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루공-마카르 총서 제15권

by 글섬

작품 배경


〈대지(La Terre)〉는 1887년에 발표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제15권에 해당한다. 제2제정 말기, 프랑스 파리 서부의 중부 지역인 보스(Beauce)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루공가의 운명(La Fortune des Rougon)〉에 등장했던 장 마카르(Jean Macquart)가 주인공이다. 장 마카르는 마카르와 아델라이드의 아들인 앙투안 마카르(Antoine Macquart)가 조세핀 가보당(Joséphine Gavaudan)과 결혼해 낳은 아들로, 리자(Lisa), 제르베즈(Gervaise)와 남매지간이다. 장은 〈패주(La Débâcle)〉에서는 주인공으로,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에서도 중심인물로 다시 등장한다.


〈대지〉의 출간은 미학적, 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드러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제3공화정 시대는 그 동안 승승장구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자산가 계층이 노동자들의 생존 요구 앞에서 불안을 느끼던 시기였으므로, 상대적으로 농부들에 대해서는 안정되고 모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했다. 졸라는 그 시대의 보수주의적인 모든 이념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이미지를 뒤흔든다. 그는 밀레의 그림처럼 삼종기도 종소리에 일을 멈추고 기도를 바치는 농부라는 프랑스의 이상적인 정신과는 정반대되는 난폭하고 신앙심 없는 인물들, 땅을 소유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농부들을 그린다.


졸라는 〈대지〉의 초고에서, 땅을 부의 형태로 인식하기 시작한 농부들이 땅에 대한 집요한 소유욕으로 인해 난폭한 살인자로 변해가는 모습, 그리고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양육자 땅, 관대하고 평화로운 위대한 어머니 땅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자 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1887년 발표된 대지에 그려진 부모살해, 형제살해, 근친상간, 성폭력, 청소년과 어린 자녀 학대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온갖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재앙의 세상은 당시대인들에게 아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음울한 폭력의 세계와는 정반대로 〈대지〉에는 시골장터나 민속축제날처럼 우스꽝스러운 소극들과 포도주의 향연이 넘쳐난다. 게다가 만성절을 앞둔 10월 말에 시작해서 유럽의 봄맞이 축제인 카니발이 행해지는 2월에 끝나는 소설의 시간성은 대지와 봄맞이 축제와의 연관성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만성절은 본래 켈트족의 봄맞이 축제로서, 지하에서 유령들이 올라와 혼란의 시기가 시작되면, 그들을 잘 대접해서 다시 지하로 내려 보내면 질서는 제자리를 찾고 세상은 다시 생명의 봄을 맞이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이다. 2월 역시 많은 유럽 국가들이 봄맞이 축제인 카니발을 즐기는 달이다. 이런 봄맞이 의식의 시간성을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에 도입한 것은 이 소설이 겨울(죽음, 무질서)을 쫓아내고 봄(생명, 풍요)을 맞이하려는 봄맞이 축제처럼 풍요를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욕망과 맞닿아있음을 보여준다.


〈대지〉는 1860~1870년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로, 정확한 날짜가 주어지기보다 달과 계절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다른 소설들보다 자연의 시간이 인간사의 시간보다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소설은 10월 말의 파종으로 시작해서 2월 봄의 파종으로 끝나며, 소설의 중간이며 정점이 되는 3부는 자연적 순환의 절정인 여름에 전개되며 4장과 5장은 수확기를 그린다. 파종에서 수확, 그리고 다시 파종으로 가는 전체적인 흐름은 자연의 영원한 순환의 시간을 그대로 따른 것임을 보여 준다. 10월(파종)-5월(우박피해)-7월(풀 베어 말리기)-8월(가축시장, 밀 수확, 암소 분만)-9월(양떼 방목)-10월(포도수확기)-9월(비료주기)-2월(파종)이라는 시간성 역시 농촌 삶을 있는 그대로 구현하려는 작가의 목적을 충족시키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10월 말의 파종 장면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드넓은 대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미동도 없는 거대한 바다 같은 모습, 작은 돌섬처럼 왜소해 보이는 마을, 넘실거리는 땅의 물결 속에서 교회는 보이지 않고 간신히 솟아나온 것 같은 종탑은 모두 물결 속에 파묻히고 삼켜질 듯한 모습이다. 어두워지는 음울한 회색빛 하늘과 더불어,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같은 거대함,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듯한 물결의 넘실거림의 이미지는 땅이라는 한정된 사물의 보여진 것의 한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다시 말해 바다의 이미지로 표현된 대지의 이미지는 삼킴이라는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이성으로 억압되어 있었던 파괴적 힘의 발현과 연결되어 있다.


1부 1장에 이런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갑자기 검게 변해지면서 추위가 닥치는 날씨 또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광기 어린 흐름을 암시한다. 〈대지〉에서는 갑작스러운 추위와 우박, 폭우 등 유난히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횡포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땅의 바다의 이미지와 더불어 논리적, 이성적 인간질서의 무력함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자연의 거대한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상징이 된다. 물론 이것은 소설이 앞으로 생물학적 혹은 본능적 인간(자연의 일부로서의)의 욕망으로 인한 엄청난 광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급격한 날씨의 변동은 1부 4장에서 푸앙이 자식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해 측정할 때 절정에 달한다. 이들이 땅을 정확하게 분배하기 위해 집요한 모습을 보이는 동안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고 길은 급류로 변한다. 1부 5장에서 분배된 땅을 제비로 정하는 날은 바로 11월 1일 만성절이다. 만성절은 죽은 이들을 기리는 민속절이지만, 본래 지하세계에서 모든 죽은 혼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혼란의 시작이 바로 만성절의 기원이다. 바다의 삼킴의 이미지, 예측할 수 없는 사나운 날씨, 그리고 소설을 여는 시작의 시간인 만성절이라는 시간성은 무질서하고, 비이성적인 혼란의 시간, 죽음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의 시작과 대립되어 1부 1장에 나타나는 또 다른 힘은 바로 인간의 규칙적이고도 끈질긴 노동의 이미지이다. 이 힘은 땅의 또 다른 신성한 힘인 생명력을 불러오는 끈질긴 노력으로 그려진다. 규칙적으로 밭을 오르내리며 씨 뿌리는 농부들의 모습은 노동의 규칙성, 노력, 끈질김의 이미지를 통해 이 혼란의 무질서의 이미지에 저항하는 듯하다. 씨 뿌리는 이들이 거대한 밀밭 속에서 점점 파묻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이들의 파종의 끈질긴 노력은 땅의 생명을 되살려낸다.


퇴역군인이자 목공 기술자인 장은 라 보스(La Beauce)의 작은 마을인 로느(Rognes)로 와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땅에서 평화를 느끼며 보스에 머물면서 농촌 처녀 프랑수아즈 모슈(Françoise Mouche)와 사귀기 시작한다. 프랑수아즈는 3년 전에 마을 청년 뷔토(Buteau)와 결혼한 언니 리즈(Lise)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뷔토는 몹시 탐욕스러운 인물로, 리즈의 유산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결혼했을 뿐, 아내와 처제를 동시에 마음에 품고 있었기에 호시탐탐 프랑수아즈를 겁탈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리즈 또한 남편 못지않게 탐욕스러운 인물이었기에 동생이 장과 연애를 시작하자 동생이 결혼하면 땅을 분배해야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뷔토의 아버지 푸앙(Fouan) 영감은 나이 들어 더 이상 밭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전에 큰 아들 이야생트(Hyacinthe)와 결혼한 딸 파니(Fanny), 그리고 작은 아들 뷔토에게 토지를 임대해주는 개념으로 땅을 분할해주고 자식들이 그 대가로 임대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푸앙 영감이 땅을 분할하는 그 순간부터 땅은 소유의 대상이자 물질적인 부로 인지된다. 만성절을 앞둔 10월 말의 토요일, 땅의 분할을 위해 공증인 사무실에 차례로 등장하는 푸앙 영감의 가족에게서는 부모자식 간의 유대나, 형제 자매간의 우애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자기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끝없는 소유욕의 화신들, 악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땅에서 태어나고 땅에 소속된 이들 자연적 인간들의 원시적 본능인 소유의 욕망이 땅의 분할을 계기로 불붙으면서 가족 관계가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얽혔을 때 얼마나 폭력적이 될 수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가족 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이익을 중심으로 뭉치는 극도로 상업적인 관계가 된다. 분할 받은 땅의 임대료와 부모의 생활비를 정하는 장면에서 자기들 것은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들 가족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이들이 서로를 먹어치우고 삼키는 폭력의 관계임이 확연해진다. 여기서 졸라는 부모와 자식들이 땅을 나누고 값을 정하는 모습을 “개싸움”으로, 그리고 땅을 측정하는 장면을 “진짜 살해”로 표현하고 있다. 뷔토는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마자 지정된 임대료와 생활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임대료 지급을 거부한다.


푸앙의 큰 아들 이야생트는 제쥐 크리스트(Jésus-Christ)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리며, 늘 만취한 얼굴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밀렵과 농작물 도둑질로 살아가면서 겁탈자, 노상강도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에게서 땅을 분배받기 위해 공증인 사무실에 나타날 때나, 땅을 셋으로 나눈 다음 제비를 뽑는 날에나, 성 루비나스 축제날, 마을 장말, 만성절 전야, 포도 수확철, 그리고 아버지 장례식 날에도 언제나 만취해 있다. 심지어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저당 잡히고 모두 술로 바꾸어 마셔버릴 정도이다.


푸앙의 여동생 로르(Laure)와 그녀의 남편 샤를(Charles)은 일찍이 도시로 나가 근근이 일하며 살다가 창가를 운영하게 되는데, 이들은 자신의 딸이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에 보내어 순수하고 아름답게 키우려 하지만, 딸은 너무나 당연하게 창가 일을 물려받으면서 부모를 놀라게 한다. 딸 에스텔(Estelle)이 자신의 일을 이어받아 일하는 동안 그들은 농촌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에서 시골에 은퇴해 살고 있다. 손녀 엘로디(Elodie)를 키우며 그녀 역시 기독교 기숙학교에 보내 순진하고 순수하게 키우지만 손녀 또한 엄마의 일을 이어받아 창가의 여주인이 된다. 그녀들이 받은 모든 교육관과는 정반대되는 이런 선택은 교육의 효과가 그녀들의 생각과 본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함을 확연히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동시에 기독교적 가치관도 부정되는 순간이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서 성공해서 시골에 좋은 집을 짓고 사는 샤를 부부를 존경의 눈으로 쳐다본다. 푸앙조차 도시에서 한 재산 모은 여동생 부부의 대저택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본다. 이들의 치부와 성공이 어떤 곳에서 유래했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로지 이들이 가진 돈만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농촌사회의 가치관이 선명히 드러나는 시점이다. 리즈와 뷔토의 결혼식, 아이의 세례식 같은 마을의 경삿날에 샤를 부부를 초청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 샤를 로르가 리즈의 아들의 대모가 되고, 로르가 자신의 창가에서 가져온 사향 냄새 나는 찢어지고 닳은 창부들의 속옷들이 리즈의 옷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을 사람들과 샤를 부부의 차이점은 더 이상 없다. 교구 신부 역시 샤를을 만나자 다정하게 활짝 웃으며 사제모를 높이 들어 올려 존경을 표시하며 인사한다. 마을의 시장이 된 들롬(Delhomme)은 자신의 아들이 로르의 손녀 엘로디와 결혼하면서 창가의 일을 맡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들에게 윤리관은 전무하고 오로지 돈만이 이들의 새로운 중요 가치관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마을 사람들의 종교관, 나라에 대한 생각에서도 재삼 강조된다. 마을 사람들은 신앙심에는 전혀 관심 없이 오로지 종교적 형식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구 신부는 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미사 집전을 거부하는 등 반발하지만, 대체로 이런 농촌의 종교관의 변화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야기 주제로 등장하는 것이 다가오는 전쟁인데 이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타당하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바보짓으로 간주한다. 제비를 뽑아 입대가 결정된 한 청년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검지를 자르기까지 한다.


푸앙의 누나인 그랑드(Grande) 할멈은 탐욕스러운 소유욕의 정점에 이른 인물이다.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은 냉혹하고, 인색하며, 먹고 마시고 소유하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부러워할 정도로 지독히 집요한 그녀를 두려워하며 복종한다. 그녀는 “아주 키가 크고 골격이 우람하며, 말랐어도 꼿꼿하고 억센 몸, 맹금류의 얼굴, 쏘아보는 둥근 눈, 돌이라도 씹어 삼킬 것 같은 튼튼한 이빨과 턱”을 가졌으며 사람이나 동물을 때릴 때 쓰는 가시나무 지팡이 없이는 나가는 법이 없다. 탐욕스런 소유욕의 화신인 그녀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 자신의 딸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가난하게 살다 죽도록 버려두었으며 고아가 된 손자들도 굶주림 속에 방치하거나, 가혹하게 혹사시키며 죽음으로 내몬다. 할멈이 조카들인 리즈와 프랑수아즈의 상속분배 싸움에 뛰어든 것도 “혼란스런 소송에 그들을 몰아넣고 서로 잡아먹게끔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이 재산다툼으로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였다.” 가족 안에서 서로 속이고 서로 빼앗고, 서로 죽이는 참혹한 폭력을 조장하는 장본인이 바로 그녀이다.


탐욕의 화신인 그랑드 할멈은 손녀 팔미르(Palmyre)가 불타는 태양 아래에서 고된 노동으로 진이 빠져버린 짐승처럼 쓰러지자, 라 그랑드는 그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마지못해 지팡이로 밀어본다. “수확의 풍요로움이 넘치는 밭 한가운데에서, 마지막 여린 숨을 내쉬며, 너무나 말라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팔미르는, 살도, 성별도 없는 누더기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라 그랑드에게 팔미르는 기계일 뿐이고 기능을 다해 폐기 처분되는 물질일 뿐이다. 팔미르에 이어 그녀의 동생인 일라리옹(Hilarion) 역시 할머니에게서 가혹하게 혹사당하다가 할머니에게 맞아 죽는다.


어느 날, 푸앙의 아내 로즈가 아들 뷔토와 돈 문제로 다투다가 그에게 떠밀려 넘어지면서 죽음을 맞게 된다. 아내가 죽자 푸앙 영감은 자식들 집을 떠돌며 학대받는다.


마침내 프랑수아즈와 장이 결혼한다. 그러자 프랑수아즈에 대한 뷔토의 성욕은 점점 더 집요해진다. 뷔토의 갈망을 간파한 리즈는 프랑수아즈를 질투해 프랑수아즈가 뷔토를 고의로 도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수아즈는 장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제야 뷔토 부부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뷔토 부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인 집값의 절반을 요구한다.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던 뷔토 부부는 프랑수아즈에게 앙심을 품게 되고, 결국 프랑수아즈가 수확기 들판에 혼자 있을 때를 노려 그녀를 기습하기까지 이른다. 리즈가 프랑수아즈를 붙잡고 있는 동안 뷔토가 프랑수아즈를 성폭행한다. 그런 다음, 리즈가 낫으로 임신한 프랑수아즈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고는 현장에서 달아난다. 프랑수아즈가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아직 의식이 있었지만, 차마 리즈와 뷔토의 이름을 대지 못하고 그저 사고라고만 주장하다 숨을 거둔다.


이 탐욕스러운 뷔토 부부는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와 프랑수아즈 살해 현장을 목격한 푸앙 영감에 대해 그를 부양함으로써 발생하는 재정적 손실을 타박한다. 한밤에 부부는 푸앙이 잠들어 있는 침실로 들어가 그를 질식시킨다. 그러나 푸앙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자 푸앙의 몸에 불을 질러 죽인 뒤 사고사로 보이도록 현장을 정돈한다.


그랑드 할멈은 아들 뷔토에 의해 산 채로 타죽은 푸앙의 죽음 앞에서 죄의식도 동정심도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만을 도모한다. 불한당 같은 뷔토를 고소했다가는 오히려 그들이 파멸당할 수도 있고 가문의 명예도 추락할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에서 그들은 뷔토의 살인에 고의적으로 침묵한다.


뷔토 부부는 장에게 프랑수아즈가 죽었으니 프랑수아즈의 유산은 당연히 자기들 몫이라며 장에게 한 푼도 내주지 않는다. 아내와 푸앙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주변인들의 무정함에 끔찍해진 장은 마을을 떠나 군대로 복귀한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장은 아내 프랑수아즈가 묻혀 있는 대지 앞에 선다. “세상이 돌아가려면 피와 눈물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별들과 태양이 거대하게 작동되는 동안 우리들의 불행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신은 우리를 비웃는다. 우리는 끔찍한 결투와 매일의 양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지만이 영원하다. 우리들이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어머니, 죄를 저지를 정도로 우리가 사랑하는 그녀는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계속 생명을 만들어낸다. 바로 우리들의 가증스러움과 불행과 함께 (...) 죽음, 씨앗들 그리고 양식이 땅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이어서 3월의 파종 장면이 이어지며 태양은 다시 뜨고 땅은 영원한 어머니로 남는다. 하늘과 땅은 질서를 되찾고 사람들은 풍요의 축복을 누린다. 많은 죽음은 땅으로 다시 돌아가고 다시 태어나는, 죽음과 탄생의 우주적 순환 질서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프랑수아즈가 묻혀 있는 땅이 새삼스레 신선하게 느껴지는 장은 마음의 평온을 느끼며 사람과 사물에 대한 모든 분노와 혐오를 가라앉힌다.



분석


〈대지〉는 긴긴 죽음의 겨울을 보내고 생명의 봄을 맞이하려는 봄맞이 축제의 시간성, 즉 영원한 순환의 신화적 시간성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대지를 포함해 『루공-마카르 총서』 속에 나타나는 이러한 반복 형태를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영원한 투쟁에 놓인 인간의 상징학으로 보거나 삶과 죽음의 닫힌 원의 세계에서 끝없이 오가는 인간의 비극적 숙명을 우주적 초월적인 시간성으로 끌어올리는 영원회귀의 신화라는 논리에서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런 시점들은 대지에 나타난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폭력과 죽음의 카오스의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대지의 죽음과 폭력이 난무하는 카오스적 세계는 불규칙한 시간성으로 인해 야기된 불안을 기점으로 순조로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집착, 즉 질서의 재확립에 대한 강한 욕망이라는 구조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한 봄의 회귀에 대한 장의 예찬은 표면적으로는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풍요를 구가하는 완결된 순환 신화의 시간성을 찬미하지만, 시간의 순조로운 흐름에 대한 강박적인 면 또한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장의 카니발적 시간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주적 초월적 시간성과 진보의 선형적 시간이라는 모순된 공존은 서구적인 시간성이 가진 특성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인류 역시 영원히 이 두 시간성 사이에서, 한쪽으로 더 치우칠 때의 문제점을 지각하면서 오가야 하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장과 모든 점에서 대립적인 그랑드 할멈에게서 나타나는 물질적 시간성은 땅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소유의 대상이 됨을 보여준다. 시계처럼 시간을 측정하며 시간에서 최대한의 노동과 이익을 끌어내려는 그랑드 할멈의 냉정함과 잔혹함은 물질적 시간성의 문제점을 극대화시킨다. 이런 문제점은 풍요에 깃든 재앙이라는 모순어법 속에서 재확인되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이념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시대에 이르렀음에도 신의 부재, 통합적이고 초월적인 경험을 잃어버린 채, 리비도적 본능이라는 결정론적 환경에 억매여 있는 현대인의 미망을 예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음난무, 적대관계와 살인, 가치관의 전도로 인한 위계질서의 부재, 사자의 회귀 등을 재현하는 〈대지〉의 카오스적 혼란을 통해 볼 때, 그 당시 농촌사회의 윤리관을 고발하고 뒤흔들고자 한 졸라 자신의 처음 목표를 넘어, 그 이상으로 1789년 이후의 가치관의 심각한 변화 혹은 탈신성화에 따른 혼란을 나름대로 정화하고자 한 졸라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사실 혁명 이후의 현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 주체로 느끼기보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허무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던 그 시대인의 불안 속에서 역사주의적 시간의 선조성이 주는 압박감을 폐기하고 우주창조를 재현함으로써 주기적인 재생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대지〉는 역사주의적 실험 속에서 오히려 실존의 위협을 느끼던 현대인의 모순을 순환적 질서를 통해 극복하고 다시 우주적 존재로서의 충만을 되찾기 위한 무의식적(혹은 의식적) 제의로 볼 수 있다. 졸라는 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념 속에서 당당히 자리 잡은 생물학적 존재의 너무나 강한 본능의 부활 앞에서 윤리적 치유책이나 역사적, 종교적 치유책을 내놓을 수 없는 대신, 신인류라는 새로운 존재를 죽음과 탄생의 우주적 순환질서 속으로, 우주적 실존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강한 생명력과 창조성을 가진 역사적 주체로 승화시키고 인간 실존의 지평선을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 참고 논문 :

1. 〈에밀 졸라의 『대지La Terre』에 나타난 시간성의 대립 : 장과 라 그랑드〉, 조성애(연세대)

2. 〈에밀 졸라의 『대지』- 축제적 난장으로서의 소설〉, 조성애(연세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영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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