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총서 제13권
〈제르미날(Germinal)〉은 188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13권에 해당한다. 1884년 4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1885년 1월에 완성된 이 소설은 1884년 11월부터 1885년 2월까지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연재되었다가 1885년 3월에 《샤르팡티에》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제르미날〉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노동자가 하나의 사회계급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소설로서 프랑스 노동문학의 대표작이다. 광산 파업을 중심 줄거리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제2제정기의 프랑스 북부의 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사회 불의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투쟁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졸라가 1884년 2월에 앙쟁(Anzin) 광산에서 직접 취재한 탄광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 풍속 등을 정확하게 재현함으로써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
졸라는 이 소설에 자본가와 노동자 두 계급 간의 갈등과 선과 악의 구도, 그리고 두 계급이 처한 각각의 상황을 그리면서 노동자의 비참과 사회 불의가 불러올 수도 있을 대재앙에 대한 경고와 사회적인 문제를 제시한다. 그러나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그의 소설에서 이러한 담론은 졸라의 이면에 숨겨진 시적 상상력에 의해 단순히 당대 현실 문제에 대한 보고나 고발의 수준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소설의 주요 공간인 탄광에서부터 등장인물에 이르기까지 졸라는 신화나 성서적 인물 그리고 에피소드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대서사를 써나가는데 이것은 풍부한 은유와 상징에 힘입어 노동자들의 비참함과 계급 간의 갈등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제목인 ‘제르미날(Germinla)’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공화력에서 3월 21일부터 4월 19일까지의 한 달 동안을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싹트는 달(le mois de la germination)’을 의미한다. ‘Germinal’에는 싹이 튼다는 의미의 ‘germer’와 탄광을 뜻하는 ‘mine’, 그리고 공화력을 의미하는 ‘al(almanach)’이 포함되어 있다. 졸라는 이 소설이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다는 뜻에서뿐만 아니라 그 전체적 취지를 요약하는 메타포어로서 이 명칭을 원용한 것이다.
〈제르미날〉은 3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3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졸라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정확한 연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멕시코에 군대파견과 국제노동자연맹의 지위에 대한 플뤼샤르(Pluchart)의 언급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1866년으로 추정된다. 소설의 주인공 에티엔 랑티에(Étienne Lantier)는 제르베즈 마카르(Gervaise Macquart)와 오귀스트 랑티에(Auguste Lantier)의 삼남으로, 〈목로주점〉에서 대장장이 구제(Goujet)가 볼트 공장 풀무공으로 취직시켜준 인물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매섭게 불어오는 3월의 바람을 맞으며 실업자이며 외부인인 청년 에티엔 랑티에가 생면부지인 몽수(Montsou)라는 이름의 마을로 들어선다. 상관의 뺨을 때렸다는 이유로 릴(Lille)의 한 철도 공장에서 해고된 에티엔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보뢰(Voreux) 탄광 근처인 몽수에 도착했다. 어둠과 연기에 잠긴 비현실적인 광경 가운데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갱이었다. 저곳이라고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에티엔은 또다시 자포자기의 심정에 사로잡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짐수레꾼 본모르(Bonnemort) 영감은 여덟 살도 되기 전부터 갱도로 내려가 오십 년을 탄광에서 보냈지만 나이 들어 불편한 다리로 인해 채탄을 더 이상 못하게 되자 탄광에서 쫓겨났다. 노인의 가족은 몽수 탄광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집안 대대로 탄광에서 일해 왔다.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아버지도, 그의 삼촌 둘과 형제 셋도 모두 탄광에 뼈를 묻었다. 이젠 그의 아들과 손자들까지도 모두 탄광에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탄광회사만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릴 뿐, 광부들은 기아를 면하기 어려울 만큼 저임금에 시달렸다.
노인의 아들 투생 마외(Toussaint Maheu)는 물론, 그의 일곱 자녀 중에서 11세 이상의 아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탄광에서 일했다. 침대 세 개가 방을 전부 차지하다시피 한 좁은 방에 아홉 식구가 살았다. 맏이인 스물한 살의 자샤리(Zacharie)와 열한 살 동생 장랭(Jeanlin)이 왼쪽 침대를 쓰고, 여섯 살짜리 레노르(Lénore)와 네 살짜리 앙리(Henri)가 오른쪽 침대를, 세 번째 침대는 아홉 살 여동생 알지르(Alzire)와 열다섯 살 여동생 카트린(Catherine)이 함께 쓰고 있었다. 알지르는 곱사등으로 타고난 불구였다. 층계참 복도에는 부모가 쓰는 네 번째 침대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태어난 지 석 달밖에 안 된 막내 에스텔(Estelle)의 요람이 바짝 붙어 있었다.
가족 중에 광부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3월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일터로 향했다. 그들이 일터로 떠나고 나면 밤새 일하고 돌아온 노인이 그제야 침대를 차지하고 코를 골곤 했다. 식구들이 벌어오는 걸 전부 합쳐봐야 9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에티엔은 보뢰 탄광의 갱 입구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외 가족이 도착하자 탄차 운반부인 라 무케트(la Mouquette)가 마외한테 전날 밤에 마외 조에서 일하던 탄차 운반부 하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마외는 도급제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장에서는 맏아들 자샤리, 이웃집 남자 르바크(Levaque), 스물다섯 살 청년 샤발(Chaval)이 탄부로, 카트린과 또 한 명이 탄차 운반부로 한 조를 이뤄 일했다. 당장 사람을 구해야 할 처지였던 마외는 갱 입구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에티엔이 문득 생각났다. 이로써 에티엔은 일당 30수에 마외 조의 탄차 운반부로 고용되었다.
에티엔은 케이지를 타고 땅속 554미터 깊이의 깊디깊은 갱내로 내려갔다. “마치 몇 시간째 끝 간 데 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케이지에서 내린 광부들은 적치장을 가로질러 캄캄한 굴속으로 걸어갔다. 좀 더 가자 갱도 두 개가 나왔고, 잠시 후 갱목을 댄 운반 갱도로 들어섰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갱도는 점점 더 좁아졌고, 높이가 고르지 못한 낮은 천장 때문에 계속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이윽고 그들이 일할 작업장이 있는 탄맥에 도착했다. 폭이 겨우 6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탄맥의 굴뚝을 따라 15미터쯤 올라가자 첫 번째 부속 갱도가 나왔다. 계속 더 올라가 도착한 여섯 번째 부속 갱도, 이곳이 바로 그들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갱도는 15미터 간격으로 아래위로 포개진 것처럼 나 있었다. 그들은 등과 가슴을 긁어내리는 좁다란 틈새를 통과해 끝없이 올라가야만 했다.” 에티엔은 “공기가 부족해 피가 살갗을 뚫고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채탄 작업이 시작되었다. “탐욕스러운 갱은 하루치 식량인 7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을 집어삼켰다.”
탄맥은 층이 아주 얕았는데, 그래서 채탄부들은 천장과 벽 사이에 납작하게 짓눌린 것 같은 자세로 작업해야만 했다.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모로 누운 채 목을 비틀고 두 팔을 들어 비스듬하게 리블렌을 휘둘러야 했다. 공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았기에 맨 위쪽에서 작업하는 마외의 경우엔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 질식할 듯 숨이 턱턱 막혔다. 카트린은 에티엔에게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채탄막장에서 출발한 탄차는 채탄 검량인이 어느 작업장 소속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특별한 표지를 붙인 다음 갱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문제가 없는 석탄만 골라 싣도록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하치장에서 탄차가 거부되었다. 왜소하고 가냘파 보이는 카트린은 놀랍도록 재빠르게 삽을 움직여 탄차를 채워나갔고, 아무데도 부딪히지 않고 여유롭게 단번에 탄차를 밀고 갔다. 반면에 에티엔은 여기저기 부딪혀 온몸에 멍이 들고 탄차는 선로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카트린은 탈선시킨 탄차를 단번에 제자리에 올려놓는 법, 탄차를 재빨리 싣는 법 등 여러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광부들은 집에서 싸온 맨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밤새 굶주린 채 일자리를 찾아 길을 헤맸던 에티엔은 그나마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알아챈 카트린은 자신이 먹던 빵을 둘로 나눠 에티엔에게 건넸다. 에티엔은 미세한 석탄가루를 온통 뒤집어써 검어진 그녀의 얼굴에서 특별한 매력이 느껴졌다. 문득 카트린을 품에 안고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어졌다. 바로 이때, 아까부터 먼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샤발이 다가오더니 카트린의 고개를 젖혀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카트린은 발버둥치며 저항했다. 샤발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잠시 그녀를 응시하더니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카트린은 샤발이 장난으로 그러는 거지, 결코 애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탄부들은 몸이 도로 식는 것을 막기 위해 곧바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막장 위쪽에서 탄광 기사 폴 네그렐(Paul Négrel)이 갱내 총감독 당세르(Dansaert)와 함께 불쑥 나타났다. 탄광회사 사장 엔보(Hennebeau) 씨의 조카인 네그렐은 냉랭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광부들을 지휘하며 현장을 감독했다. 그는 마외에게 갱목을 띄엄띄엄 대충 설치해놓고 위험하게 작업한다는 이유로 3프랑의 벌금을 부과하더니 현장 부실을 이유로 탄차 가격을 깎고 갱목 비용을 따로 지불하겠다고 엄포를 놓고는 사라졌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케이지 속에서 에티엔은 “빵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는 이 지옥 같은 막장”으로 다시는 기어들어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의 탄차 두 대가 퇴짜를 맞았다. 모두들 격앙된 분위기 속에 동요하며 호시탐탐 싸움의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카트린이 자기 아버지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마외는 에티엔에게 가진 돈도 없는 것 같으니 그를 위해 돈을 융통해보겠다고 말했다. 일당만 받아서 당장 그곳을 떠날 참이었던 에티엔은 카트린에게 부끄러워 차마 그 얘기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외는 에티엔을 데리고 마을과 탄광 사이에 위치한 주점, 아방타주(Avantage)로 들어갔다. 서른여덟 살의 주점 주인 라스뇌르(Rasseneur)는 전직 채탄부로, 삼 년 전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때부터 아내가 운영하던 조그만 주점을 그가 직접 운영해 이제는 날로 번창한 주점을 토대로 옛 동료들의 마음속에 조금씩 분노를 불어 넣으며 광부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마외는 라스뇌르에게 에티엔을 소개하며 빈 방이랑 두 주 치 임금을 변통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라스뇌르는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며 거절했다. 마외가 갱목 건으로 탄차 가격이 깎였다는 얘기를 하자 라스뇌르는 몹시 흥분하며 도처에 빈곤으로 허덕이고, 공장들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으니 조만간 크게 한 번 터지고 말 거라고 분노했다. 이웃한 탄광의 주인 드뇔랭(Deneulin) 씨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화중에 플뤼샤르(Pluchart)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에티엔이 플뤼샤르가 이전에 릴에서 일할 때 자신의 십장이었다고 말하자 라스뇌르는 단박에 경계심을 풀고 갑작스런 호감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곧장 빈 방과 돈을 구해주었다. 에티엔은 다시 머뭇거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갱도에서 납작 엎드린 채로 땅속을 기어다니는 짓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역겨움이 몰려왔다. “그것은 너무나 부당하고 고된 일이었다. 저들에게 현혹되고 짓밟히는 짐승 같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그에게 반란을 부추겼다.”
주점을 나와 사방을 둘러보던 에티엔은 갑작스레 그곳에 머물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쩌면 카트린의 맑은 눈동자 때문인지도 몰랐고, 탄광에서 반란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함께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일하면서도 굶주리는 사람들과, 땅속에 웅크린 채 인간을 포식하고 있는 신을 떠올리며 갱 속으로 다시 내려가 고통 받고 싸우기를 원했다.”
몽수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레구아르(Grégoire) 일가의 소유지인 라 피올렌(la Piolaine)이 있었다. 과수원과 채소밭, 작은 숲과 산책로를 갖춘,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선반과 찬장마다 비축된 식량이 넘쳐났고, 중앙난방으로 집 전체가 훈훈했다. 그러나 집안 어디에도 사치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순 살의 그레구아르 씨는 선하고 정직한 얼굴이었다. 그레구아르 부부는 열여덟 살의 늦둥이 딸 세실(Cécile)을 애지중지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레구아르 일가의 주된 수입원인 연 4만 프랑의 연금은 모두 몽수 탄광의 주식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라 피올렌의 관리인이었던 그의 할아버지가 어지러운 혁명 시절을 거치는 동안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라 피올렌을 사들여 탄광회사에 투자했는데 회사의 번영과 함께 투자액이 놀라운 속도로 불어났다. 덕분에 그레구아르 가족은 무위도식했다. 그들이 보유한 주식은 그들에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굶주린 광부들이 대대로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매일 조금씩 돈을 캐내주는 그 땅 속에서 그들의 돈은 안전했다.”
그레구아르 씨의 사촌인 드뇔랭이 방문했다. 그는 과도한 공장 난립으로 돈이 죄다 묶여 자본이 바닥났다며 산업 위기를 걱정했다. 그가 소유한 방담(Vandame) 탄광의 갱이 몹시 황폐해 수익이 미미했기에 강력한 경쟁자인 몽수 탄광은 방담 탄광의 상황이 악화되길 기다렸다가 싼값에 먹어치울 꿍꿍이였다. 두 탄광의 피 튀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편, 마외의 집에서는 그의 아내 라 마외드(la Maheude)가 알지르에게 에스텔을 맡겨두고 레노르와 앙리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 예전에 보뢰 탄광에서 감독관으로 일했던 메그라(Maigrat)가 운영하는 상점에 도착했다. 메그라는 조그만 간이식당에서 출발해 그와 함께 일했던 공장장들의 비호 하에 차츰 몽수의 소매상들을 몰아내고 상권을 넓혀나갔다. 식료품과 돼지고기, 과일, 빵과 맥주, 냄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품을 취급하는 메그라의 상점에서 라 마외드는 이미 빚이 육십 프랑이나 되지만 빵 두 덩어리만 외상으로 달라고 사정했다. 메그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메그라와 외상 거래를 연장하려면 광부의 딸이나 아내가 몸을 내놓으면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라 마외드는 메그라를 비난하며 돌아섰다. 이제 라 피올렌의 부르주아들에게 적선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라 마외드가 라 피올렌에 도착하자 그레구아르 부부는 세실을 불렀다. 그들은 딸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적선하는 일을 세실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돈으로 적선하는 법이 없었다. 못사는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몽땅 술로 날려버린다는 생각에 그들은 항상 적선을 물품으로 했다. 라 마외드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으로 인해 빚이 엄청나게 늘어 죽도록 일해도 결코 갚을 수 없게 되면 남자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해 술집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을 설명하려 애를 쓰지만, 푹신한 소파에 편안하게 누운 채 빈곤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레구아르 부부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세실은 라 마외드에게 모직 옷 두 벌과 숄, 여성용 장갑, 그리고 브리오슈 한 덩이를 내주고 내보내려 했다. 그러자 당황한 라 마외드가 백 수짜리 동전 하나만 보태달라고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그레구아르 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황량한 벌판의 시커먼 진창에 선 라 마외드는 단호한 태도로 다시 몽수를 가로질러 메그라의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빵 두 덩어리와 커피, 버터, 그리고 100수까지 빌렸다. 메그라가 원하는 사람은 라 마외드가 아니라 카트린이었다.
지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온 라 마외드가 들고 온 물건들을 식탁에 쏟아놓자 알지르는 반색을 하며 수프 끓일 준비를 했다. 라 마외드는 잠시 적재부 피에롱(Pierron)의 집으로 건너가 그의 아내 라 피에론(la Pierronne)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여덟 살짜리 딸 리디(Lydie)를 둔 홀아비 피에롱과 결혼한 라 피에론은 스물여덟 살로, 광부촌에서 가장 예쁜 여자로 통했다. 작업반장의 정부로, 위선적이고 행실이 바르지 못한 그녀이지만,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입방아를 찧어대도 부부는 아주 행복하게 지냈다. 라 마외드와 라 피에론은 옆집 르바크의 아내 라 르바크(la Levaque)에 대해 험담으로 수다를 떨었다. 라 르바크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서른다섯 살의 부틀루(Bouteloup)와 잠을 자는데다가, 르바크는 술을 마시고 아내를 때리기 일쑤였고, 몽수의 카페 여가수들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탄광촌에서는 젊은 남녀가 어릴 적부터 서로 어울리면서 함께 나쁜 물이 들어갔다. 탄차를 미는 여자들은 대부분 토끼장에서 첫아이를 만들었고, 모두들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은 나중 문제였다. 자샤리도 이미 그의 애인 필로멘(Philomène)을 두 번이나 임신시켰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집에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자기 아들이 너무 일찍 그 일을 벌이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잠시 후 피에롱의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라 마외드는 길에서 라 르바크를 만나, 이번에는 르바크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라 피에론을 두고 입방아를 찧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라 르바크는 자신의 딸 필로멘과 자샤리의 결혼 문제를 거론했다. 이미 아이가 둘이나 되는 필로멘을 더 이상 건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라 마외드는 난색을 했다.
르바크의 집 창밖으로 엔보 부인이 손님들을 데리고 다니며 탄광촌을 구경시켜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를 접하는 듯, 광부들의 사는 모습을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어느덧 세 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채탄부들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마외는 먹을거리들을 보고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마외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카트린은 주린 배부터 채운 뒤 남자 형제들이 있건 말건 옷을 전부 벗고 알몸으로 씻었다. 여덟 살부터 그렇게 지내왔기에 서로들 조금의 거부감도 관심도 없었다. 옆집에서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치고받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르마크 마누라가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소리였다.
하숙집으로 돌아간 에티엔은 기진맥진해 옷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석양이 질 무렵에야 잠에서 깨어난 그는 머리가 묵직해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탄광촌의 한적하고 외진 곳마다 쌍쌍을 이룬 남녀들의 사랑이 난무했다. 가난에 지친 연인들은 “석탄을 뱉어내는 데 지친 갱 부근에서 마치 생명의 창조, 자유로운 사랑이 복수를 하는 듯,” “아직 채 여인이 되지 못한 어린 소녀들의 뱃속에 생명을 잉태시켰다.” 에티엔은 어두운 창고에 우울하게 앉아 “고된 노동 끝에 파김치가 된 아직 어린 여자들이 저녁이면 또다시 끝없는 노동과 고통에 시달릴 생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샤발이 카트린을 창고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길에서 만난 샤발은 카트린에게 리본을 사주겠다며 메그라의 상점으로 데리고 갔었다. 메그라는 샤발과 카트린이 연인처럼 함께 들어오는 걸 보고 괘씸해서 씩씩거렸다. 리본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샤발은 카트린을 창고로 몰고 온 것이다. 카트린은 문득 에티엔이 떠올랐고, 그러자 갑자기 샤발에게 애원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샤발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카트린도 “탄광에서 태어나 자란 여자들의 유전적인 순종심”으로 저항하기를 멈췄다. 에티엔은 경악했다. 카트린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것이다. 에티엔은 분노가 치밀어 살인 충동을 느꼈다. 아홉 시 경이 되자 마을은 벌써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들었다.
에티엔은 차츰 새로운 노동과 습관에 적응해갔다.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그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갈수록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제 채탄막장으로 통하는 갱도를 몽수의 거리보다 더 훤히 꿰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석탄가루도 거리낌 없이 들이마셨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볼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빠른 속도로 기술을 익혀 작업반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그만큼 탄차를 경사면까지 재빨리 밀고 간 다음 케이지에 정확히 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진정한 광부로 인정받았다.”
특히 무엇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높이 샀던 마외는 에티엔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샤리도, 르바크도, 에티엔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그와 호의적인 태도로 정치 얘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로지 샤발만은 에티엔에게 은밀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샤발은 저녁마다 카트린을 폐석 더미 위로 데려갔고, 탄광촌 사람들 모두에게 두 사람은 부부나 다름없었다. 에티엔은 묵묵히 받아들이며 카트린과 막역한 친구처럼 지냈다. 하지만, 저녁에 밀밭에서 카트린과 샤발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심기가 뒤틀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에티엔은 옆방에 사는 수바린(Souvarine)과 친구가 되었다. 수바린은 보뢰 탄광에서 기계공으로 일하는 러시아인으로, 러시아에서 과격한 정치운동을 하다가 망명해서 광부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었다. 에티엔은 두 달 전부터 플뤼샤르 십장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는데, 플뤼샤르는 런던에서 막 창립된 국제노동자협회의 북부연맹의 연맹장이었다. 플뤼샤르는 에티엔을 이용해 몽수에 지부를 만들고자 했고, 광부들이 언젠가 파업을 하게 되면 협회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티엔은 파업이 임박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탄광회사에서 한 번만 더 지나친 요구를 하면 그때는 탄광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었다. 문제는 기금이었다. 대부분이 회비 납부를 거부할 것이었다. 에티엔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신문을 정기적으로 읽고 사회주의 사상이 담긴 책들을 읽으며 결전을 준비해갔다.
어느 날, 마외는 다른 작업반으로 자리를 옮긴 르바크를 대신해 에티엔에게 채탄부로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빠른 승진인 셈이었다. 탄광회사에서는 새로운 도급제를 맡기기 위해 입찰 공고를 붙였고, 마외는 좋은 조건의 작업장을 확보하기 위해 입찰가를 낮춰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맞붙었다. 마침내 경매 단가를 있는 대로 낮춘 마외가 계약을 따냈다. 에티엔은 광부들끼리 서로 잡아먹게 만들어 놓은 도급제에 격하게 분노했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몽수의 수호성인 축일이었다. 탄광촌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마외 가족은 이 날을 위해 한 달 전부터 토끼장에서 기른 토끼를 잡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에티엔은 오후가 되어 몽수의 주점 아방타주에 모여든 광부들에게 장기간에 걸친 파업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실업상태에 대비하여 몽수에 공제조합을 세워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또한, 공제조합 기금에 관해서도 집요하게 선전을 늘어놓았다. 내내 귀를 기울이던 광부들도 기금 얘기만 나오면 슬쩍 물러났다.
앞으로 있을 파업과 혁명투쟁을 위한 결집력 형성이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에티엔은 노동자의 조건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라스뇌르와 수바린과 의논했다. 그들은 1789년 이후 부르주아가 자유의 이름 아래서 노동자를 착취해 왔으며 이제 노동자는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 방법과 당면의 목표 설정에 대해서 세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달랐다. 이미 3년 전에 파업운동의 주도자로 회사에서 쫓겨난 바 있는 주점 주인 라스뇌르는 개량주의자였다. 그는 원칙적으로 사회문제에 정치적 프로그램을 개입시켜서는 안 되며 고용주로부터 얻어낼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과격한 파업은 결국 파멸만을 가져온다는 것을 자신의 쓰라린 경험에 비추어 강조했다. 한편, 수바린에 의하면 오늘날의 사회체제 하에서는 혁명에 의한 노동자 왕국의 승리란 터무니없는 환상이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전적인 파괴와 “이 땅을 피로 씻어내고 불로 정화하기 위한” 테러리즘이 우선시되었다. 이 양자 사이에서 에티엔은 사회주의 사회가 실현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플뤼샤르의 지시에 따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의 준비를 추진해 나갔다.
8월 중순경에 에티엔은 마외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샤리가 결혼해 탄광회사로부터 빈 집을 할당받아 분가한 것이다. 자샤리의 수입마저 줄어든 가계를 걱정한 마외의 제안에 따라 에티엔은 45프랑을 지불하고 침식을 제공받았다. 에티엔은 카트린의 침대 앞에 놓인 장랭의 침대를 함께 썼다. 처음엔 서로 몹시 불편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마외의 집에서 살면서 광부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체감한 에티엔은 탄광촌의 혼거 생활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 무렵 그는 본능적인 반항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왜 누구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누구는 저토록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가?” 그는 인간의 평등과 세상의 재물을 똑같이 나눠가질 것을 주장할 용기를 얻기 위해 공부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플뤼샤르와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회주의 서적들에 탐닉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바린의 파괴적인 격렬함에 라스뇌르의 실리적인 주장이 마구 뒤섞였다. 매일 저녁 에티엔은 아방타주에서 그들과 함께 탄광회사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 개혁의 청사진은 모호하기만 했다.
에티엔은 탄광촌의 노동자들이 직면한 악순환에 주목했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벌었기에 허구한 날 빚에 짓눌려 살았고, 유일한 낙이라고는 술에 진탕 취하거나 마누라한테 아이를 만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에티엔은 광부들이 깨어나 부르주아들의 탄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머지않아 깨어난 광부들의 “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인간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와 정의가 도래해 이 땅에 평등과 박애가 실천되면서 모든 시민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이 이룬 성과만큼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고 매일 저녁 열변을 토했다. 마외 가족은 에티엔의 열변에 차츰 매료되어갔다.
종종 이웃들도 에티엔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르바크는 분배의 개념에 열광했고, 좀 더 신중한 피에롱은 탄광회사를 비난하는 얘기만 나오면 즉시 자러 갔고, 자샤리는 가끔씩 들렀다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아방타주로 내뺐다. 샤발은 한술 더 떠서 피를 보기를 원했다. 샤발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카트린을 빼앗길까 두려워 마외네 집에서 한 시간씩 머물렀다.
이렇게 에티엔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그는 점차 탄광촌을 변화시켰다. 그는 날로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마침내 9월이 되자 예의 공제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를 몽수의 지부장으로 임명했고, 서류를 기록하는 대가로 그에게 약간의 급여도 지불했다.
에티엔은 단번에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탄광촌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자 처음 맛보는 대중적인 인기의 쾌감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가 하나의 역할을 해낼 임박한 혁명의 꿈을 더욱더 자라나게 했고, 그의 야심은 그의 이론에 불을 붙이면서 투쟁에 대한 일념을 심어주었다. 그사이 카트린과 에티엔은 서로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져 갔지만,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수치심과 미묘한 우정이 자신들의 욕망을 외면하게 했다.
10월이 되자 점점 커져가는 산업 위기 앞에서 겁을 집어먹은 탄광회사는 이미 적체된 석탄 재고를 더 늘리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날마다 채굴을 중단시켰다. 또한 탄광회사가 갱목 작업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벌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서 이제 충돌은 불가피해 보였다. 요컨대, 위기에 직면한 회사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 경비를 줄여야 했기에 어떤 핑계로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회사 측은 공제조합 기금이 아직 얼마 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해 기금을 모두 털어내면 기아상태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해져 더 적은 임금을 감수하고라도 일하게 될 거라고 구상했던 것이다. 때문에 더욱 국제노동자협회 가입이 중요했다. 만약 회사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면 아직 빈약하기 그지없는 공제조합 기금은 금세 바닥이 날 텐데,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하게 되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그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제조합은 비교적 많은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협회에는 아직 한 사람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에티엔은 이번 기회에 대거 가입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결국 회사는 탄차 가격을 10상팀 낮추고 그 대신에 갱내 토목 공사에 대한 보수를 따로 지불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이런 위장된 임금 삭감에 노동자들이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었기에 그들의 분노는 깊어지고 확대되었다. 정치행동에 대한 회사 측의 협박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생존권의 탈환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부르짖는 에티엔의 외침은 마치 메시아의 외침처럼 메아리치고, 드디어 노동자들은 마지막 체념과 망설임의 둑을 허물고 총파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일주일 뒤, 파업이 예고된 상황에서 음울하고 조심스러운 상태로 채굴 작업을 하던 중에 “멀리서 천둥 치는 것처럼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면서 갱 전체를 뒤흔들었다.” 갱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모두들 서둘러 작업장을 빠져나가는 사이, 장랭은 아직 갱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순식간에 갱이 붕괴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네그렐은 버럭 화를 내며 다시금 갱목을 문제 삼았다. 장랭은 다리가 부러졌다. 죽은 사람이 열 명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가슴을 찢는 듯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삼 주가 지났다. 다행히 장랭은 다리 절단은 피했지만, 다리를 절었다. 그즈음 질투심이 극에 달한 샤발은 종종 카트린을 에티엔이 있는 집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카트린은 샤발의 성화에 못 이겨 그와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보뢰 탄광을 떠나 드뇔랭의 탄광에 일자리를 구했다. 이제 마외 가족 중에 갱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마외뿐이었다.
12월 1일, 탄광회사가 미리 예고했던 대로 새로운 임금 지불 방식을 적용해 임금을 지불하자 다음 날 새벽에 파업이 발생했다. 파업 소식을 접한 회사 측이 보인 최초의 반응은 은연한 불안과 공포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모순의 결과라는 객관적 인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를 착취하기는커녕 그 복지에 힘쓰면서 돈을 벌어 왔고, 이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를 취했다고만 생각하는 그들은 도리어 “더럽고 철없는 하등인간들”의 몰이해를 분개했다. 한편, 노동자 측은 노사교섭의 대표단으로 에티엔과 마외를 선출했다. 그들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최초의 노사교섭을 위해서 엔보 사장의 집을 방문했지만 교섭은 실패로 끝났다. 위협과 변명이 뒤섞인 언사를 늘어놓던 사장은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당신들의 요구사항을 내가 이사회에 전달하도록 하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대표단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사장은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파리로 가봐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들에게 파리는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경건한 나라, 두려우리만큼 먼 곳에서 성소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는 미지의 신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었다. 노동자 측은 무력감만을 되씹으며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는 동안 파업은 점점 확산되어 광부들의 사분의 일만 갱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3주일이 지나자 몇 푼 되지 않던 공제조합의 기금이 바닥이 나고 굶주림과 추위가 가중되었다. 회사는 결코 타협에 응하지 않았다. 이제 에티엔은 파업을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파업을 정치적 투쟁으로 급선회시키기 위해 플뤼샤르를 초청해 비밀 집회를 열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에티엔은 라스뇌르와 충돌했다. 라스뇌르는 막상 파업이 현실화되자 대부분의 광부들이 절주하거나 금주하는 바람에 장사에 타격을 입은 데다, 에티엔이 노동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질투했다. 에티엔은 혁명가적인 과격함을, 라스뇌르는 지나친 신중함을 표방하며 두 사람 모두 강요받은 역할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신랄하게 대치했다. 과격한 테러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수바린은 두 사람을 경멸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플뤼샤르는 능란한 연설로 대중을 선동했다. 국제노동자협회의 적극적인 지지와 부르주아 타도, 노동자의 행복한 미래 등에 대한 그의 연설에 흥분한 노동자들은 라스뇌르의 온건주의적인 발언은 전적으로 무시하고 전원 박수로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했다.
또 다시 2주일이 지났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탄광촌 주민들의 투쟁을 위한 결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은 굶주림과 추위, 2차 교섭의 실패, 파업에 연루된 광부들을 해고하겠다는 회사 측의 강경책으로 말미암아 절망적인 분노로 바뀌어갔다. 그러자 에티엔은 다시금 비밀 집회를 주도했다. 숲속 빈터에 3천 명에 가까운 광부들이 모여들었다. 에티엔은 이대로 파업을 포기하면 아무 보람도 없이 죽도록 고생만 한 꼴이 되고 마는 것이며 회사가 제시하는 새로운 갱목 요금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열변했다. “임금제도는 노예제도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라며 “다 함께 갱으로 가서 배신자들을 다시 데리고 나와 탄광회사에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며, 그들에게 굴복하느니 죽기를 택할 것임을 보여주자”는 에티엔의 선동적인 언어는 꺼져가는 파업의 불에 기름을 쏟아붓는 효과를 냈다. 굶주림으로 인해 신념이 광기로 돌변한 군중은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갱도에 있는 광부들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탄광 기사들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르바크의 주장을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3천여 명의 목소리가 일으키는 폭풍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투명한 달빛 속으로 점차 잦아들었다.”
파업은 드뇔랭의 탄광으로 번졌다. 어느 새벽, 샤발이 주동하는 광부들이 다른 광부들까지 갱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 선 채 탄차 수당 인상을 요구했다. 평소 드뇔랭은 노동자들에게 무뚝뚝하고 권위주의적인 듯하면서도 자애롭고 호의적인 사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탄차 수당을 인상했다가는 끝장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드뇔랭은 광부들과는 일면식도 없이 광부들을 착취해 관리자들을 먹여 살리는 주주들과는 달랐다. 그는 엄연한 탄광의 주인이었기에 탄광이 문을 닫으면 그의 삶 전부를 잃게 될 것이었다. 드뇔랭은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자신이 처한 위기상황을 설명했지만, 광부들은 사장이 노동자들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지 못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타협은 불가능했다. 드뇔랭은 샤발을 따로 조용히 불러 갱내 감독 자리를 약속했다. 샤발은 광부들을 설득해 파업을 철회했다.
그날 아침 오전 아홉 시가 되자 에티엔은 어젯밤 숲속 비밀 집회에서 약속했던 대로 파업 노동자 무리를 이끌고 드뇔랭의 탄광을 향해 갔다. 그는 드뇔랭에게 혁명적인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드뇔랭은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며 파업 노동자들을 비난했다. 그러자 크게 분개한 5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문을 향해 몰려들어 순식간에 갱을 차지했다. 에티엔이 군중을 향해 무분별한 파괴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외쳤지만, 광분한 군중은 이미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르바크가 케이블을 자르자고 선동하자 모두가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마외 부부는 동지들에게 자제를 촉구하며 그들을 막으려 애를 썼다. 군중은 더 이상의 채굴 작업이 불가능하도록 케이블을 끊고 보일러실로 들어가 불을 꺼뜨린 뒤 보일러를 모두 비워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배신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외쳤다. 비상용 사다리를 통해 빠져 나오는 광부들 속에 샤발이 발견되자 군중은 분노에 휩쓸려 길길이 날뛰었다. 어젯밤 비밀 집회에 샤발도 참석했던 것이다. 뒤이어 카트린도 갱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은 샤발을 질질 끌고 갔고, 카트린은 샤발의 뒤를 쫓아갔다.
에티엔을 필두로 군중은 다른 탄광을 향해 행군을 계속했다. 굶주림의 한계점에 이른 군중은 어느 순간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에티엔은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피해를 막으려 애썼다. 그사이 불어난 군중은 천 명을 넘어섰다. 그들은 인접한 탄광들을 차례로 돌며 허겁지겁 갱 밖으로 나오는 광부들을 폭행했다. “잔혹성이 도를 더해가고 모두를 광기로 날뛰게 만드는 해묵은 복수심이 가득한 가운데, 배신자들의 죽음을 요구하고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노동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절규하면서 모두가 목이 메었다.”
어느새 2천여 명에 달한 파업 노동자들은 “빵을 달라!”를 외치며 탄광의 철로와 배수펌프를 부수고 구내식당을 약탈하며 시위행진을 이어갔다. 에티엔은 카트린을 의식해 성난 군중 한가운데서 위협받고 있던 샤발을 풀어주었고, 카트린은 샤발과 함께 사라졌다. 군중은 이제 사장의 집으로 향했다. 파업 노동자들의 시위행진 소식을 들은 엔보 씨는 도지사와 군부대 그리고 헌병대까지, 사방에 전보를 보냈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사장의 집 창문을 통해 “빵을 달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외침이 들려왔다. 엔보 씨는 무지한 노동자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그 무렵, 작업장들과 인접한 유리 공장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엔보 부인과 일행이 노동자들 무리가 행진하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분노와 굶주림, 그리고 두 달간 이어진 고통 속에 무리 지어 갱들을 휩쓸고 다니는 동안 몽수 광부들의 온순했던 얼굴은 야수처럼 사납게 변해 있었다.”
에티엔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에티엔의 말을 듣지 않았다. 거친 야수처럼 변한 군중은 그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마외 부부조차 엔보 저택을 향해 사납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성난 군중을 뚫고 엔보 부인 일행이 탄 마차가 저택에 도착했다. 일행은 군중을 뚫고 간신히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세실이 그만 일행을 놓쳐 군중 속에 남겨졌다. 세실은 격분한 여인네들 한가운데서 몸을 떨고 있었다. 인파에 떠밀리던 세실은 본모르 영감 앞까지 오게 되었고, 얼빠진 표정의 영감은 세실의 “새하얀 목덜미에 홀린 듯 그녀의 목을 졸랐다.” 여인네들은 사방에서 세실의 옷을 잡아당겼다. 세실의 옷이 찢어지려는 찰나, 말을 타고 나타난 드뇔랭이 군중을 가르고 세실을 낚아채 네그렐이 열어준 정원 철책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세실은 다친 데가 없었다.
이제 군중은 메그라의 상점을 약탈하러 달려갔다. 지붕 위로 피신해 있던 메그라는 그를 발견한 군중의 야유에 놀라 아래로 굴러 떨어지다가 빗물받이 홈통에 부딪혀 튀어 올라 도로 위 경계석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처음엔 대경실색하던 군중이 이내 시신을 둘러싸고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격분한 라 마외드가 빚을 갚는다며 메그라의 입에 두 손 가득 긁어모은 흙을 마구 쑤셔 넣었다. 하지만 그 정도 모욕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여인네들은 아직 청산할 빚이 남아 있다며 그의 바지를 벗기더니 성기를 힘껏 잡아당겼다. 피가 뚝뚝 흐르는 떨어진 살점 덩어리를 막대 끝에 꽂은 여인네들은 깃발처럼 막대를 높이 추켜들고 큰길로 내달았다. 이 끔찍한 거세 행위는 순식간에 벌어졌기에 에티엔도, 마외도, 미처 개입할 틈이 없었다. 그들은 역겨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카트린이 곧 헌병들이 올 거라며 에티엔을 끌고 갔다. 카트린이 에티엔을 끌고 사라지자마자, 멀리 도로 위에서 말 탄 헌병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릴의 도지사와 검사, 장군이 모두 나섰다. 갱마다 무장한 보초들이 배치되었고, 기계들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작업은 어디서도 재개되지 않았고, 파업은 더욱 확산되었다.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 앞에 자존심이 상한 광부들의 고집스러운 침묵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광부들이 각자 집에 틀어박히며 싸움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사이 파업과 관련된 몇몇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수십 명의 광부가 해고당했다. 마외도 그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그 모든 책임을 에티엔에게로 돌려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에티엔은 문제의 그날 밤 이후로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샤발은 당국에 그를 고발했다.
에티엔은 폐광 깊숙한 곳에 은둔해 있었다. 그곳은 장랭이 마을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과수원과 식료품점에서 훔친 물건들을 숨겨두는 곳이었다. 악동 장랭은 헌병들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에 신이 나, 은밀하게 에티엔의 물품 공급자를 자처했다. 그곳에서 에티엔은 “이제 이 굶주림의 도형장에서 승리를 기다릴 용기가 더 이상 없었다.” 오랜 생각 끝에 에티엔은 자신도 플뤼샤르처럼 오직 정치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부심과 끊임없이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마음이 서서히 떠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부르주아의 정신을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헌병들은 에티엔이 벨기에로 떠났다고 믿었다. 파업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한밤중에 그는 땅 위로 올라갔다. 그는 파업이 끝나면 그의 역할과 야심도 사라져버리고, 다시 탄광촌의 역겨운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기에 아직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하려 애썼다.
파업으로 인한 여파가 온 지역을 휩쓸고 있었다. 케이블 공장이 파산했고 정제 공장과 제분 공장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유리 제조 공장이 멈춰 서면서 건설 작업장의 노동자들이 줄줄이 해고당했다. “몽수 광부들의 파업은 이 년 전부터 악화되고 있는 산업 위기를 심화하면서 석탄 산업의 붕괴를 앞당겼다.” 이웃한 도시에서는 은행가들이 도주하는 바람에 수많은 가족이 파산에 이르렀다.
에티엔은 방담 탄광이 몽수 탄광에 넘어가게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위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패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다.
에티엔은 그의 거취를 유일하게 알고 있던 마외 부부를 찾아가 이제 싸움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라 마외드가 돌연 분노를 폭발시켰다. 두 달 동안 쫄쫄 굶어가면서 살림살이 몽땅 내다팔고 아이들까지 병들게 하면서 버텼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개처럼 살아야 한다니 절대로 안 될 말이라며 저들한테 굴복할 바에야 모든 걸 다 태워버리고 다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펄펄 뛰었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원치 않았던 그녀였건만 이젠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빈사 상태로 방에 누워 있던 알지리가 굶주림으로 숨을 거뒀다. 라 마외드는 차라리 식구들 모두를 데려가 달라며 죽음의 신을 처절하게 불렀다.
절망한 에티엔은 아방타주로 가 수바린과 라스뇌르를 만났다. 네그렐이 벨기에 노동자들을 데리고 도착해 내일 보뢰 탄광 작업이 재개될 예정이었다. 라스뇌르는 릴에 갔다가 플뤼샤르를 만났다며, 국제노동자협회가 자만심과 지나친 야심에서 비롯된 내부 갈등에 잠식당하면서 초기 목표였던 임금제 개혁은 당파 간 갈등 속에 묻혀버렸고, 지식인들이 조직에서 이탈하며 조금씩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고 전했다. 수바린은 다들 비겁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당장 사회개력을 일으킬 것처럼 떠들다가도 복권에라도 당첨되는 날엔 동지들을 다 버리고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려 한다며, “부르주아를 향한 반감이 단지 그들 대신 부르주아가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당신들은 절대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거야.”라고 환멸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주점 문이 열리며 샤발과 카트린이 들어왔다. 샤발은 모욕적인 말로 에티엔을 도발했고, 두 남자는 맞붙었다. 한참 동안 주먹질이 오가던 끝에 불리해진 샤발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에티엔의 등 뒤로 달려들자, 카트린이 칼을 조심하라고 외쳤다. 덕분에 에티엔은 샤발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샤발은 카트린에게 저놈하고 살라며 혼자 주점을 나갔다.
에티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트린은 한사코 샤발에게 돌아가겠다고 고집했다. 하는 수 없이 에티엔은 샤발의 집에다 데려다주고 돌아서야 했다. 은신처 근처 폐석 더미로 돌아왔을 때 에티엔은 어둠 속에서 장랭이 단검으로 초병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경악한 에티엔이 살해 동기를 다그쳤지만 장랭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일축했다. 두 사람은 시신을 폐광인 은신처로 옮긴 뒤 갱목을 부러뜨려 거대한 흙더미로 매장시켰다. 에티엔은 아직 아이인 장랭의 살인에 고통스러웠다. 그는 용감하게 모든 걸 끝낼 각오로 탄광으로 돌아갔다.
한편, 샤발에게 쫓겨난 카트린도 갈 곳이 없어 탄광에 있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보뢰 탄광의 위병들이 무기를 챙겼다. 에티엔이 도착했을 때 탄광 작업 재개에 분노한 광부들이 탄광촌에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총검을 세워 든 병사 육십 명이 두 줄로 서서 탄광 입구를 막았다. 탄광촌에서 달려온 광부들 무리의 맨 앞줄에 선 라 마외드는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고함쳤다. 에티엔이 나서서 대위를 설득해보았지만 대위는 단호했다. 그러자 파업 노동자들은 병사들을 향해 갖은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놓았다. 대위는 위협 목적으로 병사들에게 총알 장전을 지시했다. 병사들이 총알을 장전하자 군중은 더욱더 동요해 병사들을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대위는 가장 과격한 르바크를 비롯해 파업 노동자 두 명을 포로로 잡아 감금했다. 이제 양측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팽팽한 적대감과 긴장감 속에 양측의 분노가 끓어오르던 중에 여인네들이 주변에 널려 있던 벽돌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가 벽돌을 던졌고, 대위와 병사들은 날아온 벽돌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멩이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대위가 발포 명령을 외치려던 순간에, 총성이 울렸다. 첫 총성을 신호로 일제사격이 가해졌다. 병사들이 정말로 총을 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사방으로 정신없이 달아났다. 발포 중지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열네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그중엔 마외와 리디, 라 무케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반대쪽 언덕 꼭대기에 서 있던 본모르 영감은 자기 피붙이들을 죽이는 이 광경을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울부짖고 있었고, 죽은 이들은 뒤틀린 자세로 진흙탕에 처박힌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몽수의 군 발포 사건은 파리에까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좌파 성향의 신문들은 일제히 분노했고, 제정은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진화에 힘썼다. 탄광회사는 파업을 속히 끝내고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라는 비공식적인 지시를 전달받았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부르주아 신사들이 벨기에인들을 돌려보내고 군인들도 철수시켰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사건의 충격을 약화시키려 애썼다. 드뇔랭은 엔보 씨를 만나 방담 탄광의 매각에 관한 협상을 진행했다. 탄광회사에서는 작업 재개 공고를 내고 파업 참여 여부를 떠나 모든 광부들의 복직을 보장한다고 공시했다.
발포 사건 이후 친정으로 돌아온 카트린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갱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라 마외드는 식구들에게 누구든 다시 갱으로 내려갔다가는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에티엔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탄광촌 사람들은 이제 에티엔을 원망하고 저주했다. 심지어는 그에게 벽돌을 던졌고, 에티엔은 돌 세례를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다 주점 앞에 이르렀다. 그러자 라스뇌르가 그를 주점 안으로 숨겨준 뒤, 예의 달변으로 군중을 진정시켰다. 군중은 이제 라스뇌르에게 지지를 보냈다.
바로 그날, 라 피올렌에서는 네그렐과 세실의 약혼 축하연이 한창이었다. 엔보 씨는 파업에 강력하게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레지옹도뇌르 오피시에(Légion d’honneur Officier를 수훈했다. 바로 그날 아침에 드뇔랭은 몽수 탄광회사에 방담 탄광의 채굴권을 매각했다. 심지어 그는 그를 주임기사로 채용하겠다는 제안까지 받아들여,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던 탄광을 감독하는 일개 임금 노동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것은 소규모 개인 기업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거세게 몰려드는 대규모 기업들의 물결에 휩쓸려 자본가라는 탐욕스러운 식인귀에게 차례로 먹혀버린 개인 탄광업자들이 머지않아 모두 자취를 감출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드뇔랭 혼자서만 파업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일요일 밤, 짙은 어둠 속에서 수바린이 보뢰 탄광을 향했다. 그는 탈의실로 들어가 재킷 속에 숨겨둔 망치와 톱, 끌 같은 갖가지 연장을 들고 비상용 사다리가 설치된 환기갱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상용 사다리에 매달린 채 오랫동안 침착하고 노련하게 방수벽을 공략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지상에서 300미터도 더 떨어진 땅속의 거대한 압력을 버텨주는 방수벽이 무너지면 바위가 무너지고 지하수가 터지면서 엄청난 산사태와 홍수가 갱을 덮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방수벽을 적당히만 망가뜨려 놓고 갱 밖으로 나왔다. 이내 세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는 길 위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 시각, 잠 못 이루던 에티엔은 카트린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그녀의 침대로 갔다. 카트린은 갱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에티엔은 슬픔과 연민이 느껴져 그녀를 껴안았다. 그 순간 그는 그녀와 결혼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사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샤발의 보복 위협에도 불구하고 카트린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기어이 갱으로 가겠다고 고집했고, 그러자 에티엔은 정히 그러면 그녀와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갱으로 향하는 광부들을 지켜보며 수를 세고 있던 수바린은 에티엔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그는 에티엔을 붙잡아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에티엔을 뒤따라온 카트린을 발견하자 수바린은 체념한 듯 물러섰다. “한 남자의 마음속에 여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끝난 것이다.” 수바린은 몽수를 떠날 거라며 에티엔과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322명의 광부들이 갱으로 내려갔다. 케이지가 땅속으로 내려갈 때 엄청난 굉음이 나는 듯했다. 광부들은 불안했지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 무심히 넘겼다. 에티엔과 카트린이 한 조에 속해 한 시간 정도 작업이 이어졌을 무렵, 거세게 흐르는 급류가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올랐다. 방수벽이 터진 것이다. 각 갱도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정신없이 뛰어와 서로 먼저 케이지에 올라타겠다고 서로를 짓밟았다. 방수벽의 나무가 차례로 터져나가면서 둔탁한 폭발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은 끔찍한 광경 앞에 넋이 나간 채 울부짖었다. 네그렐이 달려와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갱으로 내려갔다. 아직 갱 위쪽은 멀쩡했기에 물이 차오른 지점까지 내려간 그는 방수벽의 나무판자에 남은 톱질 자국을 확인하고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야기한 재앙에 기겁해 망연자실해져 밖으로 나가 엔보 씨에게 보고했다. 엔보 씨는 에티엔을 비롯해 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열다섯 명의 광부들을 인근의 다른 탄광을 통해 구조하리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추가 붕괴 위험을 피해 갱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 시간을 기다렸다. 대재앙은 계속 확대되고 있었다. 아래쪽부터 시작된 붕괴가 점점 위로 올라오면서 오후 세 시가 되자 선탄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땅이 연속으로 흔들리면서 하치장과 기계실까지 완전히 무너져 땅속으로 영영 사라졌다. 뒤이어 탄광의 채굴물 집하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고, 고가철교와 탄차들, 화물 차량까지 지푸라기처럼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구덩이가 점점 커지면서, 그 가장자리에서 시작된 균열이 퍼지며 제방 한쪽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운하의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갈라진 땅속으로 모여들더니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렸다. 탄광이 강물을 삼켜버린 것이다. 땅이 들이켠 물은 앞으로 수년간 갱도를 물에 잠기게 할 터였다.
그때까지 멀리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바린이 그제야 돌아섰다. 그리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곳에서 멀어져갔다. “훗날 부르주아들이 한 걸음씩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발밑 도로가 폭발해 죽어가게 될 때면, 그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을 것이었다.”
엄청난 타격을 입은 탄광회사는 두려움으로 광범위한 감시망을 구축해 위험인물들을 조용히 하나씩 해고했다. 여론을 의식한 회사는 광부들이 몹시 싫어했던 갱내 총감독 당세르를 즉각 해고했다. 탄광 주임기사로 새로 임명된 드뇔랭은 먼저 백여 명의 노동자를 동원해 운하로부터 더 이상 물이 흘러들지 못하도록 둑을 쌓은 뒤, 열다섯 명의 광부들을 구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인근의 탄광에도 물이 차올랐지만 드뇔랭은 탄광 설계도를 찾아내 면밀히 검토한 끝에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일부 구간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구조 작업이 시작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작업자가 탄맥을 두드리자 광부들이 위험 신호로 사용하는, 탄층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조 작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자샤리는 누이를 찾기 위해 구조 작업자에 끼어 맹렬하게 석탄과 씨름했다.
아홉째 날, 미친 듯이 곡괭이를 휘두르던 자샤리는 그만 램프 뚜껑을 내리치는 실수를 범했다. 갱의 좁은 통로로 불의 소용돌이가 뿜어져 나와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불길은 갱내 감독과 자샤리를 포함한 광부 세 명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 세차게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사흘이 더 지나갔다. 천만다행히도 갱내 가스 폭발에도 접근 갱도들이 무너지지 않아서 구조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나 땅속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 소리는 이젠 멈춘 상태였다.
새로운 사고 소식으로 호기심이 동한 부르주아들은 마치 나들이라도 가듯 들뜬 마음으로 현장을 방문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그레구아르 가족도 무너진 갱을 방문한 뒤, 비극적인 마외 가족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자선을 베풀기 위해 구호물품을 들고 마외 가족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라 마외드는 인근 탄광에서 구조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터라 집안에는 본모르 영감밖에 없었다. 영감은 탄광이 무너지던 날에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벌써 보름째 말 한 마디 없이 멍하기만 했다. 그레구아르 부부가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본모드 영감과 단둘이 남아 있던 세실은 본모르가 예전에 자신의 목을 조른 바로 그 노인이라는 걸 비로소 알아보았다. 그 순간, 본모르 영감도 차츰 깨어나는 듯하더니 이내 그녀를 알아보았다. 밖으로 나갔던 그레구아르 부부가 세실을 찾아 마외네로 돌아왔을 때 세실은 목이 졸려 시퍼렇게 변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본모르 영감이 그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실이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목을 졸랐던 것이었다.
그 시각, 갱 아래 땅속에서는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공포와 싸우며 갱 속에서 안전한 방향을 찾아 우왕좌왕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확신이 없어 두어 명씩 흩어졌다. 결국 단둘이 남겨진 에티엔과 카트린은 가슴팍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아주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에티엔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 카트린의 손을 잡고 굴뚝을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던 두 사람은 느닷없이 샤발과 마주쳤다. 앞쪽은 흙과 바위로, 뒤쪽은 불어나는 물로 꽉 막힌 지점이었던 것이다. 세 사람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거운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가 지나자 비좁은 공간에서 역겨운 동거로 인해 예민해진 샤발이 카트린의 몸을 쓰다듬으며 에티엔을 도발했다. 한순간에 격분한 에티엔은 바위를 들어 샤발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에티엔은 죽은 샤발을 끌고 가 차오르는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암흑의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이 탄맥을 두드려 광부들의 신호를 보냈을 때 마침내 멀리서 응답이 들려왔다. 그렇게 다시 하루, 또 하루가 흘러갔다. 아흐레째 되던 날에 엄청난 폭발의 진동으로 그들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카트린은 이제 정신착란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함께 있어 달라며 에티엔을 끌어안았다. “그들은 마침내 지하 무덤 깊숙한 곳에 갇힌 채 진흙 침대 위에서 첫날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둔 두 남녀는 모든 것이 절망스러운 만큼 더욱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카트린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에티엔도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더니 바위가 부서지며 램프 불빛이 느껴졌다. 에티엔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를 발견한 네그렐은 서로 경멸했던 사이였던 것도 잊고, “그들에게 내재해 있던 인간애에서 비롯된 극심한 마음의 동요 속에 서로를 얼싸안고 큰 소리로 흐느끼며 굵은 눈물 줄기를 쏟아냈다.” 라 마외드는 카트린의 시신 옆에서 오랫동안 통곡했다.
4월의 선선한 날이 밝아오는 새벽 네 시, 에티엔은 아직 몹시도 수척한 얼굴로 길을 나섰다. 탄광회사는 에티엔을 해고했다. 에티엔은 다시 플뤼샤르와 연락을 취했고, 그의 부름을 받아 파리로 떠나는 날이었다. 좌절과 실의의 쓰라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경험을 밑천 삼아 더욱 넓은 터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려는 꿈이 그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이른 봄의 찬란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에티엔은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탄광으로 향했다. 두 달 반의 파업 끝에 배고픔에 지쳐 다시 갱으로 돌아간 광부들은 어쩔 수 없이 회사 측이 제시하는 갱목 요금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들은 동료들의 피가 더해진 그 요금제에 분노하며 치를 떨었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여러 줄로 늘어선 남자들이 새벽안개를 뚫고, 도살장으로 향하는 가축들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둠에 잠긴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갱 입구에서 에티엔을 마주한 광부들은 패배자의 분노와 복수를 향한 불타는 열망을 담아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케이지에 올라탔다. 잠시 후, 저 멀리로 남자 옷을 입은 라 마외드가 나타났다. 누구든 갱으로 다시 내려가면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그녀였지만 그녀에겐 배고픔으로 울어대는 아직 어린 자식들이 있었던 것이다. 라 마외드는 에티엔에게,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건 절대로 에티엔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잘못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불쌍한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죽게 한 부르주아들은 언젠가 그런 짓을 저지른 데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녀와 마지막 악수를 하면서 에티엔은 예전에 동지들과 악수할 때 느꼈던 믿음과 희망을 다시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투쟁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며, 이번에는 성공을 하리라 확신했다. “분명한 것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탐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4월의 영광스러운 태양이 생명을 배태하고 있는 대지를 따사롭게 비추는 가운데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제르미날〉의 배경이 된 1866~1867년을 전후로 프랑스의 탄광들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과 파업이 잇따라 발생했다. 1867년에는 지방의 퓌보(Fuveau) 탄전에서 300여 명의 광부들이 국제노동자협회 지부를 결성했고, 1869년에는 오뱅(Aubin)의 광부들이 대표단의 이름으로 임금과 퇴직연금, 의료 체계와 관련된 요구 사항을 적은 편지를 《라 트리뷘》 지에 보냈다. 그중 몇몇 충돌 과정에서는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그 무렵,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도래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혼란과 때를 같이하여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이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850년경부터 프랑스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좌파의 다양한 경향은 대체로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사상과 프루동의 이론에서 비롯된 무정부주의적 사상으로 대표되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적 흐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수바린에 의해 대변되는 무정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유럽에 수많은 테러를 야기했다.
당시 졸라는 한 사회주의자 하원의원의 권유로 앙쟁 탄광을 직접 방문해 그곳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그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무려 962쪽에 달하는 방대한 작가 노트를 작성했다.
소설의 큰 틀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갈등구조를 살펴보면, 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각기 다른 방법론이 제시된다. 러시아의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의 신봉자를 자처하는 수바린은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으며 먼저 모든 걸 부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성한 혁명을 위한 개별적인 행동만이 의미가 있다고 믿고 이 땅에 국가와 정부, 사유재산 그리고 신과 종교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절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라스뇌르는 광부들의 파업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파업은 고용주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대신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더욱더 악화시키다 결국 그들을 파국으로 이끌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온건한 태도를 견지하자는 주장을 펴나갔다. 단지 법령 몇 개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세상이 바뀔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다.”
비록 체계적으로 이론을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임을 표방하는 에티엔은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횡포를 무너뜨려야만 노동자들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사회를 개혁하고 훗날 사회 계급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자유는 국가를 무너뜨림으로써만 획득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민중이 국가를 장악했을 때에야 비로소 개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그들을 진정으로 대립하게 하고 그들 사이에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은 광부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는 그들의 공통된 야심이다. 그들이 옹호하는 이론들은 어떤 면에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행복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야심을 충족시키면서 광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제르미날〉은 〈목로주점〉을 보완하는 작품으로서, 두 소설은 노동자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제르미날〉에는 〈목로주점〉의 제한된 배경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진일보한 관찰과 새로운 고찰,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다. 〈목로주점〉의 노동자와 달리, 〈제르미날〉의 광부는 성실한 노동자이건 아니건, 술꾼이건 아니건 간에 혼자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야만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목로주점〉의 노동자들이 필요한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제르미날〉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할 수가 없다. 광부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은 〈목로주점〉에서처럼 술집이나 알코올중독 또는 나태한 삶이 아니라 그들의 비참한 삶을 이용하여 배를 불리는 탄광회사와 고용주 그리고 자본가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는 열심히 돈을 모아 자신의 가게를 소유하고 스스로 고용주가 되어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꿀 수 있는 반면, 〈제르미날〉의 라 마외드는 아예 그런 야심을 가질 수도 없거니와 그런 꿈을 꾸지도 않는다. 제르베즈는 자신이 왜 추락했는지 제대로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절망 속에 굶어죽지만, 라 마외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며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들고일어난다.
〈제르미날〉에는 〈목로주점〉에는 없는 계층 간의 대립이 존재하며, 그것이 모든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엔보 가족의 사치스러운 삶과 그레구아르 가족의 나태하고 여유로운 삶이 광부들의 지옥 같은 삶과 대비된다. 죽도록 일하는 노동자들의 덕을 보는 것은 일하는 당사자들이 아니라 고용주와 자본가, 연금소득자로 대표되는 부르주아들인 것이다.
졸라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불행을 통해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될 문제인 자본과 노동의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제르미날〉은 자본에 대한 논고이고, 노동자계급을 위한 변론이며, 계급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졸라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카트린과 자샤리와 라 마외드와 세상의 모든 마외를 위해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움트는 희망의 찬가로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명의 노래로서 〈제르미날〉을 남겼다.
▶ 참고 문헌 : 〈제르미날〉, 에밀 졸라 저, 박명숙 역, 문학동네
▶ 참고 논문 :
1. 〈『제르미날』의 상징적 이미지에 관한 연구〉, 이정옥(호서대)
2.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 손경애(덕성여대)
3.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연구-신화•성서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정옥(호서대)
4. 〈졸라의 『제르미날』과 노동자〉, 정명환(성심여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