 술에 취한 강바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파리의 청중을 비난하는 것이며, 술에서 깬 강바라를 공격하는 것은 독일 관념적 이상주의를 비난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안드레아가 비난한 것은 술에서 깬 강바라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복잡한 구성을 한 것은 대중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럽 음악회장에서 가장 각광받았던 오페라였던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를 신랄하게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변 상황의 변화에 관계없이 “이상에 충실한 채로 남아있는” 강바라는, 〈미지의 걸작〉의 프레노페르처럼, 물질적인 구속에서 벗어나서 천국의 순수한 하모니를 포착하는 데 적합한, 추상적인 예술을 추구한다. 음악을 예술이면서 과학이라고 확신한 그는 음악의 기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소리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악기를 분해하거나 개조시킨다. 본능과 영감의 폭발 그 자체는 창조적 힘이 아니다. 그것들은 작곡의 법칙과 원리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의거하여야 한다. 강바라가 보기에, “음악은 과학이자 동시에 예술”이며, 지식과 영감의 결합에서 생겨난다.
음악을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강바라는 음악의 이론적인 가능성에 대해 성찰한다. 작곡가는 외적인 결과들과 현상들을 번역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사물의 진수를 꿰뚫고 그 비밀스런 원인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관찰에서 원인에 대한 예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음악은 수학과 물리학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며, 음악은 그 창조적 행위가 행하여지는 실체들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화음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빛과 소리는 같은 근원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시각이나 청각에 대한 인식도 전제로 한다.
강바라는 오페라는 모든 다른 음악 장르보다 훨씬 더 예술의 상응 현상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오페라는 음악, 시 그리고 회화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종합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 언어 그리고 빛과 색깔은 하나의 실체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진정한 유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하모니는 하나의 공통 중심에서 나오며, 그것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는 오히려, 하모니는 빛처럼, 광선이 프리즘에 의해서 그러듯이 분해된다.”
그렇지만, 음악언어는 특별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만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힘을 갖고 있고”, 존재의 신비스러운 깊이를 탐색하는 능력을, 우리의 내부에 지니고 있는 무한으로 파고들어 갈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꿈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정신적인 것들의 영역으로 통하게 한다. 강바라는 그의 음악이 청중들의 영혼에 더 강렬하게 작용하도록 “멜로디의 경계”를 확장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는 하모니보다는 멜로디를 강조한다. 그는 멜로디는 정신에 작용하고, 이미지를, 꿈을, 관념들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강바라가 구상하는 임의적인 예술은 마침내 모든 의사소통과 단절되고 만다. 과학과 예술은, 조화를 이루는 대신에, 서로 경쟁을 하고 작품의 파괴를 야기한다. 절대에 대한 꿈은 불가능에 부딪치고 전체성에 대한 꿈은 음조가 어긋난 부분들로 분산된다. 그 혼자만이 혼란스럽고,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천국의 메아리를 듣는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그는 판하모니콘이라는 악기를 스스로 만든다. 그러나 프레노페르의 그림이 “물감의 벽”, “형태가 없는 일종의 안개” 속에 숨겨진 선과 색깔의 카오스를 표현하고 있듯이, 강바라의 오페라는 듣는 사람에게 마치 “요란한 불협화음”처럼, 화음 법칙을 어기고 “아무렇게나 던져진 음이 맞지 않는 소리들”을 모아놓은 “조잡한 창조”처럼 드러난다.
프레노페르의 그림처럼, 강바라의 음악은 추상의 영역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창조력을 부정하고 구체적인 창조를 부정한다. 그런 음악은 예술가가 사용하는 수단으로는 표현할 수 없고, 따라서 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강바라는 음악가라기보다는 시인이고, 그가 주장하는 음악은 오히려 시에 가깝다. “그는 그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번역하려 하였지만 허사였던 시에 취해” 있다.
〈미지의 걸작〉처럼, 〈강바라〉는 지식의 과잉과 영감 사이의, 이론과 실제 사이의 분리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인식은 작품의 완성보다는 개념의 몽상을 선호함으로써 음악 작곡을 방해한다. 구체적인 음악을 작곡하기보다는 사유에 몰두하는 강바라는 추상의 영역에서 계획된 지성의 확장의 희생물이다. 강바라에게 취기에 의해서만 일시적으로 해결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판단과 상상력 사이의 괴리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취기는 강바라의 명석함을 북돋우고 가공의 비젼에서 그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성은 ‘음악의 본질’ 또는 ‘음악적 원리’의 추구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다. 이론적인 몰두는 작품 제작이라는 행위를 질식시킨다. 천상의 화음에 매료된 강바라는 욕망과 애정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다. 그는 하늘의 도달할 수 없는 공간으로 열린 음악을 구상함으로써, 그 자신과 마리아나에게 천사와 같은 순결을 요구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그의 갈망의 이미지에 따라 지상에서 벗어나 상승하는 움직임에 의해서 영육분리의 길로 들어선다. 강바라가 “그의 푸른 두 눈은 다른 세계로 통한 채” 자신이 만든 악기로 연주를 할 때, 그 악기가 내는 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불협화음으로 들릴 뿐이지만, 그에게는 최상의 화음처럼 들린다.
결국 강바라는 그의 추상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전가시키면서 자신의 실패를 의식한다. 그에 의하면, 천재의 속성은 육체와 재료의 장애물에서 벗어난 천상의 조건을 예감하는 데 있다. “나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그 음악이 감각에서 관념으로 옮겨갈 때, 그것은 재능 있는 사람들만을 청중으로 삼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발췌 논문 :
1. 〈발자크의 소설에 나타난 예술과 현실의 문제 - 『미지의 걸작』, 『강바라』, 『마시밀라 도니』를 중심으로〉, 조영철(원광대)
2. 〈발자크의 『강바라』를 통해 본 19세기 초 파리 음악관의 변화 -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 분석을 중심으로〉, 손민정
▶ 참고 사이트 : 영어판 야후 〈발자크의 인간희극〉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발췌 참고 논문 및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를 제가 직접 번역해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