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8일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아침에 운동을 갔다가 또 그들과 마주쳤다. 일부러 그들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를 고르느라 애를 써 왔는데. 그들은 그다지 넓지 않은 PT 룸에서 너무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데다가 운동하는 내내 수다 삼매경이라서 대부분의 운동을 프리 웨이트로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다. 바로 훌라후프 아줌마들 말이다.
나는 프리 웨이트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기구 운동부터 시작한다. PT 룸이 비워지길 기다리며 운동을 하다 보니 저절로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예전엔 몰랐는데 그 분들, 무려 30분 넘게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그것도 계속 수다를 떨면서. 와, 저게 가능하다고? 여태는, 아니 도대체 왜 때문에 운동을 하러 와서 그토록 무리 지어 떠 다니시는 건가요, 하는 시선으로 죽어라 꺼리기만 했는데 갑자기 존경심이 솟구쳤다. 그들이 사용하는 훌라후프는 왠만한 아이 주먹 만한 돌기가 박혀 있는 상당히 큰 사이즈의 운동 훌라후프다. 예전에 나도 한 번 시도해 봤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땀흘리며 중력에 저항하는 나에 비해 깔깔대며 수다 떠는 그 분들을 마치 프로가 아마추어 대하듯 무시해 왔었는데, 글러먹은 생각이었다. 나에게 바벨, 덤벨, 뭐 이런 것들이 운동이듯 누군가에겐 훌라후프가 운동일 뿐인데 말이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사 데팡(Ça dépend)'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이 말에는 그들 고유의 강력한 포용성이 내포되어 있다. 한 파리 올림픽 취재 기자는 이 '사 데팡' 때문에 아무때나 도로가 통제되어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지만, 정작 파리지엥들은 딱히 문제 삼지 않는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나와 네가 다르고 상황에 따라 모든 경우의 수가 다르다. 그들 사회의 질서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자율을 통해 유지된다. 그로 인해 거리엔 쓰레기가 넘치고 지하철 역사엔 악취가 진동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정도의 필요악으로 치부된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개념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필요한데 과정에선 상황이 앞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까지 친절하기란 얼마나 요원하던지. 가끔, 아주 가끔, 타인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양해를 강요하지 않는 고난이도 기술을 체득한 인간을 발견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저런 게 바로 삶을 사랑하는 진정한 자세인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