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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 다물라

2024년 8월 16일 금요일, 데카메론

by 글섬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을 알아내거나 듣고서 이를 떠벌리고 싶어 하는 덜떨어진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추어진 잘못을 들춰내면서 그 사람들이 한없이 되새기게 될 부끄러움을 덜어 주었다고 믿는 겁니다.

-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첫 출근하는 날에 내심 많이 놀랐다. 너나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남들 뒷담화에 심취하는 집단이라니. 원래도 남들 얘기에 취미가 없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날 첫 출근하는 사람은 나였는데 아무도 내겐 관심이 없고, 거기 없는 사람들 얘기로만 점심 시간을 통째 바치는 그들이 나는 낯설다 못해 두려웠다.


그리고 1년. 어느 날 문득, 누구보다 열심히 남들 뒷담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건 낯설음 정도가 아니라 섬뜩함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왜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나. 그때 알았다. 내가 삭제되었거나 내가 흐릿한 사람들이 거론할 내가 없어진 탓에 남 얘기밖에 없다는 걸.


업무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높은 집단이었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할 여력이 없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였다. 처음엔 피아노가, 다음엔 운동이, 그 다음엔 독서까지 점차 삭제되어가던 중이었다. 그나마 아프지 않고 넘어가주는 주말엔 밀린 집안일로, 주중엔 강도 높은 업무로, 연휴엔 긴장이 풀린 탓에 어김없이 몸살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는 삭제 중이었다. 내가 없으니 생각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니 입은 쉴 새가 없는데 나는 없으니 남 얘기에 열을 올린다.


뜻없이 티비 리모콘을 누르다가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멈췄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뭐 그런 프로그램인가 보다 했는데 십대 소녀가 싱글맘으로 사는 프로그램이었다. 귀여운 아이가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사고를 쳤고, 잠들어 있던 소녀 엄마가 일어났다. 냉장고 문이 위아래로 활짝 열린 채였고 베란다에는 고양이 모래가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다 거실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낯선 프로그램이라서 채널을 넘기려던 순간에 소녀 엄마의 웃음 때문에 멈췄다. 저 상황에 웃는다고? 개구쟁이 아들을 혼자 키우는 어린 소녀가? 신기함과 놀라움에 채널이 고정됐다.


소녀 엄마의 진기함은 그게 차라리 시작이었다. 두 종류의 알바를 병행하며 아이를 넉끈히 부양하는 모습까지는 당연하다고 칠 수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소녀는 전단지 아줌마를 스쳤는데, 전단지를 받아들고 길을 건너 갔던 소녀가 다시 길을 건너 오더니 전단지 아줌마에게 묻는다. "아주머니, 저도 예전에 이 일을 해봐서 아는데요, 이거 장당으로 받으세요, 시간으로 받으세요?" 아, 알바를 하나 더 찾고 있었나 보다, 싶은 순간에 소녀가 말했다. "더운데 얼마나 힘드세요, 장당으로 일하시는 거면 제가 좀 가져가 드리려고요." 응? 요즘 세상에 저런 천연기념물이 아직 존재한다고? 나의 반가움과 달리 거기 패널 한 사람이 거의 화를 냈다. 저건 전단지 일을 맡긴 사람에겐 범법에 가깝고, 저 일을 하는 아줌마에게도 결례가 되는 오지랖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라서 거기 패널들이 뭘 위해 출연한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질타가 대단히 열성적이었다.


그런데 그 소녀의 선행은 그게 시작이었다. 시장 어귀를 지나던 소녀는 꼬부랑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야채를 팔고 있는 좌판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더운데... 이거 다 파시면 들어가시나요?" 할머니가 그렇다고 답하며 짐짓 애잔한 표정을 짓자 소녀는 할머니들의 좌판에 있던 쪽파와 나물 대여섯 가지를 거의 싹쓸이 해드린 뒤 할머니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음엔 더 많이 팔아드리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여기저기 패널들의 아우성이 난무했다. 소녀의 심성이 이렇듯 남다르다 보니 당연히(?) 빚도 있었다. 이혼한 전 남편이 소녀 명의로 저질렀던 카드 빚 천만 원, 가까운 친구가 빌려 간 천만 원, 총 이천만 원을 독촉 한 번 하지 못한 채 감당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패널들의 성화대로 경제 개념이 없긴 하다. 저렇게 살다가는 폐가망신한다거나, 선한 심성을 악용하는 악인들의 타겟이 될까 봐 걱정하는 참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소녀잖은가. 그녀도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 마땅한 나이에 세 살짜리 아들을 꿋꿋하게 감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가 할머니들의 조기 퇴근을 위해 구입한 까만 비닐봉지들을 주렁주렁 들고 행복한 얼굴로 시장통을 나서는 화면이 나오기가 무섭게 한 패널이 지적한다. 저건 저 할머니들을 통해 자기 위안을 삼는 심리일 뿐이라고, 실은 자기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그들에게 투영할 뿐이라고. 그러자 그때까지 무슨 말을 들어도 방실방실 웃고만 있던 소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원참.


그들이 '오지랖병'이라고 규정한 소녀의 행동은 그들의 생각만큼 병적이지 않다. 순수함은 그런 거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기이하다 못해 병적으로 규정될 만큼 우리 시대에는 보기 드문 원초적 양태이다. 나는 그만 슬퍼졌다. 그토록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녀가 소년을 길러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슬퍼서 나까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 물론 원래도 그런 프로그램일 것이다. 일부러 소년소녀 싱글 부모의 열악한 상황을 부각시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이를 위해 패널들이 출연자를 가열차게 몰아가는. 그러니까 결국 티비가 나서서 타인의 뒷담화를 조장하는 셈인데,


직장 동료들이 입을 모아 재밌다던 청춘 남녀 짝짓기 리얼 예능도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나만 연애 권장 취지로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거기 출연자들이 서로를 헐뜯고, 시청자들도 그들을 욕하는 맛에 뜬 프로그램이라나.


결국 패널들은 소녀 엄마의 오열을 끌어냈다. 나는 불쾌감에 채널을 돌렸지만 잔상이 길게 남았다. 왜냐면... 아주 오래전 내 모습이었다. 딱 그랬었다, 내가. 그랬기에 나는 안다. 그 소녀가 얼마나 부자인지. 그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그들이 말하는 물질적 여유가 발생하는 대신에 소녀의 정신적 풍요마저 사라져 그야말로 가난해진다. 그뿐이다. 그들 중 누구도 어린 여자 혼자서 어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을 감히 가늠조차 불가능하기에 마치 태도만 바꾸면, 그래서 악을 쓰며 살면 개선된다고 가르친다. 남 얘기는 참 쉽기도 하다. 그녀의 힘은 바로 선함과 순수함이며 그건 본성이다. 그 본성이 아니라면 그녀는 지금 버틸 수 없다. 고된 하루 끝에도 아이를 재우며 아이의 귓가에, "오늘도 하루만큼 크느라 애썼어."라고 속삭일 수 있는 그녀이기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꺼이 어린 아들을 감당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본성에는, 그걸 갖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가가 반드시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누구도 자기 자신만큼 스스로를 위할 수는 없다. 삶이란 공평해서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니가 아는 건 나도 알게 된다. 그러니 부디 다들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남 얘기로 열을 올려봤자 내 얘기는 없다는 반증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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