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관하여

철학적 연구 - 제16권

by 글섬

작품 배경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관하여(Sur Catherine de Médicis)〉는 별도로 구성된 상당히 긴 서론 부분을 시작으로 전체 3부로 구성된 역사 소설이다. 1830년부터 1842년 사이에 1, 2, 3부가 각각 출판되었고, 이후 1846년에 서론을 비롯해 3부 전체가 통합되어 출간되었다.


1842년에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관한 해석(Catherine de Médicis expliquée)〉이라는 제목으로 《수브랭(Souverain)》에서 출간된 서론에서 발자크는 독자에게 피에 굶주린 잔혹한 여왕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검토해달라고 제안하지만, 이내 난처한 딜레마에 직면하고야 만다.


제1부에서는 허구의 인물인 칼뱅파 신교도 크리스토프 르카뮈(Christophe Lecamus)가 등장한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모피 제조인의 아들인 크리스토프는 여왕의 정치적 음모에 연루된다. 그는 여왕의 정치적 입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끔찍한 형벌에 맞서 끝내 침묵을 지킨다. 제1부는 1841년에 《르 시에클(Le Siècle)》 지에 발표되었고, 이후 1842년에 《수브랭》 출판사에서 「철학적 연구」 시리즈에 속해 출간되었다.


제2부는 루지에리(Ruggieri) 집안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로, 1836년에 문예지 《라 크로니크 드 파리(La Chronique de Paris)》에 기재되었다. 이후 1837년에 「철학적 연구」에 속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제2부는 생 바르텔르미(Saint-Barthélemy) 학살이 일어나고 얼마 후 샤를 9세(Charles IX)와 마리 투쉐(Marie Touchet)의 사랑을 따라 진행된다.


제3부는 1830년에 《리뷔 데 뒤 몽드(Revue des deux Mondes)》 지에 〈두 가지 꿈(Les Deux Rêve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1831년에 환상소설 형식의 〈소설과 철학 이야기(Romans et contes philosophiques)〉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18세기의 한 저녁 만찬 자리에서 두 명의 손님이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한 사람은 변호사이고, 다른 사람은 외과의사이다. 이들은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꿈에 나타나 대학살을 미화하기 위해 늘어놓은 궤변에 대해 논한다.

서론을 비롯해 전체 3부는 1846년에 《퓌른》에서 『인간희극』에 통합해 재출간되었다.




제1부 칼뱅파 순교자


1560년 파리의 시테(Cité) 섬과 노르트담(Notre-Dame) 성당 인근에 있는 비에이유 펠르트리(Vieille-Pelleterie) 거리의 강변에는 상인 집안인 르카뮈(Lecamus) 집안의 가옥이 위치해 있다. 이 집안의 후계자인 크리스토프 르카뮈는 매우 위험한 시기에 개신교에 귀의해 신교도 결사단에 들어간다.


르카뮈 집안은 대대로 왕족의 모피를 제조해온 왕실 모피 제조상이었기에 비교적 왕실에 접근하기 용이했으므로 신교도들은 크리스토프가 왕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신교도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를 원한다. 크리스토프는 먼저 아버지의 허락을 구한다. 크리스토프의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구교와 신교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서로 유익하다고 판단한다.


가톨릭 세력은 발라프레(Balafré)로 알려진 귀즈(Guise) 공과 로렌(Lorraine) 추기경이 이끌었다. 형제간인 이들은 어린 왕 프랑수아 2세(François II)와 왕비 마리 스튜아르(Marie Stuart)를 압박해 모후인 카트린의 권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에 카트린은 귀즈 형제를 견제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신교도들의 접근에 여지를 두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젊은 크리스토프가 신교도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블루아(Blois)로 향한다.


귀즈 형제는 어린 왕과 왕비에게 신교도들의 위협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상황이니 즉시 블루아 성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는 왕과 왕비를 카트린 모후와 그녀의 조언자들로 추정되는 신교들과 격리시키려는 심산으로, 일종의 쿠데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교도들은 아직 카트린을 접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크리스토프 르카뮈가 콩데(Condé) 왕자와 신교도 대표들의 메시지를 들고 카트린을 알현하기 위해 왕궁에 당도했을 때 신교도인지 여부를 묻는 심문을 받지만, 가톨릭 집안으로 알려진 그의 집안 내력 덕분에 쉽게 통과한다.


그러나 르카뮈에게는 불행하게도 그가 카트린을 알현하는 순간에 의회가 소집된다. 카트린이 의회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마리 스튜아르가 카트린을 모시러 갔다가 르카뮈가 카트린에게 두꺼운 종이 뭉치를 전달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의혹을 모면하기 위해 카트린은 크리스토프가 신교도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러 왔다고 폭로하고는 그 자리에서 그를 체포하라고 명한다.


크리스토프 르카뮈는 체포된다. 카트린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극렬 구교파인 귀즈 형제에게 손을 들고야 만다. 당시 프랑수아 2세는 왕권 행사보다는 어린 왕비와의 밀애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왕권 강화는 전적으로 카트린의 몫이었다.


크리스토프에게 고문이 가해졌다. 귀즈 형제는 콩데 왕자에게 혐의를 씌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콩데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 그를 처형하기 위해 크리스토프를 고문해 증거를 얻어내려 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수감 중인 쇼디외(Chaudieu) 대위의 유죄만 인정한다. 크리스토프는 평생 불구자로 남을 만큼의 극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다른 사람의 이름은 대지 않는다. 귀즈 형제는 이 젊은이의 강인함에 크게 감복해, 그들에게 협조하면 구교도의 중책을 맡기겠노라 제안한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신교도 원칙을 고수한다.


귀즈 형제는 어린 왕과 왕비의 안전을 위해 앙부아즈(Amboise) 궁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다. 앙부아즈 궁에서 황실 근위대와 귀즈 형제의 군대가 신교도 귀족들과 소규모 접전을 벌여 그들을 제압한 뒤 모두 처형시킨다. 르카뮈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러 궁으로 오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카트린은 점성술사 루지에리(Ruggieri)를 입궁시킨다. 루지에리는 프랑수아 2세가 곧 절명하고 샤를 9세(Charles IX)가 왕위에 오르면 카트린 드 메르디스의 섭정 시대가 열릴 거라고 예언한다. 루지에리는 르카뮈 아버지에게 크리스토프가 아직은 살아있다고 알려준다. 귀즈 형제는 콩데 왕자가 지나가는 길목의 눈에 띄는 위치에 크리스토프 르카뮈를 세워뒀다가 그를 미끼로 콩데 왕자를 검거할 계획이었다.


카트린은 프랑수아 2세가 양국의 안전 보장 협약에도 불구하고 구금해버린 나바르(Navarre) 왕 앙투안 드 부르봉(Antoine de Bourbon)과 동맹을 맺는다. 나중에 이 나바르 왕과 카트린의 딸이 결혼해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은 장차 신교도들의 왕인 앙리 4세(Henry IV)가 된다. 그러나 앙리 4세는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당시엔 카트린 휘하에 여러 명의 왕자들이 줄줄이 왕위를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카트린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안위를 확보할 때까지 귀즈 형제와 명백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병약한 프랑수와 2세가 죽어가는 가운데 콩데 왕자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느 순간, 귀즈 공과 그의 형인 로렌 추기경은 궁정이 나바르의 왕 앙투안 드 부르봉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세력이 너무 프랑수아 2세 위주였다는 새삼스런 현실을 자각했는데, 프랑수아 2세는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중요한 순간에 카트린은 프랑수아 2세의 죽음에 임박하자 귀즈 형제를 매몰차게 압도하고는 이제 겨우 10살인 샤를 9세를 차기 군주로 내세워 스스로 섭정 시대를 열 토대를 마련한다.


프랑수아 2세가 숨을 거두려는 바로 그 순간에 출옥된 콩데 왕자가 나바르 왕과 함께 침실로 걸어 들어온다. 이윽고 프랑수아 2세가 숨을 거두자, 카트린은 귀즈 형제를 향해 “이제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고 선언한다. 마리 스튜아르는 이제 스코틀랜드로 보내져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될 것이고, 장차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에 의해 나포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카트린은 능란하게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 종교 전쟁의 또 다른 불길을 지연시키기 위해 카트린은 신교도 사제 쇼디외(Chaudieu)를 제네바(Genève)의 존 칼뱅(John Calvin)에게 보내 종교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파리 지역에서 회의를 열자고 요청한다. 이 회의에는 칼뱅의 오른팔 격인 테오도르 드 베즈(Theodore de Bèze)가 이끄는 신교 대표단이 참석해 가톨릭 인사들과 논의를 한다. 그러나 결국 핵심 교리 문제에서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미사 때 그리스도가 임재하여 빵의 본질이 예수의 살로, 포도주의 본질이 예수의 피로 변한다고 믿지만, 신교 측에서는 그런 것은 단지 예수의 희생을 추모하는 일일 뿐 실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변화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러한 교리 문제에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마지막 기회가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한편, 크리스토프 르카뮈는 카트린 모후로부터 왕실 승인을 받아 고문에서 풀려난다. 그는 파리 고등법원의 변호인이 되어 법조계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의 가족과 그의 약혼자 가족이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카트린 모후가 샤를 9세와 함께 르카뮈 집안을 깜짝 방문한다. 르카뮈 집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카트린은 크리스토프가 가톨릭 신자로서 선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놀랍게도 크리스토프는 순순히 선서한다. 르카뮈는 법조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카트린이 본격적인 섭정을 시작한 이 시기에 프랑스는 잠시 동안 평화 상태를 유지한다.



제2부 루지에리 가문의 비밀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그녀의 큰아들인 프랑수아 2세(François II)가 사망하고 둘째 아들 샤를 9세(Charles IX)가 등극하면서 실권을 쥐게 된다. 15세에 왕위에 등극한 큰아들은 이미 성년으로 간주되어 카트린의 섭정이 불가했던 반면에 겨우 10세에 왕위에 오른 샤를 9세는 카트린의 섭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1572년 8월 23일과 24일에 생 바르텔르미 대학살이 벌어진다. 불과 6일 전인 8월 18일에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맺어진 평화 조약에 따라 개신교 수장인 나바라 왕과 카트린 모후의 딸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기에 개신교 지도자 대부분이 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천 명의 신교도들이 구교도들에 의해 학살된 이 사건은 물론 귀즈 형제의 수장이 주도하는 가톨릭 세력이 저지른 것이었지만, 개신교도들의 봉기를 두려워 한 카트린 모후와 샤를 9세의 방조 내지는 명령과, 개신교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고 있던 파리 시민들의 동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8월 24일 새벽, 루브르 궁 바로 옆에 위치한 생제르맹록세루아(Saint-Germain-l'Auxerrois) 성당의 종이 급박하게 울렸고, 이를 신호로 귀즈(Guise) 공작이 루브르 궁의 문을 열었으며, 다른 가톨릭 귀족들이 거리로 뛰어다니며 신교도들을 사냥해 무참히 학살했다. 살해한 사람들의 옷을 벗기고, 아이들의 시체를 진창으로 끌고 다니다가 참수하고, 내장을 꺼내는 등의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이 제일 먼저 노린 인물은 신교 측 지도자 콜리니였다. 이틀 전에 콜리니 암살에 실패했던 이들은 제일 먼저 그를 공격했다. 사람들은 루브르 궁 근처에 위치한 그의 저택을 급습해 그를 죽였다. 가톨릭의 대표가 귀즈 형제라면 신교 측 지도자는 가스파르 드 콜리니(Garpard de Coligny) 제독이었기 때문이다. 콜리니 제독과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살해되었고, 나바라 왕은 가까스로 피신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대학살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어 8월 말까지 3만 명에 가까운 개신교 신자들이 살해당했다. 이후 개신교 세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지만 개신교도들은 나바라 왕을 중심으로 더욱 굳게 뭉치기 시작했다. 대학살은 샤를 9세에게 엄청난 충격과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이 사건 이후 샤를 9세는 대학살 당시의 아비규환을 떠올리는 환청에 시달렸고, 스스로를 살인마라 성토하면서 정신적으로 급격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프랑스 역사상 그토록 치명적인 흔적을 남긴 카트린을 단 두 가지 단어로 일축하고 있는데, 바로 ‘통치’와 ‘점성술’이다. 카트린 드 메르디스는 야심과 권력욕이 어마어마했다. 그녀의 유일한 신앙은 점성술을 비롯한 신비학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와 생제르맹(Saint-Germain)도 카트린과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샤를 9세는 왕으로서 프랑수아 2세보다 훨씬 더 어머니를 신임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을 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그와 그의 충복들은 마리 투쉐의 집으로 가는 길에 왕실 향수제조인 르네(René)의 집을 염탐한다. 르네는 카트린의 동향인으로, 향수뿐만 아니라 독약 제조 전문가로, 오랫동안 연금술사라는 의심을 받아온 터였다. 왕은 갑자기 르네 집으로 들이닥쳐 르네와 연금술사들을 체포해 마리 투쉐의 집으로 끌고 간다.


마리 투쉐의 집에서 왕은 마리와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왕의 피로감을 간파한다. 샤를 9세는 마리에게 프랑스 왕으로서의 피로감을 드러내며 그저 평화롭게 죽고 싶다고 토로한다. 마리는 왕이 향수 제조인을 연행해 온 이유를 묻는다. 샤를이 르네와 함께 연행해 온 자들은 카트린의 점성술사인 루지에리와 그의 나이든 아버지 로렌조(Lorenzo)였다. 로렌조 역시 향수 제조인으로, 그 역시 연금술사였다. 샤를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자들을 모두 연행했으니 이들을 추궁해 미래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샤를과 마리는 예언자들을 직접 심문한다. 로렌조는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연금술사라는 사실을 시인하고는, 샤를 9세와 그의 동생이자 차기 왕인 앙리 3세(Henri III)의 운명을 예언한다. 또한, 샤를 9세가 죽은 뒤 마리가 오를레앙(Orleans) 총독과 결혼해 80세까지 살 거라고 예언한다. 샤를은 자신의 모든 질문에 연금술사들이 세상을 뒤흔들고도 남을 수많은 답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답변한 보상으로 로렌조와 그의 아들 루지에리, 그리고 르네까지 모두 석방한다.



제3부 두 가지 꿈


그 후, 200년이 지났다. 루이 16세(Louis XVI)와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의 통치 말년인 1786년, 프랑스 해군의 재정관 보다르 드 생 제임스(Bodard de Saint-James)의 집에서 저녁 만찬이 한창이다. 손님들 중 두 사람이 각자가 꾸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외과의사이고, 다른 사람은 변호사이다.


변호사는 꿈에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나타나 그녀와 생 바르텔르미 대학살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고 말한다. 카트린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신교도들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요컨대 그 사건 전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더니, 카트린은 작가들은 그녀와 동시대 사람들보다 더 그녀에게 공정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녀를 옹호해주지 않았다. 여왕이었던 그녀는 야망으로 인해 비난받았지만, 가장 공정한 사람들에게 그녀는 여전히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그녀가 진정 복수심과 분노라는 감정에 지배당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녀는 “나는 이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하고 차분했다. 나는 연민도 분노도 없이 신교도들을 처단했다. 신교도들은 다만 내 바구니 안에 담긴 썩은 오렌지였을 뿐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런 다음, 변호사에게 묻는다. “당신 연배의 지식인들은 정녕 종교가 유럽에게 요구되어 왔던 것들 중에 가장 엄청난 일이었던 종교 개혁이라는 위대한 시련과 진정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그때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소한 원인들로 인해 지체된 대규모 혁명이 전 세계에 범람하게 되었지요. 그래요, 혁명!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또 당신이 성취할 수 있어요. 그럼요, 바로 당신, 당신이 말이지요.”라고 단언한다.


이번에는 외과의사가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한다. 꿈에서 그는 환자의 환부인 허벅지를 치료하다가 갑자기 환부에서 소규모 사회를 대면한다. 다시 말해, 환자의 병든 허벅지 안에 우주가 펼쳐진 것이다. 그가 치료를 위해 의료용 칼을 환부에 대자, 수천, 수만의 생명이 파괴되었다.


변호사는 다름 아닌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였다. 그로부터 7년 뒤 자코뱅당의 지도자로 활약하다 독재체제를 완성하고 공포정치를 추진해 수천 명의 목숨을 단두대로 보냈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리고 외과의사는 바로 공포정치 시대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던 마라(Marat)였다. 그의 외과수술용 칼은 그의 펜이었던 셈이다. 결국 발자크는 카트린의 현실정치를 프랑스 혁명을 이끈 선도자 역할로 보고 있다. 이는 올바른 역사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적어도 역사에 대한 발자크의 확고한 개념은 확인할 수 있다.




분석


이 작품을 집필했던 1830년부터 1842년까지의 기간은 발자크가 월터 스콧(Walter Scott)에 영감을 받아 초기 작품들을 집필했던 시기부터 『인간희극』의 주요 작품들을 출간했던 시기를 모두 아우르는 기간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소설, 환상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서술되어 있다.



▶ 참고 사이트 :

1. 영어판 야후 〈발자크 인간희극 개요〉

2. 네이버 지식백과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참고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직접 번역하거나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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