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연구 - 제19권
〈루이 랑베르(Louis Lambert)〉는 1832년에 《고슬랭(Gosselin)》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836년에 《베르데(Werdet)》 출판사에서 〈세라피타(Séraphîta)〉에 이어 출간되었고, 1845년에 《퓌른》에서 『인간희극』의 「철학적 연구」에 속해 출판되었다. 한편, 발자크는 「철학적 연구」의 작품들 중 〈루이 랑베르〉, 〈추방된 사람들(Les Proscrits)〉, 〈세라피타〉를 따로 묶어 1835년 말엽에 〈신비소설〉을 출판하기도 했다.
〈루이 랑베르〉는 발자크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다. 특히 방돔(Vendôme) 기숙학교 시절 작가가 느꼈던 고독과 회의는 〈루이 랑베르〉를 통해 잘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서술자를 내세워 마치 그가 자신인 듯 가장하면서 제3자의 입장에서 루이 랑베르를 묘사하지만 독자들은 서술자와 더불어 랑베르에게서도 발자크의 모습을 본다. 즉 소설 속에서 ‘시인과 피타고라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서술자와 루이는 문학과 철학을 추구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발자크는 인간의 과도한 지적 활동이 물리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탈진시켜 인간을 광기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797년 피혁제조인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 랑베르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여리고, 신경질적이고, 지극히 섬세하며, 사랑스러운” 루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모성애에 쏟은 후 젊은 나이에 죽는다.” 어린 시절부터 루이는 조숙하게 행동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병을 앓느라 몸이 약했던 반면 그의 뇌 기관은 이미 완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내면에서 작용하는 감각 능력이 뛰어났고 신경 조직의 생성 또한 과도하리만큼 왕성했다. 관념을 추구한 그는 모든 관념을 소화하려는 머리의 갈증을 풀어야만 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고, 독서를 통해 심사숙고하면서 사물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그 본질을 연구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다섯 살 때 구약과 신약을 접했으며 열 살이 되어서는 성직자가 되려고 신부인 외삼촌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지적 삶의 안내자 역할을 한 스탈(Staël) 남작 부인을 만난다. 루이는 보통 아이들처럼 방학 때 무위도식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독서와 명상을 한다. 당시 스탈 남작 부인은 몇 달간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어느 날 산책 중에 숲속에서 우연히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스웨덴보리(Swedenborg)의 〈천국과 지옥〉에 몰두해 있는 루이를 만난다. 스탈 부인은 어린 아이가 스웨덴보리의 책을 읽는 것이 놀라워서 그 책을 이해하느냐고 묻는다. 루이는 스탈 부인에게 “신에게 기도하시나요?”라고 되묻는다. 스탈 부인이 그렇다고 말하자 루이는 “그러면 신을 이해하시나요?”라고 다시 묻는다. 루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스탈 부인은 루이를 ‘견자’(voyant)로 인정한다. 루이는 신을 이성적인 추상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신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신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루이의 탁월한 지적 능력에 감탄한 스탈 부인은 그가 방돔 기숙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와 기숙사 비용을 모두 부담해준다.
그리하여 열네 살이 되던 1811년 초에 루이는 방돔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후 1814년에 졸업한다. 그러나 방돔 기숙하교에서의 생활은 불행의 시작이 된다. 넓은 들판의 시원한 공기와 자유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 엄한 규율과 사방을 둘러싼 벽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왼쪽 팔을 책상에 괴고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몇 시간이고 마당의 나무와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명상은 선생님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유발한다. 선생님들의 꾸지람과 더불어 그는 늘 벌을 받아야 했다. 동료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몰이해와 적대감 속에서 그는 고독한 삶을 영위하면서 점점 더 자신의 내면으로 몰두하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킨다.
1812년 어느 늦은 봄날에, 학교에서 로샹보(Rochambeau) 성으로 소풍을 가게 된다. 루이는 분명 성이 들어선 아름다운 루아르(Loire) 계곡에 처음 갔던 것인데, 그곳은 루이가 간밤에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루이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어 육체가 잠자는 동안에 정신이 그곳에 갔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만일 완벽한 부동의 상태에서 어떤 공간을 넘나들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외적 신체의 법칙과는 무관한 어떤 내적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계기로 루이는 “적어도 인간의 두 본질이 분리될 수 있다는 걸 말해” 준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특별한 “정신적 능력”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 로샹보 성으로의 소풍 이후 루이는 〈의지론(Traité de la volonté)〉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정신주의와 물질주의를 하나로 용해시키는 일원론적 사고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신주의자였던 루이는 사고의 물질성을 인정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육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끝내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한다. 결국 루이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부에게 원고를 빼앗기게 되고 이로 인해 루이는 큰 상처를 입는다.
방돔 기숙학교 시절에 루이와 단짝이었던 화자는 십년 뒤에야 루이의 이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루이의 〈의지론〉을 어린 시절의 유치한 발상으로만 여겨 잊고 지냈던 화자는 십 년이 지난 후에야 몇몇 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루이의 “철학적 이론이 위대한 사상가들 무리에 속하기에 충분할 만큼 깊이 있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화자는 루이의 이론을 다시금 연구하여 체계화하기에 이른다.
루이 랑베르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는 근원적으로 영기를 가진 물질이 존재하며, 그것은 기본적인 정신 에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 물질이 변화되어 ‘의욕(volution)’의 근원인 ‘의지(volonté)’가 된다. “‘의지’는 일군의 힘인데 그 힘에 의해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행위들을 재현한다. ‘의욕’이란 인간이 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그 행위를 말한다.” 랑베르에게 ‘사유’(pensée)는 의지의 산물들의 진수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사유의 본질인 ‘관념’(idée)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관념은 행위를 구성하며 그 행위에 의해 인간은 사유할 수 있다. 이렇게 의지와 사유는 두 가지 기본능력이며, 의욕과 관념은 그 두 가지 활동에 따른 두 가지 결과이다. “인간에게 의지란 인간 고유의 힘이며, 그 강도는 모든 종의 의지를 능가한다.” 루이는 의지를 사유에 앞세우며, “사유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유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의지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루이에게 ‘의지’와 ‘사유’는 생생한 힘이었다.”
그런데 루이 랑베르가 집필하고자 했던 〈의지론〉에 대한 이와 같은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는 ‘의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의지란 ‘활력’을 가지는 것으로서 ‘생명의 원리’이다.
한편 루이는 대부분의 생물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운동을 관찰하고 탐색한 후, 그것들을 인간의 본성으로 인식한다. 그러고는 ‘행동’(능동적 작용, action)과 ‘반응’(수동적 반작용, réaction)이라는 대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이 두 가지 운동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의욕’과 ‘관념’의 총체는 ‘행동’을 구성하고, 밖으로 드러난 외적 행위의 총체는 ‘반응’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역학에서 물체들의 관계를 충돌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마치 당구공이 충돌할 때 작용과 반작용이 생기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감정은 능동적 감정과 수동적 감정으로 구분된다. 스피노자는 이 감정을 형이상학적으로 연구하여 ‘능동’, ‘수동’의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기쁨을 능동적인 개념으로 슬픔을 수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기쁨을 개발하여 능동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유로운 지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수동화된 병든 지성을 건강하게 하는 심리병리학적 치료술로서 제시한다. 그의 〈지성개선론〉의 ‘개선’(Emendatio)은 원래 의학에서 치료라는 의미이다.
루이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방돔 기숙학교를 나온다. 약 반 년 전에 부모를 모두 잃은 처지였던 루이는 후원자인 삼촌 집에 칩거한다. 그의 삼촌은 시민헌법에 선서한 신부로서 주임사제직에서 쫓겨난 후 블루아(Blois)에 머물고 있었다. 루이는 얼마간 그곳에서 지내다가,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발전시키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러나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파리에서 그는 황금만능주의에 환멸을 느낀다. 부모님의 유산은 이미 모두 써버린 후였고, 정신적 지주였던 스탈 부인을 찾아간 바로 그날 그녀마저 세상을 떠난다. 파리에서의 가난과 고독은 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파리의 사치와 쾌락 속에서 루이는 자신이 사막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행위보다는 사유를, 행동보다는 관념을, 운동보다는 명상을 더 좋아”하는 루이에게는 무엇보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속적인 관심이란 게 없”기에 가난은 숙명인 셈이다.
어느 날 파리의 극장에서 한 여인에게 욕망을 느낀 그는 그녀의 애인을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루이는 자신의 내부에 그런 동물적인 파괴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죄의식을 느낀다. 동시에 파리의 체류에 대해 회의를 느낀 그는 1820년 파리를 떠나 블루아의 외삼촌댁으로 돌아온다.
루이가 블루아에 돌아오자, 외삼촌은 조카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어느 사교 모임에 루이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부유한 유대인 상속녀인 폴린 드 빌누아(Pauline de Villenoix)를 만난다. 그녀는 유대인 특유의 아름다운 외모와 기품 있는 정신의 소유자로, 항상 말없이 명상에 잠겨 있었다. 단호하고 예민하면서도 날카로운 성격의 빌누아를 보자마자 랑베르는 그녀 안에 찬사가 있음을 감지한다. “열정이란 으레 그렇듯 누구에게나 맹렬한 것이지만, 그의 격렬한 감각과 사고의 본질과 삶의 방식은 그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을 가진 열정에 빠뜨렸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은 루이가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녀와의 사이에 거대한 심연이 존재함을, 따라서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한 것임을 인식하면서도 루이는 폴린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희구한다. 그의 “영혼 안에 단 하나의 사유만이 존재하듯이” “이제 이 세상에서 그에게 여인은 단 한 명뿐이다.”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루이는 “가장 완벽한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란 한창 젊을 때 가장 사랑하는 순간에 함께 죽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빌누아를 향한 욕망이 너무도 격렬한 나머지 루이는 “내 삶 전부와 나의 사유, 그리고 나의 힘이 모두 녹아 소위 욕망이라고 하는 것 속에 하나가 되어” 바닥도 없는 깊은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며 광기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루이는 정작 그녀와의 결혼이 성사되자, 결혼을 며칠 앞두고 미쳐버린다. 루이는 매우 특이한 강경증 발작을 일으켰다. “쉰아홉 시간 동안 시선을 한 곳에 붙박은 채 꼼짝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는 그의 징후는 격렬한 열정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신경증 증세였다. “잠처럼 깊은 심연에 빠진 상태인 그 병은 랑베르가 〈의지론〉에서 제시한 바 있는 이론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그는 “깊은 명상, 황홀한 무감각 상태는 아마도 여물지 않은 상태인 강경증 같은 것일 거야.”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이러한 무감각 상태에서의 깊은 명상을 통해 루이의 육체와 정신은 분리된다. 육체적 삶은 완전히 소멸되고 그의 정신은 내적인 삶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육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꾀한 루이는 자기거세를 통해 육체적 결핍을 스스로 시도한다. 이에 놀란 외삼촌은 그를 파리로 데려가 당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에스키롤(Esquirol) 박사의 진단을 받게 한다. 그러나 루이의 병은 치유 불가능한 것으로 진단된다. 그에게 필요한 처방은 단지 깊은 고독, 고요함, 햇빛이 강하지 않은 어둠, 시원함 등일 뿐이다.
결국 루이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폴린의 모성적인 보살핌을 받는다. 육체가 완전히 떠나고 정신만 남은 루이는 무덤에서 꺼낸 시체와 다름없다. 그러나 폴린은 자신과 루이의 영적이 결합에 대해 확신한다. 그녀에게는 루이가 결코 미친 것이 아니다. 그의 담화는 부조리하지도 비논리적이지도 않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으며, 자신의 육체를 벗어버린 그는 육체가 아닌 다른 형태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루이와의 행복한 시간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폴린 역시 “거의 미치다시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숭고하다.” 그녀는 루이가 무심결에 뱉어내는 말들을 문서로 기록해둔다.
루이 랑베르를 광기와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그의 지식이요, 그의 사유이다. 발자크는 광기에 빠진 루이의 입을 통해 사유의 세계를 ‘본능의 세계’, ‘추상의 세계’, 그리고 ‘특수성의 세계’라는 세 영역으로 분리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의 영역에 산다. 이들은 가장 약한 자들로, 태어나고, 일하고, 죽는다. 본능적 인간은 물질을 숭배하며, 숭배의 형태는 행위와 사실로 표현된다. 본능적 인간은 인간의 표준 척도 밑에 존재한다. 루이가 방돔 학교에서 경험했던 식사시간의 활기, 학교의 매점에서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그리고 파리의 극장에서 성적 충동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은 모두 본능계의 관념만을 갖는 인간의 특성에 속한다.
그들 중 소수의 인간은 추상의 단계에 이르는데, 인간 지성의 두 번째 단계인 이 추상의 관념에서 사회가 시작되고 법과 예술과 사회적 관념이 생겨난다. 루이는 본능과 비교해서 추상이 거의 신적인 힘이라 할지라도 신을 예감할 수 있는 투시의 능력에 비하면 약하기 그지없다고 본다. 추상적 능력은 표면적인 이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추상으로부터 사회를 유지하는 법, 예술, 이해관계, 사회 관념 등이 생겨난다. 루이는 이러한 추상의 능력이 사회를 창조했다는 점에서는 영광이지만, 인간을 무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재앙이라고 본다. 추상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에서 선과 악, 미덕, 그리고 범죄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 즉 인간의 이해관계에 의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법의 정의는 눈이 멀었다.
인간 지성의 세 번째 단계이자 신비의 단계에 이르는 특수성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물질세계의 사물뿐 아니라 정신세계의 사물도 본다. 다시 말해서 내적 시선의 완벽성은 특수성의 능력을 잉태하는 것이다. 특수성은 내적 인간의 능력 중 하나인 직관 능력에 기인한다. 특수성은 인간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며, 보이는 세계와 초월적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루이에 따르면 이 특수성이야말로 인간이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열어 주며,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에 이르게 하고 운명을 예감하게 해 준다. 이 특수성은 인간에게 “내적 시선의 완전함”을 가능하게 하여 직관의 능력을 부여하는데, 직관은 이에 복종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아주 미미한 감각에 의해 움직인다. 루이는 나폴레옹이 포탄이 날아오기 전에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한 것이 그러한 예라고 지적한다. 특수성을 가진 인간은 신을 숭배하며 기도와 사랑으로 표현된다. 인간이 지성의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는 비가시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특수성을 얻기 위해서는 관념의 너머에 있는 무한을 발견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인간은 이성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몽상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랑베르는 1824년 9월 25일, 스물여덟의 나이로 연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빌누아는 그를 빌누아 숲에 있는 어느 섬에 묻는다. 루이는 “이해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처럼 거만하게 자기 삶의 비밀을 모두 내던진 채 무(無) 속에 빠지고” 싶었던 것이리라. 랑베르의 부인은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지만, “그곳을 떠남으로써 더더욱 그곳에 머무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는 그의 마음을 가졌어요. 그러니 그의 재능은 신께 바쳐야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철학적 연구」는 대부분 발자크 집필 초기인 1830년에서 1835년 사이에 쓰였다. 총 20여 편에 달하는 「철학적 연구」에는 환상소설, 범죄소설, 신비소설 등이 있다. 여기에는 최고의 예술, 과학, 철학을 추구하는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초월적인 힘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인물 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절대를 추구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일 수밖에 없다.
루이 랑베르의 지식과 사유는 그를 광기로, 그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절대적 사유에 이름으로써 인간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필연적인 실패가 〈루이 랑베르〉의 주제이며, 이것은 철학소설을 비롯한 발자크 작품 전체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다.
발자크는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한다. 즉 인간에게는 물질적 성향과 정신적 성향이 공존하며 그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발자크는 그들 간의 화해를 통해 통일성에 이르고자 한다. 그런데 통일성에 이르는 이 과정을 절대적인 지식을 통해 가능하며, 결국 이 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정신이다. 그리고 물질, 즉 육체는 파멸하고 만다. 〈루이 랑베르〉는 그러한 발자크의 철학사상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루이는 최고의 지성을 소유했지만, 과도한 그의 지성은 결국 그의 육체를 파멸로 몰아가고, 그에게는 정신만 남는다.
광기에 빠진 루이의 입을 통해 주장한 세 영역(‘본능의 세계’, ‘추상의 세계’, ‘특수성의 세계’)에 대한 발자크의 논의는 베르그송(Henri Louis Bergson, 1859~1941)의 생물진화의 세 단계를 연상시킨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곤충은 본능의 세계에 살며, 인간은 지성의 단계에 속한다. 인간은 지성적 의식을 확장하여, 자기 내부, 우주 내부로부터 생명의 힘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동시에 본능에 가까워지면서 생명의 힘에 공감할 수 있다. 성자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성취한 사람들이다. 발자크에게서 그보다 후대의 철학자인 베르그송의 이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베르그송 역시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철학자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 두 사람에게서 유사한 이론이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편, 〈루이 랑베르〉에서 구상한 영혼의 비상과 다른 세계에서의 삶이라는 주제는 그 후에 집필된 〈세라피타〉에서 더욱 발전된다.
▶ 참고 문헌 : 〈루이 랑베르〉, 발자크 외, 송기정 역, 문학동네
▶ 참고 논문 : 〈발자크 소설에 나타난 절대의 의미〉(〈루이 랑베르〉, 〈알려지지 않은 걸작〉, 〈절대의 탐구〉를 중심으로), 이선오(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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