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아이

철학적 연구 - 제8권

by 글섬

작품 배경


〈저주받은 아이(L'Enfant maudit)〉는 1831년에 문예지 《르뷔 데 되 몽드(Revue des deux Mondes)》에 1부가 먼저 발표되었다. 그리고 2부는 1836년에야 《파리 시평(La Chronique de Paris)》에 발표되었다. 이후 1, 2부가 통합되고 수정, 증보되어 《들루아 에 르쿠(Delloye et Lecou)》에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에 속해 1837년 7월에 발간되었다. 이후 재판 때마다 소소한 수정이 계속되었다.


이 소설은 1부 ‘어머니의 삶’(Comment vécut la mère)과 2부 ‘아들의 죽음’(Comment mourut le fils)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에티엔(Étienne)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에 따른 아이-어머니-아버지(에티엔-잔-공작)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에티엔이 어머니에게는 사랑받지만, 아버지는 에티엔을 바다로 추방하여 모자관계를 방해한다. 2부에서 에티엔은 어머니 잔의 죽음 이후 바다를 어머니로 만들고, 그 바다에서 만난 가브리엘(Gabrielle)은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 또 다른 어머니가 된다.




제1부 어머니의 삶


1591년, 프랑스의 칼뱅파 신교도 위그노(huguenot)와 카톨릭 신자와의 8번째 종교 전쟁 당시, 위그노 샤베르니(Chaverny)를 사랑했던 잔 드 생-사뱅(Jeanne de Saint-Savin)은 연인과 그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샤베르니와 헤어지고 나이 많고 잔혹한 성품의 데루빌(d'Hérouville) 공작과 정략 결혼해야 했다. 노르망디(Normandie) 출신의 데루빌 백작은 당시 국왕이었던 헨리 4세(Henri IV)를 따르는 왕당파였다. 잔은 공작과 결혼하고도 여전히 옛 연인 샤베르니를 열망한다. 자기에게서 멀어져가는 잔을 보며 공작은 “나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절망한다.


결혼 후 7개월 만에 잔은 출산을 앞두게 된다. 잔과 백작은 결혼한 지 열 달이 되지 않았으므로 아이가 열 달을 채우지 못한 칠삭둥이 조산아라면 백작의 아들이며, 조산아가 아니라 열 달을 채운 아이라면 백작의 아들이 아니지만, 작중 인물들은 에티엔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화자는 조산을 암시하며 진실을 알리지만, 뱃속 아이의 아버지를 가장 잘 알 생모인 잔조차도 출산 직전에 “나는 결백하다고. 그렇지만 백작이 보기에 내가 죄가 있다면 내가 죄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 아니겠어? 어쩌면 나는 죄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성모 마리아께서도 수태고지를...”라고 혼잣말을 읊조리며 뱃속 아이의 아버지가 백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백작이 조산부로 데리고 온 데루빌 가문의 의사 보불루아르(Beauvouloir)는 갓 태어난 에티엔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백작을 보고 백작의 질투심을 읽어낼 뿐만 아니라 백작이 품은 아들 살해 의도를 간파한다. 보불루아르는 “제발 부탁이니, 이 아이를 백작에게 주지 말라”는 잔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이를 잔에게 준다. 그리고는 에티엔을 절대로 떨어뜨려놓지 말라고 충고하며, “잘만 돌본다면 백 살까지 살 수 있어요.” “그 어떤 감정도 이 가냘픈 몸을 흔들어 놓지 않는 한 말이에요.”라고 예언에 가까운 조언을 해준다. 그러나 백작을 전혀 닮지 않은 에티엔에 대한 백작의 적의는 갈수록 불타오른다. 백작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아들을 증오하는 것이 보였으며” “에티엔을 살려두는 건 그가 죽는 걸 보기 위함인 것 같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백작 부부는 에티엔이 백작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잔의 경우엔 “여자들이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출산 전에 열렸던 연회에서 백작은 잔이 열 달 이전에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연회에서 발언했었다. 그는 조산의 가능성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열 달 이전에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자기 아이가 아니라 가정한 것이다. 실제로 에티엔은 백작의 눈에는 샤베르니의 아들이라 생각되는 지긋지긋한 칠삭둥이이다. 때문에 백작은 잔에게 에티엔이 “당신의 아이이지 내 아이는 아니”라고 말하게 되고, 백작의 이 말을 듣고 생겨난 죄책감으로 인해 잔은 에티엔이 백작의 아이가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싣게 되어, “샤베르니 때문에 그 탄생이 질책 받는 에티엔를, 잔은 마치 사생아를 사랑하듯이 사랑했다.” 따라서, “에티엔과 이 거인(아버지 백작)과의 싸움은 요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무서운 적수에 대한 원군이라고는 점점 더 많이 사랑해주는 어머니의 마음밖에는 없었다.”


백작은 에티엔이 태어나자마자 왕을 돕는다는 핑계로 수도로 떠나버렸기에 “에티엔이 보기에는 어머니가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잔의 모성은 연인의 애정이 대체된 것처럼 잔은 “샤베르니처럼 상냥하고 우아하게 만들기 위해 에티엔에게 궁정 예절을 가르치며” 에티엔을 “샤베르니의 시뮬라크르로 만들려고 했다.” 잔은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에 웃음 짓는 어린 에티엔의 웃음에게서 샤베르니를 보게 된다. 그녀는 에티엔에게 입을 맞추고 애인을 대하듯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내내 잔에게 안겨 있던 에티엔이 처음으로 엄마의 품을 떠나 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버지 백작이 수도에서 돌아온다. 아버지가 나타남으로써 아들과 어머니의 육체적, 정신적 교류는 금지된다. “그녀의 남편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곧 그녀의 아이도 느끼게 되었고, 그 공포 때문에 그녀는 아이가 더욱 소중해졌다. 따라서 그녀와 아이의 결합은 더욱 단단해져서, 마치 한 가지에 난 두 송이의 꽃처럼 모자는 같은 바람에 숙이고 같은 희망에 다시 머리를 들었다. 이 둘은 같은 생명체였다.”


그러나 “가여운 에티엔은 백작이 혐오하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백작이 보기에는 이 허약하고 병약한 몸, 백작이 쓰다듬어 주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나빠지는 이 허약한 몸은 아버지로서의 자기애에 상처가 되는 것이었다. 백작은 잘생긴 사람들을 혐오했고, 그를 가장 역겹게 하는 것은 연약한 사람들, 지성의 힘이 육체의 힘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었다. 백작의 마음에 들려면 흉측한 얼굴에, 거대하고 건장한 덩치에 멍청해야 할 것이다.” 잔은 에티엔에게 사제가 되는 공부를 시키고 싶어 했지만, 백작은 “당신이 안고 있는 그 괴물놈의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그놈을 보고 싶지도 않다”며 에티엔을 성 밖으로 추방해버린다. 백작은 에티엔이 바닷가에 인접한 외진 건물에 따로 살아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며 성 출입을 엄금한다. 이로 인해 에티엔은 아버지가 부재중이거나 잠들었을 때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에티엔은 어머니와 보불루아르, 스봉드(Sebonde) 신부, 그리고 백작의 충복인 베르트랑(Bertrand)에게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한테서 외면당한 에티엔은 사회로 진출하지 못하고 “청동의 벽으로 문명사회와 격리된 채” 바다에서 살아간다. 그는 “사회로부터 오는 강한 충격”을 견딜 수 없다. 잔은 “바다의 예쁜 금붕어가 모래톱에서 태양을 견디지 못하듯이 에티엔도 사회생활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에티엔을 괴롭게 하거나,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다. 그는 사회의 법칙을 일절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백작은 헨리 4세의 총애를 받아 공작의 작위를 얻는다. 그리고 둘째 아들 막시밀리앵(Maximilien)이 태어난다. 에티엔이 잔을 닮은 반면에, “막시밀리앵은 제 아비를 완벽하게 빼닮았다.” “에티엔과 막시밀리앵처럼 서로 안 닮은 형제들도 또 없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요란한 것과 격렬한 활동과 전쟁을 좋아했다. 그래서 공작은 자기 아내가 에티엔을 사랑하듯 막시밀리앵을 사랑했다. 일종의 자연스런 불문율 같은 것으로 이 부부는 각자가 자기가 편애하는 아이를 돌봤다.” 잔과 에티엔은 노래를 잘하고 음악을 잘 연주하고 음악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반면에, 공작은 잔을 두렵게 하는 쉬고 거친 목소리를 지니며, 막시밀리앵도 태생적으로 요란한 소음을 좋아한다. 잔은 에티엔에게 문학, 수학, 이탈리아어 등, “마음의 교육과 정신의 교양”을 가르쳤고, 페트라르카와 단테, 책을 좋아하는 에티엔은 결국 “영혼과 지성으로 살게 되었다.” 반면에 공작과 막시밀리앵은 책 등의 정신 활동보다 말 타고 단도를 다루는 등 육체 활동을 선호한다. 공작은 “막시밀리앵이 책과 글자를 지독히 싫어하게끔 키웠다. 공작은 막시밀리앵에게 병법의 기계적 지식을 가르쳤으며, 일찍부터 말 타는 법, 소총 쏘는 법, 단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공작이 아들을 다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막시밀리앵을 멧돼지 앞에 내몰던 때, 그와 반대로 잔은 에티엔과 더불어 페트라르카 소네트의 은하수를, 혹은 <신곡>이라는 거대한 미로를 누볐다.”


형제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자라난다. 공작은 형제를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그 자신도 에티엔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산다. 막시밀리앵은 잔을 싫어했고, 에티엔 역시 공작을 무서워한다. 두 아들이 성년이 된 후 잔은 에티엔과 공작이 만나는 것만큼 에티엔과 막시밀리앵이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잔은 폐결핵에 걸려 성에서 꼼작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에티엔은 한참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다. 폭풍우 치던 어느 날, 잔은 임종을 앞두게 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에티엔은 아버지 몰래 성으로 들어갔다가 이미 숨진 어머니의 주검을 마주하게 된다. 에티엔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바닷가에서 혼자 고립된 채 야생의 생활을 자처한다. 그리하여 에티엔은 바다 때문에 울게 되었고, 바다의 언어를 알아듣게 되었으며, 바다가 날카롭게 소리를 낼 때 바다의 분노를 느꼈으며, 바다처럼 대담해졌고, 바다가 갑자기 소리 지르는 것을 따라했다. 에티엔은 바다와 하나가 되어 어디에서나 어머니를 본다. “때때로 그는 구름 속에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 둘은 천상의 환영 속에서 정말로 서로 소통했다. 어떤 날에는 에티엔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제2부 아들의 죽음


데루빌 공작은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 왕비와 총사령관을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아들 막시밀리앵 덕분에 최고의 권력과 행복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막시밀리앵의 전사를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공작은 가문의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휩싸인다. 지금껏 에티엔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아내를 맞이해 새로운 후계자를 얻고자 한다. 이때, 충복인 베르트랑이 공작에게 아들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늙은 공작은 그제야 자신의 성을 지닌 에티엔을 떠올리며 안도한다.


다음 날 아침, 공작과 베르트랑은 바닷가 움막에 숨어 있는 에티엔을 찾아내 성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에티엔은 처음으로 공작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성의 주인”이 되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는 등, 그의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이름 ‘니브롱(Nivron) 공작’을 받는다. 에티엔의 새 이름 ‘니브롱 공작’은 세습 작위로 아버지에게 물려받는 것이기에 그의 새 이름은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작은 가신들을 불러놓고 에티엔이 자신의 자리를 이었음을 정식으로 선포한다.


공작은 에티엔을 명문가 여식과 결혼시켜 대를 이을 자손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보불루아르는 공작에게 에티엔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오래 살 것”이라고 예언하며, 그러니 에티엔의 상대는 에티엔 스스로가 자기 자신과 유사한 사람으로 찾아야 하니 에티엔에게 맡겨주라고, 그러면 손자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간곡하게 조언한다. 어차피 공작이 권하는 사람은 누구든 에티엔이 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불루아르에게는 “에티엔의 아내가 될 만한 조건에서 키워진 딸” 가브리엘이 있었다. 에티엔이 자신의 낙원이자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처럼 가브리엘 역시 수도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꽉 닫힌 자기 집에서 아버지만을 보고 살아왔다. 보불루아르는 의도적으로 공작이 성을 떠나도록 계획해 공작을 멀리 보내 놓은 후, 해수욕을 시켜준다는 핑계로 가브리엘을 에티엔 곁에 보내 두 사람을 잇는다.


에티엔은 “그의 음울한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곧 사랑할 필요성을 느꼈다. 즉 또 다른 어머니, 또 다른 영혼을 옆에 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강철의 벽으로 문명사회와 분리된 탓에, 에티엔이 자기처럼 개화한 영혼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자기 생각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자기 자신, 그의 삶이 자기 삶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하던 끝에 에티엔은 결국 바다와 마음이 통했다.”


“에티엔은 여전히 추억에 사로잡혀서, 저녁까지 바다를 바라보느라 골몰한 채 창문 앞에 있었다. 바다는 에티엔에게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에티엔은 그렇게나 아름다운 바다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에티엔은 바다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바다야말로 내 약혼녀이며 나의 유일한 사랑이지.” 에티엔은 달빛을 받은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바로 그 때, 바다에서 나온 세이렌의 목소리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에티엔이 방금 부른 노래를 따라했다.” 그녀의 옷 주름이 물결치며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에티엔은 달빛을 받아 빛나는 바다를 보고 말했다. ‘바다가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왔구나!’ 에티엔에게 온 이 생기 있고 예쁜 작은 조각 같은 여자의 모습과, 달이 그녀를 자기 빛으로 감싸며 은색으로 물들이는 걸 보면서 에티엔은 가슴이 더 뛰었지만 그건 괴롭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잔을 몹시도 닮아 있었다. 잔과 가브리엘은 둘 다 금발에 흰 피부를 지녔고, 우아하고 호리호리하기에 외모가 닮았다. 가브리엘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는 어머니를 상기시킨다. 이 둘은 마치 성모처럼 묘사되고 있다. 잔은 자신의 임신을 처녀 수태라고 생각했었다. 잔의 “고통스러운 산고는 고통 받는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했고,” 이탈리아 화가인 카를로 돌시가 그리는 성모의 섬세한 상앗빛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역시 이탈리아 화가들이 성모에게 입히기 마련인 옷을 입고 있다. “가브리엘이 자기 어머니 잔과 닮았다는 사실은 마치 에티엔에게는 신께서 내려주신 이치처럼 보였다.” 가브리엘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는 모성의 연장선상이었다. 이 움막 아래 누워 있는 소녀를 에티엔은 바라보았다. 에티엔의 어머니가 에티엔이 움막에 있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을 지니고서는 말이다. 이 공통점이 과거를 현재에 이어주었다. 자기 추억의 구름 위에서, 잔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에티엔에게 나타났다.”


“에티엔은 앙리 4세의 멋진 노래를 새로운 표현으로 불렀다. 멀리에서부터 그 노래를 불러보려는 가브리엘의 시도가 에티엔에게 화답했다.” “에티엔과 가브리엘은 같은 구절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며 즐거워했다. 이 아름다운 소리들에 정열을 발산하며 말이다. 이 소리 속 그들의 영혼은 방해물 없이 울렸다.” “에티엔은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 어떤 걱정도 이 둘의 이중창의 조화로운 선율을 방해하지 않았다.” 에티엔과 가브리엘과의 교류는 처음에는 음악과 시, 명상 등을 통해 이루어져 철저히 정신적이었고, “정욕이라는 지상의 사랑의 결점에 아직 물들지 않았다.” 정신 차원의 교류의 결과, “그 영혼이 서로를 닮아갔다.” 그러한 영혼의 교류 이후, “서서히 애무를 시작했다.” 이윽고 “어두움과 침묵 속에서 에티엔과 가브리엘은 첫 입맞춤을 나누었는데, 그 첫 입맞춤에서 감각과 영혼은 하나가 되어 여태까지 몰랐던 즐거움을 주었다.” “그들은 플라톤 신비주의의 지성들의 아름다운 꿈, 또한 인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던 수많은 자들의 아름다운 꿈을 성취했다. 즉, 이 둘은 둘이서 단 한 영혼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공작이 성으로 돌아온다. 그는 에티엔과 결혼시키기 위해 명문가 그랑리유(Grandlieu) 백작 모녀와 함께 돌아온다. 에티엔은 가브리엘과 같이 있다가 바다의 여기저기에서 “폭풍우가 올 것을 예고하는 은색 칼날”을 보게 된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발밑에 놓인 금의 칼날 같았던” 바다는, 에티엔과 가브리엘 사이를 떨어뜨리러 아버지가 온다는 소식과 더불어 폭풍우로 거칠어지고 너무나 새까매져서 얼굴을 비춰볼 수 없게 된다. 에티엔은 자신과 가브리엘의 연애에 화가 난 아버지가 온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가브리엘의 손을 잡고 “나와 같이 바다에 몸을 던지자”고 말한다.


공작은 에티엔이 미천한 가브리엘과 연애한다는 사실에 격분해 에티엔에게 정략결혼을 강요하며 그를 성에 가둬버린다. 에티엔이 갇혀 있는 방문 앞에 가브리엘이 찾아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노래를 불러준다. 청각이 밝은 에티엔은 “담비가죽보다 더 부드럽고, 백합보다 더 상큼”한 가브리엘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아버지의 끔찍한 말 때문에 죽음의 심연으로 빠졌던 저주받은 아이는 가브리엘이 부르는 이 노래의 날개를 타고 삶의 표면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가브리엘을 발견한 공작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공작은 가브리엘을 향해 온갖 치욕의 말들을 쏟아놓았고, 에티엔은 극도의 공포감에 몸을 떨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공작이 가브리엘을 향해 칼을 내리치는 순간, 에티엔은 그만 절명해버린다. 가브리엘은 쓰러지면서도 에티엔을 끌어안는다. 에티엔을 끌어안은 채 가브리엘도 숨을 거둔다. 공작은 격분한 채 문을 닫아버리고는 에티엔과 결혼시키기 위해 성으로 데리고 온 그랑리유 백작의 딸에게 “내가 그대와 결혼할 것이오!”라고 선언한다. 그랑리유 백작부인은 자그마치 일곱 명의 프랑스 국왕을 섬긴 이 늙은 귀족의 귀에다, 위대한 혈통을 위해 지대하신 말씀이라고 속삭인다.




분석


아이와 어머니를 떼어놓는 공작을 라바르트는 ‘폭군 아버지’(tyrannie paternel)라고 하고, 그랑뜨-메라는 보다 라깡다운 표현으로 ‘거세하는 아버지’(père castrateur)라고 한다. 아버지가 에티엔과 어머니 사이에 개입하는 것은 개념 ‘거세’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거세는 “아이가 어머니를 소유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아이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놓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저주받은 아이〉의 경우 공작은 “당신이 안고 있는 그 괴물놈(에티엔)의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그놈을 보고 싶지도 않다”고 에티엔을 바다로 추방했다. 추방 이후에도 한동안은 어머니가 에티엔을 돌보러 바다에 나와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떠줬기에 일견 추방이 모자를 갈라놓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어머니는 병에 걸려 성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에티엔은 아버지의 추방 명령 때문에 성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결국 어머니의 임종까지 만나지 못했으니 아버지가 모자를 갈라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작은 잔이 욕망하던 대상을 잔으로부터 박탈한다. 어머니 잔은 아이 에티엔을 통해 결여된 대상인 샤베르니를 추구하는데, 아버지는 샤베르니의 죽음을 알려 그 결여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 대체품이 될 수 있는 에티엔을 바다로 추방시킴으로써 그 추구를 막으려 한다. 라깡의 오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는 거세의 행위로 어머니와 아이를 떼어놓을 뿐 아니라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름’(le-Nom-du-Père)을 부여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란 성(姓)이 아니라 라깡의 개념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이상으로 삼아야 할 자아’(idéal du moi)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에 따르면, 이상으로 삼아야 할 자아란 “자아의 준거 모델로 부모상 및 부모상의 사회적 관계와의 동일시”를 말한다. 그 결과 남자아이는 같은 성의 대상(아버지)을 (동일시의 대상으로서) 선택하며 어머니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된다. 에티엔의 경우엔 차남 막시밀리앵이 전사하자 에티엔은 아버지 공작의 자리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되어 아버지가 쓰던 침실을 물려받으며 “성의 주인”이 되었다. 성은 아버지의 장소이기 때문에 성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자리의 주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자리를 얻었고, 아버지의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곧 ‘아버지의 이름’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그는 공작으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티엔이 공작의 후계자로서 아버지가 차지한 자리(성의 주인이나 ‘공작’이라는 작위)에 올라선 것은 ‘아버지와의 동일시와 어머니로부터의 떨어짐’이라는 ‘아버지의 이름’ 중 절반인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이룬 것뿐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완전히 받아들인 주체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의 동일시 뿐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어머니가 아닌 새로운 여자를 사랑함으로서 어머니의 욕망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티엔의 경우 성의 주인이 되자마자 새 여자 가브리엘을 만난다.



▶ 발췌 논문 : 〈발자크의 『저주받은 아이』 연구〉, 임수현(연세대 석사 논문)

▶ 참고 사이트 : 영어판 야후 〈발자크 인간희극 개요〉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발췌 참고 논문 및 참고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를 제가 직접 번역해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절대의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