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 마카르 총서 제9권
〈나나(Nana)〉는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9권으로, 1880년 2월에 《조르주 샤르팡티에(Georges Charpentier)》에서 출간되었다. 1877년에 발표된 〈목로주점〉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던 졸라는 〈나나〉를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 더욱 확고한 지위와 명성, 경제적 부를 확보하게 된다.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나나〉의 수익으로 졸라는 파리 교외의 메당에 별장을 구입해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과 〈메당 야화〉를 발간하며 자연주의 시대의 황금기를 이끈다.
〈나나〉는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발표된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주인공 나나는 루공-마카르 가의 원조 할머니인 아델라이드 푸크(Adélaïde Fouque)의 4대손이자 〈목로주점(L'Assommoir)〉의 여주인공 제르베즈(Gervaise Macquart)의 딸 안나 쿠포(Anna Coupeau)이다. 다시 말해 신경증 증세가 있었고 발광증으로 죽은 푸크가 그녀의 외증조모이고, 외증조부 마카르와 외조부 앙투안 마카르(Antoine Macquart)는 모두 알코올 중독자였다. 어머니 제르베즈는 미모의 여성이지만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다. 그녀는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했지만 생활에 지친 나머지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결국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여 굶어죽는다. 나나의 아버지 쿠포와 할아버지 쿠포도 알코올 중독자로, 아버지 쿠포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발광증으로 죽었고, 할아버지 쿠포는 술 마시고 일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처럼 모계와 부계로부터 알코올 중독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나나는 머리가 나쁘고 목소리도 신통치 않았지만 타고난 육체적 매력을 지녔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졸라는 〈나나〉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특히 여주인공 나나를 통해 그 당시 프랑스 정치와 사회적 부패 현상들, 나아가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흥망성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나나〉는 ‘한 사회그룹과 한 문명의 퇴폐와 소멸의 서사시’로, 바로 ‘프랑스 제2제정의 붕괴와 소멸의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저녁 아홉 시, 바리에테(Variétés) 극장에 모인 관객들은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들은 연극 포스터 앞에 서서 일주일 전부터 파리를 점령하고 있는 나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나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나나는 극단 대표 보르드나브(Bordenave)가 그녀의 육감적인 미모에 주목해 〈금발의 비너스〉라는 희가극의 여주인공으로 발탁한 여인이다. 극장 안의 관객석에는 수많은 신문기자, 작가, 증권거래소 직원, 유흥가 여자 등, 파리의 문단, 재계를 비롯한 사교계와 유흥업계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이윽고 개막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기막힌 노래 솜씨에 연기력도 뛰어난 극장의 스타 로즈 미뇽(Rose Mignon)이 먼저 등장한다. 잠시 후 키가 크고 열여덟 살치고는 몸매가 매우 풍만한 나나가 비너스 여신의 하얀 튜닉을 입고 긴 금발을 어깨 위에 늘어뜨린 채 등장한다. 나나는 박자가 맞지 않는 엉터리 노래에다 연기도 서툴렀지만, 남자들은 나나의 굴곡 있는 몸매에 사로잡혀 황홀한 듯 박수를 친다. 나나는 “아무런 재주도 없지만 그건 전혀 상관없고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는 듯” 관객을 향해 태연하게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3막에서 나나는 얇은 레이스만 걸친 알몸으로 등장한다. 전율이 극장 안을 사로잡는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박수갈채도 없었다. 나나는 장밋빛 젖꼭지와 풍만한 엉덩이를 완전히 드러내고 음란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겉으로 점잔을 빼면서도 속으로는 매혹적인 육체에 탐닉하는 위선적인 관객들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나나는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머리카락밖에 없”는 대담한 나체로 태연하게, “당장이라도 남자를 잡아먹을 듯한 강렬한 미소”를 내내 짓고 있었다. “발정 난 짐승처럼 그녀로부터 피어오르는 암내는 더욱더 퍼져서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장면에서 졸라는 나나의 여성으로서의 마력을 철저하게 형상화함으로써 나나가 나중에 파리 사교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흥분하고, 기진맥진하고, 연극의 종결에 신경의 혼란을 일으킨 천오백 명의 관객 앞에서 나나는 대리석 같은 육체와 강한 성적 매력으로 그 모든 사람들을 격파하면서 자기 자신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의기양양했다.”
다음날 아침 열 시, 오스만(Haussmann) 대로의 신축 아파트 3층에서 나나는 아직 자고 있다. 이 아파트는 “겨울을 파리에서 보내기 위해 온 모스코바의 한 부자 상인이 6개월 치의 집세를 미리 내고 나나에게 살게” 해준 아파트이다. 연극의 대성공과는 대조적으로 나나의 일상은 비참함 그 자체이다. 집세가 석 달 치 밀려 집주인은 차압하겠다고 난리였고, 매일 외상값을 독촉하는 상인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웠다. 빚쟁이들의 독촉을 견디다 못한 나나는 몸을 파는 매춘 행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난보다 더 큰 슬픔은 나나의 어린 아들 루이(Louis)였다. 그녀는 열여섯 살에 루이를 낳아 어느 유모에게 맡겼는데, 유모는 루이를 돌려주는 대가로 300프랑을 요구하고 있다. 드디어 오늘 나나는 매춘으로 번 300프랑을 고모인 르라(Lerat) 부인에게 건네 루이를 데려 오게 할 작정이다.
어제 연극의 대성공으로 나나의 집에는 귀족과 부르주아 남자들이 줄지어 방문한다. 나나의 매혹적인 육체에 사로잡힌 그들은 맛있는 먹이를 발견한 쉬파리처럼 나나에게로 몰려든다. 나나는 모조리 귀찮을 뿐이다. 초인종이 연이어 울린다. 급기야 아파트 계단에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이른다. 나나는 모두를 피해 부엌으로 연한 비상계단을 통해 빠져나간다.
뮈파(Muffat) 백작의 아내인 사빈(Sabine) 백작부인이 매주 화요일에 여는 살롱에는 내무부 국장을 비롯해 크사비에 드 방되브르(Xavier de Vandeuvres) 백작, 로즈 미뇽의 애인인 은행가 스타이너(Steiner), 신문기자 포슈리(Fauchery), 그의 사촌 엑토르 드 라 팔루아즈(Hector de la Faloise) 등 사교계 유명 인사들로 가득하다. 뮈파 백작의 저택은 파리의 오래된 부자 동네 미로메닐(Miromsnil) 가에 위치해 있다. 이 저택은 뮈파 가문이 백년도 넘게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고 있는 저택이다. 사빈의 시어머니 뮈파 백작부인은 매우 엄격한 종교적 금욕주의를 생활 속에 엄수하는 인물로, 며느리인 사빈은 이에 순종하는 여성이다. 튀일리 궁전의 시종장인 뮈파 백작은 깊은 신앙심을 갖고 철저하게 종교적인 생활을 해왔으며 자신의 아내인 사빈 백작부인 이외의 여자는 거들떠본 적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뮈파 백작이 부인의 침실에 들르지 않는지가 벌써 2년이다.
살롱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위공(Hugon) 부인이 아들 조르주(Georges)와 함께 들어온다. 맑은 눈에 계집애 같이 생긴 금발의 조르주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이었다. 위공 부인은 공증인의 미망인으로 오를레앙(Orléans) 근처에 있는 그 가문의 오래된 영지 퐁데트(Fondettes)에 은거하는 부인으로, 사빈의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였다. 위공 부인이 어제 저녁에 조르주와 함께 관람했던 바리에테 극장의 연극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 연극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뮈파 백작을 제외한 남자들은 모두 내일 자정에 나나의 집에서 모이자고 소리 죽여 약속한다. 나나가 극장관계자들과 연극을 관람한 사교계 주요 인사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뮈파 백작만이 그녀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포슈리는 사빈 백작부인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집안 분위기에 억눌려 지나치게 빈틈없이 단정한 그녀를 한 번 흔들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나나의 집에 손님들이 모여든다. 로즈 미뇽과 스타이너, 방되브르 백작, 포슈리 등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나 나나가 사는 아파트에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열기에 적합한 부엌과 식당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나나는 귀족들이 하듯이 굳이 자기 아파트에서 파티를 연 것이다. 그러나 식당이 좁아 거실에 테이블을 차린다. 식탁도 너무 작아서 25명분의 식기를 차린 식탁에 무려 38명의 사람들이 비좁게 앉아 식사하게 된다. 나나의 집 식기들은 모두 식당에서 빌려 오거나 짝이 맞지 않는 그릇이다. 이 시장 저 시장에서 끌어 모아 겨우 세트를 맞춘, 서로 짝도 맞지 않는 크리스탈 그릇이나 닳아버린 은식기들도 나나의 부엌세간 살림이 여유롭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실내에는 샹들리에도 없이 희미한 촛불만 켜져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함에도 나나는 이 파티를 통해 돈 자랑을 하며 상류층을 모방하고 있다. 나나는 귀족 안주인처럼 초대 손님들에게 존중받고 감사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의 집은 “아직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벼락부자 집 같음을 손님들을 알아채고, 마음대로 떠들며 식사를 한다. 나나조차도 상류층 안주인들처럼 젊잖게 굴지 못한다. 초대받은 손님들도 식사와 술을 제공하는 나나를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험한 말들을 토해 낸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마치 어느 식당에라도 있는 듯 큰 소리로 말하고 무례하게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처럼 초대받은 손님들조차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질서와 격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데다, 만취한 나나의 모습은 이들에게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만다.
바리에테 극장에서는 이제 34회 공연을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왕세자가 나나를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연극을 관람하러 와서는 막간을 이용해 나나의 분장실을 방문한다. 뮈파 백작이 왕세자를 보필해 함께 방문한다. 왕세자와 뮈파 백작이 갑작스레 분장실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나는 얇은 무명 속옷으로 젖가슴을 반쯤 가렸을 뿐, 아무것도 입지 않는 거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이들을 맞이한다. “종교의식을 엄격히 지키고 계율과 율법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는” 뮈파 백작이 갑자기 벌거벗은 여자 앞에 던져진 것이다. 그는 나나를 악마로 규정하고 이 유혹으로부터 꿋꿋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나의 아름다운 얼굴과 부푼 가슴 곡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뮈파 백작은 욕망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나나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다음 막간에 나나가 왕세자에게 밀회를 약속하는 소리를 들은 뮈파 백작은 분노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나나 혼자 있던 분장실에서 나나의 목덜미에 거칠게 입을 맞춘다. 나나는 그에게 오를레앙 근처에 별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거기로 놀러오라고 유혹한다. 연극이 끝나고, 나나는 조용히 왕세자의 마차에 오른다. 뮈파 백작은 “오늘밤 그녀를 한 시간만이라도 소유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 재산을 팔아치워도 좋을 것 같았다. 그의 젊음이 마침내 눈을 뜬 것이다.”
뮈파 백작은 부인과 딸을 데리고 퐁데트에 도착한다. 아들 조르주만 데리고 혼자 사는 위공 부인이 일주일 동안 묵고 가라고 초대한 것이다. 위공 부인은 스타이너라는 은행가가 천한 여배우를 위해 근처에 땅과 집을 샀다는 얘기를 하며 분개한다. 뮈파 백작은 짐짓 처음 듣는 이야기인 척한다. 식사를 마친 조르주는 두통을 호소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고 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잠가버린다. 그리고는 재빨리 창문을 통해 저택을 빠져나간다.
나나도 그날 저녁 그녀의 별장인 라 미뇨트(La Mignotte)에 도착한다. 결혼 파티라도 열 수 있을 만큼 넓은 식당과 잔디밭을 향해 창문이 난 응접실,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구울 수 있을 만한 화덕을 갖춘 부엌, 루이 16세 스타일로 장식한 침실과 손님방 네댓 개에 다락방까지 갖춘 별장을 보고 나나는 탄성을 연발하며 황홀해한다.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나나는 별장을 둘러싼 채소밭을 보고 흥분해서 비를 맞으며 채소밭과 과수원을 뛰어다닌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채소밭에서 불쑥 조르주가 나타난다. 나나는 비를 흠뻑 맞으며 숨어서 나나를 기다리고 있던 조르주가 불쌍해서 별장으로 데리고 들어가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힌다. 그런데 나나에겐 남자 옷이 없었기에 나나는 자신의 옷을 입힌다. 여자 옷을 입은 조르주가 마치 소녀처럼 귀엽고 예뻐서 나나는 그 모습에 감탄한다. 이 감탄은 곧 욕망으로 바뀐다. 그날 밤 나나는 소년의 품에 몸을 맡긴다.
다음 날 아침 첫차로 나나의 정부인 다그네(Daguenet)와 포슈리가 퐁데트에 왔고, 뒤이어 방되브르 백작도 방문한다. 그리고 사빈의 친정아버지 슈아르(Chouard) 후작도 뒤이어 도착한다. 슈아르 후작은 여자를 좋아하는 난봉꾼으로 유명하다. 위공 부인은 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퐁데트를 방문한 영문을 알지 못했지만, 이들은 모두 나나를 찾아온 불나방들이다. 그러나 다들 각자 다른 이유를 대며 나나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포슈리는 사빈 부인에게 점점 마음이 동했다. 다그네는 뮈파 백작 부부의 딸 에스텔(Estelle)의 지참금이 40만 프랑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환심을 사려 애쓴다. 나나의 뒤를 쫓아온 남자들 중에 가장 열렬했던 것은 뮈파 백작이었다. 그는 오늘 저녁 당장 라 미뇨트로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날 저녁 백작이 라 미뇨트를 향해 가는 동안, 질투에 휩싸인 조르주가 먼저 도착한다. 나나는 조르주만을 사랑한다고 맹세하고는 그를 자신의 방에 숨겨두고 뮈파 백작을 맞이한다. 욕정에 휩싸인 뮈파 백작은 나나를 끌어안으며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나나는 이층에 스타이너가 와 있다며 오늘은 안 된다고 거절한다. 결국 백작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고, 나나는 스타이너에게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댄 뒤 조르주의 품에 안긴다. “남자에 대한 습관적인 태도와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에게 사랑의 꽃이 다시금 피어났다.”
며칠 뒤 나나의 아들 루이제가 도착한다. 나나는 일주일 넘도록 조르주와 루이제만을 사랑하며 지낸다. 뮈파 백작은 매일 저녁 찾아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나나를 방문하느라 오후마다 늘 자리를 비우는 백작 덕분에 사빈 백작부인은 포슈리가 전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시골 분위기에 취해 한껏 친밀해진다.
어느 날, 나나가 초대한 사람들이 도착한다. 라 팔루아즈와 라보르데트(Labordette)를 비롯해 타탕 네네(Tatan Néné), 뤼시 스튜어트(Lucy Stewart), 캐롤린 에케(Caroline Héquet), 마리아 블롱(Maria Blond) 등이 요란하게 마차에서 내린다. 나나는 여자 성주 같은 기분이 들어 우쭐해진다.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고, 한껏 웃어대고, 탄성을 지르며 왁자지껄하다. 다음날 그들은 마차 다섯 대를 동원해 다 같이 수도원으로 소풍을 간다. 매일 밤마다 두통을 호소하며 일찍 잠자리에 드는 조르주를 걱정하던 위공 부인은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퐁데트 앞을 질주해 지나가는 나나 일행의 마차 안에서 나나의 치마폭에 묻혀 있는 조르주를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조르주는 저녁 먹을 시간에 퐁데트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질책을 잔뜩 걱정하며 들어섰지만 다행히 군에 입대한 쾌활한 형 필리프(Philippe)가 와 있어서 간단히 끝났다.
한편, 나나가 라 미뇨트에 있는 동안 바리에테 극장에는 나나의 대역인 비올렌(Violaine)이 성공을 거두었다. 극단 대표 보르드나브는 나나에게 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모두가 나나에게 당장 돌아가자고 압박하지만 나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부르주아 여인 행세를 한다. 나나는 이 무질서한 사람들 앞에서 “부자가 되어 남의 존경을 받게 된 자신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본다. 그날 밤 나나는 드디어 조르주를 저버리고 뮈파 백작을 낚아챈다. 그리고 다음 날로 곧장 파리로 돌아간다.
그 후 석 달 동안 나나는 뮈파 백작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관능의 도취 속에 그를 미치게 했다. 조르주는 위공 부인에게 붙들려 퐁데트에 남아 있었고, 스타이너는 나나로 인해 막대한 돈을 낭비하고 파산을 앞두고 있었다. 뮈파 백작이 나나의 육체적 마력에 빠져서 헤맬 때 그의 아내 사빈 백작부인 역시 신문기자 포슈리의 유혹에 빠져 육체의 쾌락에 눈뜨기 시작한다. 엄격한 종교적 규범과 전통적인 가정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한 뮈파 백작 부부는 육체의 악마에 사로잡혀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고 육체의 쾌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포슈리는 《르 피가로(le Figaro)》 지에 ‘황금 파리’라는 제목으로 나나를 빗댄 기사를 낸다. 4~5대에 걸친 술꾼 집안에서 태어난 묘령의 여자 이야기로, 그녀의 피는 가난과 음주벽의 오랜 유전으로 인해 더러워졌고 신경성 장애 증세를 일으키는데, 뛰어난 육체를 가진 그녀는 “그녀를 태어나게 한 버림받은 사람들과 거지들을 위해 복수를 할 작정이어서, 백성들 속에서 생겨난 부패균이 그녀의 등장과 함께 귀족계급까지 썩게 해,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의 힘이 되고 파괴의 효소가 되어 파리를 썩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뮈파 백작은 이 기사를 읽고서야 비로소 나나로 인해 가정을 파괴하고 골수까지 썩어버린 자신을 경멸한다. 게다가 나나는 백작에게 거짓말을 해대며 극장의 남자 배우 퐁탕(Fontan)의 품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나나와 퐁탕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 있는 건물 5층에 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퐁탕과 사랑에 빠진 나나는 갖고 있던 골동품과 보석 등을 모두 팔아 만여 프랑을 마련한 뒤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야반도주했다. 덕분에 그녀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단박에 정리되었다. 삼 주 동안 나나와 퐁탕은 달콤한 생활을 영위했다. 나나는 거의 외출하지 않고 고립되고 소박한 생활을 즐겼다. 나나를 대신해 그녀의 하녀 조에(Zoé)가 남아 빚쟁이들을 상대했는데, 빚쟁이들이 조에를 통해 나나에게 매춘을 제안해온다. 처음엔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라보르데트가 카롤린 에케를 위해 라 미뇨트를 샀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마음이 상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나는 바리에테 극장의 다음 작품에서 배역을 얻지 못했다. 퐁탕 역시 지금 상영 중인 연극에도, 차기작에도 제외 당했다.
어느 날 밤, 지인이 출연하는 연극을 보고 온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고, 말다툼 끝에 퐁탕은 나나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그날부터 퐁탕은 사소한 일로 나나에게 손찌검을 했고, 습관이 된 나나는 그것을 참아냈다. 퐁탕은 점차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나는 시장에서 우연히 사탱(Satin)을 만난다. 나나와 사탱은 전에 기숙학교 친구였다. 사탱은 마침 나나와 가까이 살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나는 따분할 때마다 사탱의 집으로 놀러간다. 퐁탕에게 진력이 나 있던 나나는 사탱에게 마음을 의지하다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사탱은 나나를 로르(Laure)의 식당으로 데려간다. 그 식당은 백 명 가까운 여자 손님들로 붐비는 소위 레즈비언 바였다. 나나는 그곳이 시궁창보다 더하다고 경멸한다.
퐁탕은 마지막 남은 그들의 전 재산인 7천 프랑을 착복한다. 나나는 퐁탕을 잃게 될까 두려워, 퐁탕에게 일주일 내내 얻어맞으면서도 그에게 비굴하게 매달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나나는 극심한 생활고에 빠져 단 돈 몇 푼이라도 얻기 위해 사탱과 어울려 몸을 팔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라보르데트를 우연히 만난다. 그는 보르드나브가 포슈리의 극본을 상연하는데 나나에게 알맞은 배역이 하나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또한 뮈파 백작의 마음도 돌려놓을 테니 극장에 나오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나나는 퐁탕이 두려워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나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퐁탕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집안에는 젊은 여배우가 퐁탕과 함께 있었다. 그야말로 내쫓긴 것이다. 나나는 울면서 사탱에게 가는데, 사탱 역시 집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쫓겨나 있다. 사탱은 나나를 데리고 싸구려 여관방 하나를 얻는다. 두 여인은 밤새도록 부드러운 포옹과 애무를 나눈다. 그러나 다음 날 매춘부 단속에 나선 경찰에 사탱이 잡혀 가고, 혼자 남은 나나는 르라 부인의 집으로 달려간다.
나나는 바리에테 극장 칸막이 좌석에 앉아 〈귀여운 공작부인〉 연극 연습을 지켜본다. 라보르데트가 나나에게 제안한 배역이 방탕한 여자 역할이라 선뜻 맡기가 망설여져서 일단 작품을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나의 배역은 2막에 단 한 장면에만 등장하는 역할이었다. 잠시 후 뮈파 백작이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라보르데트는 나나에게 분장실에서 기다리라고 귀띔한다. 로즈 미뇽은 나나의 출현과, 라보르데트와 뮈파 백작의 움직임을 보고 모든 것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녀는 현재 뮈파 백작의 정부였다. 로즈 미뇽은 이전에 스타이너도 나나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나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이를 간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미뇽은 나나에 대한 뮈파 백작의 정열을 익히 알고 있기에 괜한 고집을 부리느니 최대한의 몫을 챙기면 된다고 판단한다.
분장실 문을 열고 들어 온 백작은 나나를 ‘부인’이라고 부르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나나는 도박을 해보기로 작심하고, 백작에게 지난 일은 잊고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말한다. 백작은 고통스러워하며 나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나나를 독점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내주겠다고 애원한다. 나나는 돈보다 더 원하는 게 있다며 이번 연극에서 공작부인 역을 맡고 싶다고 제안한다. 처음에 백작은 배역은 자신이 참견할 영역이 아니라고 질색하지만 결국 나나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보르드나브를 찾아가 나나에게 주연을 맡겨달라고 청한다. 백작의 돈이 필요했던 보르드나브는 난색을 표할 뿐,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고 포슈리에게 결정을 떠넘긴다. 포슈리는 경악하며 절대로 안 된다고 일축한다. 문제는 또 있었다. 원래 공작부인 역을 맡았던 로즈에게서 어떻게 역할을 뺏느냐는 것이다. 백작은 포슈리에게 거듭 간곡히 부탁한다. 백작의 시선에서 위협을 느낀 포슈리는 마음대로 하시라고 물러서 버린다. 그들은 미뇽을 부른다. 미뇽은 마누라의 장래를 망쳐놓는 거라고 펄펄 뛰더니 해약금으로 만 프랑을 제시한다. 백작이 이에 동의한다. 로즈는 남편에게 비열하다고 비난한 뒤, 나나에게 덤벼들어 언젠가 꼭 갚아주겠다고 위협하고는 극장을 나가버린다.
한 달 뒤 막을 올린 〈귀여운 공작부인〉은 완전한 실패였다. 나나는 지독히도 연기를 못했다. 그때부터 나나는 극장을 떠나 백작의 애첩으로서 귀족부인으로 사교계에 군림한다.
백작이 나나에게 마련해준 저택은 상류 계층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호화로운 구역인 빌리에(Villiers) 로에 있었다. 퐁탕과의 결별 후 경제력을 통해 자신이 받아 온 무시와 멸시에 대한 앙갚음을 하고자 결심한 나나의 거주공간은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으로 “궁전”같은 분위기였다. 나나의 저택은 층마다 살롱들과 침실들이 여러 개씩 갖춰져 있고 집 한가운데엔 아틀리에와 온실, 앞마당이 있다. 그리고 현관 계단부터 카펫이 깔려 있고 거대한 차양이 드리워진 호화로운 공간이다. 또, “현관 입구부터 오랑캐꽃 향기가 풍기고 노란색, 장미색의 유리창들을 통해 들어오는 연한 금빛 햇살이 넓은 층계”를 비추는 고급스럽고 안락한 분위기이다. 나나는 고용된 가정부, 집사, 마부, 요리사들도 부리며, 마굿간도 여러 개씩 구비하고 있다. 나나의 이 빌리에 저택 또한 이렇게 귀족들, 상류계층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모방한다. 사빈 백작부인이 매주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손님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듯이 나나도 매주 목요일 저녁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한다.
어느 날 아침, 조르주가 불쑥 찾아온다. 위공 부인이 이제 그가 철이 들었다고 믿고 퐁데트를 떠나도록 허락해준 것이다. 그날부터 조르주는 나나의 저택에 머문다. 그러자 위공 부인이 큰아들 필리프 중위에게 도움을 청해 필리프가 나나를 찾아온다. 그러나 나나를 대면한 필리프도 나나의 부와 매력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날부터 매일 나나를 방문한다.
호화로운 저택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따분해 죽을 지경이었던 나나는 어느 날 거리에서 사탱을 발견하고 사탱을 마차에 태워 저택으로 데리고 간다. 그때부터 나나는 그녀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두 여자는 사랑의 속삭임과 키스를 나누며 중단된 유희를 다시 시작한다. 이전에 로르의 식당에서 여성들끼리의 키스를 메스껍게 여기던 나나는 이제는 맛을 알게 된다. 그러나 집안의 편안한 생활에 권태를 느낀 사탱은 발작적으로 저택을 나가 로르의 식당으로 도망친다. 나나가 로르의 식당을 찾아가 다시 사탱을 데려다놓으면 사탱은 또 다시 일시적 사랑을 찾아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결국 나나는 사탱에게 사랑과 선물을 마구 쏟아 부어 그녀를 독점한다. 그러자 사탱의 애인이 앙심을 품고 뮈파 백작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뮈파가 사탱과 나나의 관계에 대해 꾸짖자 나나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라며 “여자 친구들의 이름을 대면서 상류층의 부인들도 다 하고 있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 이후부터 사탱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나의 집에 공공연히 드나들게 된다. 두 여자는 소녀시절에 자기들이 지내온 더러운 생활을 늘어놓아 거기에 모여 앉아 있는 남자들이 낯빛이 변하여 난처한 기색을 띠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두 여자는 명문가의 신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마주 앉아 애정 어린 시선을 교환하며 조금도 수줍은 기색도 없이 아양을 떨면서 완전히 남자들을 무시하고 저희 멋대로 즐긴다. 이제 사탱은 나나의 살롱에 모여 있는 남자들을 욕하면서 그 사람들을 쫒아 보내라고 요구하고 나나와 단둘이 있고 싶다고 한다. 귀찮은 남자들을 쫒아 보내고 두 여자는 서로 몸을 얼싸안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남자들을 조롱하는 폭소를 터트린다.
나나는 어느 날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옛 정부 다그네와 밤을 보낸다. 다그네는 나나에게 백작의 딸 에스텔과의 결혼을 도와달라고 간청하고, 나나는 대신에 결혼식 첫날밤에 동정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6월의 어느 일요일, 불로뉴(Boulogne) 숲에서 그랑프리 드 파리(Grand Prix de Paris) 경마대회가 열린다. 경마가 시작되기까지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각인 정오에 이미 경마장 안은 인산인해다. 온갖 종류의 마차들이 모여들고, 군중이 떠들고 외치는 소리로 소란하다. 푼돈을 걸고 큰돈을 벌어보려는 탐욕으로 미뇽 부부, 스타이너, 라 팔루아즈, 사빈 백작부인과 에스텔, 라보르데트, 위공 형제 등, 알만 한 사람은 모두 모였다. 황실 좌석에는 황후를 비롯해 뮈파 백작과 스코틀랜드 왕자의 얼굴도 보였다.
경마를 기다리는 동안 경마장 잔디밭에서는 점심식사가 벌어진다. 풀밭 여기저기에서 모두들 마차 안에서 먹고 마신다. 나나의 사륜마차 주위로 남자들이 몰려든다. 파산한 보르드나브도 나나를 찾아와 다른 극장을 빌려 연극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나나는 누구에게나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의기양양하게 샴페인을 베푼다.
경마가 시작되고, 군중은 더욱 흥분하고 열기가 고조된다. 파산에 직면한 방되브르가 이 경마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승률이 몹시 낮은 방되브르의 말이 예상외로 승리하자 경기 조작설이 나돌기 시작한다. 막대한 돈을 잃은 마권업자가 사기를 간파하고 심판관 회의를 소집하는 바람에 방되브르는 경마장에서 쫓겨나고 경마 클럽에서도 제적 처분을 받은 뒤 이튿날 마구간에 불을 질러 말들과 함께 자살한다.
어느 날, 나나는 피를 흘리며 화장실에 쓰러진다. 임신 삼 개월이었는데 유산했던 것이다. 나나의 집을 드나들던 열두어 명의 남자들은 모두 자기가 그 애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했다가 결국엔 자기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 태연해진 채 조용히 돌아간다. 백작이 찾아오자 나나는 백작의 아이였다고 주장한다. 백작은 나나를 보더니 오열을 터뜨린다. 나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로즈 미뇽이 포슈리의 주머니에서 뮈파 백작부인이 포슈리에게 보낸 편지를 슬쩍해 백작에게 보낸 것이다. 백작이 편지를 읽고 발끈해서 이혼소송을 벌이길 바라는 의중이었다. 그렇게 되면 파리 시민 모두가 나나에 대해 떠들어댈 테니 말이다. 나나는 부인과 화해하라고 백작을 타이른다.
백작은 최근에 극심한 자금 압박을 받는 상태였다. 백작이 서명한 약속어음을 막아야 했다. 백작부인이 퐁데트에서 돌아온 뒤부터 세속적인 향락과 사치에 취미를 붙여 재산을 탕진한 것이다. 사빈은 남편의 돈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나나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뮈파에게 자금을 받아내 오래된 저택을 개조하고, 실내장식을 개조하고, 지나친 옷치장을 하면서 포슈리와의 불륜관계를 즐긴다. 이러한 사빈의 변화는 딸의 약혼식에서 절정에 이른다. 나나가 백작에게 다그네에 대해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성사시킨 약혼이었다. 사빈은 서둘러 수리를 마친 저택에서 개막식 겸 딸의 약혼식 파티를 치른다. 예전에는 잘 아는 상류계층의 소수들만이 초대되던 뮈파 백작의 저택에 사빈은 마치 나나의 오스만가 아파트 파티에서처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끌어 모아 무려 5백 명을 불러들인다. 나나가 튈르리궁 관계자들이나 상류계층의 사람들만을 빌리에 저택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빈은 이제 귀족, 상류계층 뿐만 아니라 여러 계층 사람들을 마구 초대한다. 사빈은 나나가 상징하던 화류계의 사치스러움과 낭비벽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방은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딸 약혼식 파티에서 흐르는 음악으로 확인된다. 사빈은 〈금발의 비너스〉에 나왔던 저속한 왈츠를 딸 약혼식 파티의 배경음악으로 선곡한 것이다. 노부인들은 백작 부부가 얼마 안 가서 진창에 빠질 거라며 혀를 찼다. 나나도 포슈리도 약혼식에 참석해 백작 부부와 우아하게 인사를 나눈다.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적인 광경에 경악한다. 사실 부부 사이에는 묵계가 이루어졌다. 백작에겐 사빈의 상속재산인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둘 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땅을 팔아 나누어 가지기로 합의하면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던 것이다.
그날 밤, 다그네가 나나의 방에 찾아든다. 중매 수수료로 첫날밤을 바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시간에 쫓기며 즐겼고, 다그네는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저녁, 나나는 조르주의 품에 안겨 있다가 불쑥 찾아온 백작에게 현장을 들킨다. 온갖 아양을 떨며 용서를 구하는 나나에게 백작은 조르주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어차피 나나는 내일이면 또 그를 속일지도 모르기에 이제 나나가 아무리 정절을 맹세해도 곧이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즈음 나나는 “방약무인하게 사치를 부리고 돈에 대한 경멸을 보이며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재산을 탕진했다. “그 저택은 마치 깊은 구렁 속에 세워진 것 같았다.” 한 해 생활비가 무려 100만 프랑에 달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들의 수중에 있는 돈을 동전 한 푼 남기지 않고 몽땅 긁어냈다. 늘 명랑하게 웃는 낯이었던 필리프 역시 나날이 빚이 늘어나는 바람에 날이 갈수록 여위어가며 괴로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나나의 애교와 입맞춤에 도취되어 그녀의 치맛자락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나는 이제 남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르주는 나나가 필리프의 품에 안겨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조르주는 죽기 전에 나나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나의 저택으로 간다. 바로 그 시각에 필리프는 부대의 공금 횡령 혐의로 영창에 감금된다. 그러자 위공 부인도 아들을 위해 증언을 해달라고 나나에게 부탁하기 위해 나나의 저택을 향한다. 그렇지 않아도 빚 독촉에 시달리던 나나는 조르주가 애정을 갈구하자 그만 짜증이 나서는 독설을 쏟아낸다. 절망한 조르주는 화장실로 가서 뾰족한 가위를 집어 든다. 그리고는 나나에게 간곡하게 청혼하다가 순식간에 가위로 제 가슴을 찌른다. 바로 그때 위공 부인이 들어선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너무 놀란 위공 부인은 기진맥진해서, 아직은 심장이 뛰고 있는 아들을 겨우겨우 마차에 싣고 돌아간다. 다행히 조르주는 죽지 않았다.
이 비참한 이야기를 들은 뮈파 백작은 위공 형제의 불행을 자신의 파멸을 알리는 전조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적이 없어졌다는 은근한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나나는 결코 자제할 줄 몰랐다. “마치 속옷을 입지 않고 살도록 태어난 짐승처럼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몸을 맡겼다.” 백작은 나나에게 속고 또 속으면서도 번번이 나나와의 하룻밤 사랑에 무너졌다. 그 무렵 사빈 백작부인은 포슈리를 로즈에게 뺏기고 새로운 남자를 찾아 방황했고, 에스텔은 결혼 후부터 백작이 짐승 같은 여자 때문에 집안을 망치고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다. 궁정에서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겨 사직을 권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비참한 상황의 수치감에도 불구하고 백작은 나나에게서 돌아서지 못했다.
이윽고 백작이 빈손으로 나타나자 나나는 대놓고 백작에게 돈이 없으면 자신을 안을 생각도 말라고 엄포를 놓고는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남자들을 꾀어 관계를 하고는 아침이면 간밤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나는 하인들과도 싸움을 벌여 하인들이 하나 둘씩 종적을 감추었다. 조에만이 자신의 목표 저축액을 아직 달성하지 못해 나나의 곁에 남았다.
백작이 이렇게 굴종하자 나나는 폭군 같은 위세로 타락을 일삼았다. 많은 남자들이 집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여기저기서 백작과 부딪혔다. 질투로 괴로워하는 불쌍한 뮈파 백작은 나나가 사탱과 함께 있을 때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몸을 맡겼다. 그래서 뮈파는 나나에게서 남자들을 멀리 떼어놓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사탱을 장려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나는 몇 달 동안 남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게걸스럽게 털어먹었다. 스타이너도, 라 팔루아즈도, 포슈리도, 나나로 인해 파산하고 파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은 급기야 나나의 침실에서 속옷 차림으로 뒹구는 슈아르 후작을 발견하고야 만다. 절망과 고통에 사로잡힌 백작은 그대로 주저앉아 하느님을 부른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그 시각, 사빈 백작부인은 파리의 어느 백화점 판매부장과 달아나버렸다. 에스텔은 결혼할 때 받기로 되어 있던 백모의 유산 건으로 백작에게 소송을 걸었다.
나나가 얼마 전부터 자취를 감춘 사탱이 몸이 망가져 병원에 몸져누워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날에 조에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으로 조르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나나는 견딜 수 없는 비탄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반항심이 끓어올라, 그 남자들이 모두 파산하거나 파멸한 건 자기 탓이 아니라고 악을 쓴다. “빌어먹을! 그 짓거리를 요구하는 건 남자들인데 욕은 여자들이 먹는단 말이에요! 제기랄! 그들이 그 짓거리에 돈과 몸을 뿌리고 다닌 건 그들 잘못이에요! 나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저택과 가구와 보석과 의상, 속옷까지 모든 것을 비질하듯 팔아버리고 잠적했다. 그녀가 카이로로 떠난 것 같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몇 달이 흐른 7월의 어느 날 저녁, 나나가 파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고모 집으로 갔는데 루이제가 천연두에 걸려 있었다. 이튿날 루이제가 사망하고 돈 문제로 고모와 다툰 뒤 어떤 호텔로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미뇽을 만났다. 나나가 몸을 떨면서 토하려 하자 미뇽이 이를 로즈에게 알렸고, 로즈가 고급 호텔로 나나를 옮겼다. 천연두였다. 미뇽은 물론이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퐁탕도 포슈리도 하나 같이 전염을 두려워하며 나나의 방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로즈만이 나나 곁에서 헌신했다. 뮈파 백작도 와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와 있었지만 역시 전염이 두려워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호텔 앞 벤치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나나가 숨을 거둔다. 뒤이어 도착한 여배우들은 남자들을 남겨두고 모두 나나의 시신을 보러 호텔 방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송장이었고, 피와 고름 덩어리였고, 쿠션 위에 던져진 썩은 살덩어리였다.” “그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얼굴 위로 머리칼이, 그 아름다운 머리칼이 햇빛처럼 찬란한 불꽃을 지닌 채 황금의 개울처럼 흐르고 있었다. 비너스가 썩은 것이다. 시냇가에 버려진 내성 강한 시체에서 그녀에 의해 채집된 바이러스가, 그녀가 민중을 망쳐놓은 그 효소가 그녀 자신의 얼굴로 옮겨와 그녀를 썩게 만든 것 같았다.”
알코올 중독자와 신경증 환자를 조상으로 둔 나나는 자신이 가진 선의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기질과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받아 주변 인물들에게 온갖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은행가 스타이너와 시종장 뮈파 백작뿐만 아니라, 그녀의 육체에 매혹되어 그녀에게 접근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그녀에게 주변에 해독을 끼치는 바이러스 같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에게 매혹되어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결혼해달라고 졸라대는 조르주와 그의 형 필리프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나, 그녀에게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다가 불에 타죽은 방되브르 백작, 망신과 절망을 맛보는 슈아르 후작, 미쳐서 물에 빠져 죽는 푸카르몽 등 그녀에게 접근한 인물들이 모두 그녀의 정념과 낭비와 허영의 제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 뒤에 감춰진 악마성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졸라는 그 악마성이 그녀가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과 주어진 환경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나는 ‘창녀’로, 창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가장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존재이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에서 창녀는 성애화된 근대성의 가장 전형적인 상징이었다. 파리 슬럼가에서 태어나 유명한 고급 창녀이자 사교계 여성으로 신분상승한 나나에 대한 묘사에서, 졸라는 여성성과 근대성의 상호관계를 복합적으로 연구한다. 나나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산물이며, 그녀의 계급이동은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의 작용이다. 그녀는 사회적 상황이 변화한 덕택에 새로운 도시문화의 성애적, 미학적 가능성을 출세에 이용한다. 창녀이자 여배우이며 탐욕적인 소비자인 그녀는 현금거래망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고, 그녀의 사회적, 성적 정체성은 패션, 이미지, 광고 등에 의해 형성되고, 그녀의 도착적인 성적 욕망은 근대도시의 퇴폐와 연결된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또 다른 공공장소 즉 극장, 경마장, 무도회장, 야회장 등에서 군중의 익명성과 문란함은 기존의 사회적 분리를 전복시킨다. 다시 말해 계급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쾌락을 추구하면서 어울릴 때, 공적 영역에서 위계질서는 뿌리째 흔들린다. 따라서 나나는 계급 차이에 대한 결정적인 위협으로 나타나며, 그녀의 육체는 노동자, 부르주아 남성, 귀족들의 정액이 무차별적으로 뒤섞이는 공적 친교의 사적 장소로 나타난다.
나나는 자신을 욕망하는 모든 남성에게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마치 남성들은 그녀가 갈구하는 돈과 상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상품에 대한 그녀의 경멸은 그것을 제공하는 남성들에 대한 모멸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녀를 흠모하는 뮈파 백작이 욕정으로 괴로워하며 무릎을 끊은 채 다른 남자하고 관계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겠다고 할 때, 그녀의 답변은 매우 혐오에 차 있다. 돈에 대한 나나의 경멸은 동시에 남성성의 전통적인 상징으로 간주되는 권위와 위신을 지탱하는 모든 문화적 가치체계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다.
▶ 참고 문헌 : 〈나나〉, 에밀 졸라 저, 김치수 역, 문학동네
▶ 발췌 논문 :
1. 〈『나나Nana』에 나타난 공간과 여성〉, 홍상희(경성대)
2. 〈에밀 졸라의 소설에 나타난 19세기 프랑스 여성의 이미지〉(『목로주점』과 『나나』를 중심으로),
변기찬(부산외대)
3. 〈에밀 졸라와 페미니즘 : 반항하는 여성〉, 서영민(전북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