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1881년 / 글섬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가족(En famille)〉은 1881년 2월 15일자 《라 누벨 리뷔(La Nouvelle Revue)》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후 단편집 〈텔리에 집(La Maison Tellier)〉에 수록되어 재발표되었다.



해군성 사무직원인 카라방(Caravan) 씨는 지난 30년 동안 오선지와 같이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매일 똑같이 단조로운 업무를 보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퇴근했다. 그는 사무실 업무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승진도 상여금도 없이 30년 동안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냈다. 직장에서도, 퇴근 후 집에서도 업무 외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카라방 씨는 매일 저녁 쿠르베부아(Courbevoie)행 전차를 타고 귀가해, 아내와 두 아이를 보고, 위층에 살고 있는 90세 어머니께 문안했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으로 인해 위축된 그는 별다른 꿈도, 업무와 관련한 그 어떤 희망도 없었다.


매일 저녁 퇴근길 전차 안에서 카라방 씨는 의사 면허 없이 의술을 행하는 동네의원인 쉐네(Chenet) 씨를 만났다. 비록 의사 면허는 없었지만 자칭 의사라는 쉐네 씨는 쿠르베부아 교차로에 거주하며 인근 빈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오랜 의술 경험을 바탕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술을 행하는 사람으로, 그의 도덕성에 관한 소문이 무성했다. 두 남자는 매일 저녁 전차 안에서 매일 똑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먼저 뇌이(Neuilly) 시장의 시정에 관해서 논쟁을 벌인 다음, 카라방 씨가 의학적 조언을 구하는 마음으로 질병들에 관한 화제로 넘어갔다가, 얼마 전부터 걱정되기 시작한 노령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했다. 어머니는 진료라면 질색하셨지만, 카라방 씨로서는 90세라는 노령이 늘 신경 쓰였다. 쉐네 씨는 늘 얼굴이 붉고 뚱뚱한 카라방 씨 본인의 건강도, 그의 어머니의 건강도 의심스럽다는 듯 답하곤 했다.


이윽고 전차가 역에 도착하면 쉐네 씨는 글로브(Globe) 카페에서 베르무트 한 잔씩만 하고 가자고 권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매일 저녁마다 전차에서 내려 글로브 카페에 마주 앉아 베르무트를 마셨다. 그런 다음, 카라방 씨가 쉐네 씨와 헤어져 집에 도착하면, 남편보다 20살 어리지만 결코 예쁘지는 않은 카라방 부인이 그를 맞이했다. 카라방의 아내는 동료의 딸로, 지참금 없이 결혼했었다. 카라방 씨가 현관에 들어서는 소리가 나면 두 아이가 달려 나와 아빠와 정겹게 볼키스를 나누고는 아빠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동안 아이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고 나면, 카라방 씨는 아내에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본 뒤, 위층으로 올라가 어머니께 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카라방 씨의 어머니가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오지 않았다. 카라방 가족이 위층으로 올라가보니, 할머니가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카라방 씨는 어머니를 침대로 옮긴 뒤 아내와 함께 어머니의 전신을 문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자 카라방 씨는 하녀 로잘리(Rosalie)에게, 쉐네 씨에게 달려가 황급히 모셔 오라고 지시했다. 한참 후에야 쉐네 씨가 도착했다. 쉐네는 할머니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검사해보더니, 운명하셨다고 말했다. 카라방 씨는 어머니의 시신에 쓰러져 오열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쉐네 씨에게 확실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쉐네 씨는 할머니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보이며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카라방 씨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공포로 무너졌다.


침대 위로 쓰러져 격하게 오열하는 카라방 씨를 한참동안 지켜보던 아내는 쉐네 씨에게 이제 그만 남편을 진정시켜야 한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녀가 조용히 남편에게 다가가 한쪽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자 쉐네 씨가 다른 쪽 팔을 잡아 아래층 계단으로 향했다. 아내가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이끌자 카라방 씨는 뚱뚱한 아이처럼 어깨를 들먹거리며 계속 울면서 무의식중에 계단을 내려갔다. 아내는 남편을 식탁 의자에 앉힌 뒤, 남편이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동안 쉐네 씨와 장례 절차 등 실질적인 절차에 대해 의논했다. 카라방 부인과 의논을 마친 쉐네 씨가 모자를 쓰며 돌아가려 하자 그녀는 식사 대접도 못 하고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권했다. 쉐네 씨는 사양했지만 카라방 부인은 거듭 강권했고, 그러자 쉐네 씨도 마지못해 식탁에 앉았다.


다 식어버린 수프를 다시 데우고, 카라방 가족과 쉐네 씨는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카라방 부인은 남편에게도 밤을 새우려면 먹어둬야 한다며 식사를 권했다. 카라방 씨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아내의 말에 따라 저녁을 먹었다. 쉐네 씨는 음식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했고, 심지어 그들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카라방 씨는 갈증과 고통에 휩싸여 들이켠 와인 몇 잔으로 순식간에 만취해버렸다.


이윽고 쉐네 씨가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키더니, 카라방 씨의 팔을 잡아끌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곤경에 처했을 때는 일부러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권했다. 카라방 씨는 순순히 쉐네 씨를 따라 나가 센 강가로 내려갔다. 과연 신선한 밤공기가 그의 고통을 경감시켜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고, 그러자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절감한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는 쉐네 씨에게 매달려 신음하듯 어머니를 외쳤다. 하지만 쉐네 씨 역시 충분히 취기가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카라방 씨를 강변의 잔디밭에 앉혀두고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카라방 씨는 그곳에 앉아 혼자 오랫동안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난 그는 이윽고 안도감과 평온함을 느꼈다. 달이 높이 떠올랐고, 지평선은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했다. 부드러운 밤공기를 타고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카라방 씨는 밤의 고요함과 신선한 내음에서 초인간적인 위로를 얻었다. 이윽고 그는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평온하고 담담한 상태가 되어 몸을 일으켰다.


카라방 씨가 다리에 다다랐을 때, 이제 막 마지막 전차가 역을 떠났다. 전차가 지나간 자리에 글로브 카페의 환한 불빛이 보였다. 카라방 씨는 문득 누구에게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호소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겐 관심이 없었기에 그는 카운터에 기대고 짐짓 이마를 움켜쥐며 하느님을 연발했다. 그러자 비로소 카페 주인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왔다. 카라방 씨가 방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답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카페 안쪽에서 한 남자가 맥주를 달라고 외쳤다. 카페 주인은 냉큼 손님을 향해 “갑니다!”라고 외치고는 카라방을 혼자 두고 사라졌다. 그러자 카라방 씨는 평소 퇴근 후 전차에서 내려 쉐네 씨와 베르무트를 마실 때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었던 낯익은 세 명의 손님들이 그날도 같은 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세 사람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말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긴 했지만, 그들은 무심한 얼굴로 그저 “아!”라고만 내뱉더니 아무 말 없이 하고 있던 게임에 다시 눈을 돌렸다.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카라방 씨는 그들의 평온한 무관심에 분개했다. 이 순간의 고통이 너무도 혹독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는 카페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열린 창문 앞에 앉아서 유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위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아내는 남편의 옷을 벗기며, 지금은 하녀 로잘리가 어머님 곁을 지키고 있으니,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나 새벽 3시에 교대하라고 권했다.


남편이 자리에 눕자 아내는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어머니가 유언장을 작성하셨냐고 물었다. 남편이 말을 더듬으며 그러지 않으셨다고 답하자 아내는 분개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십 년 동안 어머니를 모셨건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도 없느냐고, 비록 누이가 어머니의 연금을 지불하고 있긴 하지만 부모를 돈으로 보살피는 건 도리가 아닌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남편은 부드럽게 아내를 진정시켰고, 아내는 비로소 격정을 가라앉히고 내일 아침에 시누이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생전에 어머님이 어머니 방에 있는 추시계와 서랍장을 자신에게 물려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자 남편은 누이 내외가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그 동안에 어머니의 가구와 유품을 챙기면 된다고 아내를 달랬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로 지금 유품을 챙기자며 벌떡 일어났다. 위층에 올라가보니, 로잘리는 안락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카라방 부부는 살금살금 추시계와 서랍장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카라방 부인이 서랍장을 열어보자 옷가지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편에게 나무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옷들을 나무 상자에 담아 치워버린 뒤, 서랍장에 자신의 옷들을 채웠다. 부부는 추시계의 위치를 정한 다음, 보기 근사하다며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카라방 씨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훤히 날이 밝은 뒤였다. 깜짝 놀란 그는 뛰어내리다시피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는 새로이 슬픔이 솟구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로잘리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그는 로잘리를 깨워 아래층으로 내려 보내고, 양초를 교체한 뒤,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때, 아내가 그를 불렀고,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남편이 오전 중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남편에게 건넸다.


카라방 씨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벌써 소문을 들은 동네 주민들 몇몇이 조문을 왔다. 아침 일찍부터 방문했던 조문객들이 수가 점점 줄어들자 카라방 부인은 장례식 준비로 분주해졌고, 그 사이 할머니의 시신은 홀로 남겨졌다. 열린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가 스며들었다.


카라방 씨가 행정 수속을 밟고 사방팔방으로 부고를 보내느라 온종일 동분서주하는 동안, 사람이 죽은 걸 처음 본 아이들은 죽음이 신기한 나머지 집밖으로 나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동네방네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며 시신을 구경하러 오시라고 떠들고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도 시신을 구경하러 가자고 부추겨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할머니의 방에 잠입했다. 아이들은 초를 교체하고, 우는 척하는 둥 어른들의 추모 행동을 따라하며 한바탕 법석을 떤 뒤에 방을 나왔다. 아이들이 물러간 방안에 할머니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피로에 지쳐 의자에서 잠이 들고, 집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부부는 한 마디 말없이 저녁식사로 수프를 떠먹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램프가 어두워졌다. 낮 동안 너무 분주해서 기름을 사두는 걸 깜박했던 것이다. 카라방 부인은 아이를 깨워 위층 할머니 방에 가서 양초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양초만을 기다렸다. 양초를 가지러 갔던 어린 소녀의 발걸음 소리가 또렷이 들리더니, 잠시 후 얼마동안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아이는 대재앙이라도 알리려는 듯 전날보다 더 아연실색한 얼굴로, “아빠, 할머니가 옷을 입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카라방 씨가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선 바람에 의자가 나뒹굴어 벽에 부딪혔다. 아이는 말을 더듬으며, “할머니... 할머니가 옷을 입고... 내려오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카라방 씨는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랐고, 아내도 뒤따라갔다. 그러나 부부는 공포에 휩싸여 감히 방문을 열어보지 못하고 문 앞에 멈춰 섰다. 이윽고 카라방 부인이 대담하게 방문을 열어 젖혔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서 있었다. 카라방 씨는 그제야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의 손을 잡더니 격렬하게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아내는 위선적인 목소리로 이 얼마나 축복이냐고 다급하게 외쳤다. 할머니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저녁식사는 준비된겨?”라고 물었다.


바로 그때, 카라방 씨가 오전에 보낸 부고를 받고 이제 막 아래층에 도착한 시누이 내외가 계단을 올라왔다. 멀쩡히 살아계신 어머니를 본 그들은 대경실색했다. 그러자 카라방 부인은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냐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카라방 내외와 적대적이었던 시누이 부부는 카라방 내외를 비난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커져가는 당혹감 속에서 모두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식탁에 앉았다. 할머니는 아래층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추시계를 발견하고 일순 당황했다. 카라방 부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남자 둘은 정치나 이념 등,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더니 쉐네 씨가 들어왔다. 그는 할머니를 보고 한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해져서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할머니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내 뭐랬습니까! 어머니는 퐁네프처럼 튼튼하시다니까요. 분명히 어머님이 우리들보다 오래 사셔서 우리들 모두가 땅에 묻히는 걸 보게 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카라방 부인이 권하는 커피를 마다하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세 남자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할머니가 피로감을 호소하며 딸의 팔을 잡고 위층으로 사라졌다. 할머니가 잠자리에 들고 나자 카라방 내외와 시누이 내외는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격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두 부부의 말다툼이 격해지자 쉐네 씨는 조용히 돌아갔다. 두 부부는 모욕감에 휩싸여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 〈En famille〉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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