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

1880년 / 글섬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Une page d’histoire inédite)〉는 1880년 10월 27일자 일간지 《르 골루아(Le Gaulois)》에 처음 발표된 소설이다.



화자는 나폴레옹이 죽기 3일 전에 추가한 유서 내용을 통해 나폴레옹의 운명을 바꾼,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서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암살자들로부터 자신을 구출해준 보코냐노(Bocognano)의 주민에게 2만 프랑을 유증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루이 16세 사망 직후, 코르시카(Corse)는 혁명을 혐오하는 헌신적인 왕당파이자 정력적이고 폭력적인 장군 파올리(Paoli)가 정권을 장악했다. 1793년, 당시 젊은 포병 장교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는 코르시카의 아작시오(Ajaccio)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그는 저녁마다 그를 추종하는 동지들과 모여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구상하기도 하고 조치를 취하기도 하며 미래를 도모하면서 지냈다.


젊은 보나파르트와 파올리 장군 사이에는 이미 적개심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 간의 적개심이 기인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마들렌(Madeleine) 섬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파올리 장군이 세자리(Cesari) 대령에게 이 임무를 위임하면서 계획을 무산시키라고 은밀히 명했다. 퀀자(Quenza) 대령이 지휘하는 연대의 코르시카 국민군 중령으로 임명된 나폴레옹이 이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고, 원정에서 의도적으로 임무를 저버린 지휘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르시카 출신의 정치장교 살리세티(Saliceti)를 비롯해 프랑스 공화국의 군사위원들이 바스티아(Bastia)로 파견되었다. 그들이 도착할 무렵 그들과 합류하기를 원했던 나폴레옹은 이 여정을 위해 자신을 추종하는 동지들 중에서 가장 충정심이 깊고 가장 신뢰할 만한 자인 산토보넬리(Santo-Bonelli)를 보코냐노에서 불러와 가이드 역할을 맡겼다. 일명 리보코(Riccio)라고도 불리는 그와 나폴레옹은 말을 타고 파올리 장군이 있는 코르트(Corte)로 향했다. 보나파르트는 지나는 길에 파올리 장군을 접견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상관이 프랑스 역모에 가담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보나파르트가 그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던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상관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나폴레옹은 파올리 장군이 기거하는 집에 당도해 곧장 파올리 장군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그때 누군가 계단에서 내려오며 나폴레옹에게, 바로 그 순간에 코르시카의 수장들로 구성된 일종의 심의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보나파르트 역시 그들의 동지라고 믿고, 심의회가 영국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격분해 발을 구르며 이는 반역이며 비열한 행위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을 듣고 나폴레옹의 먼 친척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파올리 장군이라면 나폴레옹을 그 즉시 처단하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처한 위험을 간파하고, 나폴레옹을 에워싸서 계단에서 내려와 당장 말에 다시 오르게 했다.


나폴레옹은 즉시 말을 타고 산토리치오와 함께 아작시오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출발한 그들은 저녁이 되어서 보코냐노 마을에 도착했다. 보나파르트는 튀솔리(Tusoli)의 집에서, 산토리치오는 다른 집에서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교차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역모 모임을 알게 된 나폴레옹이 이를 발설할까 봐 두려웠던 파올리 장군은 마리오 페랄디(Mario Peraldi)에게 나폴레옹을 추적해 어떤 일이 있어도 그가 아작시오나 바스티아에 당도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마리오 페랄디는 보나파르트보다 몇 시간 전에 보코냐노에 도착해 파올리 장군의 열렬한 동지인 모렐리(Morelli) 가족을 찾아갔다. 가공할 위력의 모렐리는 튀솔리의 집을 나와 이제 막 보코냐노 마을을 떠나려던 보나파르트를 체포해 억류했다.


교차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토리치오는 보나파르트가 체포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즉시 보나파르트의 동지이자 모렐리의 이웃집에 사는 비짜보나(Vizzavona)의 집으로 달려갔다. 산토리치오는 비짜보나에게 2시간 이내에 보나파르트를 구출하지 못하면 살해될 거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그러자 비짜보나는 모렐리의 집으로 달려가, 온갖 달변과 술책을 동원해, 모렐리 가족의 감시 하에 보나파르트를 잠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이라도 대접하게 해달라고 모렐리 가족을 설득했다. 모렐리 가족은 모렐리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비짜보나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는데, 이 잠시간의 모렐리의 부재가 보나파르트의 생명을 구했다.


그 사이에 산토리치오는 용감하고 비범한 코르시카 청년 두 명과 합류해 보나파르트 구출에 나섰다. 산토리치오는 두 청년을 비짜보나의 집과 인접한 정원으로 안내해 담벼락 뒤에 몰래 숨어 있으라고 지시한 뒤, 자신은 모렐리 가족을 만나 나폴레옹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보나파르트와 비짜보나를 대면하게 된 산토리치오는 이들과 함께 마구간으로 침투했다. 산토리치오는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했다고 재촉했고, 비짜보나는 문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보나파르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나폴레옹과 산토리치오는 담벼락에 숨어 있던 두 청년과 합류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주를 눈치 챈 모렐리가 격분해 당장 이들을 추격하려 했다. 바로 이때 그의 아내가 남편의 발 아래로 몸을 던져 보나파트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튀솔리 집안의 인척이었다. 화가 난 모렐리가 아내를 뿌리쳤지만 그녀는 격렬하게 남편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남편의 발에 수없이 차여 나뒹굴면서도 남편의 다리를 놓지 않았던 그 여인의 힘과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날 모든 현대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뭇 남성들의 뇌리 속에 승리의 이름들이 새겨질 리도 없었을 것이고, 수백만 명의 목숨이 총구 아래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지도 역시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모렐리가 그 즉시 보나파르트를 추격하지 못했던 덕분에 말이다.


용감한 산토리치오는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두 청년에게 보나파르트를 맡기고 그 자신은 적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두 청년과 보나파르트는 얼마 가지 못하고 모렐리 가족의 일원인 오노라토(Honorato)에게 붙잡혔다. 오노라토가 나폴레옹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산토리치오가 이를 예견해 미리 지시해두었던 펠릭스 튀솔리(Félix Tusoli)가 무장한 그의 부모와 함께 나타나 오노라토를 위협했다. 바로 이때 산토리치오가 나타나 오노라토가 당황한 틈을 타 순식간에 나폴레옹과 두 청년을 잡목숲 속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아내를 겨우 뿌리치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렐리가 동지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도망자들은 산과 계곡을 헤치고 이미 멀리 나아간 뒤였다. 드디어 안전한 지대에 도달하자 산토리치오는 두 청년을 돌려보내며 가서 말을 구해서 다음 날 우시아니(Ucciani) 교량 근처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두 청년이 떠나려는 순간, 나폴레옹이 그들에게 다가가, 프랑스로 함께 돌아가 자신의 재산과 모든 걸 나누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은 언제든 나폴레옹을 위해 바칠 것이지만, 육신만은 고향 땅에 남게 해달라고 청했다.


두 청년이 보코냐노로 돌아가는 동안 보나파르트와 산토리치오는 계속해서 야생 숲과 산을 넘어 그날 저녁 우시아니에 있는 보나파르트의 동지 포쫄리(Pozzoli)의 집에 당도했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포쫄리의 집은 무장한 사람들로 포위된 상태였다. 그러나 포쫄리 가족은 나폴레옹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폴레옹과 산토리치오는 다리 근처에 대기 중이던 말에 올랐고, 포쫄리 가족은 이들이 아작시오 인근에 도달할 때까지 이들을 호위했다. 밤이 되자 나폴레옹은 마을로 침투해 시장의 집으로 피신했다. 시장은 그를 벽장 안에 은신시켰고, 다음날 들이닥친 경찰은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폴레옹은 곤돌라에 몸을 싣고 다른 해안가로 이동하여 바스텔리카(Bastelica)의 코스타(Costa) 가족에게 의지해 은신했다.


며칠 뒤 코르시카의 독립이 선언되었다. 보나파르트의 집은 전소되었고, 그의 누이들은 사제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얼마 뒤, 프랑스 군함 한 대가 나타나 해안가에 있던 프랑스 동지들을 태워 본국으로 이송했다. 뱃전에는 장차 황제가 되어 프랑스의 운명을 뒤바꿀 경이적인 인물, 나폴레옹이 서 있었다.



▶ 〈Une page d’histoire inédite〉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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