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루공-마카르 총서 제14권

by 글섬

작품 배경


〈작품(L’Œuvre)〉은 1886년 4월에 발표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14권에 해당한다. 1885년 5월에 집필에 착수해 1886년 2월에 완성된 〈작품〉은 1885년 12월 23일부터 1886년 3월 27일까지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연재된 뒤, 1886년 4월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작품〉은 화가인 클로드 랑티에(Claude Lantier)를 중심으로 모인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클로드 랑티에는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 마카르(Gervaise Macquart)와 오귀스트 랑티에(Auguste Lantier)의 장남으로, 8세 때 그가 그린 데생을 보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어느 노신사의 후원으로 미술 교육을 받고 화가가 된 인물이다.


졸라는 이 작품의 구상단계에서 일종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초안(l'Ebauche)〉에서 작품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클로드 랑티에를 통하여 예술가의 자연과의 격투를, 작품을 창조하려는 노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피와 땀의 노력을 그리려 한다. 그것은 항상 진실과의 계속되는 싸움이고, 또 항상 끝내는 지고야 마는 천사와의 싸움이다. 한마디로 나는 여기에서 나의 내밀한 창작 생활을, 이 너무나 괴롭고 끝날 줄 모르는 분만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실현할 수 없는 것에 분노하여, 종내는 자신의 미완성의 작품 앞에서 자살하고 마는 클로드의 드라마를 통하여, 나는 주제를 더욱 확장시킬 것이다. 그는 무능력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야심을 가져서 자연을 한 장의 그림 위에 완전히 옮겨놓으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이 창작자는 죽는 것이다. 그는 뛰어나기는 하지만 역시 불완전한,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작품을 낳고, 아마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이다. 또 나는 그로 하여금 거창한 근대적 벽화의 꿈을, 이 시대를 완전하게 요약하는 벽화의 꿈을 꾸게 하고, 그리고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요컨대 졸라는 무엇보다도 예술적 창작에서의 고뇌와 불안을 클로드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예술가를 종국적으로는 좌절과 파멸로 이끄는 예술가 자신의 성격과 그 주위의 환경을 드러내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졸라는 클로드를 통해 항상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는 그 자신을 그렸다고도 할 수 있다.


졸라는 클로드 랑티에라는 인물에 대해, “극적으로 각색된 마네나 세잔과 같은 인물, 오히려 세잔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구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소설 전반부에서의 클로드는 세잔과 마네를 연상시킨다. 클로드는 졸라의 분신임이 틀림없는 상도즈(Sandoz)와 프로방스에서의 학창 시절의 친구로서, 두 사람은 남부 프랑스에서 보낸 목가적인 소년기를 그리움을 담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졸라와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중학 시절을 같이 지낸 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로맨틱한 몽상가, 격하기 쉬운 성격,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와 쿠르베(Gustave Courbet)에의 감복, 살롱전에서의 낙선 등은 18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세잔의 모습 그대로이다. 또 마네는 이 소설 전반부의 절정을 이루는 낙선전람회의 장면에서 명확하게 등장한다. 클로드가 출품한 〈야외〉는 숲속에서 남자들과 옷을 벗은 여자를 배치한 구도인데, 이는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을 빼닮았다. 그리고 그 전람회장에서의 〈야외〉에 대한 관람객들의 조소와 욕설은 회화사상 유명한 1863년의 마네 스캔들을 재현한 것임이 명백하다.


〈작품〉은 아카데미즘에 저항하여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를 충실히 그리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프랑스 제2제정기로 프랑스의 근대성 속으로의 입장을 의미하는 때였다. 그 시절은 경제적 번영, 은행의 혁명, 교통수단의 혁명적인 시기였고 자본주의 승리의 시절이었다.


졸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서 친구인 화가 앙투안 기유메(Antoine Guillemet)에게 문의했고, 화상들, 애호가들, 미술학파들, 아틀리에들, 심사위원들, 국전들이 이루어가는 그림의 사회적 작용이 전적으로 그의 관심을 끌었다.



1장


어느 천둥 치고 비 오는 날 밤, 클로드는 이제 막 시골에서 파리로 상경해 갈 곳 몰라 하는 크리스틴(Christine)을 자신의 집 앞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클로드는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데리고 들어가 침대 앞에 병풍을 펼쳐 젖은 옷을 벗게 하고 하룻밤을 재워준다.


클로드는 야외의 살아 있는 빛에 착안하여 한 걸음 깊이 자연의 실제에 육박하려고 하는, 시대에 앞선 청년화가였다. 그는 “야외에서 직접 자연을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라면 학술원의 화가들이 꺼리고 있는, 햇빛이 강하게 드는 아틀리에를 빌려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그의 아틀리에는 온실의 열기와 흡사했다. 다음 날 아침,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열기 때문에 이불을 걷어내고 깊이 잠이 들어 있는 여인의 알몸을 보고 클로드는 충격을 받는다. “매끄러운 황금빛 비단 같은 피부를 지닌 그녀의 육체는 봄의 육체였다.” 그것은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클로드는 정신없이 붓을 들고 깊은 행복감에 잠겨 그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잠에서 깬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온몸이 얼어붙어 이불로 몸을 가리며 벌벌 떠는 그녀를 클로드는 몸은 가리고 얼굴만 그리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클로드를 보고 그녀는 어쩐지 매우 감동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틴(Christine)이었다.


클로드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크리스틴은 눈으로 아틀리에에 널려 있는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강렬한 색조와 그림자를 과감히 삭제한 파스텔의 굵은 선에 놀라” 곤혹스럽고 두려웠다. 이윽고 클로드가 붓을 내려놓자 크리스틴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는 클로드가 권하는 아침 식사도 마다하고 서둘러 아틀리에를 떠났다.


2 - 3장


클로드가 파리를 떠나 자기가 태어난 프로방스 지방의 한 구석으로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세탁부였던 그의 어머니는 부지런한 여자인데, 게으름뱅이인 아버지가 그녀를 버리자 사람 좋은 인부와 결혼을 하였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항상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그때 한 노신사가 나타나 클로드를 데려가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해오자 그들은 기꺼이 수락하였다. 원래 마음은 좋았지만 괴짜였던 이 노인은 그림 애호가로, 클로드가 어린 시절에 서투르게 그린 인물화에 감동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설득에 감화되어 클로드는 7년 동안 남부에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 있다가 나중에는 후견인의 집에서 통학을 하였다. 그는 천 프랑의 연금을 클로드에게 양도하며, 클로드가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에 그 재산을 처분할 권리를 준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미 화가가 될 꿈에 불타고 있던 그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치러볼 시도도 하지 않고 즉시 그 학교를 나와서 친구 상도즈가 앞서 와 있던 파리로 달려왔다.


플라상(Plassans)의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8학년부터 클로드 랑티에, 피에르 상도즈, 그리고 루이 뒤뷔슈(Louis Dubuche)는 단짝 친구였다. 각각 출신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이들은 “잠재적인 친근감과 세 사람 모두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막연한 야심으로 인한 불안, 그리고 그들이 학교에서 마주쳐야 했던 저능아들과 멍청이들의 난폭한 소용돌이 속에서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우월한 지식으로 인해 대번에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는 상도즈는 오로지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몹시 괴로워하며 구청 호적과에서 사무를 보았고, 건축가를 꿈꾸는 뒤뷔슈는 미술학교 수업을 받으며 건축가 사무실의 잡다한 일을 찾아다녔다. 클로드만이 연금 덕분에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클로드는 마음속의 것을 아직은 충분히 표현할 수 없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존경받아도 일반인에게는 이해받지 못하여 힘들고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클로드는 공식 살롱에 출품할 대작 〈야외〉를 그리고 있었다. 〈야외〉는 6월의 초목 가운데에 펼쳐진 풀밭 위에 벌거벗은 한 여인이 한쪽 팔을 베고 가슴을 부풀리며 누워 있고, 그림 뒤편에는 갈색 머리와 금발의 키 작은 여인이 역시 벗은 채로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클로드는 전경에 검은색의 대비를 넣을 필요를 느끼고 그 자리에 간소한 벨벳 윗도리를 입은 신사를 그려 넣었다. 이 신사는 상도즈를 모델로 그리고 있었다. 아침에 크리스틴을 모델로 그렸던 그림도 바로 〈야외〉의 풀밭 위에 누운 벌거벗은 여인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아직도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번 그는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었고, 머리를 벽에다 부딪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화가란 저주받은 직업 같았다.


4장


그로부터 6주일이 흐른 어느 날 아침, 돌연 크리스틴이 클로드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그녀는 장미꽃 한 다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야외〉에서 벌거벗은 여인이 자신의 얼굴임을 알아차리고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껴 갑자기 냉정해져 돌아가 버린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어느 날 아침에 크리스틴은 또 다시 클로드의 아틀리에에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달라고 말했지만, 클로드는 그녀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왔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크리스틴은 매주 한 번씩은 꼭 클로드를 방문했다. 그렇게 넉 달 동안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틴과 클로드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두 사람은 도착했을 때와 헤어질 때 나누는 악수 외에는 다른 애정의 표시도 없이, 오랫동안 사귄 친구 사이처럼 지냈다. 다만, 이 우정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그들은 서로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사실적인 그림들이나 나체화들에 익숙해지지 않은 크리스틴은 클로드의 그림에 거부감을 느꼈다. 특히나 〈야외〉에 대해서는 여전히 화가 났다. 그런 그녀이기에 클로드는 차마 그녀에게 몇 시간만 포즈를 취해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야외〉의 벌거벗은 여인은 얼굴만 크리스틴이었기에 몸과 조화롭지 않았다. 그래서 클로드는 자꾸만 그림을 고쳐야 했고, 고칠수록 그녀의 모습과 멀어져갔다. 살롱 출품 날을 사흘 앞두고 절망한 클로드가 드디어 간절하게 크리스틴에게 모델을 청했고, 크리스틴은 두말없이 조용히 옷을 벗었다. 3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단번에 몸 전체를 완성한 클로드는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5장


살롱전에서 낙선한 클로드의 그림은 낙선전시회에 전시되었다. 낙선전시회는 살롱 전시회에서 심사위원들이 탈락시킨 작품들을 일반 대중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일반인에게 전시하는 행사였다. 낙선전시회에서 클로드의 〈야외〉는 대중으로부터 심한 조소를 받았다. 상도즈가 대중은 들라크루아도 쿠르베도 야유했었다고 분개하고, 한 학사원 회원은 “자네가 그린 그 중앙의 벌거벗은 여자를 그리려면 나도 10년은 족히 걸릴 거야.”라는 극찬과 함께 이제 클로드가 새로운 유파의 수령이 된 거라고 위로했지만, 클로드는 심한 타격을 받았다.

그날 저녁, 클로드가 잔뜩 지친 마음으로 아틀리에로 돌아왔을 때 낙선전시회의 야유 소리를 듣고 걱정된 크리스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틴이 누가 뭐래도 클로드의 그림은 아주 훌륭하다고 말하자 클로드는 비로소 크리스틴에게 무너져 오열했다.


6장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찾아온 크리스틴의 손을 잡고 클로드는 시골로 향했다. 이 세상의 끝만 같은 시골의 숲속에서 두 사람은 사랑에 탐닉했다. 그곳에서 비어 있는 오두막집을 발견한 두 사람은 2주일 뒤 도망치듯 파리를 떠나 오두막집에서 달콤한 신혼집을 꾸몄다. 낙선전람회로 실망한 클로드는 오로지 크리스틴과의 사랑에 탐닉했다. 그림에 대한 열의는 사라져버렸고, 마치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달콤한 무위도식에 빠져 육체의 즐거움만을 탐닉했다.


그러나 석 달 뒤 크리스틴이 임신하자 그들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클로드는 비로소 자신이 결코 가정을 원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듬해 2월에 크리스틴은 아들 자크(Jacques)를 낳았다. 크리스틴은 아이가 울면 가슴 아파하긴 했지만 모성애가 싹트진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연인이었고, 자식보다는 클로드를 수십 배 더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이제 사랑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와 자크를 수없이 반복해서 그렸다. 크리스틴의 눈에는 클로드가 몇 년 동안 태양이 밝게 비치는 전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새로운 시각으로 이전보다 밝고 노래하는 듯한 경쾌한 색조로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그가 포플러를 푸른색으로 칠한 것을 발견했고, 부부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 무렵, 클로드는 화상을 만나고 온다는 핑계로 한 달에 세 번씩이나 파리에 다녀왔다. 그사이 상도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문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도즈는 “다가올 과학과 민주주의의 새 세기를 위한 문학”을 위해 “한 가족의 일원을 각각 관찰”하여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또 그들 서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결국 소규모로 떼어낸 인간, 그 인간이 진화하고 행동하는 양식을 그려” 보일 책들을 총서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상도즈의 곧고 성실한 삶을 보고 남다른 우정을 느껴 그에게 자크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청했다.


클로드는 거부할 수 없는 그림에의 욕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봄이 오자 그는 다시 살롱 출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제 전원생활의 초기에 느꼈던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남편의 마음을 간파한 크리스틴은 그녀 자신은 원치 않는 파리로 돌아가자고 졸랐고, 클로드는 못 이기는 척 짐을 꾸렸다. 시골집을 떠나는 날에 크리스틴은 “자기에게서 무언가가 떨어져나가는 느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을 그곳에 놓아두고 오는 느낌이 들었다.”


7 - 8장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클로드는 온종일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점점 고조되는 흥분 상태에서 지냈다. 소란스러운 거리를 산책하고, 친구들 집을 방문하여 토론에 열중하는가 하면, 그로 인해 얻은 분노와 뜨거운 생각들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파리는 맹렬한 불길로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의욕과 희망에 들떠, 마치 손을 뻗치기만 하면 걸작을 얻게 될 것만 같았다.


3년 동안 클로드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고무되면서 투쟁을 해나갔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전진하였다. 그러나 눈 내리는 풍경화를 제작한 첫 해에도, 강렬한 녹색 벤치를 전경으로 마을의 소시민들을 그린 두 번째 해에도, 극히 정밀한 관찰에 기반을 둔 빛의 색채 분할을 강조하며 태양이 내리쬐는 카루셀 광장을 표현한 세 번째 해에도 살롱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번번이 주변 친구들만이 하나같이 걸작이라고 칭찬하며 살롱에 일대 혁명이 얼어날 거라고 떠들어댈 뿐이었다. 결국 클로드는 비통한 심정으로 다시 회의에 빠졌다.


크리스틴은 낙담한 클로드를 돌보고 사랑해주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는 사이, 어린 자크는 점점 방치되었다. 클로드의 안락한 환경을 위해 크리스틴은 아이를 끊임없이 내치고 꾸짖었다. 시골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자란 자크는 좁은 집에 갇혀 지내야 하는 파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새 다섯 살이 된 자크는 해쓱해졌고, 의기소침해 몇 시간씩 말을 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9장


클로드는 심기일전해 연금을 헐어 넓은 창고를 아틀리에로 빌려 다시 그림에만 매달렸다. 그는 매일 생 페르(Saints-Pères) 다리 밑에서 하루를 보내며 생 니콜라(Saint-Nicolas) 항구에 전념했다. 항구의 분주한 열기는 먼 바다의 항구를 연상시켰다. 그는 몇 주일 동안 배에서 시멘트를 내리는 인부들의 데생에 열중했다. 중경으로는 사공이 노를 젓고 있는 배와 저 멀리 증기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다. 후경으로는 태양 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대성당과 첨탑이 우뚝 솟은 넓은 하늘을 그렸다. 이윽고 모든 스케치를 완성한 그는 여름 내내 아틀리에에서 거대한 그의 대작의 구도를 틀에 맞추느라 결전을 벌였다. 마침내 천재성이 번득이는 스케치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다시 그의 무능이 시작되었다. 그는 늘 그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대단한 힘으로 밀어붙이다가도 그 후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끝을 맺지 못했다. 이 년 동안 이 그림에만 매달려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쳐 회의로 몸부림치다가 두 번씩이나 살롱에 출품하지 못했다. 세 번째 살롱을 앞둔 클로드는 극심한 불안증으로 2주일 동안이나 아틀리에에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또 한 해가 흘렀고, 클로드는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아무것도 완성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는 다시 아틀리에에 틀어박혔고, 새로운 정열을 불태웠다. 왼쪽에는 생 니콜라 항구가 있고 오른쪽에는 해수욕장이 있으며, 배경으로는 세느 강과 시테 섬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의 중앙에 세 명의 여자가 배에 타고 있었는데 역시나 나체였다. 이 그림을 본 상도즈가 파리 한가운데에 벌거벗은 여자는 전혀 사실적이 아니라고 조심스레 지적했지만, 클로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진짜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도 명료하지 않아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밀한 상징주의에 대한 충동, 이 소생된 낭만주의가 다름 아닌 파리의 육체를 이런 누드를 통해 구현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는 마치 끊임없이 예술을 잉태하기 위해 자기의 두 손으로 그것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를 불사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클로드의 대작이 반복되며 여러 해가 지나고, 자크는 벌써 아홉 살이 되었다. 그즈음 크리스틴은 하루 종일 클로드를 도와 캔버스를 지우고 닦았다. 크리스틴은 남편을 빼앗아간 그림으로부터 그를 다시 찾기를 열망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의 종이 되었고, 기꺼이 막일꾼이 되었다. 그녀는 그림으로부터 남편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그림의 모델을 자청해 남편의 캔버스 앞에 알몸으로 섰고, 클로드는 그녀를 직업 모델처럼 아무 때나 옷을 벗기고 마네킹처럼 원하는 대로 몇 시간씩 세워놓으며 거칠게 사물 취급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였고,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였다. 몇 주일 동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다시 모든 것이 망가졌고, 그는 대형 여자의 모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며칠 동안 그 일에 매달려 모델을 혹사시켰고, 다시 한 달 동안 처박아두었다가 다시 그리고 지우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것은 완전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 다시 2년이 흘렀지만 작품은 여전히 미완성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뒤에서 그를 불완전한 천재라고 불렀다. 그는 항상 넘치거나 부족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혹과 참담함으로 파리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며칠 동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아침에 기진맥진해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클로드는 갑자기 고통의 신음을 내며 무시무시한 힘으로 캔버스를 찢어버렸다.


그 사이 연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써버린 클로드에게 끔찍한 가난이 덮쳐왔다. 파리 사람들의 조롱 속에 클로드의 그림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따로 전시회를 열어보기도 했지만 대중은 무지개색이 총망라된 알록달록한 그의 그림을 조롱하며 그를 아마추어로 여겼다. 화상들은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제는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다시 심기일전한 클로드는 이번에만은 어떻게든 그림을 완성해서 살롱에 출품해보고자 제작에 몰두했다. 하지만 결국 또 다시 기운이 다 빠진 그는 더 이상은 도저히 그리지 못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는 친구들과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의 어지러운 그림에 마음이 불편하여 차차 발걸음을 멀리하더니, 젊은 시절의 재능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그를 보고 모두 도망쳐버려, 이제 그를 찾아오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상도즈만이 여전히 클로드와 자신의 대자인 자크를 만나러 오곤 했다. 상도즈는 클로드가 예술적 광기의 밑바닥으로 침몰하는 것을 보면서 동지 예술가로서 가혹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도대체 예술에서 어디까지가 광기란 말인가?” 상도즈는 드디어 책을 출판해 얼마간의 돈도 벌고 대중에게 이름도 알리게 되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단 1분도 행복하게 살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소설을 쓸 당시에는 세간에 재능을 뽐내겠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어떤 글도 흡족하지 않았고, 그저 매일 같은 일이 다시 시작되고 영원히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클로드는 살롱 출품을 포기했다.


어느 날 자크가 마비 증세를 보이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의식 없이 앓기만 하던 자크가 어느 날 아침 숨을 거뒀다. 크리스틴은 이 가련한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뼈저린 후회로 침대에 머리를 파묻고 온몸으로 오열했다. 클로드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조용히 일어나 종이를 가지고 와서 아이의 사체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5시간 동안 클로드는 죽은 아이를 그렸다.


10장


클로드는 〈죽은 아이〉를 《팔레 드 렝뒤스트리(Palais-de-l’Industrie)》에 출품했다. 이 그림은 심사위원이 된 친구 파주롤(Fagerolles)의 도움으로 겨우 입선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클로드는 기쁘기는커녕 더욱 낙담했다. 더군다나 살롱 개회 전날에 자신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파주롤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분노와 치욕으로 몸을 떨었다. 파주롤의 그림은 예전에 클로드가 그렸던 〈야외〉와 똑같은 양식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춰 벌거벗은 여자 대신에 어깨가 훤히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사교계 여자로 대치되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외설적이었다. 〈야외〉에 대해서는 그토록 야유했던 대중과 언론이 파주롤의 그림에 대해서는 진정한 진실을 그리는 화가의 출현이라고 떠들썩했다. 마침내 자신의 그림, 〈죽은 아이〉를 마주하고 선 클로드는 해골 같은 자크의 모습에 너무도 비통했다. 대중은 그의 그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상도즈가 다가와 클로드를 위로했지만, 클로드는 〈죽은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참담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그날부터 클로드는 가끔 창백한 얼굴에 광기 어린 눈을 번득이곤 했다.


11장


클로드는 줄곧 그림을 그렸다. 그는 영국에 수출하는 작은 꽃 그림을 그리는 일거리를 맡아 그 벌이로 생활을 해나갔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대작에 바쳤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열의를 내는 일은 없었다. “마치 영원한 노역에 몸을 바치겠다고 체념한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집요한 노력으로 대작에 매달렸지만, “그렇다고 성공을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눈만은 광기가 여러 있었다.

그는 “슬픈 마음속에서 점차 확신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자신은 이 세상의 증오에 갇혀서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그는 11월의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밤, 시테 섬 앞에서 어둠 속에서 도도히 흘러가는 광활한 세느 강의 수면을 들여다보며 죽음의 감미로운 유혹과 싸웠다.


12장


그날 밤, 클로드는 시테 섬에서 집으로 돌아와 몽유병자처럼 멍한 눈을 하고 자신의 대작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망상에 젖은 채 미친 사람처럼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거운 색조를 자꾸만 두껍게 칠하여 사실적인 그림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림은 점점 더 데생과 멀어져갔다. 결국 그는 나체의 여인을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로 그리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클로드는 아내에게는 금욕적인 태도를 취하며 오로지 자신의 그림을 위해 정력을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그림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며 수많은 날들을 참아내다가 급기야 점점 멀어져 잊혀졌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이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남편을 그림에서 떼어놓으려 남편의 그림이 흉측하고 기괴하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클로드에게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인생이 남아 있지 않느냐며 파리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삶의 기쁨만을 생각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애원했다. 그러나 클로드는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면 아마 나는 죽을 거야. 차라리 그림을 그리다 죽을래. 나에게는 예술이 전부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세상 같은 것은 없어도 좋아!”라고 외쳤다. 아내는 악에 받쳐, 살아있는 자신의 몸을 베껴 흉측한 시체 같은 여자들을 그리고 있는 거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클로드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눈으로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현실을 정복하고 자신의 손으로 보다 현실적인 것을 재현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투쟁한 끝에 비로소 그는 현실을 표현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필생의 대작을 망쳤다는 생각에 참담해진 클로드는 미친 듯이 아내를 껴안으며 울먹였다. 클로드는 아내의 몸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들은 예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환희의 열광에 취했다. 행복감에 젖은 크리스틴은 클로드의 팔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이 밝아오자 클로드는 다시 모든 상념과 분노가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이제 다 끝났다. 그는 너무도 괴로웠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어떤 즐거움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더 살 수 없었다.” 아틀리에 안에서 명령하듯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서둘러 아틀리에로 들어갔다.


1시간쯤 지난 후에 크리스틴은 서늘한 기운에 문득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아틀리에로 달려간 그녀의 눈앞에 자신의 실패한 그림 앞에서 커다란 사다리에 목을 맨 채로 매달려 있는 클로드가 보였다. 클로드는 기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 위에서 “그림 속의 여자가 우상처럼 상징적인 빛을 찬연하게 내고 있었다. 광기 어린 그림만이 홀로 불사신처럼 꼿꼿이 서서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클로드의 장례식에서 상도즈는 “살아가려면 자존심을 버리고 어느 정도 타협해서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며, 클로드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적어도 논리적이고 용감한 남자”였다고 말한다.



분석


〈작품〉은 졸라의 작품 중에서 자전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 소설이다. 상도즈는 졸라의 분신이다. 아무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히 그려져 있다. 상도즈는 소설에 대한 자세와 포부뿐만 아니라 작업 태도에 있어서도 졸라를 닮았다. 젊은 시절 가난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던 졸라의 모습,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것, 졸라가 그 당시 살던 집, 생활이 안정되자 친구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초대한 일까지 모든 면에서 졸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작품 속 작가의 진정한 분신은 클로드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내면에 감추어진 창작의 고통, 고뇌를 클로드를 통해서 졸라는 표현하고 있다. 요컨대 클로드도 상도즈도 모두 졸라 자신인 셈이다. 클로드는 무한을 추구했다. 그는 완전한 예술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삶을 죽였다. 그래서 자신의 숨겨진 분신 클로드를 통해서 졸라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위대성을 고백하고자 했을 것이다. 인생의 대략적인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인간, 그런 인간의 한계적 상황을 클로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졸라는 클로드란 인물을 통해서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절대를 향한 이상의 한 부분을 표현한 반면, 상도즈란 인물을 통해서는 유한한 삶에 자신을 맞춰 가는 자신의 현실적인 부분을 표현했던 것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인상파 화가의 시각과 수법을 소설 창작의 차원으로 옮겨놓으려는 졸라의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의 묘사를 꼼꼼히 잃으면, 이 작품에 나타나는 묘사는 사건의 진행에 대하여 종속적인 기능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역동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한 예로, 이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빛의 움직임에 대하여 다양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구름이나 일몰과 같은 시시로 변해가는 대상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 깊게 묘사한다든가, 또 세느 강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달리 보이는 빛을 대조적으로 그리기 위하여 서로 다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인상파 화가들이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순간순간의 서로 다른 인상을 포착하듯이, 졸라도 이 소설에서 시테 섬이나 일몰을 그리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기후의 변화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달라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연작의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작품〉은 소설의 소재나 내용뿐만 아니라, 소설의 기법까지도 특히 인상파 회화의 기법이 사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 〈작품〉, 에밀 졸라 저, 권유현 역, 일빛 출판사

▶ 참고 논문 : 〈미술비평가 졸라, 세잔 그리고 『작품』〉, 손경애(덕성여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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