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죠?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어떤 이도 오직 하나의 면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때가 되면 변신한다.
문제는 자의냐, 타의냐일 뿐.
하지만 타의적 변신의 경우에도 실은 저변에 이미 그렇게 변신하기를 원하는 그 자신이 내재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자신이 이미 변화를 원했고, 그 자아가 자의든 타의든 기회를 포착해냈던 거다.
한동안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떡할 거야?"라고 묻는 밈(meme)이 유행했었다. 나도 같은 질문을 받았었는데 당연히 "그건 네가 아니지."라고 대답해서 질문자를 서운하게 했다. (나, T야?) 그에 대한 답으로 "그래도 널 사랑할 거야."라든지, "애완 곤충으로 키워줄 거야."라는 답변이 정답에 더 가까웠던 듯한데, 이게 사랑의 문제라면, 사랑이 변화를 초월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이게 변화의 문제라면, 외형의 변화는 어떻게든 내면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에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내면도 바퀴벌레가 될 수밖에 없다.
A.
그는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었다. 유수 대학을 나와 유수 기업에서 일하는 재원이었던 그는 똑같이 유수 대학을 나와 유수 기업에 다니는 재원과 결혼했다. 20년 근속 끝에 명예퇴직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과감하게 영업부로 소속을 변경해서 전국구로 영업을 수행했다.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인지라 술자리가 잦았고, 그는 모범생답게 음주가무에도 능했기에 승승장구했다. 출장은 더욱 잦아졌고 그만큼 혼자 지내는 밤도 늘어났다. 처음엔 접대 술자리에서 만난 직업 여성들이었다.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죄책감도 희석되었다.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니 가족에게도 점차 떳떳하게 여겨졌다. 그러자 꼭 접대가 아니라도 여성을 동반하는 술자리가 늘어났다. 어느 날, 동창회에서 조우한 여자와의 문제가 아내의 촉에 걸렸다. 아내는 그를 채근했고, 그는 순순히 시인했다. 가장으로서 완벽했던 그였던 만큼 아내는 더욱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해가 갈수록 아내의 추궁이 잦아지고 불신도 집착도 집요해졌다. 점차 그는 아내의 기득권 행사가 과하게 여겨졌다.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오류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는 인생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이혼을 원했다. 아내는 거부했고, 그러자 그는 두 아들의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출장을 떠나듯 간단히 짐을 꾸려 집을 나왔다. 막상 싱글이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웠다. 사귀던 여자의 친구도 단골 스포츠웨어 매장 여사장도 싸이클 동호회 여인들도 모두 그의 어장에 포획되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들의 학비와 생활비가 꼬박꼬박 입금되었기에 그의 아내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B.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아들의 목표는 당연히 육사여야만 했다. 그는 죽어라 노력했지만 입시에 실패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육사는 그의 인생으로 들어와주지 않았고, 입대를 앞두고 도망치듯 원서를 접수한 지방대 사범대에 합격했다. 이제 입대 대신 대학에 입학하면 되는 시점에 그는 홀연히 입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정말 원하는 건 육사도 사범대도 아닌 미대라고. 집안 형편상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는 다시 입시를 준비해서 미대 대신 전문대 산업디자인과에 합격했다. 2년 내내 과탑을 놓치지 않고 졸업한 후 유명 가구회사에 취직해 가구 디자이너가 되었고, 캠퍼스 커플이었던 여친과 결혼했다. 직장에서 전문대 졸업자의 한계를 느꼈던 그는 회사를 다니며 산업대 산업디자인학과에 편입해 졸업장을 따냈지만 여전히 가구 디자인은 미술이 아닌 노가다였다. 그는 미술을 원했고, 남몰래 수 년 간 이탈리아어를 익혔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그는 이혼을 결행했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었기에 이전의 그가 선택했던 여인도 이제 그에겐 여자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이혼으로 인해 거의 빈 손이었던 그는 우선 먹고 살아야 했다. 그곳에도 미술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생업으로 택한 여행 관광 가이드를 위해 미술사와 세계사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이탈리아 곳곳을 스케치했다. 그가 부양하고 있던 아들이 18세가 되자 그는 아들을 독립시킨 뒤 그즈음 이탈리아로 유학을 왔던 여인과 재혼했다. 이탈리아 국가 공인 관광 가이드 자격을 취득하고 이탈리아 미술사에 관한 글을 쓰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A도 B도 배신이랄지 변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변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코너를 돌아야 하는 지점에 맞닥뜨린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채로 선택을 종용 받는. 그때를 위해 우리는 1) 언제나 내가 최선의 모습이 되고 싶게 만드는 주변인과, 2) 최악의 상황에도 나를 지탱해줄 올바른 습관과, 3) 스스로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는 자기 정직을 좇아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오늘이든 어느 아침이든 문득 맞닥뜨리게 될 변신에 대처하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