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11권
〈피르미아니 부인(Madame Firmiani)〉은 1832년 2월 《파리 리뷰(Revue de Paris)》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그 후, 1835년에 《마담 베쉐(Madame Béchet)》에서 출판되었고, 1839년에는 《샤르팡티에(Charpentier)》 출판사에서 『인간희극』의 「파리 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 1842년 퓌른 최종판에서야 발자크는 이 소설을 「사생활 정경」의 「풍속 연구」로 분류해 출간했다.
이 소설은 매우 짧은 소설로, 옥타브 드 캉(Octave de Camps), 피르미아니 부인, 그리고 옥타브의 외삼촌인 부르본느(M. de Bourbonne), 세 명의 등장인물 위주로 전개된다. 옥타브 드 캉은 젊은 귀족인데도 몹시도 빈궁한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의 숨겨진 사연은 소설 말미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인물인 25세의 매력적인 피르미아니 부인은 소문만 무성한 채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옥타브를 파산시키고, 그의 멋진 결혼까지 방해한 장본인이라고 수군댄다. 옥타브의 외삼촌인 부르본느는 현실적인 인물로, 오직 조카인 옥타브의 행복과 안위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타브의 유산인 영지를 관리한다. 어느 날,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이 소설은 세인들의 입질에 오르내리는 피르미아니 부인을 둘러싼 신비와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세 인물들 사이의 관계로써 엮어진다. 이들 중 무대의 전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부르본느이며, 두 남녀 주인공들은 각각의 저택과 다락방에 칩거한다. 그것은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면서 뜻밖의 아이러니와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 소설의 주제와 잘 부합한다. 말하자면 부르본느는 파리라는 거대한 미궁 속에 숨겨진 피르미아니 부인과 옥타브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안내자 역할을 맡는다.
젊은 시절에는 근위대 기병으로, 그리고 회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현실감 있고 반듯한 투렌느(Touraine)의 귀족 부르본느가 어느 날 파리(Paris)로 급히 상경한다. 그는 피르미아니 부인에 대한 숱한 풍문들을 접하고는, 생 제르맹(Saint-Germain) 구역의 한 귀부인과 함께 피르미아니 부인의 살롱을 방문하여 저녁 파티 동안 그녀를 관찰한다. 그리고 “단 15분 동안 그녀 옆에 앉아서 대화를 나눈 후에” 그는 25살의 이 젊은 여인이 훌륭한 성품을 지닌 인물임을 알게 된다.
저녁 시간이 깊어지자 피르미아니 부인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손님인 부르본느를 보내려 하는데, 그 순간에 그가 자신이 옥타브 드 캉의 외삼촌이라고 밝힌다. 부르본느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투렌느의 빌렌(Vilaine) 성의 영지를 옥타브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몰래 처분하자 몹시 당황했다. 그로서는 옥타브가 그 영지의 막대한 매각 대금을 영악한 피르미아니 부인의 가슴에 안겨주었을 거라고 짐작했고, 이에 분개해 부랴부랴 파리로 상경했던 것이다.
부르본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피르미아니 부인은 놀라 주저앉는다. 두 사람은 한밤중에 옥타브의 영지 매각에 대해 불편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옥타브에게서 빌렌 영지의 매각 대금을 후려낸 요부로 오해 받는 피르미아니 부인으로서는 스스로 해명을 할 수 없는 처지이고, 자신의 조카인 옥타브를 보호해야 하는 부르본느로서는 그녀를 오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부르본느는 그녀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살롱을 나선다. 그러나 무언가 충격적인 아이러니가 숨겨져 있음을 감지한다.
옥타브 드 캉은 귀족 가문 출신의 자제이면서도 파리의 외진 다락방에 기거하면서 수학 가정교사로서 연명하는 신세이다. 부르본느는 안락한 삶을 팽개치고 스스로 박탈의 굴레를 뒤집어쓴 옥타브의 처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부르본느는 파르미아니 부인의 살롱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일찍 옥타브의 다락방을 찾아간다. 그러나 옥타브와의 대화 역시 의사소통이 어렵다. 현실적인 외삼촌은 옥타브가 집안의 유산인 거대한 성과 영지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매각해서 파리 요부의 가슴 속에 안겨주었다고 믿고 있지만, 가정교사로 겨우 연명하는 조카는 비참한 전락 상태에서도 진정한 삶의 희열로 넘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옥타브는 외삼촌에게 소위 그 요부와, 사랑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연인들의 도피처인 ‘그레트나 그린(Gretna-Green)’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고백까지 한다. 왜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파리의 외진 다락방에서 수학 가정교사로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지, 왜 남몰래 결혼식까지 올린 부부가 함께 살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르본느에게 옥타브는 그 복잡한 갈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에 피르미아니 부인이 보내온 편지를 건넨다. 안경을 가져오지 않은 외삼촌을 위해 옥타브가 직접 편지들을 낭독한다.
편지들을 통해, 옥타브의 아버지가 생 제르맹의 대귀족인 부르뇌프(Bourgneuf) 가문을 수렁으로 몰아넣으며 부당하게 부를 챙겼다는 사연과, 순결한 영혼의 피르미아니 부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옳지 않은 일을 외면한 채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라며 옥타브가 그의 아버지가 부당하게 취한 재산을 부르뇌프 가족에게 돌려주어야만 그의 구혼을 받겠노라 단언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편지에서 피르미아니 부인은 “사랑하는 이여, 여인에게 있어 사랑은 가장 무한한 신뢰이고,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절절히 사랑하고 숭배하기를 요구하는 그 무엇과의 결합입니다. 나는 사랑이 고결한 감정들이 한층 더 정화된 불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또한, 고결한 감정들이 전적으로 발휘된 불꽃이 사랑이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옥타브가 그녀의 사랑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종용한다.
사실 옥타브는 부르뇌프 가족에 대해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피르미아니 부인으로 인해 비로소 죄책감을 느끼고, 부인의 뜻을 따르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부인의 제안대로 그 부끄러운 부를 부르뇌프 가족에게 돌려주고, 파리의 다락방에서 소박하지만 고결한 삶을 살면서 맑은 영혼의 청년으로 피르미아니 부인과의 감동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수소문 끝에, 불행하고 모든 걸 박탈당한 부르뇌프 가족을 찾아냈어요. 그들은 생 제르맹의 비참한 집에서 살고 있었어요. 늙은 아버지는 복권 가게를 운영하고, 아름다운 두 딸은 살림을 돌보고 있더라구요. 엄마는 거의 계속 앓고 있었고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의 공범자였지만, 저는 결국 명예로운 인간이 되어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 아버님의 아픈 기억을 씻어드릴 수가 있었고요.”라는 말로 옥타브는 편지 낭독을 마친다.
한편, 피르미아니 부인은 첫 번째 남편의 유언장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박탈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옥타브는 만일 그런 불상사가 발생해도 그녀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경제력을 갖추기를 원한다. 오직 조카의 행복을 기원하는 부르본느는 옥타브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옥타브는 사업 자금이 필요할 때까지는 적은 수입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기에 자신이 직접 일해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그는 지금 발명품 하나를 연구하고 있는데, 발명에 성공하게 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연구이다.
이때, 다락방 창으로 마차 소리가 들린다. 옥타브는 “그녀예요. 난 그녀 마차의 말들이 정지하면서 내는 발굽 소리를 알아듣거든요.”라며 기뻐한다. 피르미아니 부인은 그리스에서 사망한 남편의 유산 상속 문서가 발견되었다며 이제 그녀의 재산을 옥타브에게 줄 수 있다고 기뻐한다.
발자크는 이 작품의 헌사를 “오래된 친구, 알렉상드르 베르니(Alexandre Verney)”에게 바치는데, 그는 베르니 부인의 6번째 아들로, 발자크가 5년 전 실패한 활자 제조업을 인수한 인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피르미아니 부인과 그녀가 명예로운 길로 안내하는 옥타브의 관계에서는 일면, 대리모로서 발자크를 문학의 길로 안내하고 돌봐주었던 베르니 부인과의 관계가 읽혀지기도 한다. 그리고 발자크 문학의 큰 특성 중 하나가 인간과 사회의 물질적 관계, 즉 하부구조의 문제 제기라고 한다면, 이 소설에서도 땅과 부정한 물질과 상환이 그 갈등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법학도 출신이면서 출판과 인쇄 사업가였던 발자크는 젊은 날의 실패 경험을 통해서 사회와 물질 관계를 잘 인식했으며, 그런 경험이 문학적 자원으로서 그의 문학 속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피르미아니 부인〉은 모순된 현실의 비극성을 진실성으로 승화시키는 ‘숭고미’의 감동을 안겨준다. 피르미아니 부인의 숭고한 성격은 옥타브와 부르본느의 성격까지 정화시킨다. 그녀의 진실성을 믿지 않던 부르본느의 의구심은 그 편지의 낭독이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지속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해소된다. 따라서 두 남녀 주인공, 즉 옥타브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과 피르미아니 부인의 정체성을 둘러싼 신비와 의혹이 촉발하는 긴장의 강도에 비례해서, 부르본느와 독자는 더욱 감동적인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젊은 날 발자크의 고결한 성품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차후에 발자크 글쓰기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발원하는가를, 그리고 어디로 지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암시해주는 이정표가 된다.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진실성의 탐구야말로 발자크 창조력의 한 원천으로서, 그의 문학의 진정한 흥미와 가치, 그리고 그 의미 역시 그 지점에서 발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짤막하지만 감동적인 소설은 바로 발자크 창조력의 원천이 “심장 속 깊숙한 진실들”의 탐구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발자크는 복잡한 갈등의 내막을 편지로 요약하고 설명한다. 편지가 인간들 사이의 연락과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던 19세기 전반에, 발자크는 압축성을 요하는 이 단편소설에도 서간 양식을 도입한다.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편지가 1인칭 ‘나’의 가슴 속 진실과 사연들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형식이라는 것을 발자크 역시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ée)〉 서문에서, “1인칭은 인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문학적 장치이다. 18세기에 서한체 소설이 유행한 이유는, 그것이 허구 이야기를 사실인 듯 만드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라고 피력하며 1인칭 서한체 소설의 핵심이 가슴 속 진실을 담아내는 데 있음을 포착하고 있다. 발자크는 소설 장치의 대표적 인칭대명사인 ‘나’와 ‘그’의 장단점을 명쾌하게 인식하고, 〈피르미아니 부인〉에서도 편지를 이용하여 그 형식에 필요한 압축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말하자면 진정한 이야기꾼인 발자크는 글쓰기 작업의 실천을 통하여 스스로 그 이론적 차원을 체득해 나간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인 압축성과 박진감이 넘치며, 발자크 특유의 창조적 구성력이 돋보인다. 특히 15가지 부류의 파리지엥들이 등장하여 그 여주인공에 관한 풍문들을 서술하는 도입부의 구성 방식은 발자크 문학 내에서도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그 외에도 그의 중요한 소설 기법이랄 수 있는 아이러니 문제라든가, 서한문 형식, 혹은 서술의 농축성 등은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발자크 소설의 특징적 양상을 잘 보여준다. 말하자면 〈피르미아니 부인〉은 그의 단편소설들의 특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차별성을 지니는 작품이다.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
1. 논문 『〈마담 피르미아니(Madame Firmiani)〉,그리고 발자크 창조력의 한 원천(源泉)』(임헌, 서울대학교)에서 발췌.
2.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저자인 임헌 교수가 원작을 번역해서 논문에 인용한 그대로를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