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 최정수 옮김
〈자살(Suicides)〉은 1880년 8월 29일자 일간지 《르 골루아(Le Gaulois)》에 처음 발표된 소설이다. 이후 1883년 4월 17일자 《질 블라스(Gil Blas)》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가명으로 게재되었고, 이외에 또 다른 3개의 신문에도 게재되었다. 이후 1884년에 단편집 〈롱돌리 자매(Les Sœurs Rondoli)〉에 수록되었다.
신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관련 기사가 실린다. 그 어떤 숨겨진 절망이, 그 어떤 미묘한 상처가 그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그들의 죽음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우리는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자’들 중 한 사람의 유서를 한 장 입수했다. 그가 권총을 장전하기 직전에 쓴 이 유서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이면에 포진되기 마련인 예외적인 불행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고 있다. 그 유서는 그저 삶의 소소한 비참함과, 꿈을 잃어버린 고독한 존재의 치명적인 붕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유서를 쓴다. 나약해진 나의 용기를 북돋고, 지금 내게 자살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나는 순박하신 부모님 밑에서 순박하게 자랐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내 꿈의 단편들이 얼마 전에 찢어져버렸다. 예전에는 아름답게 빛나 보이던 삶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 색채가 바래지고 의미를 잃은 채 갑자기 맹렬한 사실성을 띠어 사랑의 감미로움을 혐오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저 매일 되풀이되는 환각들의 영원한 놀이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노력의 무용함과 기다림의 허망함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즐겁고 아름다웠던 이십대 시절을 지나 서른을 넘기자 매일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었다. 똑같은 관념, 똑같은 즐거움, 똑같은 농담, 똑같은 습관, 똑같은 믿음, 똑같은 낙담을 품은 채 그저 매일 영원히 맴을 돌아야 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그리고 비참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이 구토감을 불러 일으켰다. 심지어 나는 예전부터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곁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다.
그날 저녁, 자욱한 안개가 큰길을 덮어버렸다. 평소보다 더욱 무거운 중압감에 짓눌린 나는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원활한 소화작용과 왕성한 식욕이야말로 삶에 대한 욕망을 부여한다. 오늘 저녁만 해도, 내가 만일 소화가 잘 되었다면 나는 아마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서른 이후 끔찍한 비탄에 사로잡혀 있던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뭔가 다른 일을 찾아보다가 생각해낸 것이 서류 정리였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져 서랍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있던 편지와 계산서들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서랍을 열었다. 잠시 후 나는 수북한 종이 더미들 사이에서 편지 한 장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것은 나와 가장 절친했던 한 친구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 순간에 그 친구가 선한 미소를 띠고 너무나 선명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분명 그 모습을 보았다.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손을 떨면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나는 끔찍한 비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듯 나는 서랍 속의 편지들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다음 순간, 나는 돌연 다른 서랍을 열었고, 그 안에 담겨 있던 갖가지 추억의 물건들로 인해 옛사랑의 여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녀들의 눈길과 미소, 그리고 첫 입맞춤, 그때는 영원할 것 같았던 막대한 행복감이 떠올라 지독하게 우울해진 나는 그 낡은 증거물을 손에 잔뜩 움켜쥐고는 격렬하게 애무했다. 내겐 상상 속 지옥의 모든 형벌보다 더 잔인한 형벌이었다.
마지막 편지 한 장은, 오십 년 전에 필기 선생님이 부르는 대로 내가 받아쓴 편지였다. 일곱 살의 나는 어머니께 낳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적고 있었다. 그로써 나는 근원에 도달했다. 나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흉측하고 고독한 노년과 다가올 신체의 질병들이 불현듯 그려지며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이제 나는 총알을 장전한다. 옛 편지들은 절대로 다시 읽어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자’들이 자살하는 이유다.
▶ 참고 문헌 : 〈자살〉, 모파상 저, 최정수 역, 생각의 나무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