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9권
〈아듀(Adieu)〉는 1830년 5월 15일과 6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군대의 추억 : 아듀(Souvenirs soldatesques : Adieu)〉라는 제목으로 《라 모드(La Mode)》 지에 분재되어 발표되었다. 첫 번째 발표 당시 이 작품은 각각 〈선인(善人) 기도원(Les Bons-Hommes)〉, 〈베레지나 도하(Le Pasage de la Bérésina)〉, 〈치유(La Guérison)〉라는 소제목을 단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군대의 추억’ 이라는 제목과 ‘베레지나 도하’라는 소제목에서 암시되듯 이 작품은 나폴레옹 군대의 러시아 전투 패퇴 당시 가장 결정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던, 1812년 1월 26일에서 29일에 걸친 베레지나 도강 당시의 처참한 전투 장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군대-전투는 발자크가 「풍속 연구」의 한 장면을 「군사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militaire)」으로 삼을 정도로 일찌감치 깊은 관심을 둔 소설 주제였다.
이렇게 애초에 「군사생활 정경」의 기획 아래 발표된 〈아듀〉가 1832년 책으로 출판될 때는 몇몇 다른 작품들과 함께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고, 제목도 〈여인의 의무(Le Devoir d'une femme)〉로 변경된다. 개작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중이 군대의 풍경에서 주인공 두 남녀의 비극적 연애 쪽으로 조금 더 옮겨간 것이다. 그러다가 1834년 말 단행본으로 재출간될 때는 역시 몇몇 다른 작품들과 함께 「철학 연구」로 분류되면서 제목은 단순하게 〈아듀〉로 다시 변경되는데, 1846년 《퓌른》 판에서도 세 부분의 소제목만 삭제된 채 제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짧은 이야기는 발자크의 여타 장편들만큼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더 높은 밀도를 보여줌으로써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에 다다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야기는 나폴레옹 제정이 종식되고 왕정이 복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19년 무더운 늦여름 어느 날, 릴라당(L'Isle-Adam) 인근 “숲에서 사냥을 하다 길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다” 지친 두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한 명은 나폴레옹 군대의 대령으로 1812년 베레지나 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혀 6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다 최근 귀환한 필립 드 쉬시(Philippe de Sucy)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친구로서 왕정복고 의회의 중도파 의원이자 행정관인 달봉 후작(le marquis d'Albon)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선인(善人) 기도원’(Les Bons-Hommes)이라는 이름의, 폐허처럼 변한 기도원을 만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궁전”과는 상반되는, 환영처럼 나타난 한 젊은 여자와 조우한다. 완전히 실성한 모습으로 마치 한 마리 동물처럼 날렵하게 숲속을 누비는 그 야생의 여자는 간헐적으로 “아듀” 라는 소리만 냈는데, 그 소리는 “부드럽고 조화로웠지만, 감정이나 의미가 조금도 실리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필립은 그 자리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고 기절하고 마는데, 바로 그녀가 베레지나 도하 때 헤어져 죽었을 것이라고 믿어온 애인, 스테파니 드 방디에르(Stéphanie de Vandières)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달봉 후작은 빈사상태의 필립을 집으로 옮겨 안정을 시킨다. 겨우 정신을 차린 필립은 달봉 후작에게 “지체 없이 선인 기도원으로 가서 우리가 만난 그 여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촌각을 다투는 문제이니 지체 없이 되돌아 와 달라”고 부탁한다. 필립의 부탁을 받은 달봉 후작은 혼자 기도원에 되돌아가 그녀의 삼촌인 판자(Fanja)를 만난다. 의사인 그는 실성한 스테파니에게 “언젠가는 이성을 돌려주겠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데, 필립이 누구인지 전해 듣고는 베레지나 도하 당시 스테파니가 겪은 이야기를 달봉 후작에게 길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1812년 1월 28일,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 전투에서 퇴각할 당시 베레지나 강 인근에서 퇴각하던 군대의 후진으로서 1천 명의 병사를 남겨 두었다. 낙오병들은 밤을 틈타 베레지나를 조용히 건너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베레지나 강둑에 떼를 지어 모여든 그들은 전날 주력군이 베레지나 강을 건너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대포, 탄약 상자 등 온갖 군수품에 그만 갈 길조차 잊고 말았다. 매서운 추위와 피로에 맞서 싸워야 했던 그들은 뜻밖의 것을 물려받자 버려진 야영지에 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허기와 갈증, 그리고 지독한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죽어 가던 낙오병들이 강변에 이르러 뜻밖에도 땔감과 식량, 그리고 충분한 야영 장비와 마주치자 오로지 편히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강을 건너는 데 필요했던 최후의 용기마저도 하룻밤을 지낼 막사를 짓는 데,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를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하는 데 소진해 버렸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 하루라도 편히 잘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장군이자 백작인 늙은 남편과 내밀한 애인인 젊은 장교 필립이 함께 참전한 전투에 따라나서게 된 스테파니는 동토의 아수라장에서 비인간적 참상을 겪다가 그 운명의 날 필립의 헌신적 도움으로 급조한 뗏목에 남편과 함께 올라타고 러시아군이 급습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강을 건너게 된다. “러시아군은 거대한 화염처럼 밀려 내려왔다.” “운명의 강둑을 향해 홍수처럼 쏟아져 가는 인간의 본능적 다툼에, 인간이란 물질 덩어리가 산사태처럼 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곧 베레지나 강은 떠다니는 시체로 가득했다.” 뗏목엔 탐욕스런 이기심으로 앞을 다투어 몰려든 병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필립은 어렵사리 확보한 자신의 자리를 백작 부부에게 양보했다. 필립을 강둑에 남겨두고 뗏목에 오르기 직전에 스테파니는 그의 품으로 뛰어들어 그를 꼭 껴안으며 “아듀!”라고 말했다. 그러나 뗏목이 삐꺽대며 마침내 반대편 강둑에 닿았을 때, 갑작스런 충격이 뗏목에 가해졌고, 그 바람에 뗏목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백작이 균형을 잃고 강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백작의 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스테파니는 남편의 목이 잘려 “포탄처럼” 떠내려가는 장면과, 강 저편에 남아 그들을 응시하는 필립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뗏목에 실린 채 “아듀”를 외치며 멀어져갔다.
여기까지 1812년 베레지나 도하 당시의 이야기를 마친 뒤 판자는 그 후 1816년 스트라스부르 인근에서 완전히 실성한 상태로 야생에서 벌거벗고 사는 스테파니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렇게 남편마저 잃고 혼자 남아 나폴레옹 군대와 함께 퇴각하다가 수년간 성적 노리개로서 온갖 종류의 몹쓸 짓을 당했다. 당시 친척들은 스테파니가 죽었다고 결론짓고 그녀의 재산을 나눠 가졌다. 판자가 조카딸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아듀”라는 말 외에는 할 줄 아는 말이 없었다.
달봉은 필립에게 돌아와 그녀가 바로 필립이 베레지나 도하 때 헤어진 백작 부인이었다고 전한다. 필립은 반드시 스테파니를 낫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곧장 수도원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필립을 전혀 알아보지 못함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완벽하게 상실해 동물 수준으로 전락한 채 오로지 “아듀”만을 반복한다. 필립은 스테파니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반복한다. 우선 필립은 그녀와 친밀해질 수 있도록 매일 아침 수도원을 찾아가 온종일 함께 지낸다. 그는 갖은 방법으로 그녀가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노력하지만 모두 무위에 그치고 만다. 매일 새롭게 반복되는 절망과 그만큼 더 커져가는 자신만의 사랑을 이기지 못한 필립은 결국 그녀와 동반자살하려 한다.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판자가 권총을 장전하고 있던 필립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와 간밤에 스테파니가 잠결에 “필립”이라고 불렀다고 거짓말한다. 그러자 필립은 재빨리 권총을 치워버린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다음 날에도 스테파니는 필립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과 맺었던 사랑의 기억은 깡그리 잊고 사탕에만 유일하게 반응을 보이는 스테파니에게 절망한 그는 “나는 매일, 매순간 죽어가오! 당신을 죽도록 사랑하오. 당신이 비록 미쳤더라도 여성성을 조금이라도 간직했더라면 나는 어떤 고통이라도 견딜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여성성을 상실하고 심지어는 부끄러움마저 모르는 당신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은...”이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마침내 필립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의 소유지인 생제르맹(Saint-Germain)의 시골 벌판에 러시아의 평원을, 그러니까 1812년 ‘베레지나 도하’ 당시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이나 마차나 대포나 부서진 다리 등 전쟁터의 “끔찍한 장면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거의 완벽한 전장의 풍경의 복원을 마친 뒤 드디어 1820년 1월 초 폭설이 내리자 필립은 미리 고용해 훈련시킨 수많은 농민들에게 패잔병의 군복을 입혀 배치해놓고는 그렇게 사실적으로 재현된 스펙타클, 그 “가짜 러시아” 한복판에 당시의 의상을 입힌 스테파니를 던져놓는다. 필립 자신도 소령 군복을 입고 그곳에 선다. 그러자 스테파니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는 필립의 품으로 뛰어든다. “순간 번갯불처럼, 총기라곤 없던 그녀의 눈빛이 맑아졌다.” “스테파니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스테파니는 마침내 기억을 되찾고 필립을 알아보고는 필립의 품에 깊이 안긴 채 눈물을 터뜨린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이 굳어지며 가냘픈 목소리로, “아듀, 필립, 사랑해요, 아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바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 후 십 년이 지난 1830년, “필립은 사교계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복고왕정에서 장군으로 승진하고 사교계에서 “뛰어난 유머감각과 한결 같은 차분함”으로 “누구보다 매력적이고 쾌활한 남자”로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스테파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를 향해 보여준 미소를 여전히 잊지 못한 채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립은 돌연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과거의 전복(예컨대 대혁명)과 복원(예컨대 왕정복고)이라는 두 의지의 첨예한 대립과 그 의미에 대한 물음은 『인간희극』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 질문은 흔히 혁명전쟁 혹은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서 사라졌거나 죽었던 것으로 간주된 인물의 귀환이라는 형식으로 제기된다. 〈샤베르 대령(Le Colonel Chabert)〉은 작품 전체가 그 주제에 바쳐졌다고 할 수 있고,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에서는 나폴레옹 군대의 제대군인인 고글라(Goguelat)의 긴 회고담이 중요한 모티프를 구성한다. 모스크바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두 인물의 운명을 그린 〈아듀〉 역시 이 계열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속에 틈입한 과거의 존재인 그 인물들은 광기에 사로잡히거나(혹은 광인으로 취급받거나) 금치산 선고를 받는 등 현재의 질서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척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전복과 복원이라는 문제가 대단히 풀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런데 〈아듀〉의 경우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을 통한 재현과 이미지를 통한 재현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등장시켜 과거의 ‘재현’에 대한 의미와 한계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 그것인데, 이 질문을 통해 〈아듀〉는 비록 짧은 소설이지만 ‘세계의 거울’이자 ‘세계의 책’을 자처한 『인간희극』의 야심의 일단을 드러내주며, 더 나아가 이른바 ‘발자크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것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각별히 주목을 받는 대목은 의사 판자가 달봉 후작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삽입된 이야기, 최종본에서 장 구분 제목이 사라지기 전까지 ‘베레지나 도하’라는 소제목이 붙었던 부분이다. 베레지나 전투의 한 장면을 그린 이 부분은 스테파니와 필립의 전사(前事)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이야기의 논리적 필요성에 따라 삽입된 것이긴 하지만, 따로 떼어 놓더라도 한 편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취급될 수 있을 만큼 자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완결성을 지녔다고 평가받으며, 더 나아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발자크의 작가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부분이라는 상찬을 받기도 한다. 〈아듀〉의 ‘베레지나 도하’ 장면은, 특히 그 부분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았을 경우, 전쟁 기록물로서 압권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쟁의 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제시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 참고 문헌 : 〈사랑과 행복의 비밀〉, 발자크 저, 강주헌 역, 큰나무
▶ 발췌 논문 : 〈발자크와 리얼리즘의 문제 - 〈아듀〉의 경우〉, 이철의(상명대)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 및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 혹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