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묘약

철학적 연구 - 제17권

by 글섬

작품 배경


〈영생의 묘약(L'Élixir de longue vie)〉은 발자크의 환상소설로, 돈 후안(Don Juan)의 신화 버전이다. 1830년에 문예지 《리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운명과 종말(Festin et Fi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1846년에 《퓌른》에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에 속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영원한 젊음과 불멸성을 추구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다룬 〈영생의 묘약〉은 발자크의 다른 환상소설인 〈사형집행인〉, 〈바닷가 이야기〉, 〈붉은 여인숙〉 등과 같이 범죄, 그리고 살해의 테마와 더불어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환상성을 부여한다.


독일의 호프만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1828년 이후 프랑스에는 환상문학이 성행하였다. 까조트(Cazotte)를 시작으로 노디에(Nodier), 네르발(Nerval), 고티에(Gautier), 메리메(Mérimée),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Adam), 도르빌리(D'Aurveilly), 위스망스(Huysmans) 등을 대표적인 환상문학가로 들 수 있으며 그밖에도 수많은 환상소설 작가들이 있다. 발자크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초기작품에는 환상적 요소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흔히 발자크는 19세기 중반기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발자크가 글을 쓰기 시작하던 1820년경부터 1832년경까지 발자크의 관심은 주로 철학적인 것이었고 환상성은 그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이었다. 발자크는 1830년에서 1832년 사이에 많은 환상적 이야기들을 발표하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철학적 연구」 속에 포함되어 있다.




16세기 페라라(Ferrare)의 한 화려한 저택에서 젊은 돈 후안 벨비데로(Don Juan Belvidéro)는 에스테(Este) 가문의 영주를 위해 연회를 열었다. 향기 나는 촛불이 환히 켜진 식탁에 고급 창녀 일곱 명이 둘러 앉아 웃고 떠들며 한껏 흥을 돋우었다.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기를 학수고대하는 돈 후안은 지나치게 오래 사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늙은 하인이 들어와 음울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전했다. 돈 후안은 연회장을 빠져 나와 춥고 어두운 긴 복도를 지나 아버지의 방으로 걸어가면서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려 애를 썼다.


돈 후안의 아버지 바르톨로메오 벨비데로(Bartholoméo Belvidéro)는 인생의 대부분을 사업에 바친 90대 노인이었다. 동방의 부유한 지역들로 자주 여행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노인은 아들의 젊음을 보는 게 즐거웠다. 아내와의 사별을 오랫동안 슬퍼하며 화려한 저택의 구석진 방에 은둔해 살았다. 젊은 돈 후안이 화려한 연회를 벌여 저택에 흥겨운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동안 아버지는 추운 별실에서 홀로 극도로 절제된 식사를 하며 아들의 유희를 즐겁게 관망했다. 덕분에 젊은 돈 후안은 아버지를 무례하게 대하는 데 익숙해졌고, 웃음으로 무례한 언동을 용서받곤 했다. 아버지의 너그러운 사랑은 결점을 찾기 어려웠다.


돈 후안이 아버지의 침대에 다가가자 아버지의 쇠잔한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죽어가는 얼굴에서 두 눈만은 굉장한 힘으로 번득였다. 아버지는 마지막 힘을 다 짜내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날 거라고 단언했다. 돈 후안은 죽어가는 아버지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탁자 서랍을 뒤져 수정으로 만든 작은 유리병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유리병 안에는 물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마지막 숨을 내쉬자마자 그 물로 내 몸을 닦으면 난 다시 태어날 거다.”라고 말하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돈 후안은 신비한 물약이 담긴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다시 탁자 서랍에 넣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이제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돈 후안에게 아버지를 잃은 위로와 축하를 건넸다.


그날 저녁, 돈 후안은 아버지의 방으로 가서 염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하인들을 모두 내보냈다. 혼자 남은 그는 신비한 수정 유리병을 다시 꺼내 리넨 천에다 소량만 적신 뒤 아버지의 오른쪽 눈을 살짝 닦았다. 그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오른쪽 눈이 번쩍 뜨였다. 돈 후안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죽은 아버지의 오른쪽 눈은 생기가 가득한 젊은이의 눈처럼 반짝였다.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모든 감정이 거기 있었다.” 부분적으로 살아 있는 그 눈이 너무나 생생하게 빛났기 때문에 돈 후안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돈 후안은 이 신비한 물약을 아버지의 유언대로 전신에 발랐다가는 분명 아버지가 백 살도 더 살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아버지의 오른쪽 눈을 감겨보려 애를 썼지만 부질없었다. 결국 돈 후안은 눈을 뽑아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오른쪽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고, 심지어 그 눈물은 뜨거웠다! 돈 후안은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아 고개를 돌리고 리넨 천으로 힘차게 눌러 눈을 뽑았다. 그는 아버지의 묘지에 하얀 대리석 기념비를 세우고 당대에 가장 유명한 조각가에게 석상의 제작을 맡겼다.


동방과 교역을 하며 축적한 아버지의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젊고 잘생겼으며 삶에 대한 환상을 잘 아는 그는 세상을 무시했지만 최대한 삶을 즐겼다. 돈 후안은 정열적인 청년 시절과 호색적인 장년 시절을 보내고 이윽고 60세가 되었을 때 에스파냐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젊고 아름다운 안달루시아(Andalousie) 처녀 도냐 엘비라(Dona Elvire)와 결혼했다. 그의 아들 펠리페 벨비데로(Philippe Belvidéro)는 아버지가 무신론자인 것과는 달리 아주 양심적이고 신심 깊은 에스파냐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마침내 돈 후안에게 뇌졸중이 덮쳤다. 그는 아들과 아내의 헌신을 돈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엘비라와 펠리페는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그를 더욱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다가 세상을 뜨는 날이 되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 어느 날 밤에 돈 후안은 아들을 불러 단 둘이 있기를 원했다. 그는 아들에게 침대 머리맡에 있는 탁자 서랍에서 신비의 약물이 든 유리병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반드시 유언을 따르겠다는 확약을 받아낸 뒤, 자심이 숨을 거두면 테이블 위에 눕히고 그 성스러운 물로 온몸을 닦아주되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더니 이내 아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펠리페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테이블 위에 누이고 리넨 천에 액체를 적셔 아버지의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오른팔을 닦았을 때 갑자기 아버지의 손이 펠리페의 목을 힘껏 졸랐다. 펠리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약병을 떨어뜨렸고, 약병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펠리페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달려왔고, 아버지의 힘센 손에 목이 잡힌 채 기절하려는 펠리페를 보았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돈 후안의 얼굴과 오른팔은 팔팔하게 살아 있고, 나머지 죽고 쇠잔한 육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광경을 보고는 ‘기적’이라고 외쳤다.


마법을 믿기에는 너무나 신앙심이 두터운 도냐 엘비라는 수도원장을 모셔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기적’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수도원장은 연금을 늘리고 싶은 영리한 수도원장답게 그것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돈 후안이 성인의 반열에 오를 게 틀림없다며 자신의 수도원에서 시성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 유명한 귀족이 부분적으로 부활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돈 후안의 몸은 보석과 꽃과 수정과 다이아몬드와 황금으로 치장되어 휘황찬란했다. 수도원장은 제의를 갖춰 입고 제단 앞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교회 종이 울려 퍼졌고, 모인 사람들이 찬송을 시작했다. 수천 명의 목소리는 숭고한 함성이었다. 고마움과 사랑의 음악이 제단 위로 솟아오르는 그 순간, 성물함에 누워 있던 돈 후안이 소름 끼치게 웃어대더니 욕지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살아 있는 팔을 성물함 밖으로 내밀어 절망감과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동작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제단 앞에 길게 엎드린 수도원장이 목소리를 좀 더 높여 찬송하는 바로 그 순간, 살아 있는 머리가 죽은 육체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와, 의식을 집행하는 수도원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돈 후안의 머리가 수도원장의 머리를 물어뜯었고, 수도원장의 무시무시한 비명소리에 의식은 중단되었다. 사제들이 모두 달려와 수도원장을 에워쌌지만 머리를 물어뜯긴 수도원장은 이내 숨을 거두었다. 바로 그 순간 돈 후안의 목소리가 외쳤다. “바보 같으니, 이래도 하느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어디 해 봐!”




분석


박학한 인간의 악마적 면모는 고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는 오래된 주제로, 19세기 초기에는 낭만주의 작가들이, 후기에는 상징주의 작가들이 이용했다. 친부를 살해하는 도입부에 이어, 종결부에서는 죽은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가 마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우골리노 백작처럼 살아 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물어뜯는, 다분히 사탄적이고 살인적인 이 소설은 발자크 자신이 신화에 심취하기 시작해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다.



▶ 참고 문헌 : 〈세계의 환상소설〉, 발자크 외, 이현경 역, 민음사

▶ 발췌 논문 : 〈발자크와 환상소설〉, 송기정(이화여대)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문헌 및 발췌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 혹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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