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10권
〈마라나 가문(Les Marana)〉은 1834년에 《마담 베쉐(Madame Béchet)》에서 출판된 소설로, 이후 1846년에 《퓌른》에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
출간에 앞서 발자크는 1832년과 1833년에 《파리 리뷰(La Revue de Paris)》 지에 이 소설의 1장과 2장을 연달아 발표했다. 소설 전체가 완성된 최종본은 1834년에야 출판되었고, 발자크 사후 판본에서는 거의 수정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반도 침략에 저항하여 에스파냐, 영국, 포르투갈 동맹군이 벌인 반도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1811년, 수쉐(Suchet) 사령관이 스페인 동북부 해안에 있는 해안 마을 타라곤(Tarragone)을 점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습격을 받아 아비규환이 된 타라곤의 거리 곳곳엔 화염에 휩싸인 십자가들이 나뒹굴고, 머리를 산발한 채 반라로 혼비백산한 사람들과, 살해되거나 사망한 프랑스 군인들의 시체들로 넘쳐 났다.”
마라나(Marana)는 프랑스 혁명 전쟁으로 인해 베니스(Venise)에서 추방된 이탈리아 매춘부이다. 그녀는 대대로 매춘을 이어온 집안의 사람이다. 마라나는 그녀의 딸 주아나(Juana)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딸과 함께 타라곤으로 망명해, 직물 상인 페레스 드 라구니아(Pérez de Lagounia)와 그의 아내에게 주아나의 육아와 교육을 위탁했다. 마라나는 주아나에게 자신이 창녀라는 사실을 내내 숨겨왔다. 마라나는 마라나 집안의 여인들에게 대물려 온 매춘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주아나만은 버젓한 가정을 꾸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라나에게 있어 모성애는 다른 여인들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로서는 구원의 희망이자 영겁의 난파선에서 그녀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널빤지 같은 것이었다.” 마라나는 주아나를 라구니아 내외한테 맡겨두고는 떠나버렸지만, 주아나가 곤경에 처할 때면 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주아나가 심하게 아팠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마라나가 나타나 극진히 간호해 건강을 회복시킨 뒤 떠났다. 프랑스 군대가 타라곤을 점령했을 때 주아나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타라곤 주둔군의 몽트피오르(Montefiore) 대위는 밀라노(Milan) 출신의 얼굴만 번지르르한 겁쟁이 호색한이었고, 그의 친구 디아르(Diard) 대위는 도난 미술품을 수집하고 도박판을 전전하는, 말만 번지르르한 허풍선이였다. 여인을 찾아 거리를 서성이던 몽트피오르 대위는 타라곤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한 직물 가게에서 미모의 여인을 발견한다. 그는 그 집에 상주하며 호시탐탐 주아나를 차지할 기회만을 노린다. 처음엔 집안 어디에서도 주아나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끈기 있게 호기를 기다리며 페레스 드 라구니아 부부의 호감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는 나폴레옹 반대파인 척하며 그 마을과 라구니아 부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라구니아 부부는 몽트피오르 대위에게 점차 호감이 생겨 마침내 그가 주아나와 맞닥뜨렸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주아나는 그 집 1층에 있는 비밀의 방에 기거하고 있었다.
라구니아 부부는 사업이 번창해 벌어들인 수입을 현명하게 투자해 주아나의 지참금은 두 배로 늘어났다. 전쟁이 발발할 무렵, 부부는 상인이든, 귀족이든 주아나에게 좋은 남편감을 찾아 나설 참이었다. 부부는 몽트피오르 대위를 과신한 나머지, 주아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몽트피오르는 자신이 주아나에게 한 눈에 매료된 이유가 바로 주아나의 몸속에 흐르는 창녀의 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주아나의 출신을 알게 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차지하기로 결심한다.
몽트피오르 대위는 한밤중에 주아나의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쪽지를 써 넣어 그녀를 유혹한다. 주아나는 그를 허락하고, 그는 주아나의 방으로 살며시 들어간다. 주아나는 지난 3년 동안 자신이 삶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주아나는 내면에 그 어떤 음란한 본색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순진무구함 역시 그녀의 천성이었기에 주아나는 몽트피오르가 자신의 천생연분이라고 믿는다. 그녀의 눈에 그는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천사장 미카엘처럼 보인다. 주아나와 몽트피오르는 반지를 교환한다. 그녀는 어머니가 라구니아 부부에게 자신을 맡기고 떠나면서 주었던 소중한 반지를 그에게 준다. 여자들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여인의 마음을 홀리는 데 도가 튼 이 능란한 호색한 몽트피오르는 그녀를 하룻밤에 정복해버리지 않고 그저 매일 밤 그녀에게 구애한다. 매일 밤 그는 탐색의 긴장감을 즐기며 주아나의 몸과 마음을 달군다. 마침내 유혹의 밤이 찾아오고, 몽트피오르는 어김없이 주아나의 방으로 스며든다.
한편, 밀라노에 있었던 마라나는 타라곤이 프랑스군에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아나가 위험에 처했다는 예감을 강하게 느낀다. 마라나는 재빨리 타라곤으로 돌아가 라구니아 부부에게 주아나를 찾는다. 헐레벌떡 달려온 마라나를 보고 부부는 주아나는 제 방에 안전하게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때, 주아나의 방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깜짝 놀란 라구니아 부부와 마라나가 주아나의 방문을 열었을 때, 주아나는 차분하게 남편이 함께 있다고 말한다. 마라나는 호색한으로 유명한 몽트피오르의 본색을 익히 알고 있었다. 격분한 마라나와 라구니아가 몽트피오르를 죽이려 들자, 겁에 질린 몽트피오르가 친구 디아르 대위를 부른다. 마리나가 몽트피오르를 칼로 찌르려던 순간에 나타난 디오르는 아름다운 주아나를 보고는 자신이 주아나와 결혼해 주아나가 매춘부가 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외친다. 마라나는 이에 동의하고, 몽트피오르는 가까스로 살아나 주아나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
주아나는 몽트피오르만큼 잘생기지 않은 디아르를 사랑하지 않는다. 처음에 주아나는 디아르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개종하거나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주아나는 리구니아 부부가 자신에게 좋은 남편감을 찾아줄 작정이었고, 이에 따라 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건만 자신이 철없이 저지른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이제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마침내 디아르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디아르는 주아나를 사랑했기에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전역을 하고 사회로 나가 성공을 꿈꾸며 노력하지만 어떤 일도 견뎌내질 못한다. 그에겐 힘이 되어줄 만한 친척이나 지연도 없었고, 출세할 방법을 직관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타고난 본능도 없었다.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주아나는 아들 주앙(Juan)을 낳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몽트피오르의 아들이었다. 몇 년 뒤엔 남편의 아들 프란시스코(Franscisco)도 태어났다. 주아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에 대해 연민과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주아나는 자신의 행복은 포기한 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게 자신의 의무와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 마라나처럼 말이다. 디아르는 주아나가 프란시스코보다 주앙을 더 사랑한다는 걸 간파했지만, 어쩐지 그는 주앙이 그의 혈육이 아닌데도 그다지 마음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디아르는 사회적 성공에 좌절하고 자포자기해버린다. 주아나는 남편이 그저 가정적으로 살아주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사회에서 밀려난 디아르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 즐겼던 도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다. 도박 솜씨가 썩 좋았던 그는 도박판에서 명성과 인기를 누린다. 주아나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하러 나다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디아르에게는 별 다른 관심이 없다. 결국 디아르는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다. “마침내 주아나의 무관심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녀는 머지않아 남편의 생활방식이 아이들의 장래에 악영향을 미치고야 말 것임을 느꼈다.”
어느 날, 디아르는 피레네(Pyrenees) 산맥에서 판이 큰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보르도(Bordeaux)에다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의 돈만 남겨두고 주아나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피레네 도박장으로 향한다. 도박장에서 디아르는 15년 전 밤에 라구니아의 직물 상점에서 사라진 뒤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몽트피오르와 마주친다. 몽트피오르는 결혼해서 부유한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몽트피오르는 디오르를 격하게 반기고는 함께 도박을 한다. 디오르는 몽트피오르에게 모든 것을 잃는다. 디오르는 몽트피오르에게 지갑이 보르도에 있으니 함께 집으로 가자고 청한다. 도박으로 거액을 날린 디오르는 오로지 몽트피오르에게 잃은 돈을 되찾을 속셈뿐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몽트피오르가 디오르에게 디오르에게서 딴 돈 말고도 자신의 수중에 상당한 돈이 있다고 말한다. 디아르는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유인해 칼로 찔러 죽인다. 디아르는 몽트피오르에게서 훔친 돈을 자신의 집 근처에 놓인 돌 아래 숨겨두고는 집으로 달려가 주아나에게 자신이 도망치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디오르는 주아나에게 돈을 요구하지만 그녀에겐 돈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 중에 유일하게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남편에게 준다. 어머니 마라나에게서 받은 보석 박힌 십자가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집은 포위되었다. 디아르는 주아나에게 다시금 도움을 청한다. 주아나는 “내가 구해줄게요.”라고 말하고는 디아르의 권총을 손에 쥔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라고 말한 뒤 방아쇠를 당긴다. 주아나가 검거된 뒤에야 도착한 담당 검사와 의사는 주아나가 디아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디아르의 자살로 사건을 종결한다. 주아나는 그들에게 몽트피오르의 돈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이틀 후 주아나는 스페인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보석이 박힌 십자가를 판다. 떠나기 전에 주아나는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주아나는 “어머니, 편안히 눈 감으세요. 저는 어머니를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했어요.”라고 말한다.
전쟁의 학살 장면으로 시작해서 타락으로 끝나는 이 비관적인 소설은 발자크의 가장 어두운 이야기 중 하나이다. 더구나 1837년에 발자크의 이탈리안 친구들은 이 작품으로 인해 발자크를 비난했다. 특히 이탈리아 여류 작가 클라라 마페이(Clara Maffei)는 발자크가 이탈리아 사람들과 이탈리아에 부여한 악의적인 이미지에 대해 비난했다. 이 때문에 발자크는 이를 용서받기 위해 〈마시밀라 도니〉에서는 베니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층 더 심혈을 기울여 찬미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불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직접 번역해서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