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넬리우스 영감

철학적 연구 - 제14권

by 글섬

작품 배경


〈코르넬리우스 영감(Maître Cornélius)〉은 1831년에 《파리 저널(Revue de Paris)》에 발표된 역사 소설이다. 이후 1832년에 《고슬랭(Gosselin)》 출판사에서 〈마담 피르미아니(Madame Firmiani)〉, 〈붉은 여인숙(L'Auberge rouge)〉, 〈루이 랑베르(Louis Lambert)〉와 함께 〈새로운 철학 이야기(Nouveaux contes philosophiques)〉에 속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836년에는 《에드몽 베르데(Edmond Werdet)》 출판사에서 「철학적 연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재출간되었고, 1846년에는 《퓌른(Furne)》에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에 속해 출간되었다.


《파리 저널》에 발표된 이 소설은 대중에게는 열렬히 환영받았지만, 당시 평단에는 주의를 끌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발자크 연구가들은 이 소설을 호프만(Hoffmann) 식의 환상소설로 분류할지, 아니면 월터 스콧(Walter Scott) 식의 역사 소설로 분류할지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사뮤엘 S. 드 사시(Samuel S. de Sacy)는 “〈코르넬리우스 영감〉은 『인간희극』에서 배제되어도 무방하다. 〈코르넬리우스 영감〉이 『인간희극』에서 배제된다면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평했고, 반면에 르네 기즈(René Guise)는 『인간희극』의 전체적인 맥락에 입각해 이 소설을 읽어야만 소설의 모든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는 거라고 평했다. 사실 이 소설은 다소 복잡하고 어수선하며 개연성이 떨어지고 모순적이다. 액자소설 구조인 이 소설에는 짤막한 두 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루이 11세(Louis XI)의 딸 마리 드 생 발리에(Marie de Saint-Vallier)는 포악하고 폭력적이고 질투심 많은 늙은 백작과 결혼해 강압적인 남편에게 억압받으며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연인 조르주 데스투트빌(Georges d’Estouteville)이 있는데, 그는 남몰래 그녀를 만나러 오곤 했다.


1479년 만성절, 투르(Tours) 대성당에 저녁 예배가 끝날 무렵, 젊은 남자가 들어오더니 백작부인과 낮은 소리로 속삭인다. 백작부인 옆에 앉아 있는 백작은 곤히 잠들어 있다. 질투심 많은 남편의 악의와 잔혹성을 익히 알고 있는 백작부인이 남편에 대해 두려워하자, 조르주는 어떻게든 잘 해낼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이때, 백작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자 조르주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굴이 새빨개진 백작부인은 향냄새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아서라고 둘러대려 하지만, 백작은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는 듯, 아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려 한다. 때마침 성당을 나서려는 군중이 몰리고, 이 틈을 이용해 조르주가 백작부인을 남편으로부터 떼어낸다. 백작은 아내를 붙잡으려다 찢어진 소매만 들고 멍하니 남겨진다.


잔뜩 겁에 질린 백작부인과 단둘이 있게 되자 조르주는 두 사람을 위해 미리 대기시켜둔 말을 타고 함께 도망가자고 애원한다. 두 사람이 도망쳤다가는 분명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리는 조르주에게 그런 방법보다는 그녀의 아버지인 왕을 찾아가 그녀의 남편이 얼마나 그녀의 피를 말리고 학대하는지 증언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 멀리서 백작의 시동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마리가 시동을 보고 기겁하자, 조르주가 백작의 시동은 그들의 편이라고, 백작이 오는 걸 경고해주기 위해 오는 거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백작이 마리를 찾으러 오면 남편에게 마리가 군중에 쓸려가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온 것뿐이라고 거짓말해주기 위해 조르주의 친구인 사제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안심시킨다.


그러더니, 조르주는 마리에게 그녀의 옆집에 사는 코르넬리우스 영감의 도제가 될 거라고, 그러니 오늘 밤에 그녀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거라고 재빨리 말한다. 이 말을 듣자 마리의 공포감은 더해진다. 코르넬리우스 영감은 표면상으로는 왕의 은세공인이지만 실은 석연찮은 마법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조르주는 마리에게 그날 밤에 백작을 깊이 잠들게 해줄 약을 건네지만 그녀는 약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마리는 그런 방법 말고, 조르주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그녀의 결혼이 무효화될 수 있는 좀 더 이성적인 방안을 모색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 남편의 시동이 백작이 오고 있다고 소리친다. 그러자 조르주는 재빨리 마리에게 키스하고는 “오늘 밤!”이라고 외치고 달아난다.


백작이 다가오자 시동은 재빨리 사제와 함께 있는 백작부인을 가리킨다. 마리는 남편에게 신부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백작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할 뿐 아내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이다. 기필코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벼르는 기세이다.


그날 저녁, 코르넬리우스 영감의 집에 다다른 조르주는 영감의 집이 백작의 집 못지않게 그 외관이 어딘가 음험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한다.


코르넬리우스 영감은 루이 11세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관계로, 재무적, 정치적으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벨기에 서북부의 항구 도시 겐트(Ghent) 출신의 코르넬리우스는 플랑드르(Flandre) 인으로 간주되어 9년 동안 투르에서 살았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가 몹시 부유하고 그 어떤 마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게 되었다. 투르로 올 때 그는 플랑드르인 도제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가 투르에 온 첫 해에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코르넬리우스는 두 명의 도제와 그의 시종을 도둑으로 지목했다. 세 사람 모두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코르넬리우스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한 명은 감옥에서 죽었고, 살아남은 두 사람은 코르넬리우스가 죽였다. 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코르넬리우스는 그의 여동생과 계속 그 집에서 살았다. 이때, 왕이 코르넬리우스에게 어린 고아 한 명을 도제로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그 고아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살해되었다.


그리고 다시 믿을 만한 두 명의 남자가 코르넬리우스의 도제로 일하게 되었지만, 또 다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그들 역시 살해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도난 사건으로 살해된 모든 도제들이 무죄라고 생각했기에 코르넬리우스를 “사형집행자”라고 부르며 그를 멀리했고, 그의 집을 “뮈리에(Murier) 거리의 사악한 집”이라는 의미로 “죽음의 집”이라고 부르며 그의 집을 피해 다녔다.


이윽고 조르주는 코르넬리우스 집에 도착한다. 코르넬리우스는 마녀이자 코르넬리우스보다 훨씬 더 인색해 보이는 누이와 단둘이 2년 동안 살아왔다. 조르주는 코르넬리우스의 집과, 그 옆집인 백작의 집이 모두 불길해 보였다. 조르주는 귀족 신분을 감추기 위해 평민의 옷으로 차려 입은 상태였다.


코르넬리우스 집의 음산한 분위기에 눌려 망설이기만 하던 조르주는 통금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비로소 코르넬리우스의 집을 두드리기로 결심한다.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리자 조르주는 브뤼주(Bruges)의 오스터린크(Oosterlinck) 씨가 보낸 필립 굴레누아르(Philippe Goulenoire)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문이 열리고, 필립은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잠긴다. 코르넬리우스는 교활한 눈으로 필립을 훑어본 뒤, 필립의 고용 여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한다. 필립은 코르넬리우스에게 이 마을엔 처음 방문한 이방인이라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 어려우니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청한다. 코르넬리우스의 누이는 필립이 보석을 훔칠지도 모른다며 반대하지만, 코르넬리우스는 필립에게 도제의 방을 내주며 하룻밤을 허락한다. 코르넬리우스는 필립에게 “안녕히 주무시오!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방을 떠나지 마시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열쇠로 문을 잠근 뒤 자신의 침실로 돌아간다.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누이가 필립의 방 밖에서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이윽고 잠잠해진다. 그러자 필립은 미리 챙겨온 특수한 칼로 잠긴 방문을 따고 방을 나와 복도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경악스럽게도 코르넬리우스 역시 복도를 따라 살금살금 내려오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가다가 필립을 발견한 코르넬리우스는 살며시 뒤돌아 돌아간다. 필립은 재빨리 창문을 뛰어 넘어 옆집 지붕 위로 뛰어내린다. 그는 굴뚝들을 헤아리며 백작부인의 방이라고 생각되는 굴뚝을 골라 사다리를 내려 순식간에 백작부인의 방에 잠입한다.


다음 날 아침, 코르넬리우스는 루이 11세에게 서둘러 달려갔다. 코르넬리우스는 다짜고짜 필립이 보석들을 훔쳤다고 고했다. 백작부인과 밀회를 마치고 돌아온 조르주는 그가 남긴 발자국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코르넬리우스와 왕이 병사들을 이끌고 황급히 죽음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조르주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조르주는 즉시 체포되었고, 이내 필립이 아니라 조르주 데스투트빌이라는 젊은 귀족임이 탄로 났다. 조르주는 왕의 병사들에게 끌려갔고, 악명 높은 코르넬리우스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성난 군중은 죽음의 집 주변에 모여 웅성거렸다.


조르주는 끌려가면서 옆집 창문을 통해 사랑하는 백작부인을 보았다. 그녀 곁에는 늙은 백작이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마리는 늙은 백작이 알아채지 못하는 새에 조르주를 향해 멀리서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그날 밤, 생 발리에 백작 부부는 왕과 함께 하는 저녁 만찬에 초대되었다. 마리는 저녁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아버지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녀는 조르주를 살려달라고 간청하며 지난밤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이때 갑자기 루이 11세가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더니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밖에서 엿듣고 있던 생 발리에 백작은 갑작스레 문이 열리자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잠시 후, 저녁 만찬 자리에서 조르주의 고문을 맡은 신하가 들어와 고문 끝에 조르주가 절도 사실을 자백했다고 고했다. 루이 11세는 고문을 중지하라고 명했다. 그런 다음, 생 발리에 백작에게 베니스(Venice)를 다녀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런 다음, 왕은 자신이 직접 코르넬리우스 집의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왕은 조르주가 보석을 훔치러 굴뚝을 통해 내려왔다는 코르넬리우스의 주장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벽난로에 남아 있어야 할 그을음 흔적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굴뚝을 통해 지붕으로 접근할 수도 없었다. 또한, 보석이 들어 있던 금고나 자물쇠에 가해졌어야 마땅한 그 어떤 폭력의 흔적도 없었다.


왕은 코르넬리우스의 누이에게 밀가루 한 포대를 가져오라 명했다. 그리고는 밀가루를 방에 고르게 뿌리게 한 뒤에 물러가도록 명했다. 왕은 코르넬리우스의 집 주변에 병사들을 배치해 감시하게 한 다음, 코르넬리우스의 누이에게 빛이 한 점도 스며들지 않도록 모든 창문을 밀폐시키라고 명했다. 그런 다음, 궁으로 돌아와 연회를 열었고, 연회가 열리는 동안 왕은 몰래 궁을 빠져 나와 한밤중에 코르넬리우스의 집에 잠입했다.


이윽고 왕은 보물이 있는 방에서부터 이어지는 밀가루 발자국을 발견했다. 밀가루가 점차 엷어지면서 발자국도 사라졌다. 왕이 예상했던 대로 코르넬리우스의 집에는 그날 밤 또 다시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왕은 코르넬리우스의 집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추궁했고, 병사들은 “고양이처럼” 벽을 타고 살며시 내려왔던 사람은 바로 코르넬리우스였다고 증언했다. 코르넬리우스는 몽유병 환자였던 것이다. 결국 도둑은 다름 아닌 코르넬리우스 자신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몽유병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이 훔친 금과 보석을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그는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숨졌던 무고한 도제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처했다.


생 발리에 백작은 왕의 특명을 받고 파견된 베니스 대사관에서 살해되었다. 정치적, 상업적으로 빛나는 삶을 살아온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이 훔친 금과 보석을 감춰둔 장소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 채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면도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




분석


이 소설의 기상천외한 면은 발자크의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같은 시기에 대성당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 〈추방된 사람들(Proscrits)〉과 비교할 수 있는데, 발자크는 이 소설에서는 투르의 대성당을 소재로, 〈추방된 사람들〉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을 소재로 “불가해한 영성 현상, 강력한 기도의 힘”을 환기하고 있다.


이러한 발자크의 철학적 견해는 발자크가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신비주의자인 엠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저서들을 열독한 결과로 추정된다. 이 소설의 신비주의적인 면은 1832년 유럽 저널(La Revue européenne)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평단에서는 종교적 열광과 세속적 사랑이 공존하는 이 기묘한 소설에 대해 “중세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뒤섞인 뛰어난 세부묘사”라고 인정했다.



▶ 참고 사이트 :

1. 영어판 야후 〈발자크 인간희극 개요〉

2.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불어판 및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닷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