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밀라 도니

철학적 연구 - 제6권

by 글섬

작품 배경


〈마시밀라 도니(Massimilla Doni)〉는 〈강바라〉와 〈미지의 걸작〉과 더불어 예술 창작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에 속한 작품이다. 1837년에 제1장이 발표된 후, 제2장은 1839년에야 “로시니(Rossini)의 〈모세(Mosè in Egitto)〉, 베니스(Venise) 상연”이라는 제목으로, 로시니를 프랑스에 소개했던 스탕달(Stendhal)의 역할을 강조하는 서문과 함께 음악 잡지 《라 프랑스 뮤지칼(La France musicale)》에 실렸다. 이후 1839년 8월에 《수브랭(Souverain)》에서 작품 전체가 통합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마이어베어와 베토벤 음악 중심의 독일적 취향을 보여주는 〈강바라〉에 비해, 〈마시밀라 도니〉에서는 모차르트와 로시니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적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마시밀라 도니〉에서 카타네오(Cataneo) 공작부인은 친절하면서도 때로는 격정과 감동이 스민 어조로 로시니의 〈모세〉를 자세히 설명하며 끝없는 논평을 이어간다.


발자크는 음악 애호가로서 연주회장과 오페라 극장을 즐겨 찾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일찍이 한스카 부인(Madame Hanska)에게 “베토벤은 나로 하여금 질투라는 것을 알게 만드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로시니에 대해서도 “인간의 열정을 음악이라는 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놓은 작곡가”라는 찬사를 했다.


1834년 8월에 발자크는 조르주 상드(George Sand)의 집에서 음악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로시니의 〈모세〉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열정적으로 피력하는데, 발자크의 해박한 음악적 소양에 감탄한 상드가 발자크에게 방금 말한 것을 작품으로 쓰라고 강력히 권유한다. 평소에도 음악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 특히 호프만(E.T.A. Hoffmann)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던 발자크는 이후 1836년 10월에 모리스 슐레징어(Maurice Schlesinger)로부터 음악잡지 《리뷰(Revue et gazette musicale de Paris)》에 실리게 될 음악 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상드와의 대화를 상기하여 〈마시밀라 도니〉를 기획하게 된다.


〈마시밀라 도니〉는 발자크가 음악의 무한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소설로서, 로시니의 작품들을 통해 음악 언어에 관한 철학적인 고찰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발자크는 감각적인 흥분 상태를 묘사한다든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음악 작품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문학과 음악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로시니는 발자크의 이러한 생각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음악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천재성을 나타내었으니, 이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심오한 방식으로 감정을 묘사하고 사랑과 질투 등을 음표에 담아내면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나갔다.


〈모세〉는 로시니에게 있어서 그다지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 형태의 영감이 승리를 거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선율의 측면에서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부분에 대해 발자크는 “사람들이 그들(대부분의 작곡가들)의 노래, 이른바 선율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 다소간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므로, 작곡가들은 “이미 이루어진 현상들로 가득 차 있으며 거대한 시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선율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시대를 이어가며 군림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화성이 아니라 선율이다.”이라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발자크의 열정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던 로시니의 오페라는 내용면에서 〈모세〉의 경우처럼 한 민족의 운명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제시하는가 하면 때로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추억을 환기시키기도 하는데, 발자크가 주목한 것은 후자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기대하는 것은 추억이나 욕망 같은 인간의 감정적 요소와 관련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에밀리오 멤미(Emilio Memmi)는 베니스의 귀족 에밀리오 카네(Emilio Cane)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다. 그는 약간의 유산을 상속받긴 했지만 수입을 창출하거나 판매 가능한 유산이 아니었기에 수입이라고는 오로지 시골집에서 얻어지는 적은 수입이 전부이다. 에밀리오는 마시밀라 도니(Massimilla Doni)를 사랑한다. 그녀는 도니 드 플로랑스(Doni de Florence)의 상속녀이자 나이 많고 부유한 카타네오(Cataneo) 공작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이다. 공작과 마시밀라는 서로를 원치 않았고, 공작은 아내에게 젊은 연인이 생기자 오히려 기뻐한다. 에밀리오는 알프스(Alps)에 있는 공작의 호화로운 시골 별장에 몇 달째 머물며 마시밀라와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아직 육체적 관계는 아니었다. 마시밀라는 “사랑의 결합을 완성할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에밀리오에게 그녀의 존재는 너무도 고매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다.”


어느 날, 에밀리오의 절친한 친구인 마르코 방드라맹(Marco Vendramin)에게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카네 가문의 마지막 카네가 별세하여 이제 에밀리오가 바레스(Varèse)의 왕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이제야말로 정말로 무일푼이라는 의미였기에 그다지 중요치 않은 소식이다. 이보다는 제네바 출신의 유명한 테너 여가수 클라리나 탱티(Clarina Tinti)가 이번 시즌에 베니스(Venice)에서 활동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에밀리오에게 훨씬 더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에밀리오는 마시밀라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한다. 탱티는 원래는 한 여관의 일개 하녀였는데, 한 귀족이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녀의 전문적인 성악 교육을 후원해주었다. 마시밀라는 탱티의 음악 교육을 후원해준 그 귀족이 절대로 그녀의 남편일 리 없다고 확언한다.


마시밀라와 에밀리오는 오페라 시즌을 즐기기 위해 베니스로 향한다. 각자 다른 곤돌라를 타고 에밀리오의 집으로 향하는데, 에밀리오가 저택에 도착했을 때 성 안의 모든 불이 켜져 있고 내부가 깨끗하게 보수되어 있다. 에밀리오는 마시밀라가 자신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해준 것으로 짐작하여 집 안에 차려진 음식과 술을 기분 좋게 마신 뒤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잠시 뒤 탱티가 못생기고 늙은 카타네오 공작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탱티는 노래하고, 공작은 바이올린을 켜려다가 문득 에밀리오가 벗어놓은 바지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마르코 방드라맹이 에밀리오의 저택을 공작에게 빌려주었고, 공작은 탱티가 베니스에서 공연하는 동안 그 저택에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집안을 개조했던 것이다. 공작은 에밀리오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청했지만, 탱티는 오히려 공작이 야박하다고 비난한다.


탱티는 한눈에 에밀리오에게 매료되었고, 에밀리오는 탱티를 밀어내려 애를 쓴다. 하지만 탱티가 눈물을 흘리자 에밀리오는 더 이상 그녀를 거부하지 못한다. 탱티와 뜨거운 밤을 보낸 다음 날에야 그는 전날 밤에 마시밀라가 보낸 편지를 뒤늦게 발견한다. 마시밀라의 편지는 남편이 에밀리오의 성을 빌렸다고 하니 방드라맹의 집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탱티와 부정을 저지른 뒤였기에 비참해진 에밀리오는 탱티를 탓하며 울부짖는다. 그런 다음, 곧장 마시밀라를 만나러 달려가 모든 일을 고백한다. 마시밀라는 천사와 같은 너그러움으로 오히려 그를 위로하려 애를 쓴다. 에밀리오는 마시밀라의 성스러운 사랑과 탱티의 감각적인 사랑 사이에서 내면적 충돌을 느낀다.


그날 저녁, 마시밀라와 에밀리오는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베니스의 한 극장에 참석한다. 사교계의 모든 사람들은 마시밀라와 에밀리오가 과연 이제는 육체적 관계로 발전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에밀리오의 태도에서 불안감이 느껴졌기에 아직은 아니라고 짐작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장군, 프랑스 의사 등 여러 사교계 인사들이 마시밀라의 좌석으로 와서 인사를 나눈다.


로시니의 〈모세〉 공연을 앞두고 카타네오 공작부인은, 로시니 덕분에 이탈리아는 음악에서 그의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로시니의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고상함, 숭고함, 웅대함, 정서적, 사상적 심오함 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강바라와 안드레아를 대립하게 만든 두 악파의 이점들을 로시니가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로시니가 그의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으로 인하여 당신 나라에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풍요로운 당신의 나라에 틀림없이 존재할, 그리고 그러한 음악의 숭고함과 웅대함을 높이 평가해 줄만한 고상하고 이상을 사랑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들 몇 명에게 기대를 걸어봅시다.”라고 말한다.


〈모세〉 공연이 시작되고, 〈모세〉의 서곡이 몇 마디 진행되기도 전에 마시밀라는 음악에 도취되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 사람만이 이처럼 풍부하고 무궁무진하며 엄청난 주제를 다룰 수 있지요. 그것이 다만 잠시 동안 복수를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일의 옛 거장들이여, 헨델, 바흐, 그리고 그대 베토벤이여, 무릎을 꿇을지어다. 여기 예술들의 여왕이 계시다, 승리의 이탈리아가 나가신다!” 그녀의 이러한 견해는, 무엇보다도 음악의 주제 면에 있어서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는 이탈리아 음악의 승리를 역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시밀라는 관람 도중에 눈물을 흘린다. 자신과 탱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에밀리오의 감정으로 실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던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마시밀라는 로시니가 남긴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인 〈모세〉에 나오는 4중창곡 〈미 망카 라 보체(Mi manca la voce)〉에 대해, 음악에 있어 과감한 형식의 파격을 시도한 걸작으로 세월의 힘에 눌리어 사라지지 않을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이 모차르트와 미학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작곡가인 로시니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흥미롭다. 한 마디로 발자크는 〈마시밀라 도니〉에서 로시니에 대하여 매우 인상적이고 거의 철학적이기까지 한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한 셈이며, 〈모세〉가 계속적으로 분석의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마시밀라에 따르면, 구성과 주제의 측면에서 로시니는 모차르트보다 한 수 위에 있다. 〈모세〉에서는 절대 권력을 가진 세력들의 싸움, 즉 하나님의 권능과 지상의 권력 간의 투쟁이라는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탕한 한 개인의 패배만이 부각되고 있는 〈돈 조반니〉의 피날레와 비교하여 볼 때, 〈모세〉의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위대함으로 돋보인다. 이런 웅장하고 숭고한 성격은 전체적인 구성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가치나 아름다움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히브리인들의 기도(Prières des Hébreux)〉는 “사랑의 절규와도 같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아리아로서, 이는 로시니가 음악가로서 도달할 수 있는 절정인 동시에 오페라가 보여줄 수 있는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가능성들의 극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시니는 결코 이 기도의 아리아에서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방드라맹과 에밀리오는 남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카페 모임에 참석한다. 카타네오 공작도 참석해 에밀리오에게 정중히 인사한다. 마시밀라의 지인이며 귀족이자 유명한 음악 애호가인 카프라자(Capraja)가 들어와 카타네오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음악창조의 문제가 아니라 연주와 감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사유의 직관을 믿으며, 음악이 그에게 지적 쾌감을 제공해주기를 바란다며, 음악은 영혼 속에 관념들이 생겨나게 하고, 지상의 속박에서 존재를 해방시키고 추상적인 몽상 속으로 이끌어 간다고 말한다. 또한, 다른 모든 표현수단보다 음악언어의 우월성을 믿는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음악언어는 무한을 포함하고 있고, 관념과 그 무한의 감각을 암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발자크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 이론을 펼친다. 발자크에 의하면, 정신적인 개념들은 작품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창조적인 행위에 장애가 된다. 인과성의 법칙은 우주의 우연한 일들을 지배하고, 그것들 사이에 견고한 상응관계를 구축한다. 상응이라는 밀접한 연관관계는 자연의 조화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결과와 원인들의 단계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이러한 상호관련성에 의해서 사유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자연에서 초자연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유추에 의해서 주인공들은 지고의 원리, 유일하면서도 창조적인 원인, 즉 신을 찾으려 노력한다. 음악은 무한한 공간에 대한 열정에 의해, 무한에 도달하고 거기에 몰입하려는 욕망에 의해 지배된다. 무한에 대한 열정을 모든 예술작품, 특히 천상의, 우주적인 언어인 음악의 동인이자 목표이다. 음악은 물질적인 구속에서 벗어난 순수한 상태의 영혼의 언어를 번역하고, 그 가장 내적인 움직임과 열정적인 도약을 표현한다. 그것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고, 또한 그가 향하는 최고의 목표가 된다. 음악은 시간의 개념을 소멸시키고 무한의 멜로디를 표현하고 영원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발자크는 음악의 무한성을 강조한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음악은 “영혼 속에 천상의 이미지들”을 환기시킨다.


다음 날 저녁, 극장에서 에밀리오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간밤에 또 다시 탱티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마시밀라 역시 우울해 보인다. 그녀는 프랑스 의사와 카타네오, 그리고 카프라자와 함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시밀라에 따르면, 음악은 인간의 마음에 무한함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하여 기타의 다른 예술들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암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는 시인의 생각들과 화가의 그림, 조각가의 조상(彫像)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고통스러운지 기쁜지, 희망의 상태인지 절망의 상태인지에 따라 음악을 해석하게 되지요. 다른 예술들이 어느 한정된 사물에 우리의 생각들을 고정시킴으로써 옴짝달싹 못하도록 포위하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음악은 그것이 우리에게 표현해 줄 수 있는 완전한 자연을 향하여 우리의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음악의 본질은 유동적이고 막연한 것이어서 자유롭고 개인적인 몽상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말해서, 음악은 우리들의 마음을 물질세계의 속박으로부터 잠시 동안 해방시킴으로써 감각상의 예속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음악은 음향이라는 수단을 매개로 하여 “음향 저 너머에서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러한 환상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시밀라는 모세의 기도 부분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무궁무진한 선율들”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공작부인은 음악이 지니고 있는 표현의 무한성에 대하여, “음악 언어에서 표현한다고 하는 것은 음향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의 어떤 추억들, 혹은 우리 지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이미지들을 일깨우는 것인데, 이 추억들과 이미지들은 그들 나름의 색채를 가지고 있어 슬프기도 하고 쾌활하기도 하고 그렇지요.”라고, 한층 더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공작부인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음악뿐”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발자크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몰두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절대의 문제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절대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예술은 무엇인가, “부드럽고 다정하며 내면에 고상한 열정을 품고 있는 영혼들의 언어”인 음악만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등의 문제를 놓고 그가 철학적인 성찰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무한한 차원의 예술성을 동경하고 열망하는 것은 모든 예술의 동기이자 목적이며, 특히 천상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음악은 무한의 세계를 선율로써 표현하고 영원함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날 밤, 테너 가수 제노베즈(Genovese)는 공연에 실패한다. 〈모세〉에서 그가 맡은 역할인 오지리드(Osiride)라는 인물을 통하여 제노베즈는 클라라 탱티를 향한 자신의 실제적인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탱티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로 괴로운 나머지 제대로 노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공연을 지켜보았던 카프라자는, 공연이 끝난 뒤 지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제노베즈의 공연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가가 예술 행위를 하면서 감정을 절제해야 할 필요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예술가가 불행하게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그려낼 수가 없소. 그는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오. 예술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실제로 연주를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경우에, 너무 격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감각이 능력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카프라자에게 있어 음악이란 우리에게 생겨나는 느낌들의 근원 자체를 움직이는 힘이다. 부연하면, 음악은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 또는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묘한 부분이 가진 능력을 일깨우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는 극도의 정념이나 아편의 효과와도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카프라자의 진단은, 마음속에서 들리는 천상의 음악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대라는 기관이 감정의 격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자신을 저버리게 됨으로써 혼란에 빠지고 말았던 제노베즈의 경우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연적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노래를 망치게 되는 제노베즈의 모습은 지나친 감수성이 예술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실 예술가를 사로잡고 있는 감수성은 다분히 악마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예술적 창조를 방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예술가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도록 판단력을 둔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발자크 자신도 감수성의 이러한 측면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자크는 《아티스트(Des artistes)》 지에서, “시인, 화가, 조각가 등이 자기 작품들 중 하나에 힘이 넘치는 현실성을 부여하게 되는 경우는 창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창의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만드는 최상의 작품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한편, 그들이 가장 존중하는 작품이 반대로 가장 졸작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들과 그들이 사전에 너무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느낌이 너무 지나친 탓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피력한다.


카프라자의 지인들은 〈모세〉 공연을 성공리에 끝내고 오페라 시즌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시밀라와 제노베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겠다고 뜻을 모은다. 그리하여 이들은 에밀리오를 만나러 카페로 간다. 프랑스 의사는 에밀리오에게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경배의 대상을 한 여자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밀리오는 카타네오 공작과 방드라맹, 프랑스 의사와 제노베즈, 카프라자까지 모두 함께 자신의 저택으로 간다. 물론 그곳에는 탱티가 기거하고 있다. 그들은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식사 후 탱티와 제노베즈는 노래를 부르는데, 제노베즈는 다시금 탁한 음성을 낸다.


프랑스 의사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 나가 방드라맹이 쓴 쪽지를 마시밀라에게 전달한다. 의사는 마시밀라에게 탱티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에밀리오의 생을 구원해줄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 마시밀라는 웃으며 동의한다. 의사는 다시 돌아가 탱티에게 제노베즈의 목소리를 치료하고 에밀리오의 생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탱티는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나간다. 얼마 후 에밀리오가 탱티의 방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곳에는 탱티 대신 몰래 숨어든 마시밀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그들은 육체적 사랑을 완성한 것이다.


탱티는 제노베즈가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제노베즈와 사랑을 나눈다. 얼마 후 마시밀라는 임신한다.




분석


발자크가 쓴 두 편의 음악 소설인 〈강바라〉와 〈마시밀라 도니〉를 통해 보면, 발자크가 지닌 음악적 취향으로서의 이탈리아 취향은 무엇보다 감각주의로 정의되며, 반면에 독일 취향은 지성주의 혹은 이상주의(理想主義)로 정의되고 있다. 발자크가 오페라에 관하여 두 소설에서 제시한 바 있는 다수의 미학적, 철학적 의견들은 각각의 음악적 경향에 대한 그의 입장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이끌어 나가는 음악에 관한 토론 및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발자크의 모든 입장들로부터, 그가 실제로 추구한 것은 이탈리아 음악과 독일 음악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음악의 경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음악 용어들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선율’(mélodie)과 ‘화성’(harmonie)이다. 선율과 화성의 문제도 악파(樂派)들 간의 대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인데, 그것은 7월 왕정 시대에 음악적으로 이탈리아 악파와 독일 악파 사이의 반목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선율과 화성에 대한 성찰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문화적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던 발자크는 〈마시밀라 도니〉에서 로시니의 〈모세〉를 분석함으로써 선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강바라〉에서는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를 지배하는 화성의 위력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대한 발자크의 평가에 따르면, 결국 음악적 천재의 비밀이란 아마도 선율과 화성을 훌륭하게 결합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철학적 연구」에 속하는 작품들은 ‘절대’ 혹은 ‘이상’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강박적 관념이 야기한 비극을 그려내고 있는 까닭에 『인간희극』의 정신적인 축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철학적 연구」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은 무한한 것에 대한 갈망과 현기증 나는 추상적 관념에 사로잡혀 과학이나 연금술, 예술 작품, 철학적 사색 등을 통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초자연의 세계가 지닌 비밀을 밝히려는 프로메테우스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관념적인 사색과 지적인 모험은 죽음, 자살, 실성과 같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사유의 본질과 한계를 무시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사유에 대하여 본래의 능력을 넘어서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위험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사유는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감행하는 경우 어김없이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발자크는 평소에도 예술이 그 본질과 동떨어진 여러 가지 구실들을 토대로 삼게 되면 결국은 변질되고 만다고 주장해왔다. 예술가의 창조 작업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또는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거나 하는 인간의 본능과 충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예술가가 창작을 위한 수고와 열정적인 사랑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동요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발자크는 제노베즈를 통해 “여인들이란 예술에 너무도 방해가 되는 존재이므로 쾌락을 즐기는 일과 예술적 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사랑의 열정이 예술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열정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지는 일에 대한 정열, 인내, 투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가의 여부도 결국은 의지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할 것이다.


발자크는 자신의 음악 소설들을 통하여 문학과 음악이 서로 뒤섞이고 상호 보충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음악에 대한 생각들 및 정확한 제목으로 거론된 몇몇 오페라들에 관한 깊이 있는 고찰 덕분에 발자크는 예술에 대해, ‘다양한 예술들(arts)은 총체적이며 이상적인 예술(Art)의 서로 다른 형태들일 뿐이며 인간의 감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한다’는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결국, 발자크는 선구자와 같은 역할로 그쳤던 모차르트보다는 이탈리아 악파의 저력을 본격적으로 과시한 로시니의 덕택으로 〈마시밀라 도니〉를 통하여 음악의 이론 하나를 확립한 셈이다.


이렇듯 총체적 예술을 표방하는 발자크의 미학적 입장은 그로 하여금 예술의 어느 한 유파(école)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유파는 그에게 있어서 예술적 사고의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강바라〉와 〈마시밀라 도니〉에서 이탈리아 음악과 독일 음악을 결합한 형태의 음악을 추구하는 자신의 입장을 암시한 것이라든지, 〈미지의 걸작〉을 통해서 사실주의와 이상주의간의 타협을 제안한 것은 그가 주장하는 예술적 절충주의의 단면들이다.


발자크는 1830년대의 프랑스, 요컨대 부르주아적 보수주의로 무장되고 이념적인 광기로 흐려진 7월 왕조 하의 프랑스 뒤에서 진지하고 절대적인 음악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함으로써 그 시대의 열정을 새롭게 체험하도록 이끌어준 작가였다.



▶ 발췌 논문 :

1. 〈발자크의 소설에 나타난 예술과 현실의 문제 - 『미지의 걸작』, 『강바라』, 『마시밀라 도니』를 중심으로〉, 조영철(원광대)

2. 〈발자크의 예술론에 관한 연구 - 음악론을 중심으로 -〉, 김은년(연세대 대학원 박사 논문)

▶ 참고 사이트 : 영어판 야후 〈발자크의 인간희극〉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발췌 참고 논문 및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를 제가 직접 번역해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