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13권
〈가짜 애인(La Fausse Maîtresse)〉은 1841년에 일간지 《르 시에클(Le Siècle)》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 뒤, 1842년에 《퓌른(Furne)》에서 『인간희극』의 「풍속 연구」 파트의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5개 장으로 구성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발자크는 폴란드 백작 부인 한스카(Hańska)를 수년 동안 사랑했고, 죽기 몇 달 전에야 그녀와 결혼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의 사랑에 대한 연서로써 쓰인 여러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발자크는 한스카 백작 부인과의 지난한 관계를 이어가던 상황이었기에,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진정한 사랑(한스카 부인)을 세상에 숨기기 위한 “가짜 연애”의 필요성을 항변한다. 다소 장황한 문체로 인해 〈황금빛 눈의 소녀(La Fille aux yeux d'or)〉보다 매력과 분위기, 신비로움은 덜하지만, 이 소설은 자신에게 무관심한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의 모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소설은 폴란드 백작 아담 라진스키(Adam Laginski)와 결혼한, 상류 사회의 젊은 폴란드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1835년 프랑스를 무대로 당시 폴란드의 정치적 상황과 결혼 문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담 라진스키에게는 타데 파스(Thadée Paz)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파스는 라진스키의 집사이자 청지기로서 라진스키의 생활 전반에 걸쳐 투자, 말, 부동산 등 자산 관리를 도맡아 모든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파스가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그 역시 엄연한 폴란드 귀족인데 이런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폴란드 전쟁 중에 러시아군에 둘러싸여 폴란드로 퇴각할 당시에 라진스키가 두 번이나 파스의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파스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라진스키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라진스키를 지원하며 그의 그림자로 조용히 살기로 작정했다.
라진스키 백작은 젊은 상속녀 클레망틴 뒤 루브르(Clémentine du Rouvre)와 결혼한다. 결혼 후 클레망틴은 2년 내내 사치와 향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집사인 파스에 대해 문득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파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집안일부터 재정 관리까지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데, 그 솜씨도 뛰어나다. 이 남자는 마치 유령처럼 눈에 띄지 않게 모든 일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그 덕분에 그녀의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껏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파스의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었는데, 바로 그래서 백작 부인은 그의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 날 오후, 예기치 못한 변화가 시작된다. 미스터리한 존재였던 파스가 백작 부인과 마주쳤던 것이다. 도대체 왜 그는 지금까지 몸을 숨기고 살아왔던 것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천성적으로 말주변이 없어서 눈에 띄지 않게 사는 게 낫다고 한다. 애초에 귀족이었던 그가 모든 귀족의 신분과 지위를 포기하고 군인으로 살기로 작정했던 것도 실제로 자신이 사교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작 부인은 그의 이러한 공공연한 열등감이 불쾌하다. 당시의 파리 여성을 구현하는 인물인 클레망틴으로서는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나태하게 살아가는 폴란드 귀족 출신들의 진부한 사회 통념과는 대조적으로 파스가 자발적으로 남편과 집안을 노련하게 건사하는 모습이 건방지고 오만해 보인다. 클레망틴은 결혼한 지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된, 아직은 미성숙한 젊은 여인이었던 게다.
라진스키 백작은 사랑보다 우정을 중시하는 인물로, 남편의 이러한 태도 역시 클레망틴으로서는 언짢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스는 순수하고 의연하며 겸손하고 과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모든 면에서 백작을 능가한다. 말하자면 동화 속 왕자님처럼 매력적이다. 클레망틴은 파스가 은둔하지 않게 자꾸만 그를 불러내려 한다. 하지만 파스는 사교계 생활에는 그야말로 전병이었다. 실로 몹시도 사교성이 없는 사람인 게다. 파스는 꿋꿋하게 백작 부인을 철저히 주인으로서 섬긴다. 백작 부인과 한 지붕 아래 그토록 가깝게 살면서도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남몰래 백작부인에 대한 혼자만의 사랑을 지켜간다.
어느 날 문득 라진스키 백작부인은 파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파스는 백작도 백작부인만큼 사랑하기에 그 어떤 관계도 해치고 싶지 않다. 파스의 성적 매력은 집사 일을 비롯해 여타 활동으로 완전히 승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백작부인이 그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알아챈 뒤로 그는 “가짜 애인”을 만들기로 작심한다. 파스가 이 지뢰밭 같은 상황을 교묘한 전략으로 유연하게 통과해 나가는 과정 덕분에 이 소설은 발자크의 몇 안 되는 위대한 희극들 중 하나로 꼽힌다.
라진스키 백작의 전우로서 심리적 빚을 안고 있는 파스는 백작부인에게 강력한 매력과 사랑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두렵다. 그렇다고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설 생각도 없다. 파스는 매우 진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백작 부인 앞에 서커스 곡마사인 말라가(Malaga)를 애인으로 소개한다. 말라가는 백작부인처럼 상류 사회에 속한 교양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파스의 교제상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백작부인은 이 천박한 여인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정작 말라가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파스가 말라가에게 상당한 돈을 쓰긴 하지만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백작부인은 파스를 내보내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흐르고, 파스가 당시 대규모 군사 작전이 수행되고 있던 코카서스(Caucase)의 러시아 군대에 합류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파스가 대위로 임관해 파리를 떠났다는 소문도 있다. 정말로 그러한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뒤에, 백작부인이 악명 높은 난봉꾼인 팔페린(Palferine) 백작의 꼬임에 넘어가 어리석은 도피 행각을 저지르기 직전에 이른다. 그녀가 이제 막 팔페린 백작의 마차에 오르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갑자기 파스가 나타나 강력한 힘으로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 그녀의 마차로 옮겨버린다. 코커서스 군대는 분명 가짜였고, 파스는 먼발치에서 내내 백작부인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폴란드 귀족 타데 파스는 전우였던 아담 라진스키 백작의 청지기이자 집사가 된다. 이는 〈사촌 누이 베트(La Cousine Bette)〉의 인물인 리즈베스 피셔(Lisbeth Fischer)의 남성 버전이지만, 파스는 친절과 호의로 가득한 인물로, 라진스키 백작의 그늘 아래, 일종의 냉대 속에 살아간다. 백작의 아내 클레망틴 뒤 루브르는 이 이상한 존재에게서 일종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된다. 소소한 집안일 관리부터 재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이 남자는 백작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해도 분명 그 난국을 수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백작과 백작 부인을 동시에 사랑하는 파스는 『인간희극』의 인물들 중에 가장 기묘한 인물이다. 당시 사교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이 작품에는 당시 파리 사교계를 구현하는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디안 드 모프리뇌즈(Diane de Maufrigneuse), 포르탕뒤에르 부인(Mme de Portenduère), 마리-앙젤리크 드 방드네스(Marie-Angélique de Vandenesse)를 비롯해, 〈사촌 누이 베트〉에도 등장하는 플로린(Florine) 등이 그러한 인물이며, 파스의 연인으로 등장해 라진스키 백작의 품을 거쳐 가는 서커스 곡마사 말라가 역시 〈사촌 누이 베트〉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당시 사교계를 반영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 밖의 중요한 인물들은 클레망틴의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인 그녀의 삼촌 롱크롤르(Ronquerolles) 후작, 〈창녀들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도 등장하는, 클레망틴의 숙모 세리지 부인(Mme de Sérisy), 『인간희극』의 다른 작품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세련된 멋쟁이 막심 드 트레이(Maxime de Trailles) 등이다.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