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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의 무게

2024년 8월 8일 / 전쟁과 평화

by 글섬

출발을 앞두거나 인생에 변화가 닥치는 순간이면 자기 행동을 깊이 숙고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진지한 사색의 기분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이런 순간에 사람들은 보통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 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날이 너무 더워 베란다에 늘 놓여 있던 화분을 거실로 들였다. 그게 거기 있을 때는 뭐 별로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화분이 사라지고 온전히 제 모습이 된 베란다가 새삼스레 넓기도 하다. 그런 걸 바랐던 것 같다. 일상이 되어버려 썪어가는지도 몰랐던 부분을 들어내고 온전히 내 모습이 되어 널찍해지는 거. 채워진 걸 빼고 빼고 빼 버리는 거. 오롯이 내가 되는 거. 애초에 나로만 남겨질 내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 내 목소리가 들리고 나즈막히 시작되는 볼레로 전주처럼 처음엔 들릴락말락 속닥거리던 소리가 켜켜이 음색을 더해가다가 마침내 세상의 모든 걸 덮어버리게 되면 때가 된 것이다.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순간에 과거를 돌아보는 건 두려워서다. 이전에 내가 했던 선택의 오류, 혹은 적시의 선택, 내가 애썼던 노력, 그러고도 가닿지 못하고 돌아섰던 지점 들에서 익히 아는 나를 뒤적여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일의 나에게 건네주고픈 마음.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 라고 말해주기 위해 확증을 원하는 마음으로 어제의 나를 뒤적인다.


하지만 어제도 결국 엊그제의 내일이었기에 여전히 미완의 나뿐이다. 오늘 내가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과연 용기일까, 포기일까. 하지만 사실 나는 재고하는 척만 할 뿐 이미 알고 있다. 오늘 내가 어제 가던 길을 갈 작정이었다면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나는 확증이 아니라 용기를 내기 위해 어제의 나를 서성인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내 마음대로 잘은 되지 않는 내 인생이니 선택이라도 내 마음대로 한 번 해보는 건데, 뭐.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내일의 내가 기꺼이 해치워줄 테니 오늘은 무턱대고 내 편이 되어주는 거야.


아침 신문에서 재밌는 글을 읽었다. 재치 있는 경고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예시로 나열된 문장들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이 전선에 손을 대면 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벌금 200달러가 부과됩니다." 즉사하는데도 부과되는 벌금이라니. 이건 마치 인생 같잖아? 인생에도 변화가 닥쳐오기 전에 변화 자체를 알리는 나 자신의 목소리보다 변화 그 후를 말하는 경고문 같은 게 들리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경고 같은 게 들린다 해도 아마 난 멈추지 않을 거다. 그럼, 됐네. 그치? 이 뺄셈의 무게까지가 나의 선택이다. 마치 어릴 적 종합선물세트처럼. 거기엔 꼭 내가 좋아하는 초코파이나 짱구 외에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껌 같은 게 함께 담겨 있었다. 명색이 종합'선물'세트인데 전혀 선물 같지 않은 그 껌까지가 '종합'적인 '선물'들의 '세트'였다. 그리고 나는 늘 제일 맛이 없는 것들을 먼저 먹어치운 뒤에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집어들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껌의 시간. 금방 먹어치워지지도 않는 껌을 씹어 없애는 동안 새빨간 매혹의 초코파이 봉지를 매일같이 째려보며 천 년 같은 시간을 건너가는 것까지가 이 뺄셈의 무게라고 믿어야 하는 시간.


저기, 근데요, 그건 초코파이가 있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저기, 그냥 초코파이만 한 상자로 선물해 주시면 안 돼요? 응,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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