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11권
〈징용군(Le Réquisitionnaire)〉은 1831년에 문예지 《파리 리뷰(La Revue de Paris)》에 발표된 소설로, 같은 해에 《고슬랭(Gosselin)》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듬해인 1832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철학 이야기(Contes philosophiques)〉 시리즈로 재판되었다. 이후 1835년에는 《베르데(Werdet)》에서 「철학적 연구(Études philosophiques)」 시리즈로 재판되었고, 1846년에는 《퓌른(Furne)》에서 『인간 희극』에 속해 출간되었다. 1847년에는 《르 콩스티튀시오넬(Le Constitutionnel)》 지에 다시금 발표되었다.
1793년 11월 어느 날,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 주의 도시 카랑탕(Carentan)에 위치한 드 데(de Dey) 부인의 살롱에서 손님들을 받지 않는다. 다음 날에도 살롱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날마다 살롱에서 모임을 여는 걸 그토록 즐겼던 부인이었기에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은 온갖 추측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드 데 부인이 살롱 문을 닫아버린 진정한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공포정치 때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드 데 부인에게는 이제 가족이라고는 아들 하나밖에 없다. 그녀의 아들 오귀스트(Auguste)는 그녀의 유일한 사랑이자 가장 큰 희망이다. 공포정치로 남편을 잃었을 때 그녀는 백작부인 직함을 버리고 카랑탕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저녁마다 열리는 그녀의 살롱은 단지 사교 활동이 아니라 그녀로선 일종의 안전망이었다. 그녀는 주변의 의심을 받지 않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지방 도시에서 그토록 왕성하게 활동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병약해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살았던 오귀스트가 그랑빌(Granville)의 왕당파 원정대로 징발되어, 유배된 왕세자를 따라 “베르사이유(Versailles)에서 가장 우아한 왕당파”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작부인이 연이틀 살롱을 열지 않자 소문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백작부인이 병이 난 게 아니라 아마도 누군가 위험인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느라 살롱 문이 닫혔다는 게 중론이었다. 백작부인의 지인들은 그녀가 평소처럼 다시 살롱 문을 열어야만 의심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백작부인은 며칠 전에 한 늙은 상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부인에게 그녀의 아들이 비밀리에 보낸 편지 한 장을 전해주었다. 아들이 투옥된 상태였는데 탈옥을 시도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탈옥에 성공했다면 사흘 안에 집에 도착해야 했다.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백작부인은 평소대로 다시 살롱 문을 열기로 결심한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고, 바로 그날 저녁에 집에 도착할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늙은 상인은 백작부인에 대한 소문을 원만하게 수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방문해, 백작부인이 병환 중이었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오늘 저녁엔 살롱을 열 예정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백작부인이 병이 나서 살롱 문을 닫았다고 생각지 않았기에 그녀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호기심으로 백작부인의 살롱에 모여든다.
백작부인의 살롱은 호화롭지 않고 수수하다. 살롱 손님들에게 우월감을 조성하고 싶지 않았던 백작부인이 일부러 살롱을 개조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열었기 때문이다. 마치 돈이 부족해서 개조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살롱은 검소한 모습이다. 백작부인은 살롱의 호화로운 외관 대신에 손님들을 위한 호화로운 식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살롱의 호화로움은 손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가십거리를 제공하기 십상이지만, 손님을 위한 진수성찬은 심기불편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백작부인은 손님들 대부분이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뒤, 게임에 필요한 재료를 찾으러 간다는 핑계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들의 방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그녀는 아들이 오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과 흥분, 그리고 걱정과 불안으로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다. 백작부인이 아들 방을 정돈해준 늙은 하녀 브리지트(Brigitte)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자 브리지트는 아드님이 안전하게 집으로 오고 있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부인을 안심시킨다.
바로 이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젊은 군인이 마을의 외진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그는 마침내 시장의 집에 도착한다. 젊은 군인은 시장을 접견해 임시 숙소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한다. 시장이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줄리앙 쥐시유(Julien Jussieu)라고 답하지만, 시장은 그가 백작부인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는 그의 임시숙소를 백작부인의 집으로 배치해준다.
한편, 오후 9시 반 경이 되자 백작부인의 살롱이 파한다. 파리라면 살롱을 파하기엔 꽤나 이른 시간이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일반적으로 9시 무렵이면 살롱을 파한다. 모두가 돌아간 가운데 불쑥 검사가 남는다. 검사는 법을 집행하기 위해 남았다고 말한다. 백작부인은 자백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잡아떼지만, 검사는 부인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아들이 도착한다면 다음 날 오전 8시에 열리는 “공개 재판” 자리에 늦어도 7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그러나 자신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보고서에는 이제 더 이상은 백작부인이 혐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기재할 거라고 말한다. 잔뜩 긴장해 있던 부인은 그제야 안도한다.
이때 갑자기 브리지트가 뛰어 들어오며 “마님, 그가 왔어요!”라고 외친다. 브리지트는 부인이 혼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검사가 누가 왔다는 거냐고 묻는다. 브리지트는 순발력 있게, “아, 시장님이 마님 댁을 임시 숙소로 배치해준 징용군 말이에요.”라고 재빨리 답한다.
이윽고 검사가 돌아가고, 드 데 부인은 위층의 아들 방으로 달려가 와락 아들을 껴안는다. 그러나 아들이 돌아섰을 때, 그는 그녀의 아들이 아니었다. 청년이 오귀스트를 닮은 데다 군복을 입고 있었기에 브리지트가 착각했던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백작부인은 기절하듯 쓰러진다. 브리지트의 남편이 재빨리 부인을 부축한다. 겨우 정신을 차린 부인은 청년에게 사과하고 아들 방을 나와 브리지트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몸을 누인다.
브리지트는 오귀스트가 아니라 낯선 청년이 오귀스트의 방에 기거하고, 오귀스트를 위해 준비한 식사를 그 청년이 대신 하리라는 생각에 끔찍해진다. 백작부인은 아들 방에 아들이 아닌 낯선 청년이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방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녀는 도대체 집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 정원으로 나간다. 마을에는 임시 숙소로 배정된 집들을 향해 걸어가는 군인 무리의 군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인은 마을 전체에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군인들의 발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결국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죽은 채 발견된다. 백작부인과 가장 친밀한 관계였던 브리지트는 부인의 급사에 대해, 프랑스 국가를 부르며 행군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부인에겐 치명적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드 데 백작부인이 숨을 거둔 바로 그 시각에 그녀의 아들은 모르비앙(Morbihan)에서 총을 맞고 숨진다.
▶ 참고 사이트 :
1. 영어판 야후 〈발자크 인간희극 개요〉
2.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불어판 및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