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7권
〈절대의 탐구(La Recherche de l’absolu)〉는 발자크가 1832년에 쓰기 시작하여 1834년에 초판이 간행된 작품이다. 애초엔 「풍속 연구」의 「사생활 정경」 제3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이후 수차례 저자의 수정을 거친 뒤 1839년에 발자크의 후원자였던 조세핀 들라누아(Joséphine Delannoy)에게 바치는 헌사와 함께 출간될 때는 40페이지 가량의 분량이 축소되었다. 1845년에 출간된 최종판은 『인간희극』의 「철학 연구」로 분류되었다.
〈절대의 탐구〉는 연금술이 마침내 근대화학으로 모습이 변해가는 19세기 초기에 시대의 희생자로서 고뇌하며 죽어가는 한 사람의 화학 마니아의 생애를 놀랍게도 극명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관념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발자크의 근원적인 테제였던 만큼 그 모티프에 의한 『인간희극』의 작품이 여러 편 있는데, 〈절대의 탐구〉가 바로 그 전형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자산과 좋은 아내를 얻어 행복한 생애를 보내야 할 아마추어 화학자가, 근원적인 물질 ‘현자의 돌’ 또는 ‘황금’을 구하는 몽상에 사로잡혀, 광기의 후반생을 보내는 생애를 한 편의 이야기로 유감없이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이 단일한 원소로 환원된다고 하는 발자크의 지론 ‘단일론’을 전개하며 발자크 특유의 치밀하고 정확한 환경묘사와 인물들에 대한 세심한 성격묘사로 짜임새와 박진감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이야기는 벨기에에 인접한 프랑스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사시사철 구름 낀 하늘과 습기로 인해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플랑드르는 지리상 외세의 침략이 끝없이 이어졌기에 플랑드르 사람들은 특유의 완고한 믿음과 끈기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무서운 인간이 되었다. 그들은 일단 손을 댄 것은 끝까지 독점하려 했기에 레이스 제조나 농업, 직물제조 등 끈기가 요구되는 산업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재산처럼 세습되었다. 이러한 플랑드르 지방의 오랜 도시인 두에(Douai)는 가장 근대화된 도시였다. 혁신적인 감정이 급속하게 번져 고풍스러운 습속은 사라져가고, 그 대신에 파리풍의 분위기와 유행과 양식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러한 두에에 2백 년 전부터 클라스 저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고택이 위풍당당하게 건재해 있다. 이 저택은 대대로 이어진 방 클라스(Van Claës)라는 유명한 장인(匠人) 집안의 저택이었다. 클라스 집안은 강(Gand) 시에서 오랫동안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대대로 직조장인협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상업적인 패권을 장악해왔다. 고색창연한 클라스 저택은 클라스 집안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가업의 상징과 함께 곳곳이 치밀한 세공의 장식들이 즐비하고 세심한 정성으로 공들여 관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1812년 8월말 어느 일요일, 몸이 불편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마흔 살 가량의 클라스(Claës) 부인이 저녁 해가 비스듬하게 비쳐드는 응접실 창문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고뇌와 수수에 찬 그녀의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약간 흐르고 있었는데도 극한의 고통으로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이때 갑자기 클라스가 머리를 산발한 채로 등장한다. 그는 쉰 살쯤이었지만 예순 살 이상으로 보일 만큼 초췌한 얼굴이다. 깊게 주름이 팬 창백한 얼굴에 눈빛만은 광채가 형형했는데, 손톱에는 새카맣게 때가 끼어 있고 의복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비참한 몰골은 발타자르 클라스(Balthazar Claës)로서는 “천재의 무관심”이었다. “발타자르 클라스는 언제나 몰아의 경지에 있었는데, 그 짐작할 길 없는 명상에서 깨어나거나,” 현실 생활로 돌아와 엄격한 광채가 사라지고 얼굴에 생기가 돌 때면 “사람의 마음을 끄는 아름다움과 우아한 기질”이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얼굴이었다. 한쪽 어깨가 살짝 솟은 곱사등이에다 다리가 불구이긴 하지만 재기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클라스 부인은 “천사의 지혜와도 같은 예감에서 오는 여자의 본능으로 발타자르 클라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시간은 곧바로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3년 무렵, 스물두 살이 된 발타자르 클라스는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의 두에 출신이다. 그는 젊었을 때는 파리에서 라부아지에(Lavoisier)의 제자가 되어 얼마간 화학 연구를 하며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공허한 파리 생활에 지쳐 화학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마음을 잡기 위해 집안의 관습에 따라 신붓감을 찾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곱사등이에 한쪽 다리마저 불편한 가련한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에게 청혼했다. 몸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조세핀 드 템닝크(Joséphine de Temninck)는 나무랄 데 없는 미인인데다, 더할 나위 없는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1795년 초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진실한 사랑으로 조세핀과 결혼한 클라스는 이후 15년 동안이나 아내와 서로 사랑하며 아들 둘, 딸 둘, 네 명의 자녀와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1809년 겨울 무렵부터 그는 갑자기 자신만의 깊은 명상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는 다시 화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해 지붕 밑 방을 고친 실험실에 온종일 틀어박혀 연구에만 열중했다. 상당한 금액의 실험기구와 각종 약품과 값비싼 기계류, 재료, 책, 따위를 파리에서 끊임없이 사들였다. 때로는 다양한 다이아몬드조차 잇달아 구입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자의 돌’을 찾아 파산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클라스가 다시 화학자가 된 지 2년이 지나자 클라스의 부채는 점점 많아졌고, 클라스 부인의 마음고생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클라스는 꿈을 꾸듯이, 때로는 미친 듯이 화학 탐구에 빠져 들어갔다. 클라스 부인은 남편이 몰두하고 있는 ‘학문’에 대해 연적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출구도 희망도 없는 지옥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이 몰두해 있는 ‘학문’의 매력을 알기 위해 남몰래 책으로 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일가는 마치 수도원 같은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불행은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느 날, 클라스 부인은 남편이 소유지를 담보로 30만 프랑을 빌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집안의 생계에는 관심 없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건사해야 했다.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갖고 있던 다이아몬드 장식품도 파리에서 몰래 팔고,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유모까지 해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스는 파산을 운운하며 절망하는 아내에게, 매우 중요한 비밀 문제를 탐구하다가 다이아몬드의 실체를 이루는 탄소를 결정시키는 방법을 발견했으니 내일이라도 재산이 막대해질 거라고 호언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비로소, 그가 다시 화학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일을 털어 놓았다.
1809년 어느 날, 근처 여관이 만원이어서 우연찮게 그들 부부의 집에 머물러 온 폴란드 장교가 있었다. 한밤까지 클라스와 단둘이 대화를 이어가던 이 장교는 클라스가 라부아지에 밑에서 화학을 연구했다는 것을 듣고서, 화학에 대한 그의 의견을 장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화학은 자연계를 전연 별개의 두 부분, 즉 유기계와 무기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석해보면 유기계에서 생기는 모든 물질은 4개의 원소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셋은 기체로 질소∙수소∙산소이고 다른 하나는 비금속의 고체, 즉 탄소입니다.… 한편 무기계에는 원소의 수가 53개나 되는데, 이 원소들을 다양하게 화합시키면 무기계에 속하는 모든 무기물이 만들어집니다.” 이어서 폴란드 장교는, 유기계의 물질은 동물∙식물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모든 생명현상의 근원인데, 무기계의 물질은 운동도 감각도 성장도 없는 무생물, 암석광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런데도 후자를 구성하는 원소의 수가 전자를 구성하는 원소보다 훨씬 많은 것은 분명히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의 옛 선생님의 의견에 의하면 이들 53종의 원소에는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원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원질은 현재는 소멸되어 작용하지 않는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해서 이미 변화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늘이 주신 인간의 재능으로 그 원질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 힘의 활동력이 되살아난다면 우리는 일원적 화학을 갖는 셈이 될 것입니다. 유기계와 무기계는 아마도 네 개의 원소를 기초로 성립될 겁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존재를 부정해야 할 질소를 분해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세 가지 원소밖에는 남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미, 고대인과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설명하는 위대한 ‘삼원’에 가까워지는 셈입니다. (...) 옛날의 연금술사는 황금은 분해할 수 있는 물질이고, 따라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이아몬드 조성의 특질과 법칙을 발견했지요.” 폴란드 장교는 다시 자신의 기묘한 실험결과를 인용하면서 논의를 이어 갔다. 이렇게 해서 3원소 또는 4원소의 배후에는 다시 공통된 하나의 원질이 있고,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양전기와 음전기에 공통된 원질에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 ‘절대’라는 원질을 발견하기 위해 탐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만일 가치가 있는 실험이라도 하게 되면 죽기 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긴 논의를 마쳤다. 이 마지막의 한 마디가 클라스의 마음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이 폴란드 장교의 이야기를 들은 클라스 부인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밖에는 머무르지 않았던 그 분이, 우리들에게서 당신의 애정을 빼앗아 버리고, 단 한 구절, 단 한 마디에 의해서 한 가정의 행복을 파괴했단 말이에요? 그날부터 당신은 아버지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이 집안의 가장도 아니었어요.”라고 외치며, 그 폴란드 장교를 노란 눈을 가진 악마라고 매도했다.
그러자 클라스는 버럭 화를 내며 흥분해서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염소와 질소를 화합시켰고 새로운 금속도 발견했다며 그가 몰두해 있는 ‘절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여러 분석이야말로 ‘절대’설의 가장 뛰어난 증거라며, 모든 생명은 연소를 내포하고 있는데 “지성의 최고점을 나타내고, 반 창조적인 힘, 즉 ‘사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을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은, 동물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강한 연소를 보여”준다고, “그 강력한 연소 작용은 인체의 분석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산염, 황산염, 탄산염에 의해 일어나고 있고, 그러한 물질은 모든 증식작용의 원리인 전류의 작용이 인간에게 남긴 흔적”이 아니겠냐고, “인간은 절대원소의 가장 유효한 부분을 흡수하기 위해, 다른 모든 동물에 비해 최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역설한다.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남몰래 라부아지에를 비롯해 베르톨레, 게이-뤼삭, 갈바니, 볼타 등 그 당시의 모든 화학 관련 책을 읽었던 조세핀이지만, 그래도 남편의 ‘절대’ 이론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이론에 대해 “신을 부정하는” “저주받을 학문”라고 절망적으로 소리쳤고, 자신의 소중한 학문을 부정하는 그녀의 말에 클라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했다. 결국 조세핀은 “당신은 죽고 말았어요. 난 사랑하는 당신을 잃어버렸어요.”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클라스 부인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자식들을 위한 모성애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녀는 남편을 빼앗아간 화학을 원망하면서도 남편이 오매불망 원하는 화학 실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가문에 대대로 물려온 명화 몇 점을 그녀의 교도사(敎導師)인 소리스(Solis) 신부의 알선으로 파리에서 팔아 남편의 빚을 갚고 남편이 연구에 몰두할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림을 팔아 마련한 대금 가운데 꽤 많은 금액을 남편 모르게 따로 숨겨두었다. 집안일에는 무관심한 남편 모르게, 가족에게 가난이 닥쳐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소리스 신부의 집 지하실에 묻었다. 이 과정에서 크게 상심한 클라스 부인은 1814년 연말, 살아갈 의욕을 잃고 고통에 잠겨 응접실에서 칩거하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발타자르는 화학에 빠져, 아내의 병을 단순한 컨디션 난조로 여겼다.
1816년 2월 어느 날, 공증인이 클라스 부인을 찾아와 남편이 부동산을 담보로 30만 프랑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녀에게 치명적인 비수가 되는 소식이었다. 공증인이 돌아가고 난 뒤, 부인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리고 큰 딸 마르그리트(Marguerite)에게 유언장을 건네며 집에 먹을 빵이 한 조각도 남지 않을 때까지는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 다음, 아버지를 버리지 말고 사랑해드리고 동생들의 앞날을 부탁한다고 간곡히 유언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간곡한 유언에 충실하면서 허물어져가는 가문의 명예와 파산해버린 재산의 복구를 위해서 노력했다. 발타자르는 조세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화학을 완전히 등지고 슬픔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1817년 중반에 이르자 그의 상심은 서서히 치유되었고, 무겁게 닥쳐오는 일상의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시 화학에 대한 정열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과학은 나날이 진보하기 시작했다. 발타자르는 “다양한 금속의 환원과 전기의 구성원이라는, 화학적인 ‘절대’를 해명하는 두 가지 발견이 다른 화학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만큼 한층 더 격렬해진 열광에 사로잡혔다. 결국 발타자르는 은밀하게 연구를 재개했다. 그는 ‘절대’ 연구를 위해 집안의 마지막 재산인 삼림을 투기꾼들에게 팔아버렸다.
재산이 바닥나고, 아버지가 서명한 어음 지불 기한이 다가오자 마르그리트는 드디어 어머니의 유언장을 개봉해 읽었다. 유언장을 읽은 마르그리트는 이미 돌아가신 소리스 신부를 대신하여, 소리스 신부의 조카이자 평소 집안 대소사를 다정하고 정직하게 도와주고 있었던 엠마뉴엘 드 소리스(Emmanuel de Solis) 청년에게 어머니의 유산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엠마뉴엘 드 소리스가 소리스 신부의 집 지하실에 숨겨두었던 금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엠마뉴엘과 마르그리트는 금화를 천으로 감싼 뒤 응접실 기둥 밑에다 숨기려는데, 바로 그때 발타자르가 응접실 문 앞에 들이닥쳤다. 그의 등장에 놀란 나머지, 마르그리트는 금화 꾸러미를 떨어뜨렸고, 금화는 바닥에 흩어졌다. 미친 듯한 열정으로 인해 발타자르는 딸에게 그 돈을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이 돈은 절대로 안 된다는 마르그리트와 잠시 동안의 실랑이가 이어진 뒤, 발타자르는 무서운 눈빛으로 딸을 쏘아보더니 자신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었다. 마르그리트는 무너졌고, 발타자르는 ‘절대’의 발견으로 성공해서 행복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금화를 챙겼다.
그러나 발타자르의 얼굴은 나날이 슬픔에 잠겨 갔다. 어느 날, 실험 실패로 절망해 있는 발타자르에게 마르그리트는 딱 2, 3년만 연구를 중단하고 집안을 살펴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는 백부를 찾아가 아버지의 보증인이 되어달라고 간청해, 백부의 신용과 보증으로 브르타뉴(Bretagne)의 한 세금징수관의 자리를 얻어왔다. 처음엔 강렬하게 저항하던 발타자르도 절망감과 패배감으로 자포자기한 덕분에 결국 딸의 결정을 받아들여 브르타뉴로 떠났다.
아버지가 브르타뉴에 머무는 동안,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재산까지 기꺼이 내놓으며 도와준 엠마뉴엘과 함께 갖은 고초와 노력 끝에 모든 것을 거의 전과 같이 회복시켜 놓았다. 1825년 1월초에 마르그리트는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왔다. 발타자르는 브르타뉴에서도 실험을 계속하는 바람에 3만 프랑의 빚을 지고 있었다. 마르그리트는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아버지의 빚을 갚았다.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신 뒤, 마르그리트는 엠마뉴엘과 결혼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대의 발견에 대한 집념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고 잠자고 있었을 뿐이었다. 1828년, 엠마뉴엘에게 행운이 생겨서 소리스 부부가 상속관계의 일로 스페인 여행을 떠나자 아버지의 열정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는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고,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은 채 실험에만 몰두했다. 1830년 중반, 스페인에 머물고 있던 소리스 부부는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1831년 9월말에 소리스 부부가 다시 동생으로부터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폐인의 상태였다. 집안은 “곳곳에 ‘절대’의 사념이 화재처럼 타올라 번져”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발타자르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하며 몇 달이 흘렀다.
1832년 연말이 다가온 어느 날, 발타자르는 매우 위독한 상태로 밤을 보냈다. 임종이 임박해온 어마어마한 고통의 순간에 그는 갑자기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나더니 숭고하고 힘찬 목소리로, “나는 발견했다(유레카)!”라고 외치고는 침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의 눈에는 수수께끼의 말을 ‘학문’에 남기지 못한 원통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수수께끼의 베일은 ‘죽음의 신’의 해골 같은 손가락에 찢어졌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클라스는 모든 물질의 배후에 있는 유일한 원질을 ‘절대’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클라스가 이 절대를 발견하기 위해서 어떤 실험을 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클라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고대와 중세의 ‘연금술’이 아니다.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다양한 화학자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자크는 고대부터 당대까지의 화학자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발자크는 친구인 천문대장 프랑수아 아라고(François Arago)와 그의 젊은 제자 에르네스트 로제(Ernest Rosé)한테서 정보를 얻고, 스웨덴 베르셀리우스(Jöns Jakob Berzelius, 1779~1848)의 <화학개론>을 읽으라는 권유를 받고, 마치 클라스의 아내가 화학을 벼락공부한 것처럼 화학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했다. 폴란드 장교가 말하는 실험과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베르셀리우스와 영국의 데이비(Humphry Davy) 등등의 화학서에서 그대로 베낀 부분도 있다고 한다. 요컨대 클라스의 사고 양식은 당시의 첨단적인 물질관이었던 베르셀리우스의 전기화학적 2원론이었던 게 틀림없을 것이다. 화학변화가 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현상이라는 것은 18세기 말 급속하게 밝혀졌다. 전기분해에 대한 연구에서 물질의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절대’라는 물질의 탐구는 폴란드의 수학자 우론스키(Josef Hoëné-Wronski, 1776~1853)의 실제 사건에서 기인한다. 클라스가 임종을 맞이하는 날, 엠마뉴엘이 ‘폴란드의 저명한 수학자가 <절대>를 팔려고 내놓은 것에 대한 소송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자, 클라스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는 발견했다!”고 외치며 절명하는데, 이 장면의 신문기사는, 우론스키의 실제 소송사건을 모델로 한 것이다. ‘절대’를 사고 싶어 했던 은행가 아르송(Pierre-Joseph Arson)이라는 인물에게 우론스키가 실제로 ‘절대’를 팔았고, 나중에야 우론스키에게 우롱 당했다고 생각한 아르송이 1818년에 우론스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신문에 오르내리게 된 사건이다. 발자크는 이 사건을 1832년으로 옮겨 소설의 결말에 활용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렇다고 발자크가 ‘절대의 철학’을 제창한 우론스키의 사상과 학설에 공감한 것은 아니고, ‘절대’라는 단어만 발자크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자크가 클라스를 창조하게 된 배경에는 화학에 대한 지견을 얻고 있었던 프랑수아 아라고와의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라고는 그 무렵 증기기관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그 증기기관의 연료에 쓸 수 있는 액체 가스의 제조에 성공한 티롤리에라는 인물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 티롤리에가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미쳐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가나르와 카니알 라투르라는 화학자도 인조 다이아몬드의 제조에 성공하여, 어느 쪽이 먼저인가 하는 다툼에 대해 아라고가 재정(裁定)을 내렸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당연히 이러한 이야기를 아라고한테서 듣고 클라스의 실험에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과 당대의 화학의 동향에서, 발자크의 머릿속에 주인공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형성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통해, 모든 물질에 공통되는 원소가 있다고 하는 ‘단일론’을 역설한 것이다. ‘단일론’은 발자크가 청년시절에 18세기 철학의 독서와 함께 스베덴보리, 야코프 뵈메, 생마르탱 등의 신비사상 등에서 품어온 지론으로, 『인간희극』의 서문에서 “조물주는 모든 유기체에 대해 단 하나의 같은 모형만을 썼다”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인간희극』의 메인 테마인 ‘황금’의 문제도, 이야기의 줄거리를 펼치는 중심 주제이다. 여기서는 ‘황금’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입장인 부녀가 치열한 갈등을 되풀이한다. 클라스가 화학적인 방법으로 무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려고 하다가, 반대로 ‘돈’을 삼켜버리고 마는 것에 대해, 딸인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유언을 충실하게 따르며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오로지 ‘돈’의 낭비를 억제하여 ‘황금’을 늘리려고 한다. 마르그리트가 집안을 위해 어머니가 남긴 거금을 숨기는 것을 클로스가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클라스가 한 순간 ‘황금’을 먹어치우는 악마가 된 것처럼 보여, 독자도 전율로 얼어붙고 만다.
발자크는 클라스를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리면서도 광인으로 단정한 것은 아니다. 클라스의 사상과 삶의 태도에는 발자크의 사람과 사상이 담겨 있다. 클라스에게도 발자크에게도, 탐구해야 할 ‘절대’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고, 거기에 이르려면 광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생각건대 발자크는 광인 클라스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떨쳐버리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발췌 논문 : 〈소설 속 과학이야기-발자크의 '절대의 탐구' 〉, 이광(계명대 화학과)
▶ 참고 문헌 : 〈고리오 영감/절대의 탐구〉, 발자크 저, 조홍식 역, 동서문화사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 및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 혹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