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 한용택 옮김
〈비곗덩어리(Boule de Suif)〉는 1879년에 집필된 소설로, 1880년 1월에 에밀 졸라(Emile Zola)를 위시하여 위스망스(J.-K. Huysmans), 세아르(Henry Céard), 에니크(Léon Hennique), 알렉시스(Paul Alexis), 모파상 등 6명의 젊은 작가들이 센강 좌안의 메당 별장에 모여 문학적으로 교감했던 일명 ‘메당파’에게 먼저 공개되었다.
보불전쟁이 프랑스의 참패로 끝나고 나서 10여년이 흐른 뒤인 1880년에 메당파는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민감한 주제였던 1870년의 보불전쟁을 테마로 삼은 단편들을 써서 묶어내기로 의기투합했는데, 국수주의가 득세하던 당시에 과장된 애국적 감정과 프랑스 국민의 용맹성으로 덧칠되어 있던 전쟁을 보다 사실주의적인 시각에서 조명해보려는 의도였다. 그리하여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는 1880년 4월 15일에 출간된 단편모음집 〈메당 야화〉에 수록되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여러 모파상 단편집에 재수록되었다.
1870년 보불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20세였던 모파상은 군대에 소집되어 자신의 눈으로 생생하게 전쟁을 목격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출세작이며 걸작인 〈비곗덩어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비곗덩어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실재 인물로서, ‘비곗덩어리’란 이름으로 루앙에서 널리 알려진 창녀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 역시 실화이다.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와 위선을 그린 이 소설은 프로이센군에 점령된 루앙(Rouen)으로부터 떠나는 합승마차 안에서 생긴 일을 그린 작품으로, 뚱뚱해서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이 붙은 창녀가 합승객의 희생자가 되어 프로이센 장교에게 몸을 맡기는데, 일이 끝나자 합승객은 절박한 고비에서 구조를 받은 은혜도 잊고서 그녀를 경멸하고 멀리한다는 이야기이다.
며칠 동안 패잔병의 무리가 줄을 이어 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혼이 다 빠지고 녹초가 되어 금방이라도 피로로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대열도 없고 군기도 없이 걸어갔다. 프러시아군이 루앙 시내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장안에는 무한한 고요와 무서운 기다림이 내려앉았다.
프랑스 군대가 지나간 그 다음날 오후에 여기저기서 프러시아군이 들어왔다. 집집마다 프러시아군 분대가 점령했고, 거리마다 프러시아군들이 우글우글했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시민들은 평상시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프러시아군이 불굴의 규율로써 장안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딱히 잔인한 살상이나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기에 시민들은 점차 대담해졌고, 상인들은 다시금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 중 몇몇 상인은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는 르 아브르(Le Havre)와 큰 거래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친분이 생긴 프러시아군 장교의 힘을 빌려 디에프(Dieppe)까지 가는 커다란 합승 마차를 운행하는 허가를 얻어냈다. 육로로 디에프까지 가서 거기서 배로 르 아브르 항구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마차는 화요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전 네 시 반에 마차에 오르기로 예약된 탑승객들이 모두 모였다. 전날 오후부터 끊임없이 내리는 눈으로 거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은 승객들이 마차에 올라 자리를 잡자 마차는 이내 길을 떠났다.
얼마쯤 지나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고, 눈발도 그쳤다. 제일 안쪽 구석 좋은 자리에는 술 도매상인인 루아조(Loiseau) 부부가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자고 있었다. 키가 아주 작고 배는 풍선처럼 튀어나온 루아조는 포도주 상점 점원 출신으로 지금은 거상이 된 인물로서, 아주 교활하고 짓궂은 전형적인 노르망디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뚱뚱한 그의 마누라는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크고, 결단력 있는 여인으로, 남편의 가게 일을 명쾌하게 처리했다.
루아조 부부의 바로 옆에는 방직업계의 거물이자 지역 정치가이기도 한 카레 라마동(Carré-Lamadon) 부부가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그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지방의회의 의원이기도 했다. 남편보다 훨씬 나이가 젊은 그의 아내는 루앙에 파견되어 주둔하고 있는 상류층 장교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었다.
이들 부부 옆에는 위베르 드 브레빌(Hubert de Bréville) 백작 부부가 자리했다. 백작 부부는 노르망디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귀족가문 사람이었다. 위베르 백작은 카레 라마동과 함께 지방의회 의원이었다. 백작 부인은 한때 루이 필립의 한 왕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여자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귀족들에게 환영받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태도가 훌륭했고, 루앙에서 제일가는 그녀의 살롱은 출입이 쉽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브레빌 백작 부부의 연금은 자그마치 오십만 프랑에 달했다.
이들 세 쌍의 부부는 모두 루앙 사회의 교양 있는 신사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마차의 맨 안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연금으로 안온하게 지내며 권력과 종교와 도덕심을 갖고 있는 사회의 특권 계급에 속하는 훌륭한 사회 인사들이었다.
우연찮게도 여인들이 모두 마차의 한쪽 자리에 모여 앉아 있었는데, 백작 부인의 옆으로는 두 명의 수녀가 자리했다. 부르주아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지주인 가톨릭 종교를 대표하는 수녀들은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두 수녀의 맞은편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코르뉘데(Cornudet)라는 공화주의자로, 사회 지배층에게는 위협적 존재인 소위 민주 투사였다. 그는 혁명을 위해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상당한 재산을 탕진한 뒤, 소비한 돈에 응분한 자리에 앉기 위해 공화국이 되기를 끔찍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세상이 매춘부라고 부르는 종류의 인물이었다.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여자는 몸 전체에 비계가 생기도록 토실토실 살이 올라 있었는데, 그 팽팽한 피부와 소담스런 목덜미로 인해 남성들의 욕정을 돋우어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눈썹이 짙고 길며 두 눈이 몹시도 까만 그녀의 얼굴은 빨간 능금 같았고,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았다.
여자를 알아본 부인들 사이에는 귓속말이 오갔다. 세 명의 부인들은 매춘부와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금세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고, 세 명의 남편들 역시 코르뉘데의 눈치를 보느라 의기투합하게 되어 이런저런 돈 이야기로 서로 친근감과 우의를 느꼈다.
눈길에 엉금거리는 마차는 정오가 되어도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던 토트(Tôtes)에 도착하지 못했다. 한 시를 넘기자 승객들은 허기로 인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마침내 세 시가 되었을 때 비곗덩어리가 좌석 밑으로 몸을 굽히더니 커다란 바구니 하나를 끌어냈다. 바구니 안에는 통닭 두 마리와 파이, 과일, 그리고 과자 따위가 담겨 있었다. 사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해왔던 터였다. 여자는 미리 칼질이 되어 있는 닭의 날갯살 하나를 집어 빵 조각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음식 냄새가 퍼지면서 더욱 고통스러워진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맹렬히 여자를 멸시했다.
그러나 루아조만은 여자에게 사려 깊은 판단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여자는 그에게 닭 한 점을 권했고,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여자는 이번에는 수녀들에게 음식을 권했고, 수녀들 역시 사양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루아조의 아내와 코르뉘데도 거절하지 못하고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이때, 라마동의 젊은 아내가 한숨을 내쉬더니 의식을 잃었다. 그러자 수녀가 비곗덩어리의 포도주잔을 그 부인의 입술에 대어 술을 몇 방울 마시게 했고, 부인은 이내 눈을 떴다. 공복으로 인한 증상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루아조가 마차가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내일 정오에도 토트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이 말에 백작 부부와 라마동의 부부도 점잖은 척하며 비곗덩어리의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다 함께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화제는 자연히 전쟁이었다. 승객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프러시아군이 주둔한 루앙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었기에 프러시아군에 관한 이런저런 체험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곗덩어리도 자신이 루앙을 등지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프러시아군을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는데, 급기야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숙박하러 온 프러시아군의 목덜미에 달려드는 바람에 피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어느새 바구니는 깨끗이 바닥을 드러냈다. 밤이 되어 어둠이 깊어지며 마차 안은 이제 칠흑 같이 어두워져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비곗덩어리와 코르뉘데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있는 듯하더니 코르뉘데가 소리 없이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이윽고 토트에 도착했다. 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 여관 앞에 멈춰 섰을 때 프러시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객들은 공포로 마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남포를 든 마부와 함께 나타난 프러시아군 장교 하나가 다들 마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부인들과 수녀들이 순종하는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비곗덩어리는 내심 분개해 반항적인 대도로 맨 나중에야 내렸다. 모든 승객이 여관 식당으로 들어갔고, 프러시아군 장교는 승객들의 이름과 직업 등을 일일이 기입하고 사령관의 서명이 있는 출발 허가증과 비교해가며 오랜 시간 동안 조사했다. 그런 다음, 결국 아무 일 없이 프러시아군 장교가 돌아갔다.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모두가 식탁에서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여관 주인인 폴랑비(Follenvie)가 들어와 엘리자베스 루세(Élisabeth Rousset)를 찾았다. 비곗덩어리의 이름이었다. 폴랑비는 프러시아군 장교가 그녀를 찾는다고 전했다. 비곗덩어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백작이 그녀에게 프러시아군 장교의 명령에 반항했다가는 그녀의 동행인들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일단 가보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모두가 나서 그녀를 설득했고,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폴랑비를 따라 나갔다.
모두가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십여 분 뒤 비곗덩어리는 잔뜩 흥분해서는 장교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장교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모두가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든 사이에 루아조는 복도에서 나는 수상쩍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열쇠 구멍으로 살펴보니, 코르뉘데가 비곗덩어리에게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옆방에 프러시아군 장교가 묵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자 창녀의 애국적인 정성에 부끄러워진 코르뉘데는 발소리를 죽여 제 방으로 물러갔다.
다음 날 아침 여덟 시에 승객들이 모두 마차로 모여 들었다. 출발 예정 시각이었다. 그러나 마차엔 말이 매어져 있지 않았고, 마부도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마부를 찾아냈을 때 마부는 어젯밤에 프러시아군 장교가 출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남자들이 나서서 장교를 찾아갔지만 폴랑비 이외엔 만나지 않겠다는 전언만 들었다. 열 시에 나타난 폴랑비는 장교가 자신의 명령 없이는 출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전했다. 백작과 카레 라마동, 루아조가 다시 한 번 간청해 어렵사리 장교를 대면했을 때 프러시아군 장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안하무인 격인 태도로, 출발하면 안 된다고만 말한 뒤 그들을 돌려보냈다.
모두들 식당에 모여 앉아 온갖 불안스런 망상으로 두려움에 떨며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자 불안감은 더해갔다. 폴랑비가 들어오더니 비곗덩어리에게 프러시아군 장교가 아직도 생각이 변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파랗게 질려 흥분하더니 절대로 싫다고 외치듯이 답했다. 그 장교가 비곗덩어리를 원했던 것이다. 그제야 장교의 의중을 파악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비열한 군인을 비난하고 분개했다.
다음 날에도 마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아침식사는 몹시 우울한 분위기였다. 이제는 다들 그녀가 밤새 장교를 조용히 찾아가서 길동무들을 위해 희생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심 그녀를 원망했지만 아직은 차마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 다음날이 되자 승객들은 서서히 초조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인들은 비곗덩어리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승객들은 모두 모여 앉아 대놓고 그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루아조 부인은, 루앙에서는 마부에게까지 몸을 내줬던 여자인데다 어차피 창녀인데 굳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비싸게 굴 필요가 뭐 있느냐며 속된 근성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내들은 은근한 표현을 골라 음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을 싸서 두른 정숙이라는 얇은 판자는 기껏해야 표면을 덮었을 뿐이므로 그들은 이 음란한 이야기에 기분이 달아오르며 마음속으로 미칠 듯한 쾌감을 느꼈다.
이윽고 비곗덩어리가 돌아오자 부인들은 그녀를 둘러싸고는 전쟁 중에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적군에게 희생한 여인들의 일화를 늘어놓으며 에둘러서 그녀의 희생을 촉구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또 다시 폴랑비가 나타나더니 비곗덩어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녀 역시 똑같이 단호한 어조로 거절해버렸다. 모두가 절망했다.
그러자 이번엔 수녀들이 나서서 하느님은 동기만 정결하다면 그 어떤 행위도 용서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모두가 교묘하게 단정한 옷을 두르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에 백작 부인이 산책을 제안해 모두가 마을을 거닐 때, 미리 작정한 것처럼 백작이 비곗덩어리의 팔을 붙잡고는 고압적이면서도 친밀한 어조로 그녀를 끈기 있게 설득했다. 산책에서 돌아온 그녀는 곧장 제 방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식사 시간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폴랑비가 들어와 그녀가 몸이 편치 않아 식사를 거를 거라고 말하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심지어 축하주까지 마시며 기뻐했고, 취기가 오르자 차차 음란한 상상으로 그 프러시아 부랑자가 그녀를 죽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둥, 음담을 늘어놓으며 기쁨을 누렸다. 오직 코르뉘데만이 한 마디 말없이 생각에 깊이 잠겨 있다가 성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모두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치고는 제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루아조가 며칠 전에 한밤에 열쇠 구멍을 통해 보았던 복도의 상황을 떠들어댔고, 루아조의 이야기에 부인들까지도 미친 사람처럼 포복절도했다.
다음 날 아침, 마침내 마부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희색이 만연하여 남은 여정을 위한 음식을 부지런히 싸고 있었다. 잠시 후 비곗덩어리가 나타났다. 그녀가 약간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듯이 승객들 무리로 다가가자 부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해 버렸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모두들 매우 바쁜 사람들인 냥, 마치 그녀가 무슨 병균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한 듯,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듯하였다. 그녀와 자리가 멀었던 루아조 부인은 낮지만 분개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저 여자 옆자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속삭였다.
마차가 출발했다. 비곗덩어리는 그들의 위선에 속아 프러시아 장교의 품에 자신의 몸을 더럽힌 데 대해 굴욕감을 느끼며 치를 떨었다.
길을 떠난 지 세 시간이 지나자 다들 허기를 느꼈다. 각자 보자기를 하나씩 꺼냈지만, 잠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나 나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준비할 경황이 없었던 비곗덩어리만은 빈손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았고, 조용히 각자 준비한 음식을 그저 평화롭게 먹고만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바라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며칠 전에 그녀가 준비한 바구니의 음식들은 식충처럼 먹어 없애 버렸던, 이 겉보기에 점잖아 보이는 몰염치한들의 경멸 속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자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는 얼굴을 똑바로 든 채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면서 똑바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루아조의 부인이 승리에 찬 무언의 웃음을 띠고는 이렇게 수군댔다. “제 수치를 생각해서 우는 거예요.”
식사를 마친 코르뉘데가 난데없이 프랑스 국가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모두가 뭔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코르뉘데는 휘파람을 멈추기는커녕 이따금씩 가사까지 불러 젖혔다. “아아, 조국에의 거룩한 사랑이여, 이끌어 받들어다오. 우리에게 복수의 손길을! 자유여, 사랑하는 자유여, 그대의 수호자와 함께 싸워라!”
이제는 도로 위의 눈이 굳어진 덕에 마차는 조금씩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코르뉘데는 디에프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고집스럽게 휘파람을 불었고, 승객들은 그 노래의 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복수심에 찬 단조로운 노랫가락 사이를 뚫고 비곗덩어리의 흐느낌도 멈추지 않았다.
〈비곗덩어리〉는 모파상 문학의 대부인 플로베르가 모파상이 보낸 교정쇄를 읽자마자 “걸작”이라고 감탄하며 작품의 불멸성을 예언했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고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짧은 듯한 이 소설에는 수많은 장면들과 다양한 모티프들이 등장한다. 모티프들을 변주하여 반복하고 서로 화답하게 하는 가운데, 정교하게 장면들을 잘라내고 배치하고 연결하면서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구조물이 풍성한 울림에 감싸인 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요컨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거나 무의미한 구성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분명한 기승전결을 따라서 수미일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단편에서, 인물, 묘사, 대화, 크고 작은 에피소드 들은 내적 필연성의 탄탄한 논리 위에서 부르주아의 위선이라는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모여든다.
모파상은 도입부에서 패주하는 프랑스 군대에 대한 풍자적 묘사를 통해 보불전쟁이라는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제시한 후, 프러시아군에게 점령당한 루앙에서 벗어나 아직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는 르 아브르로 가기 위해 합승마차에 몸을 싣게 된 다양한 계층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로 넘어간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루앙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귀족, 부르주아, 민주 투사, 창녀, 수녀 등 다양한 계급 출신으로 등장인물들을 구성한다. 제각각의 이유로 여행에 나선 이들은 목적지에 가닿을 때까지 한 공간에서 부대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이처럼 한정된 공간배경과 시간배경 안에 몰아넣은 뒤, 주인공 창녀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요구하는 프러시아 장교를 등장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갈등국면을 조성한다. 프러시아 장교의 요구를 거부하려는 사회 최하층인 창녀의 자존심과 애국심, 그리고 허울뿐인 애국심을 재빨리 내던지고 개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프러시아 장교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력을 넣는 상류층 인사들의 위선이 맞부딪히면서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모파상은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니라는 역설을 통해 ‘비곗덩어리’라는 창녀에게 불가촉천민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부여한다. 합승마차의 좌석배치마저도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 속하는 비곗덩어리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남자들의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그녀의 직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아울러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참고 문헌 : 〈비곗덩어리〉, 모파상 저, 한용택 역, 우물이 있는 집
▶ 발췌 논문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번역비평 시론〉, 정혜용(고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