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의 아빠

1879년 / 최정수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시몽의 아빠(Le Papa de Simon)〉는 1879년 12월 1일에 정치, 문학, 철학, 과학, 경제 잡지인 《레포름(La Réforme)》에 발표된 소설로, 이후 1881년에 첫 단편집 〈메종 텔리에(La Maison Tellier)〉에 수록되었고, 1889년 3월 17일에는 문예 일간지 《랑테른(La Lanterne)》에 재수록되었다.



라 블랑쇼트(la Blanchotte)의 아들 시몽(Simon)이 처음으로 학교에 온 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라 블랑쇼트라는 여자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라 블랑쇼트를 약간 멸시하거나 동정하는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시몽은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나 강가를 뛰어다니지 않고 항상 집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몽에 대해 전혀 몰랐다.


대략 일고여덟 살쯤 먹은 시몽은 안색은 다소 파리했지만 차림새는 매우 깔끔했고, 수줍은 나머지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아이들이 시몽을 둘러쌌고, 아이들을 주동하는 한 아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시몽에게 이름 말고 성이 뭐냐고 물었다. 시몽이 이름 말고는 답을 하지 못하자 아이는 시몽에게는 아빠가 없어서 성도 없는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빠가 없을 수 있다니, 아이들은 시몽이 불가사의한 존재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에 놀란 시몽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시몽이 위축될수록 아이들은 아빠가 없다고 놀려댔다. 그러자 시몽은 한 아이의 머리끄덩이를 잡고는 다리를 걷어찼고, 순식간에 두 아이는 뒤엉켰다. 시몽은 분해서 눈물이 났다. 시몽의 눈물을 본 아이들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아빠가 없대!”를 외치며 시몽을 빙 둘러싸고 춤을 추듯이 돌았다. 너무나 화가 난 시몽은 발밑에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주워 아이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흥분한 시몽이 거칠게 돌을 던지자 아이들은 질겁해서 도망쳤다. 마침내 혼자 남은 시몽은 일주일 전에 강물에 몸을 던진 걸인을 떠올리며 강물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가에 도착한 시몽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에 시몽은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울음을 그쳤다. 그러다 다시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러니 역시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시몽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시몽의 어깨를 짚으며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시몽이 뒤를 돌아보자 턱수염을 기른, 키가 큰 남자가 다정하게 시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몽이 아빠가 없다고 아이들이 놀렸다고 답하자 남자의 얼굴은 일순 심각해졌다. 남자는 시몽이 라 블랑쇼트의 아들이라는 걸 눈치 챘다. 남자는 시몽에게 아빠를 하나 만들어줄 테니 함께 엄마한테 가자며 미소 지었다. 남자는 시몽의 손을 잡고 시몽의 집을 향해 갔다.


이윽고 시몽의 집에 도착해 시몽이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자 키가 크고 창백한 라 블랑쇼트가 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일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라 블랑쇼트는 이 고장에서 가장 예쁜 여자였다. 시몽이 엄마의 목에 매달려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아이들이 아빠가 없다고 놀리며 때려서 강물에 빠져 죽고 싶었다고 칭얼대자 그녀의 붉은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갑자기 시몽이 남자에게 달려가더니 아빠가 되어주시겠냐고 물었다. 라 블랑쇼트는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남자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시몽이 만일 거절하면 다시 강물에 가서 빠져 죽겠다고 위협했다. 시몽의 말에 웃음이 터진 남자는 그저 농담처럼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시몽은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이름을 댈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시몽에게 남자는 필립(Philippe)이라고 알려주었다. 남자의 이름은 필립 레미((Philippe Rémy)였고 대장장이였다. 필립은 안도한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두 팔을 벌린 시몽을 번쩍 안아 올려 두 뺨에 입을 맞춘 뒤, 성큼성큼 걸어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학교에서 시몽은 심술궂은 웃음을 지으며 모여든 아이들에게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빠의 이름이 필립이라고 외쳤다. 아이들은 하루 만에 아빠가 생긴 시몽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도전적인 시선을 던졌지만, 더 이상의 괴롭힘은 없었다.


이후 석 달 동안 필립은 라 블랑쇼트의 집 근처를 자주 지나다녔다. 이따금씩 창가로 그녀가 바느질하는 모습이 보이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걸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절대로 그와 함께 웃거나 그를 집 안으로 들이는 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는 라 블랑쇼트에 대한 추문이 파다해졌다. 시몽은 필립을 무척이나 따랐다. 학교가 파하면 매일 저녁 필립과 함께 산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맨 처음 시몽을 괴롭혔던 아이가 시몽에게 와서 시몽의 아빠가 시몽의 엄마의 남편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시몽의 아빠는 아닌 거라고 말했다. 온종일 심각한 고민에 빠진 시몽은 학교가 파하고 곧장 대장간으로 가서 필립에게 그 아이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대장간에서 일하던 동료 대장장이들도 모두 심각해졌다. 라 블랑쇼트에게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있었고, 그에게서 버림받았지만 홀몸으로 꿋꿋하게 아이를 키우며 교회 말고는 일체 외출도 하지 않고 눈물 속에서 반듯하게 살아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들은 그녀가 교양 있는 신사에게 어울릴 만한 여자라고 입을 모았다. 필립은 시몽을 집으로 보내며 그날 저녁에 어머니를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일렀다.


그날 밤, 이미 하늘에 별이 총총한 시각에 필립이 시몽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일요일에 입는 외투에 깔끔한 셔츠를 차려입고 턱수염까지 말끔히 다듬은 모습이었다. 라 블랑쇼트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며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필립은 대뜸 그녀에게 청혼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녀를 지나쳐 방안으로 들어가 침대 속에 누운 시몽을 붙잡고는, “이제 친구들에게 네 아빠는 대장장이 필립 레미라고, 누구든 너를 괴롭히면 혼내줄 거라고 말하려무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날,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시몽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술을 떨면서 아이들을 향해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 아빠는 대장장이 필립 레미이고, 이제부터 나를 괴롭히면 우리 아빠가 전부 혼내주기로 약속했다고.


아이들은 모두 대장장이 필립 레미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 참고 문헌 : 〈기 드 모파상〉, 모파상 저, 최정수 역, 현대문학(세계문학 단편선)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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