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 글섬 옮김
〈옛 시절(Jadis)〉은 1880년 9월 13일에 일간지 《르 골루아(Le Gaulois)》에 처음 발표되었던 소설로, 1883년 10월 30일에는 《질 블라스(Gil Blas)》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가명으로 재발표되었다. 이후 1900년, 모파상 사후에 발간된 단편선 〈보부상(Le Colporteur)〉에 재수록되었다.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언덕 위에 위치한 오래된 양식의 성은 광활한 정원과 녹지로 뒤덮여 주위가 온통 잔디 내음과 꽃향기로 가득했다. 루이 15세풍의 거실에 앉은 금발의 아가씨 베르트(Berthe)는 꿈꾸는 눈망울에 민첩한 손놀림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그 곁에 있던 할머니가 베르트에게 신문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청했다. 할머니는 신문에 정치 얘기 말고 사랑이야기는 없냐며, 옛날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결투를 청하거나 여인을 납치해 도망치는 모험도 불사했었는데 요즘 프랑스에는 여인의 환심을 사려는 신사들의 세련된 언동 따위는 아예 사라져버렸다고 한탄했다. 베르트는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사랑의 비극’이라는 기사를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한 여자가 남편의 정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정부의 눈에 황산을 부어버린 이야기였다. 재판장에서 그녀는 군중의 박수갈채를 받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런 끔찍한 얘기 말고 다른 걸 읽어보라고 재촉했다.
베르트는 이번에는 ‘가련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드렸다. 정숙하고 분별 있는 어느 젊은 여인이 한 남자와 한눈에 사랑에 빠졌는데, 남자가 변심해 바람을 피우자 그를 향해 권총 네 발을 발사했다. 네 발의 총알은 남자의 가슴에 두 발, 어깨와 엉덩이에 한 발씩 박혔고, 남자는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했다. 이 여인도 재판장에서 군중의 박수갈채를 받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문은 처녀들을 유혹한 뒤 그녀들을 배반한 이 호색가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듣고 있던 할머니는 몹시 흥분했다. 할머니는 요즘 처자들은 미친 게냐며,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총과 황산을 들이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베르트는 할머니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르트는 남편이 아내를 배신해서 복수했던 거라고 다시금 설명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요즘 젊은 처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베르트는 결혼은 신성한 거라고 답했다. 거룩한 18세기에 태어났던 할머니는 손녀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할머니는 신성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3대를 살아내며 남녀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은 할머니는 결혼과 사랑은 결코 동일시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결혼은 가족을 구성해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하는 것으로, 결혼 없이는 사회가 형성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가 하나의 체인이라면 각각의 가정은 고리인 셈인데, 이들 고리를 용접해 연결하기 위한 금속 역할로서 우리는 결혼할 때 재산을 합치고, 비슷한 인종이나 민족끼리 결혼해 부와 아이들 같은 공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사회적 규정에 따라 결혼은 오직 한 번뿐이지만, 사랑은 본능에 따라 열 번, 스무 번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법으로써 본능에 저항하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본능이 가장 강력하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본능은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약에다 설탕을 타는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누구도 생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러자 베르트는 놀란 눈을 크게 뜨며 사랑은 생애 단 한 번뿐이라고 외쳤다. 할머니는 프랑스 혁명 이후 분별력이 사라진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말들이 넘쳐 나지만, 할머니 시대에는 그저 더 많이 사랑하도록 가르쳤다며, 그리하여 그 시대 여인들은 그저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남편이 평생 아내만을 사랑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망상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결혼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은 아니기에 나비가 꽃을 향하듯 남자들은 모든 여자를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러자 베르트는 제발 그만하시라고 애원하며, 그래도 평생토록 단 한 번뿐인 변치 않는 불멸의 사랑을 원한다고 외쳤다. 그러자 할머니는 손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심하거라. 그런 어리석은 믿음을 간직하면 매우 불행할 게야.”라고 말했다.
▶ 〈Jadis〉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