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 방곤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봄(Au printemps)〉은 1881년에 단편집 〈텔리에 집(La Maison Tellier)〉에 수록되어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1891년에 《폴 올렌도르프(Paul Ollendorff)》에서 발간된 증보 개정판 〈텔리에 집〉에도 수록되었다.



화창한 봄날이 계속되면 우리의 가슴속에 포근하고 향긋한 공기가 스며들며 무한한 행복에 대한 희미한 갈망이 피어오른다. 작년 겨울은 유달리 혹독했기에 5월이 되자 내 몸은 격발하는 생명력으로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창문 너머로 눈부신 햇살에 빛나는 넓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창틀에 매달린 새들은 목청껏 노래했고, 거리에서는 즐거운 웅성거림이 올라왔다. 나는 봄기운에 완전히 젖어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봄빛 속을 떠다니는 사람들에게서도 행복의 숨결이 불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센 강가에 다다랐다. 바토 무슈(bateau-mouche)의 갑판은 승객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내 이웃집에 사는 여자도 있었다. 그녀는 상냥했고, 곱슬곱슬한 금발이 귀여운 여자였다.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목덜미 아랫부분을 바라보며 수없이 입맞춤을 퍼붓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도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들어 나를 향해 엷은 미소를 보냈다. 그러자 나는 그녀의 귓가에 감미로운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싶은 미친 듯한 욕구를 느꼈다.


내가 막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순간에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뒤를 돌아보니 평범하게 생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 남자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며, 중요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나는 배의 다른 쪽 끝으로 남자를 따라갔다.


그가 말했다. 겨울엔 감기나 기관지염 같은 걸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봄이 되어 나뭇잎이 새로 돋고 꽃이 피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동요가 일 때면 사랑을 조심해야 한다고. 사랑은 온갖 술수를 준비한 채 사방에서 당신을 노리고 있으며, 사랑은 감기나 기관지염, 늑막염보다 더 위험하다고. 그러면서 그는 거듭해서 사랑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그에게 그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시는 것 같다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듯 격한 몸짓으로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라고 종용했다.


작년 이맘때 그도 지금의 나처럼 봄기운에 취해 센 강으로 달려가 바토 무슈를 탔다. 유람선이 햇빛을 받으며 강물 위를 미끄러져 가자 그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그게 바로 사랑의 함정이었다.


바로 그때 아가씨 하나가 배에 올라타더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예뻤다. 봄기운이 충만할 때 여인들은 더 예뻐 보인다. 봄날에 여자들은 뭔가 더 매력적이고, 자극적이고, 아주 특별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나와 이웃집 금발의 여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녀가 어찌나 상냥하게 대답했던지 그는 그만 도취되어 버렸다.


생클루(Saint-Cloud)에서 그녀가 내렸다. 그는 그녀를 따라 배에서 내려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공기로 인해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그가 그녀에게 숲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보자고 제안했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수락했다.


높고 무성한 초록의 숲에는 도처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바람과 전원의 향기에 취해 깡충깡충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그도 달렸다. 그러다 이내 피곤해진 그녀가 푸른 비탈 위에 앉았고, 그는 그녀의 발치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은 남자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결국 그는 이성을 잃고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고, 그녀는 격하게 저항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온갖 애정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럼 우선 만나보자고 허락했다.


그때 그는 그녀를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그가 원했던 건 육체가 아니라 애정,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고백을 충분히 듣고 난 뒤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생클루로 돌아갔고, 다시 파리까지 가서야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오늘 같은 날들은 많이 누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만났고, 온갖 교외를 찾아다니며 애정 행각을 펼쳤다. 결국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석 달 뒤 그녀와 결혼했다.


그는, 남자들은 여자와 함께 하면 인생이 달콤해질 거라 생각하고 결혼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그 여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욕설을 퍼붓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상인들과 말싸움을 하고, 이웃집 하녀에게 침실의 비밀을 털어놓고, 거래하는 상점에서 남편을 헐뜯는다고 탄식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나 어리석은 이야기와 믿음들, 너무나 놀라운 편견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절망에 겨워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감정이 몹시 격해진 나머지 숨 가빠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연민에 사로잡혔다. 그때 배가 멈추었다. 생클루에 도착한 것이다. 금발의 그 귀여운 여자가 배에서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내게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 남자들을 미치게 하는 예의 그 미소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일어났다. 하지만 옆에 있던 그 남자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는 뒤로 잡아끌며 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며 웃었다. 나는 감히 그 소동 앞에 과감히 행동할 용기가 없어서 자리에 다시 앉아버렸다.


배가 다시 출발했다. 귀여운 여자는 부교 위에서 실망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멀어져 갔다.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 내 덕분에 만만치 않은 숙제를 해내셨네요.”



▶ 발췌 문헌 : 〈기 드 모파상〉, 모파상 저, 방곤 역, 현대문학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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