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백화점

루공 마카르 총서 제11권

by 글섬

작품 배경


〈여인들의 행복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으로, 1882년 말부터 1883년 초까지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연재소설로 발표되었다가 1883년에 《샤르팡티에(Charpentier)》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1864년 10월 초반부터 1869년 2월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백화점을 무대로 전개된다. 제2제정 시대의 상업적 혁신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졸라는 그의 부인이 단골로 다니던 ‘봉 마르셰(Bon Marché)’나 ‘루브르(Louvre)’ 같은 백화점에서 한 달 내내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머무르며 무려 384쪽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백화점 안팎의 모습, 백화점의 혁신적인 건축 양식과 실내장식, 백화점 운영원칙과 다양한 부서들의 기능, 백화점을 움직이는 판매원들과 또 다른 직원들의 업무, 매장들의 분위기와 판매원들 간의 관계, 다양한 쇼핑객들의 모습과 고객과 판매원과의 관계, 당시 백화점에서 행해지던 각종 세일 행사 등이 모두 졸라의 작가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것들이다.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새로운 상업의 전당인 백화점에서 졸라는 당시의 상업과 소비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현상을 간파했다. 전 유럽이 사회개혁과 그에 대한 비전으로 들끓던 대변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산업혁명과 맞물려 발전하기 시작한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발흥에 따른 다양한 현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그 속에는 고객과 판매원의 관계, 판매원들 간의 치열한 생존경쟁, 소비자이자 노동자로서의 여성의 역할,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유행, 패션과 소비문화, 광고와 건축 등의 다양한 삶과 사회의 면모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백화점은 힘차게 태동하기 시작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얼굴인 셈이었다.


프랑스의 앙시앵레짐 하에서는 소매업이 엄격히 나라의 통제를 받았다. 왕정복고기(1814년~1830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소매점의 형태는 ‘부티크(boutique)’였다. 이 소설의 1장에서도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역시 처음에는 부티크로 출발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가 왕정복고기 후반 무렵부터는 당시 유행하던 의류품을 주로 취급하는 ‘마가쟁 드 누보테(Magasin de nouveautés, 신상품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19세기 전반에 등장한 도시 건조물의 하나인, 아케이드형 쇼핑 공간인 ‘파사주(Passage)’는 마가쟁 드 누보테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상업을 이끌어내면서 앞으로 등장할 백화점의 잠재 고객과 소비 행태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공업사회로의 이행으로 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조명을 제공하는 가스등의 발명, 도시 현대화 프로젝트로 새로 뚫린 널찍한 대로들과 승합마차의 등장으로 인해 도심으로의 이동과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백화점의 주 고객층이었던 중상류 부르주아 계층의 경제력이 커지며 잠재구매력이 증가하고, 또한 철도의 확장으로 지방과 파리가 연결됨으로써 백화점의 발달은 더욱더 가속화된다. 그리하여 1852년에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봉 마르셰’가 영업을 시작했고, 1855년에는 ‘루브르’, 1869년에는 ‘사마리텐’, 1893년에는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과 〈살림〉에는 옥타브 무레(Octave Mouret)라는 인물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 두 소설은 서로 연관된 작품이라기보다는 각각 제2제정하의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작품들로 볼 수 있다.



1장


1864년 10월 3일, 드니즈(Denise Baudu)는 남동생 장(Jean)과 페페(Pépé)와 함께 파리에 도착한다. 그녀는 노르망디 지방의 발로뉴(Valognes)에서 판매원으로 일을 하다가 파리로 상경하여 고급직물과 플란넬 상점의 주인인 큰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녀는 파리에 도착하여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백화점을 보고 말문이 막힌다. 백화점에 매료되어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가 된다. 최신 유행의 다양한 천들과 옷들을 진열해 놓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쇼윈도는 이미 발로뉴의 신상품점에서 2년간 판매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드니즈도 넋을 빼앗길 만큼 화려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진열 방식이 여인들을 매료시켰다.” “그 속에 진열된 실크와 새틴, 벨벳으로 된 다양한 천들은 활짝 핀 꽃처럼 부드럽게 떨리는 듯한 색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쇼윈도 안쪽으로는 적갈색을 띤 백색의 브루게 레이스로 된 값비싼 스카프가 제단 보처럼 커다랗게 양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진열돼 있었다. 알랑송 레이스로 만든 스커트 밑단용 장식들은 화환처럼 그 주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백화점 주위를 빙빙 돌면서 떠나기 힘들어하던 드니즈는 한참만에야 큰아버지의 가게로 발길을 옮긴다. 이윽고 큰아버지의 상점 앞에 도착한 드니즈는, “자욱이 먼지가 내려앉은 진열창”“어둡고 음습한 지하 저장고로 통하는 듯” 보이는 상점의 초라함에 놀란다.


어머니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 만에 똑같은 병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스무 살 드니즈는 두 동생의 엄마 노릇을 해야만 했다. 1년 전에 큰아버지 보뒤(Baudu)는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찾아오라는 편지를 보내왔었다. 고향에서 장이 한 귀족 집안의 딸과 추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드니즈는 때마침 장이 일자리를 구하게 되자 동생들을 가까이에서 보살피기 위해 동생들과 함께 파리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큰아버지 보뒤는 막상 조카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기겁을 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새로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드니즈는 그제야 미리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그러나 보뒤 가족은 심성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일단 드니즈와 남동생들을 가게 안으로 들여 식사부터 대접했다. “보뒤 가게는 어둠침침하면서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반면 그 가게 맞은편에 화려한 진열창을 보이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드니즈를 강렬하게 매혹한다. 왠지 모를 막연한 불편함이 느껴지는 큰아버지 가게와는 달리, 드니즈는 거대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갈망을 느꼈다.


보뒤가 드니즈를 위한 일자리를 마련해보려 나선다. 누군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여성 기성복 매장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귀띔해준다. 하지만 보뒤는 백화점은 절대로 안 된다고 펄쩍 뛴다. 백화점 사장인 옥타브 무레가 백화점 확장을 위해 파산에 직면한 보뒤의 가게를 사들이려고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인근 소상인들은 “백화점들이 프랑스의 제조업을 모두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1822년에 들뢰즈(Deleuze) 형제가 처음 문을 열었다. 두 형제 중 큰형이 사망하고, 그의 딸인 카롤린(Caroline)은 직물 제조업자인 샤를 에두앵(Charles Hédoin)과 결혼을 했다. 그 후, 과부가 된 에두앵 부인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아직 조그만 부티크에 불과했을 때(‘부인상회’) 그녀 밑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무레와 재혼을 했다. 그들이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그녀의 숙부인 들뢰즈가 자녀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했다. 카롤린마저 세상을 떠나자, 무레가 유일한 상속인이 되어 백화점의 유일한 소유주가 되었다.


그러나 드니즈는 보뒤의 열렬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불빛을 쏟아내는 백화점에 이끌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보뒤는 자신의 조카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백화점에 흠뻑 매료돼 있음을 감지한다.


2장


아침 일찍 드니즈는 백화점으로 간다. 그녀는 직원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묻다가 백화점으로 들어서는 옥타브 무레를 보게 된다.


무레는 “큰 키에 희멀건 피부, 그리고 벨벳처럼 부드럽고 오래된 금빛을 띤 눈”을 지녔다. 또한 천재적인 사업 수완과 감각, 대담함, 사람들을 압도하는 매력을 지닌 남자였다. 게다가 “모든 여자들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그녀들은 그에게 속했지만, 그는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오만함까지 갖추고 여자를 우습게 보는 남자였다. 시쳇말로 ‘나쁜 남자’의 전형인 셈이다. 무레는 주변 건물 네 채를 사들여 지금의 백화점을 세웠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서 자신의 백화점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자기중심적이고 독재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직업의 명실상부한 전문가로서 직원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한다. 무레는 마구잡이로 백화점 확장을 하고 부족한 자본을 메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자신의 백화점에 투자하도록 부추긴다. 백화점 매장의 수는 39개에 달했으며, 20명의 여성 판매원을 포함한 18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드니즈는 기성복 매장의 수석 구매상 오렐리(Aurélie) 부인을 찾아간다. 오렐리 부인은 너무 허약해 보이고 우울한 낯빛을 띠고 있는 드니즈를 보고 채용을 망설인다. 그러나 때마침 드니즈를 발견한 무레가 드니즈에게 관심을 보인다. 평소엔 무레가 직원 채용에 결코 개입하는 일 없었기에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여성에 대한 타고난 섬세한 감각으로 여성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는 숨겨진 매력을 발견해내는 재주가 있었다. 무레는 드니즈가 건너편 경쟁업자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더니 단박에 채용을 확정하고는, 큰아버지에게 가서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화한 상업 방식”을 설명하고 “고리타분한 옛것만을 고집하다가는 결국 침몰하고 말 것”이라고 전해달라고 당부한다.


3장


데포르주(Desforges) 부인은 토요일 오후마다 지인들에게 차와 다과를 대접한다. 그녀의 응접실의 창문을 열면 튈르리(Tuileries)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곳에 오는 여성들은 모두 무레 백화점의 고객들이다. 그녀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무레에게 백화점 상품들에 대해 질문들을 퍼붓는다. 그녀들의 대화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과 그곳의 상품들, 그곳에서 산 물건들에 대한 것들뿐이다. 그곳의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녀들은 그러나 기질에 따라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인다.


마르티(Marty) 부인은 타고난 낭비벽을 제어하지 못하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무조건 사들인다. 기발(Guibal) 부인은 아이쇼핑을 즐긴다. 매장들을 여러 시간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물건들을 사는 일은 결코 없다. 남편이 생활비를 넉넉하게 주지 않는 드 보브(de Boves) 부인은 백화점의 진열된 상품들을 보면서 언제나 엄청난 욕망에 시달리고,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물건들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보기만 할 뿐이다. 부르들레(Bourdelais) 부인은 현명하고 실용적이며 알뜰한 주부이다. 그래서 백화점들을 두루 다니면서 바겐세일을 하는 상품들만 찾아서 골라 사기 때문에 많은 절약을 한다. 데포르주(Desforges) 부인은 세련되고 안목이 높은 여인이기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단지 장갑이나 모자와 같은 작은 물건들이나 집안에 필요한 린넨 제품들만을 구매한다.


그녀들 외에 지방에서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일부러 상경하는 여인도 있다. 그녀는 부따렐(Boutarel) 부인으로, 마흔다섯 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는 외진 시골에 살면서 몇 달 동안 알뜰히 돈을 모아서 파리에 가끔 올라온다. 그녀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곧장 달려와, 가지고온 돈을 단번에 다써버린다. 그 당시에 우편으로 주문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상품을 직접 보고 만져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일부러 힘든 여정을 택한다. 그녀가 사는 시골에서는 물건들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에 그녀는 파리에 한 번 올 때마다 바늘까지 빠짐없이 거의 모든 물품들을 사간다.


무레는 이런 여자들로부터 부와 쾌락을 얻는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깊이 파악하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 그의 사업의 출발점이다. 자본금을 끊임없이 재투자하고, 싼 가격으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상표에 정가를 표시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믿음을 준다. 백화점은 경쟁적으로 여성의 마음을 빼앗고자 애쓴다. 화려한 쇼윈도로 여성을 현혹시킨 다음, 사시사철 존재하는 바겐세일로 여성을 유혹한다. 백화점은 엄청난 물량의 판매를 통해 사치를 대중화시키고 소비를 촉진한다. 그 결과 가정경제를 파탄내고, 나날이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유행의 광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부추긴다. 여성들에게 관심과 사랑, 친절과 배려를 남발한다. 사랑에 빠진 여왕처럼 백화점에서 군림하는 여성은 백화점에 이용당하여, 과도한 소비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여성을 지극히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레의 상술 뒤에는 여성을 봉으로 생각하는 상인의 잔인함이 숨겨져 있다. 항상 여성만을 생각하며, 언제나 더 효과적이고 더 강렬한, 여성을 소비로 이끄는 유혹의 방법을 고안하는데 몰두한다. 그는 여성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무레는 구 상업의 소상인들이나 발라뇨스와 같은 부류들과 달리 자신의 사업 성공을 위해 온갖 지혜를 다 짜낸다. 그는 철과 유리라는 당시의 새로운 건축 양식, 미끼상품, 눈을 현혹시키는 상품 진열 등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구 상업의 소상인들과는 구별되는 판매 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유혹에 능한 그의 여성 편력은 그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데포르주 부인을 이용하여 아르트만(Hartmann) 남작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 “그는 여자였다.”라는 서술이 말해주듯이 무레는 여자들의 내면을 간파해내는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서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줄 알았다. 따라서 무레의 영업 전략의 핵심은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를 통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무레는 아르트만 남작에게 사업 확장계획을 밝히면서 그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그러니까 여자들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세상을 모두 팔 수 있습니다!”


4장


드니즈가 일하는 매장의 첫 번째 책임자인 오렐리 부인이 엄격한 얼굴로 매장에 들어오면 여성판매원들은 수다를 즉각 그친다. 매장의 여직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녀는 순종적이고 아첨을 잘하는 판매원들에게 호의적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1년에 1만 2천 프랑의 수입을 거두는 오렐리 부인은 새로 온 판매원들에게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여자판매원들은 드니즈에게 조금의 호의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들은 냉정하고 경멸적이고 적대적이다. 경계심이 가득한 그런 태도는 여자판매원들의 급료는 매우 낮고 판매실적에 따른 보너스가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판매원들 사이에 극심한 경쟁과 새로 온 여성판매원에 대한 적대감, 더 많은 판매실적을 이루기 위해서 고객들에게 더욱더 환심을 사고자 하는 행동들이 일어난다. 또한, 백화점에서는 감찰원 주브(Jouve)를 고용해 판매원의 신분, 나이, 거주지, 도덕성, 경력 등을 확인하고, 백화점 내의 직원들도 감시한다.


드니즈는 기본급 없이 판매 실적에 따른 수당과 성과급만을 받는 조건으로 채용된다. 드니즈는 1년에 1200프랑까지 벌 수 있기를 바란다. 능력이 뛰어난 판매원들은 수입을 2천 프랑까지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자 한다. 그러나 처음 입사 때부터 동료 판매원들은 드니즈를 따돌렸고, 이로 인해 그녀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속옷매장 판매원인 폴린 퀴뇨(Pauline Cugnot)만이 그녀를 딱하게 여겨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5장


처음 6주 동안은 밤새도록 신음소리를 내며 뒤척일 정도로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강인한 의지를 지닌 드니즈는 하루가 다르게 강인하고 우직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드니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런 강인한 부드러움에 기인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화점의 속성을 파악하기 시작한 드니즈는 유능한 판매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판매 실적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체계 속에서 그녀가 발휘하는 판매 실력은 매장 동료들의 경악과 분노를 자아내어 그들은 서로 작당해서 그녀의 판매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월급이 없고 판매에 따른 수당도 받지 못하는 신입 여판매원은 백화점으로부터 침실과 구내식당에서 하루에 두 번 식사만 제공받았다. 그래서 당시 여판매원들 중에 몇몇은 생존을 위해서 애인들을 두고, 심지어 매춘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판매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힘들어했다. 당시에 작은 상점의 판매원은 매일 15에서 16시간동안 일을 했다. 드니즈가 머물렀던 백화점 위층에 마련된 여성 판매원들의 거처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만큼 열악했고, 과중한 업무량은 그녀를 무척이나 힘들고 고달프게 했다. 이렇듯 팽배한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주브 감찰관은 유난히 드니즈에게 관대했다. 그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면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심지어는 질책을 면하게 해주기까지 했다.


어느 날부터 드니즈에게 애인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퇴근시간에 맞춰 백화점 앞에 서 있던 남동생 장으로 인한 소문이었다. 파리에서도 장은 번번이 문제를 일으켜서 누나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장은 누나에게서 돈을 받으면 누나의 양쪽 뺨에 열렬히 입을 맞추고는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기본급도 없이 판매 실적으로만 두 남동생을 건사해야 하는 드니즈는 늘 돈 문제로 고민했다. 그런 그녀에게 폴린은 자기나 다른 여성 판매원들이 하듯이 애인을 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드니즈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거절한다.


한편, 10년 전통을 자랑하는 ‘전통 엘뵈프’의 주인인 보뒤는 가문의 오랜 관습에 따라 딸 주느비에브(Geneviève)를 10년간 함께 일한 수석 점원 콜롱방(Colomban)과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보뒤와 그 장인 역시 대대로 그 가게 주인의 딸과 결혼하여 주인의 위치에서 가게를 지켜온 터였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될 때 가게를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뒤의 자존심으로 인해 그들의 결혼은 계속 미루어졌고, 그 사이에 콜롱방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어느 날 드니즈는 콜롱방이 길 건너편의 ‘전통 엘뵈프’ 문간에서 수시로 기성복 매장을 뜨거운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매장 여성 판매원 중 하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드니즈는 사랑에 대한 환멸감을 느낀다.


오렐리 부인을 위시하여 모든 매장 판매원들의 따돌림을 받는 드니즈를 안쓰럽게 여긴 폴린이 어느 날 자신의 애인과 함께 쉬는 날에 야외로 놀러 나가고 제안한다. 늦은 밤에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드니즈는 우연히 무레와 마주친다. 평소와 달리 나들이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고 좋은 향기가 나는 그녀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자신의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드니즈를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다루어오면서, 한 여자가 파리라는 도시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타락해 가는지에 대한 짓궂은 호기심과 그의 세속적인 노련함에서 비롯된 충고를 하기도 했던” 무레는 평범하기 짝이 없으며 나약하고 가냘픈 한낱 시골 처녀쯤으로 여겼던 드니즈가 이 순간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매력적인 여자로 느껴지면서, 그녀에게 연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자 “자신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새가 부리로 자신의 살을 쪼아 먹는 느낌이 들었다.”


6장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라 경쟁이 치열한 백화점에서 드니즈에 대한 따돌림은 무엇보다 비수기의 직원 해고 시 그녀를 가장 긴장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무더운 칠팔 월 두 달 동안 고객이 빠져나가 매장이 텅 비게 되는 여름철 비수기에는 마치 비로 쓸어내듯 무더기로 직원들을 해고하여 그 수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이른다. 고용원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해고 집행자는 해고당한 판매원에게 급료를 정산해주는 회계창구로 가라는 명령을 사정없이 남발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매장의 다른 여성판매원들의 악의로 인해 드니즈에 대한 황당한 추문이 계속된다. 그녀들은 드니즈가 애인과 아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장과 페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드니즈는 또한 감찰원 주브의 복수에 시달린다. 그녀가 그의 애정공세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9개월간 근무한 뒤에 쫓겨난다. 그녀가 백화점 지하에서 돈을 요구하러온 남동생과 같이 있는 장면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1865년 7월 20일 드니즈는 해고를 당한다. 그 시기는 백화점의 비수기로 대량 해고를 하는 시기다. 뛰어난 판매원으로 7년이나 일했던 로비노(Robineau)도 승진을 탐하는 동료들의 압력으로 해고당한다.


7장


아무런 대책 없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닥친 재앙으로 인해 드니즈는 그 후 두 달간 엄청나게 곤궁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백화점이 지척인 부라(Bourras) 영감의 음습한 3층 건물에 값싼 방을 얻은 그녀는 “그녀처럼 해고되어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판매원들만 5천 명이 넘는 실정”에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일거리들을 찾아다닌다. 어린 동생에게 저녁을 주면서 자신은 밖에서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굶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소박한 심성과 온화함, 그리고 남다른 끈기와 정직함을 지닌 그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지킬 줄 알았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어느 날 저녁, 페페를 먹일 음식조차 마련할 길이 없을 때, 가슴에 훈장을 단 남자가 드니즈를 따라온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고 현관문을 세차게 닫아버린다.


부라 영감은 굶어죽을 지경인 드니즈를 위해 자신의 가게에다 일자리를 마련해준다. 실크로 된 양산의 천들을 꿰매거나 레이스를 수선하는 일이었다. 부라 영감은 지팡이와 우산을 취급하는 상인으로, 수선도 하고 손잡이에 조각까지 함으로써 인근에서는 예술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우산과 양산을 파는 매장을 신설한 뒤부터 크나큰 타격을 받아 더 이상 여직공을 부리지 않고 있었다. 파리에서 부라 영감만큼 가볍고 튼튼한 손잡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백화점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파산에 직면해 있었다. 무레가 백화점을 확장하기 위해 거액의 보상금을 제안하며 그의 가게를 인수하려 하고 있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구매상이었던 로비노는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부하 직원의 농간으로 해고당한 후, 무레의 구매 조건에 불만을 품은 한 제조업자의 도움으로 직물 가게를 열게 된다. 그러나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격인하를 단행하는 무레와의 경쟁으로 그는 치명타를 입고 파산에 직면한다.


어느 날 저녁, 드니즈는 거리에서 무레와 마주친다. 무레는 드니즈가 모함으로 인해 해고당한 걸 알고 있다며 유감을 표한다. 무레는 복직을 제안하지만 드니즈는 거절한다. 그녀로 인해 잠시 마음이 뜨거워진 무레는 언제든 복직을 원하면 찾아오라고 말한다.


무레는 부라 영감의 우산 가게를 제외한 인근의 모든 건물을 매입해버린다. 부라 영감은 장인의 자부심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화려한 백화점에 맞서기 위해 가게를 수리하기까지 하면서 대항한다.


8장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대규모의 확장 공사에 돌입한다. 건물 세 곳을 하나로 합쳐 거대한 백화점으로 재탄생하는 공사였다. 무레는 크레디 이모빌리에(Crédit Immobilier)의 회장인 아르트만 남작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 주변 건물들을 몽땅 사들였다. 소상인들은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투쟁에 나서지만 백화점의 위력 앞에 결국 차례차례 굴복하게 된다.


이러한 대혼란 속에서 부라 영감의 누옥은 고집스럽게 요지부동으로 버텼다. ‘전통 엘뵈프’ 역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점점 더 커질수록 점점 더 쪼그라들어 갔다. 인근 상점들의 철거가 시작되면서 사방에 석고 가루가 날리고 건축 자재를 실은 짐수레들이 길을 가로막기 시작하자 가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병약한 주느비에브는 병색이 더욱 완연했다. 그녀는 이미 콜롱방의 변심을 간파하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남편으로 여겨온 남자였기에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배반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사이 로비노 가게에서 일하던 드니즈는 무레의 배려에 의해 1천 프랑의 기본급을 받는 조건으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복직이 확정된다. 때마침 드니즈를 내보내야 할 형편이었던 로비노이지만, 드니즈가 백화점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9장


무레의 끊임없는 구상과 노력 덕분에 그가 내놓는 새로운 판매 전략은 늘 그에게 성공을 안겨준다. 그의 아이디어와 파리 최고의 진열가로서의 능력은 여성들을 환상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무레의 판매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레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광고다. 무레는 여성은 본래 광고에 약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백화점으로 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건물들 담벼락이나 극장의 커튼, 이외에 카탈로그와 신문광고, 포스터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를 성공의 무기로 삼는다. 그 중 신제품을 위한 카탈로그의 일부는 각 언어로 번역해서 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략에 의해 무레는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배하게 되고, 백화점 증축을 통해 더욱 그 규모를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또한 여성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구상한다. 그래서 몸이 약한 여성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우 그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벨벳으로 쿠션을 두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무료 시럽 음료와 비스킷을 제공하는 카페테리아와 독서실을 열고, 화랑을 열어 그림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무레의 이와 같은 영업 전략에 의해 이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과거에 예술과 종교가 채워주었던 갈망과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는 “현대 상업의 대성당”이 되는 것이다.


그는 여성이 값싼 물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필요 없는 상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래서 가격인하시스템을 도입한다. 상품을 신속하게 회전시키기 위해 팔리지 않는 물건들의 가격을 점차 낮추다가 손해를 보고서라도 팔아버린다. 그는 여성의 심리의 약점을 파악하여, ‘반품’ 조치를 고안한다. 그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어느 한 구석도 한가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레는 사람들이 서로 떠밀려 힘들게 백화점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정문 바로 아래에 세일 상품들과 값싼 물건들을 가득 담은 상자와 바구니를 둔다. 그래서 별로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입구를 막게 된다. 그러면 백화점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2월 초부터 드니즈는 백화점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직원들은 친절하다 못해 정중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주브 감찰관마저도 연방 머리를 조아렸다. 어느 날 무레는 드니즈를 사무실로 불러 부수석 구매상 자리를 맡겼다. 드니즈는 보석 하나 없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차림새였지만 그사이 더 세련되어지고, 예전보다 더 섬세하면서도 진중해 보여, “허약하고 하찮아 보였던 예전과는 달리 은밀하면서도 강렬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무레는 수줍어하는 그녀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10장


어느 날 무레는 드니즈에게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드니즈는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한다. 갑작스레 부수석 구매상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드니즈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사장과의 관계에 대한 직원들의 비난과 반감이 난무했지만, 이제는 부수석 구매상이라는 직위의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온화함, 소박한 심성, 이성적인 사고력,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자애로움으로 인해 이제는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까지 생겼다.


드니즈 역시 무레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무레의 자유분방한 여자관계는 백화점의 전 직원이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일시적인 사랑의 상대가 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는 드니즈는, 사랑을 고백하며 그녀가 원하는 만큼 무엇이든 주겠다는 무레의 제안에 “사장님을 다른 사람하고 나눠 가질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지금까지 모든 여자들이 단 번에 넘어왔던 무레는 드니즈의 거절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더욱더 달아오른다.


11장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투자자인 아르트만 남작이 이끄는 크레디 이모빌리에는 행정당국과 계약을 맺고 새로운 길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한다. 이러한 파리 재개발 계획에 의해서 오랜 구역이 철거되고 무레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과 같은 새로운 상업 공간이 형성됨으로써 구 상업의 공간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결국 선행된 죽음, 즉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 미래가 세워지는 것이다.


12장


백화점에는 여전히 드니즈에 대한 온갖 험담과 비방이 난무했지만 이제는 오렐리 부인마저 드니즈의 온화한 성정과 용기와 끈기를 알아보고, 언젠가 수석 구매상인 자신의 지위를 넘볼 수도 있는 드니즈를 향한 호감이 날로 커짐을 느낀다. 바야흐로 드니즈의 세상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 무레는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레는 모든 여자관계를 끊고 외출조차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무레로서는, “용기 있고 밝고 소박한 심성, 그리고 그녀의 온화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미묘한 향기 같은 매력”의 드니즈야말로 “여성으로서 바람직하게 생각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그녀는 아름다운 만큼 지혜로웠고, “가식적인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매력과 멋을 지니고 있었다.” 드니즈를 간절히 원하면서 온갖 애정 공세를 펼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계속 자신을 거부하자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들여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는 것”, 그것만을 원하게 된다. 그가 평소에 여자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생각해본다면 무레의 이런 모습은 지극히 예외적이었다. 무레가 드니즈에게 즐겁고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살 집을 마련해주고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돈도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드니즈는 단호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수많은 여자들 위에서 군림하며 그녀들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왕국을 세우는 데 성공한 무레였지만, 조그맣고 가냘프고 별 볼 일도 없어 보이는 한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느끼고 자신이 이룩한 승리에 혐오감마저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엄청난 부와 성공 앞에서 그 모든 것에 아랑곳없이 오직 한 여자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사랑의 포로가 된 한 남자의 모습은 절절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현재 자신의 평온한 삶을 유지하고자” 했던 드니즈는 무레를 “썩 괜찮은 남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단지 유능한 직원으로서 백화점의 개선과 발전 방향을 조언하는 무레의 정신적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한다.


마침내 드니즈는 신설된 아동복 매장의 수석 구매상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이제 드니즈는 무레에게 새로운 상업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계획들을 제안하면서 직원의 복지향상이 백화점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그러자 무레는 그녀의 의견에 귀 기울여 고객들이 환영할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점차 직원들의 지위도 개선시켜 나간다.


드니즈가 직원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생각하며 몹시 마음 아파했던 대량 해고는 비수기의 휴가를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대체되었고, 마침내는 강제된 실업 상태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거나 퇴직 시에는 연금을 지불하는 공제조합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백화점 직원들로 구성된 직장 오케스트라도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백화점에서 대축제, 콘서트 그리고 무도회를 열어서 고객들에게 음악과 춤을 선사하게 된다. 그리고 직원들을 위한 시설로서 두 개의 당구대와 트릭트 테이블 그리고 장기판이 설치된 오락실, 1만여 권의 책들이 비치된 도서관 등이 설립되었다. 또한 직원을 위한 외국어 및 문법, 산술과 지리학 수업 그리고 승마와 펜싱 강좌도 개설되었다. 그 외에 무료 진료를 위한 의사의 상주, 목욕탕, 뷔페식당, 그리고 미용실 등을 설치하여 직원들이 모든 삶을 백화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모든 것들은 드니즈가 다른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볼 때마다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사이, 만나던 애인과 결혼한 폴린은 임신 사실을 알고 불안에 떨면서 지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규정상 결혼은 하되,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폴린은 임신으로 인해 해고당하는 것을 가능한 늦추기 위해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힘껏 졸라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환이 상자를 들어 올리다가 몸을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임신 사실이 발각돼 그녀는 해고의 대상이 되고 자칫 유산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때 드니즈의 도움으로 폴린은 해고의 위기를 넘기고 직원을 위해 마련된 의무실에서 충격 받은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영진은 “결혼 후 임신한 판매원이 매장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풍속을 거스른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전문 조산사의 보살핌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13장


어느 날 갑자기 콜롱방이 종적을 감춘다. 이로 인해 주느비에브는 죽음에 이를 만큼 병세가 악화된다. 결혼을 당연시 했던 콜롱방은 그 사이 맞은 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판매원에게 눈을 돌리게 되어 외박을 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빚만 늘어가는 ‘전통 엘뵈프’를 내팽개친 것이다. 백화점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속수무책이었던 보뒤의 가게처럼 콜롱방의 배신행위를 그저 불안함 속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주느비에브는 결국 어린아이처럼 쪼그라든 가냘픈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무엇보다 주느비에브의 죽음은 이와 같이 구 상업의 죽음을 의미하고 또한 구 상업의 죽음은 구 파리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느비에브의 얼굴에서는, 파리의 옛 상업과 함께 지하 묘지의 뒤안길로 밀려나 죽어가는 오래된 가문의 몰락의 고통이 엿보였다.” 장례 행렬을 위해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들었다. “동네 소상인들은 주느비에브를 서서히 죽게 만든 원흉이라고 믿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그 책임을 묻는 일종의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파산 공고를 하루 앞둔 로비노가 달리는 마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한쪽 다리만 부러져 살아남는다. 그리고 얼마 뒤 화창한 1월의 어느 날 오후에 보뒤 부인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하여 동네의 파산한 소상인들은 또다시 장례 행렬에 참석해야 했다.” 여러 차례 무레가 제안한 많은 배상금 앞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 했던 부라 영감은 그의 고집스런 투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의 가게가 백화점의 확장 계획으로 헐리게 되자 그와 동시에 자취를 감춰버린다.


드니즈는 소상인들과 무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보려 애를 쓰지만, “이미 사방에서 무너져 내린 구시대의 잔해를 휩쓸고 지나가는, 세기의 광풍에 실린 노동자와 산업 왕국의 승리가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무레는 “단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드니즈 역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과 이성적인 사고력의 소유자이자, “삶을 사랑하고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상거래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14장


무레가 염원하던 백화점 확장이 완성되고 그 기념 개장식과 함께 열리는 백색 대전시회 행사가 열린다. 백색 대전시회는 천부적인 진열 전문가인 무레가 펼쳐 보이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불타오르는 것처럼 강렬한 백색을 노래하는 곳은 중앙 홀이었다. 기둥 주위를 휘감아 올라가는 백색 모슬린 주름 장식 리본과 계단에 늘어뜨려진 백색 바쟁과 피케, 깃발처럼 허공에 매달린 백색 담요, 공중에 길게 늘어진 채 흔들리는 백색 기퓌르와 다양한 레이스는 꿈속의 천상으로, 신비스러운 왕녀가 결혼식을 올리는 눈부신 백색으로 가득한 천국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 보였다.”


열띤 판매 열기로 북적거리는 가운데서도 판매원들은 사장의 연애담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드니즈의 오랜 저항으로 인해 수개월 동안 두 사람의 줄다리기 관계가 이어졌는데, 바로 전날에 드니즈가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드니즈는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쑥덕공론에 휘말리기 싫었고, 무레의 일시적인 사랑이 되기도 싫었다.


백색 대전시회 행사를 마친 날에 무레는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100만 프랑이라는 유래 없는 매출액을 달성한다. 무레는 막무가내로 그만두겠다고 고집하는 드니즈에게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청혼하고, 드니즈는 결국 무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분석


보뒤 가족은 삼대에 걸쳐 직물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해 온 뼈대 있는 소상공인의 삶을 표상한다. 졸라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대량소비의 장소인 백화점의 번영에 따라 그러한 소상공인의 가게들이 점차 몰락해가는 과정 또한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보여준다. 보뒤의 조카이자 백화점의 여점원인 드니즈가 피해자의 편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 이러한 번영과 몰락을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한편으로 문명의 진보에 대한 졸라의 도저한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문명의 진보가 개개인의 인간에게 가했던 실제적 고통 또한 간과하지 않는 것이 졸라의 당대적 윤리 의식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도시 개발과 기계의 소리가 악몽처럼 반복되고 시민들의 이성까지 잃게 만드는 대목들은 십구 세기의 다른 작가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변별성을 갖는다.


졸라는 이 소설의 준비 자료에서 “근대 활동의 시”를 쓰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산업혁명 초반 파리의 도시화의 경이로운 변화들을 배경으로 근대성의 상징인 백화점들의 발전의 주제를 다루면서, “근대 활동의 시”를 쓰는 데 성공한다.


소설 초반에 드니즈는 경제적인 비참함과 그녀에게 적대적인 직장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정신적 비참함이라는 이중적인 장애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상황이 졸라로 하여금 삶의 불안정성과 대결중인 인물의 투쟁정신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의 묘사를 통하여, 졸라는 〈실험소설(Le Roman expérimental)〉에서 표명한 원칙을 사용하고 있다. 적대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살면서 그 한가운데에서 계속 변모해가는 그런 인간을 드러내는 원칙 말이다. 드니즈는 처음에는 월급도 없는 처지에서 출발하여 기성복 매장의 2인자가 되고 아동복 매장의 1인자가 된다. 그녀는 백화점 사장의 달콤한 유혹도 거절하고 단지 끈질기고 성실한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루어낸다. 여성들의 행동들을 타락시키고 변모시키는 공간에서 드니즈는 자신의 진정성을 온전하게 간직한다.


졸라의 소설은 사회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 백화점의 여판매원들의 삶을 정확하게 우리들에게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여판매원들이 남판매원들보다 훨씬 수가 적었다. “르 봉 마르셰”는 182년 250명의 직원들이 있었는데 여판매원은 152명이었다. 백화점에서 소수인 여판매원들은 일하는 여자들의 범주에서 명확히 성격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노동녀들도 아니고, 부르주아도 아니며 대개는 지방에서 올라온 미혼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여성들의 질투를 일으키며,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래서 백화점의 평판을 중요시하는 백화점 사장들은 여성직원들의 품행을 엄격하게 감시했다. 파리의 친척들 집에 숙박할 수 없는 여판매원들은 백화점의 다락방들에서 거주했다.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는 졸라가 묘사한 것과 닮은 50개의 방들에서 여판매원들이 거주했다. 여판매원들은 자기 방에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 안에 귀가해야 했다. 매우 엄격한 수위가 여판매원들이 이런 규칙들을 잘 지키는지 감시했다. 그런 규칙들을 어기는 여판매원들은 해고되었다. 여판매원들은 백화점이 제공하는 검정색 비단 원피스를 입었다. 사치스런 옷감인 비단은 가난한 젊은 처녀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것이 드니즈가 그 천으로 된 옷을 입을 때 어색해한 이유이다.


졸라는 일하는 여자들, 특히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자상인들, 큰 공장들이나 큰 상점들을 혼자서 운영하는 미망인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런 여자들이, 작은 지방 도시 한 구석 자신의 집에서 유폐되어 사는 부인이나 한가한 부르주아 여성들과 대립되는 근대 여성의 타입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이며, 졸라에게는 근대성의 신호인 드니즈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옹호한다. 그녀의 존재와, 졸라가 준비 자료에서 밝혔듯이 “착취당하는 여성 앞에서 사랑받는 여성의 승리”를 사람들이 지켜보게 되는 행복한 결말을 통해서, 졸라는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상업형태의 모순과 해악을 뒤로 하고 근대성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 참고 문헌 :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에밀 졸라 저, 박명숙 역, 시공사

▶ 참고 논문 :

1. 〈장소의 탄생: 에밀 졸라와 백화점〉, 이찬규(숭실대)

2. 〈에밀 졸라의 작품 『부인들의 행복백화점』에 나타난 인적자원 관리〉, Réjane Filon(경성대)

3. 〈『여성들의 행복을 위하여』(Au Bonheur des Dames)에 나타난 근대성과 여성〉,

손경애(덕성여대)

4. 〈Emile Zola의『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나타난 자연 생성의 신화〉, 이정옥(호서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 큰 따옴표 안에 색깔 표기된 문장은 참고 문헌 역자의 번역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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