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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섬 Jan 09. 2023

이브의 딸

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14권


작품 배경


〈이브의 딸(Une fille d’Ève)〉은 1838년 12월과 1839년 1월에 《르 시에클(Le Siècle)》 지에 연재된 소설로, 1839년 8월에 수브렝(Souverain)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1842년에는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퓌른(Furne)》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1831년, “프랑스 법조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로, 7월 혁명 이후 귀족원 의원이 된” 그랑빌(Granville) 백작의 막내 딸 마리 외제니 드 그랑빌(Marie-Eugénie de Grandville)의 남편이자 “파리에서 가장 부유한 은행가 중 한 명”인 페르디낭 뒤 티예(Ferdinand du Tillet)의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외제니의 언니 마리 앙젤리크 드 방드네스(Marie-Angélique de Vandenesse)가 울고 있고, 외제니가 언니를 위로하고 있다. 펠릭스 드 방드네스(Félix de Vandenesse)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힘겨워하는 앙젤리크를 외제니는 도와줄 방법이 없다.


     결혼 전에 자매는 광신도인 어머니, 그랑빌 백작부인(Comtesse de Granville)의 극도로 엄격한 교육으로 인해 우애가 매우 돈독했고, 지나치게 무지몽매했다. 자매는 교육을 받지 못해 경박하고 무지했으며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백작도 딸들에 대한 교육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했지만 교육은 전적으로 백작부인의 권한이었기에 딱히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매는 글을 읽지도 못하는 수준인 반면에 아들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무도장과 공연장도 다니며 법률가가 되었다. 아들들은 저택의 별도의 공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백작이 딸들을 위해 유일하게 개입한 교육은 음악 선생을 얻어준 것이었다. 이 음악 선생은 몹시도 가난한 나이 많은 괴짜였는데, 자매는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 결국 자매는 어머니의 핍박을 피해 일찍 결혼해버렸다. 여기서 발자크는 많은 남자들이 남편 말 잘 듣고 다루기 쉬운 여자를 아내로 얻기 위해 이렇게 순진무구한 여자들과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한다.


     앙젤리크는 당장 4만 프랑이 필요해 울고 있었고, 외제니는 언니를 위로하려 애쓰지만, 그녀 역시 언니를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 외제니는 야심만만한 은행가와 결혼했지만 지참금 없이 결혼하는 바람에 남편의 멸시를 받는 처지였다. 외제니는 남편에게 있어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남편의 뜻에 복종해야 했기에 불행했다. 그녀는 부유했고, “파티가 있는 날이면 온통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사교계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을 주렁주렁 걸지만, 뭐 하나 그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요컨대 그녀는 그녀 소유의 돈은 한 푼도 없었고, 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선택권이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허영심에 부응하고 부를 과시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대리석 조각처럼 냉정하고 번지르르했다.”


     앙젤리크의 남편은 은행가를 동서로 맞을 수 있을 만큼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가 일신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 귀족이었다. 앙젤리크의 남편은 왕정복고 시대의 혜택을 입었던 반면에 외제니의 남편은 혁명의 혜택을 입은 입장이었기에 두 남자는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티예는 나쁜 남자였다. 그는 “장차 귀족원 의원이 될” 뉘싱겐 남작(Baron de Nucingen)과 어울려 다니며, 가끔은 외제니가 바로 곁에서 듣고 있는데도(그녀의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기에) ‘귀족’이 되기 위해 타인을 파멸시킬 모의를 하곤 했다. 티예는 앙젤리크에게 4만 프랑쯤은 손쉽게 빌려줄 수 있는 처지였지만, 앙젤리크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돈을 빌렸다가는 그의 수중에서 놀아나야 할 게 뻔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제니는 언니에게 지금 필요한 돈을 도와줄 수가 없다.


     앙젤리크가 돌아간 뒤, 티예는 앙젤리크가 지금 돈이 필요한 이유는 그녀의 정부가 빚 때문에 수감될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외제니는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데, 티예는 앙젤리크처럼 경건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여자들은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부정한 아내가 되기 마련이라고 냉소적으로 쏘아붙인다. 그러면서, 앙젤리크의 정부가 감옥에 가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니까 외제니는 일체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티예는 아내를 신뢰하지 않았기에 그녀를 예의주시한다.


     펠릭스 드 방드네스는 독신생활에 싫증이 난 30세 무렵에 말 잘 듣는 아내를 얻고 싶어서 앙젤리크와 결혼했다. 말하자면 아버지 역할과 남편 역할을 겸할 수 있는 결혼 상대를 원했다. 그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착실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몹시도 행복해했던 아내가 4년이 지나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아내가 원하는 모든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욕망을 억제시켰다.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욕망도 사라질 테고, 그러면 불평도 사라질 테니까. 앙젤리크는 남편이 의도적으로 ‘뜨뜻미지근한 부부애’를 유지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단조로운 거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조금만 더 열정적이길 원한다.


     “1833년에, 펠릭스에 의해 다져진 행복이라는 구조는 그 기저가 침식되어 의심의 여지없이 붕괴 직전이었다. 25세 여자의 마음은 더 이상 18세 여자의 마음이 아니고, 40세 여자의 마음은 30세 여자의 마음이 아닌 법이다.” “완벽한 행복은 다음 생에 있으며 그 해답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이생의 숭고한 몽상가들은 천국 주변을 배회하기만 하며 독자들을 영원히 지루하게 할 따름이다. 단테(Dante)의 암초는 방드네스에게도 걸림돌이었다. 불행한 용기에 영광을! 그의 아내는 잘 정돈된 에덴에서 그 어떤 단조로움을 발견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지상 천국이라 느꼈던 완벽한 행복은 감미로움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그만 혐오스러워져, 백작 부인은 양우리에서 늑대를 만나기를 기원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전업주부의 이 흔해빠진 권태는 문학가인 라울 나탕(Raoul Nathan)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만남을 둘러싸고 모종의 음모가 포진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앙젤리크가 재능은 별로 없고 자만심만 팽배한 이 문학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여자들 세 명의 음모가 있었다. 펠릭스는 1830년 혁명이 끝나고 살롱이 다시 열리자 아내를 사교계에 데뷔시켰는데, 아내에게 다른 여자들의 질투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케르가루에(Kergarouët) 백작의 미망인과, 펠릭스의 형의 아내인 샤를 드 방드네스(Charles de Vandenesse), 영국 귀족 레이디 더들리(Lady Dudley)가 한통속이 되어 그들의 살롱 모임을 계기로 앙젤리크를 나탕의 품안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이들 세 명의 여자들은 저마다 개인적인 이유로 앙젤리크를 질투해온 터였기에 앙젤리크와 친구인 냥 친한 척하면서 그녀의 부정을 조장한다.


     몽코르네 백작부인(Comtesse de Montcornet)의 살롱에서 앙젤리크는 유명한 작가 라울 나탕(Raoul Nathan)을 만난다. 딱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고 차라리 초췌한 외관의 그를 에밀 블롱데(Emile Blondet)가 유명인 대접을 한다. 그는 그가 쓴 소설과 희곡이 모두 성공해 다소 우쭐해 있다. 그는 정치적 신념 따위는 지니지 않은 공화당 지지자로서 당시의 우세한 정치 바람을 타고 정부 요직이나 바라는 축이었다. 그는 앙젤리크의 마음을 훔치고, 다른 여자들이 그에게 그가 그녀를 정복했다는 식으로 말하자 으스댄다. 앙젤리크가 먼저 살롱을 떠난 뒤 그는 친구들과 그녀에 대해 뒷담화를 하며 그녀를 조롱한다. 그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었다. 플로린(Florine)이라는 여배우였다. 살롱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앙젤리크는 남편에게 나탕에 대해 물어본다. 나탕에 대해 남편이 주의하라고 경고하지만 그녀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여기서 발자크는 여자들은 그들이 원치 않는 정보를 얻게 되면 되받아쳐 버리는 “탄력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음 무도회에서 나탕은 앙젤리크의 영향력이 자신에게 유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작심하고 그녀에게 작업을 시작한다.


     나탕의 애인 플로린은 나탕과 한 집에 살며 그에게 돈도 빌려주고 필요한 것들도 사주며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나탕은 플로린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탕이 빈둥거리며 그녀 뒤에서 그녀를 조롱하는 동안 플로린은 혼자서 생계를 버텨내기 위해 오랜 시간 일한다. 나탕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플로린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는 게 전부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아등바등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엔 부족한 생활비를 매춘으로 충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더군다나 귀족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탕은 플로린을 통해 정부 요직에 공석이 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는 블롱데(Blondet)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정치 이력을 위해 티예와 공동으로 신문사를 설립한다. 이를 위해 그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그는 자신이 선출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선출되면 돈을 갚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플로린은 그가 고리대금을 사용하지 않도록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았다.


     더들리 부인의 무도회에서 에스파르(Espard) 부인이 나탕에게 앙젤리크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에스파르 부인은 더들리 부인, 마네르빌 부인과 한통속으로, 뒤에서는 스캔들을 조장하고 앞에서는 앙젤리크의 명예를 옹호하는 척하는 인물이다. 나탕이 앙젤리크와 그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자 에스파르 부인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희곡을 한 편 써보라고 부추긴다. 더들리 부인이 나탕이 파산한 유대인 아버지와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기독교도로 길러졌다는 배경을 말해주자 에스파르 부인은 경악한다. 그 다음 주에 열린 에스파르 부인의 살롱에서 앙젤리크와 나탕은 또 다시 만난다. 나탕은 가벼운 말들만 주고받는 살롱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실속 없는 살롱 모임에 질력이 난 그가 살롱에 계속 참석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하지만 결국엔 모임을 떠나지 못한다. 어쨌든 라스티냑(Rastignac)과 마르세(Marsay)도 살롱에서 정치를 논의하니까.


     나탕은 이런저런 살롱들에 참석하느라 글을 써야 하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살롱에 드나드는 사교계 여자들은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8세기처럼 행동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나탕은 원고를 제시간에 맞춰 완성하려고 밤늦게까지 글을 쓴다. 정치적 변화의 흐름을 타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다. 나탕은 앙젤리크과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일부러 번번이 늦게 나타난다. 이륜마차를 타고 근사하게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녀를 감동시키려는 심산이다. 마차 비용은 신문사에서 충당한다. 그의 동업자인 티예와 법률가 마솔(Massol)은 그의 파산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흔쾌히 동의한다. 나탕이 한껏 여유로운 남자의 분위기를 조장해 앙제리크 앞에 나타났을 때 앙젤리크가 “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인 이벤트”를 간파하지 못하자 그는 약간 짜증이 난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실은 원고에 시달리고 채권자들을 피해 다니며 살롱 모임에 참석하느라 고단하기 짝이 없는 처지라고 토로하고야 마는데, 그러자 앙젤리크는 마음이 애틋해져 그에게 입을 맞춘다.


     펠릭스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앙젤리크와 휴가 차 잠시 시골에 머무는데, 그녀는 시골에서도 나탕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한편, 그 무렵 나탕은 지금껏 친구였던 사람들로부터 전방위적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신문사 직원들은 그를 혐오하고, 플로린은 그를 떠난다. 마솔과 티예는 그를 파국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에게 모든 권한을 쥐여 준다. 이에 우쭐해진 나탕은 모두에게 군림하며 자신이 그들을 건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망상에 빠진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뉘싱겐과 라스티냑, 티예와 블롱데에게 정치적으로 조종당하고 있는 나탕은 ‘교육위원회 위원장 자리와 국무 회의 의원직’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에게 그의 신문 편집 입장이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기만 하면 그 자리를 내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는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표방하기 위해 신문사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했기에 동업자인 티예에게 돈을 빌려 충당해야 했다.


     플로린이 파리(Paris)로 돌아오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나탕의 말에 넘어가 새 가구를 장만하려 모아두었던 돈을 탕진한다. 나탕은 플로린에게 앙젤리크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도록 주의했기에 플로린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나탕이 앙젤리크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아도 플로린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마침내 티예에게 진 빚에 대한 채무 기한이 만기된다. 하지만 티예는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채무 기한을 좀 더 연장시켜준다. 그러나 파리에서 정치적 소란이 일어나고, 마르세가 죽은 뒤 라스티냑이 직위를 잃는 일이 벌어진다. 시골에서 돌아와 나탕과 다시 만나기 시작한 앙젤리크가 펠릭스에게 정치 상황이 나탕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묻자 펠릭스는 나탕이 편집장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면” 사업이 파산하게 될 거라고 알려준다. 펠릭스는 여전히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12월이 되자 또 다시 채무 기한이 만기되고, 이번에는 티예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나탕은 돈을 구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야 했는데, 티예가 그를 고의적으로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는 건 꿈에도 의심하지 못한다. 나탕은 티예의 빚을 갚았지만, 이내 고리대금업자의 채무 기한이 만기된다. 그러자 티예가 고리대금업자에게 소송을 진행하라고 종용한다. 티예는 나탕과 경선을 치르는 걸 원치 않았고, 나탕이 파산하면 선거에 출마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로린도 빚더미에 앉은 처지였기에 나탕을 도와줄 수가 없다. 결국 나탕은 꼼짝 없이 걸려들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보며 나탕은 자살하는 수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파리에서는 자살이 대유행처럼 만연해 있었다.) 나탕은 앙젤리크에게 극적인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앙젤리크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하고 그의 방으로 찾아가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그녀는 방안 가득 숯이 타들어가는 연기에 휩싸인 채 목을 매기 직전의 그를 발견한다. 앙젤리크는 그를 호텔에 데리다 놓은 뒤 도움을 청하러 외제니에게 달려간다.


     티예는 앙젤리크와 나탕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본다. 그는 나탕이 있는 곳을 알아보는 데 3일이 걸린다. 덕분에 나탕은 약간의 시간을 번다. 그러는 동안 앙젤리크는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했다. 펠릭스가 앙젤리크에게 무슨 문제로 그러냐고 물었지만, 앙젤리크는 외제니에게 돈을 빌리러 간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외제니에게 문제가 좀 생겼다고 둘러대며 얼버무린다. 그러자 펠릭스는 외제니의 남편 티예는 나쁜 놈이라고 경고하며 그런 놈과 한 가족이라는 게 유감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오페라 극장에서 만난 외제니는 돈을 구했다며, 뉘싱겐 남작부인이 보증인을 제시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고 말한다. 티예는 나탕이 활기를 되찾은 모습에 몹시도 화가 난다. 그는 분명 나탕에게 돈을 대주는 여자가 있는 거라고 확신한다. 앙젤리크는 처녀 적에 자매의 음악 선생이었던 슈무크(Schmuke)에게 4만 프랑에 대한 보증을 부탁하고 곧장 남작부인에게 달려가 돈을 구한다. 뉘싱겐 남작이 아내에게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남작부인은 앙젤리크에게 돈을 빌려준 게 결국 남편의 계획을 망쳐버리는 셈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라스티냑이 남작부인을 방문했고,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자연스레 여러 소문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라스티냑이 요직을 둘러싸고 나탕과 남작에 관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 설명해주었고, 그제야 남작부인은 남편이 요직에 등용될 기회를 자신이 훼방 놓은 셈이라는 걸 깨닫는다. 남작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티예는 나탕이 빚을 갚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는데, 외제니가 처음으로 그에게 맞서는 걸 보고는 아내가 이렇게 과감해진 건 언니 때문이라는 걸 간파한다.


     외제니는 앙젤리크가 나탕과 도망칠까 봐 두려워 펠릭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펠릭스는 관대하게 모든 걸 이해해주기로 하고 앙젤리크에게 자진해서 나탕을 포기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는 남작부인을 찾아가 아내가 빌린 돈을 대신 갚아주면서 뉘싱겐 남작이 원하는 요직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남작부인이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달라고 설득한다. 펠릭스는 라스티냑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내걸어 플로린의 존재를 알아낸다. 펠릭스는 앙젤리크에게 나탕과 플로린의 관계를 알려주고, 슈무크의 보증서를 보여주고는 태워버린다. 앙젤리크는 그제야 나탕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비롯해 모든 것을 고백한다. 펠릭스는 아버지 같은 너그러움으로 오랜 시간 동안 아내를 타이르고, 그녀는 깊이 뉘우친다. 그런데, 나탕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태워버리면 되지만, 그녀가 나탕에게 보낸 편지들은 어떻게 회수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부부는 플로린을 찾아간다. 플로린은 나탕이 그녀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플로린으로 하여금 나탕의 편지들을 넘겨주게 하기 위해 플로린을 데리고 함께 가면무도회에 가서 나탕이 앙젤리크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격노한 플로린은 펠릭스 부부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나탕의 편지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5만 프랑을 요구한다. 파산 직전에 구제된 나탕은 다시금 사교계에 어울려보려 하지만 앙젤리크는 그를 차버렸고, 소위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냉소적이다. 나탕은 선거에서 겨우 다섯 표를 얻었고, 티예가 선출된다. 그 무렵 앙젤리크와 펠릭스는 이탈리아에서 긴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다.




분석


발자크 특유의 “인물 재등장” 기법에 따라 장차 〈골짜기의 백합(Lys dans la vallée)〉의 주인공이 될 펠릭스 드 방드네스가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다. 또한, 〈세자르 비로토(César Birotteau)〉에 등장하는 페르디낭 뒤 티예도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발자크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들을 “시범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는데, 『인간희극』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등장하는 라울 나탕도 여기서 경제적 관념이 희박한 야심찬 유혹자의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내고 있다. 그는 〈모데스트 미뇽(Modeste Mignon)〉에 등장하는 오만하고 탐욕스런 시인 멜키오르 드 카날리(Melchior de Canalis)와 매우 흡사한 인물이다.


〈이브의 딸〉 서문에서 발자크는 라스티냑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우선 〈고리오 영감〉에서 그 인물이 맡았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라스티냑은 1799년 샤랑트 현의 라스티냑에서 라스티냑 남작과 남작부인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 1819년 파리로 와서 법률공부를 하며 보케르 하숙에서 거처하다가 그곳에서 일명 보트렝이라고 불리는 자크 콜렝과 알게 되고 유명한 의사가 될 오라스 비앙숑과 친교를 맺는다. 그는 델핀느 드 뉴싱겐 부인이 드 마르세에게 버림받게 될 때 그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 부인은 옛 제면업자 고리오 옹의 딸인데 라스티냑는 이 노인의 장례비용을 낸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당시 기혼 여성의 처한 사회적, 교육적 불평등을 다시금 조명한다. 그는 소설의 여주인공과 그녀의 무지몽매함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숙명처럼 보인다.


발자크의 거대한 문학세계는 “프랑스 사회”를 그린 그림이며 분석이다. 발자크는 진정한 힘이 넘치는 상상력과 관찰력으로 당대 사회의 풍속을 그려냈다. 그는 〈이브의 딸〉 서문에서 자신의 문학 창조의 토대인 풍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 사회의 풍속은 다른 모든 나라의 풍속을 넘어선다. 다양한 전형들로 보나, 드라마 혹은 정신을 보나 그러하다. 풍속에서 모든 것이 말해지며, 풍속에서 모든 것이 사고되고, 풍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 작품 배경 : 불어판 위키피디아 번역

▶ 줄거리 : 논문 〈발자크, 『이브의 딸』과 ‘전형’론, 근대적 소설시학 (Ⅰ)〉(임헌,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3년), 야후 〈발자크 인간희극〉 발췌

▶ 분석 : 〈발자크 비평〉(동문선, 조엘 글레즈 저, 이정민 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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