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놀이

1881년, 방곤 옮김

by 글섬

작품 배경


〈들놀이(Une partie de campagne)〉는 1881년 4월에 문예지 《모던 라이프(La Vie moderne)》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후 단편집 〈텔리에 집(La Maison Tellier)〉에 수록되었다.




뒤푸르(Dufour) 부인의 성명 축일을 기념해 뒤푸르 가족은 다섯 달 전부터 다 함께 파리 근교에 들놀이를 나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다. 고대했던 당일 아침, 뒤푸르 씨가 우유 장수의 마차를 빌려 직접 몰았다. 뒤푸르 부인은 멋진 체리 빛 실크 드레스 차림으로 남편 옆에 앉았다. 나머지 의자 두 개에는 할머니와 딸 앙리에트(Henriette)가 앉았고, 노란 머리 청년은 자리가 없어 바닥에 길게 누웠다.


마차가 샹젤리제 대로를 따라가다가 성벽을 넘자 자연이 펼쳐졌다. 뒤푸르 부인은 지평선 저 멀리 보이는 자연의 경치에 감동했다. 공장이나 악취 나는 하수 처리장의 검은 연기와는 전혀 다른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뒤푸르 가족은 감미로운 평온함을 맛보았다.


이윽고 마차가 브종(Bezons)에 다다르자 뒤푸르 씨는 어느 싸구려 식당 앞에 마차를 세웠다. 길가에 서 있는 하얀 여인숙이었다. 뒤푸르 부인은 식당의 메뉴도 전망도 좋다며 흔쾌히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정했다.


뒤푸르 씨가 먼저 마차에서 내려 아내를 안아서 마차에서 내려주었다. 서른여섯 살 가량의 뒤푸르 부인은 살이 많이 찌고 한창 무르익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지나치게 큰 가슴이 이중 턱이 있는 곳까지 출렁거렸다.


다음으로는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앙리에트는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쯤 된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는 키가 크고 허리가 날씬하고 엉덩이가 컸다. 피부는 진한 갈색이었고 눈이 매우 컸으며 머리카락은 무척 검었다. 요컨대 남자들이 길에서 마주치면 한밤중까지 막연한 불안감과 관능의 도발에 시달리게 되는, 그런 여자들 중 하나였다.


뒤푸르 씨 가족은 식당에 점심 식사를 주문했다. 식당 앞 풀밭에서 먹을 참이었다. 식당 마당에는 멋진 조정 경기용 배 두 척이 매달려 있었다. 가족들은 그 배들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배를 보고 있자니 아름답고 감미로운 저녁나절에, 혹은 청명한 여름 아침에 배를 타고 물 위를 달리고픈 욕구가 일었다. 젊은 시절 조정을 한 적이 있는 뒤푸르 씨가 전문가의 눈으로 배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예전에 열렸던 조정 경기 이야기에 열을 올리면서 이 배를 타고 누가 빨리 가는지 내기를 하자고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식당의 하녀가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렸다. 하지만 뒤푸르 부인이 점심 먹을 장소로 골라 놓은 가장 좋은 자리에 이미 젊은이 두 명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조정용 보트의 주인들 같았다. 그들이 조정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의자에 몸을 쭉 펴고 있었다. 면으로 된 하얀 반팔 셔츠만 입고 있어서 드러난 그들의 팔은 대장장이의 팔처럼 건장했다. 그들은 운동을 통해 변형된 우아하고 탄력 있는 팔다리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몸 쓰는 일을 하느라 변형된 노동자의 팔다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뒤푸르 부인을 보며 미소를 주고받더니 앙리에트를 보고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청년 중 한 명이 일어나 여인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제안했다. 여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풀밭 위에 자리를 잡았다. 두 청년은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앙리에트는 그들의 맨팔이 거북해 고개를 돌리는 척했고, 뒤푸르 부인은 호기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청년들의 몸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뒤푸르 부인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으니 상냥하게 굴고 싶다는 듯 청년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청년들은 매일 밤 시골에 와서 잠을 잔다고 했다. 가게 카운터 뒤에서 일 년 내내 들놀이를 갈망해왔던 여인들은 청년들의 호사스런 일상에 한껏 감동을 받았다.


어느새 앙리에트가 청년들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노란 머리 청년은 마치 식인귀처럼 음식을 먹어대다가 급하게 마신 포도주에 미친 듯이 기침을 해 뒤푸르 부인의 체리 빛 실크 드레스를 더럽혔다. 뒤푸르 부인은 화를 내며 드레스에 생긴 얼룩을 씻어 내게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기온이 점점 더 올라 반짝이는 강물이 뜨거운 화덕 같았고, 술기운에 머리가 몽롱했다. 식사가 끝나고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뒤푸르 씨와 노란 머리 청년은 술이 떡이 되어 곡예를 방불케 하는 동작을 했다. 셔츠가 바람에 펄럭였고 바지가 벗겨질 것 같았다.


그때 청년들이 조정용 보트를 물에 띄워 놓고 돌아와서는 여인들에게 강으로 산책을 가자고 예의 바르게 제안했다. 뒤푸르 부인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남편에게 허락을 구했고, 뒤푸르 씨는 청년 중 한 명이 들고 온 낚싯대를 보고 반색하며 여인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노란 머리 청년은 풀밭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두 여인은 두 보트에 나눠 앉았다. 다른 보트가 그들 앞을 지나가다가 앙리에트를 보고는 감동에 사로잡혀 매우 천천히 지나갔다. 조타석에 앉은 앙리에트는 물 위를 나아가는 감미로운 느낌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갖가지 도취에 휩싸여 쾌락에 대한 막연한 갈망과 열기가 포도주로 인해 흥분한 그녀의 육체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녀는 아름다운 젊은 남자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 동요했다. 남자의 눈길이 그녀의 피부에 입을 맞추는 것만 같았다. 남자의 욕망은 태양처럼 강렬했다.


남자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녀가 앙리에트라고 답하자 남자는 자신의 이름은 앙리(Henri)라며 감탄했다. 뒤푸르 부인을 태운 보트가 다가와, 부인께서 목말라하셔서 로뱅송(Robinson)까지 가야 한다며 이따가 숲에서 만나자고 외치고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아주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남자가 밤꾀꼬리 소리라고 알려주자 밤꾀꼬리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앙리에트는 마음속에 애틋한 로맨스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밤꾀꼬리 소리란 발코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입 맞출 때 들려오는 천상의 노랫소리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녀의 감동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소리 내지 말고 밤꾀꼬리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자고 제안했다. 보트는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섬 기슭의 두터운 덤불숲에서 보트가 멈추었다. 앙리가 보트를 맸고, 앙리에트는 앙리의 팔에 몸을 기댄 채 나뭇가지들 사이를 나아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칡, 나뭇잎, 갈대가 뒤죽박죽 뒤얽힌 곳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머리 바로 위의 나무에서 밤꾀꼬리가 목청껏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가 도망갈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앙리의 손이 앙리에트의 허리를 천천히 감싸더니, 부드럽게 힘을 주어 허리를 죄었다. 앙리에트는 그의 애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아무런 당혹감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밀어냈다.


앙리에트는 황홀감에 빠져 밤꾀꼬리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녀는 자신을 관통하는 갑작스러운 애정에 대한 무한한 갈망을 느꼈다. 그러느라 마음이 몹시 쇠약해져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앙리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고,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앙리에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얼마 동안 그렇게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근처 어딘가에서 뒤푸르 부인의 야릇한 외침 소리가 이따금씩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른 청년의 짓궂은 희롱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앙리에트는 매우 감미로운 감정에 젖어 들어 계속 울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앙리가 갑자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녀가 격하게 저항하며 옆으로 물러앉자 앙리는 오히려 그녀를 온몸으로 덮어 버렸다. 이윽고 앙리에트는 엄청난 욕망에 미칠 지경이 되어 앙리를 꽉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고요했다.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고, 나뭇잎들이 수런거렸다. 나뭇가지들 사이 깊은 곳에서 두 번의 열렬한 한숨이 밤꾀꼬리의 노랫소리에 섞여 지나갔다. 새는 열정이 커져 가는 것처럼 조금씩 노래의 속도를 높이며 긴 황홀감에 사로잡혔고, 아름다운 선율로 경련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새는 아래쪽에서 나는 신음 소리에 조용해졌다. 그 소리는 한동안 길게 이어졌고, 흐느낌 속에서 끝이 났다.


나뭇가지들 사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그들은 고독과 고요함을 느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서로의 몸을 만지지도 않고 나란히 서서 빠르게 걸어갔다. 마치 그들 사이에 혐오감이 일어나 화해할 수 없는 적이 된 것 같았다.


앙리에트가 엄마를 소리쳐 불렀다. 덤불 밑에서 뒤푸르 부인의 퉁퉁한 장딴지가 언뜻 보였던 것만 같았고, 이윽고 뒤푸르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으로 가슴을 들썩이며 옆에 있는 청년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 청년의 얼굴엔 웃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뒤푸르 부인은 다정한 표정으로 그 청년의 팔을 붙잡고 다시 보트에 올라탔다.


그들은 브종으로 돌아갔다. 뒤푸르 씨가 술기운에서 깨어나 초조하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머리 청년은 여인숙을 이미 떠난 뒤였고, 할머니는 마차에 이미 올라타 있었다. 할머니는 밤중에 들판을 지나가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밤이 오기 전에 돌아가자고 조바심을 냈다. 뒤푸르 가족은 청년들과 악수를 나눈 뒤 떠났다.


두 달 후, 앙리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뒤푸르 철물 가게’라고 쓰여 있는 상점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뒤에 앉아 있던 뒤푸르 부인은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앙리가 정중하게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앙리에트에 대해 물었다. 뒤푸르 부인은 그녀가 노란 머리 청년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노란 머리 청년은 뒤푸르 철물 가게를 물려받을 청년이었다. 앙리가 매우 슬픈 기분이 되어 돌아설 때 뒤푸르 부인이 앙리를 불러 세웠다. 부인은 수줍은 표정으로, 앙리의 친구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언젠가 이곳을 지나가게 되면 한 번 들러달라고 전해달라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듬해 어느 무더운 일요일, 앙리는 앙리에트와 함께 있었던 나뭇가지들 사이 깊은 곳을 혼자 찾아갔다. 결코 잊지 못할 그날이 너무도 또렷하게 떠올라 그녀가 간절히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곳에 도착한 앙리는 아연실색했다. 앙리에트가 슬픈 표정으로 풀밭 위에 앉아 있고, 그녀 옆에는 그녀의 남편인 노란 머리 청년이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앙리를 보고 얼굴이 몹시 창백해졌다. 앙리가 이곳을 무척 사랑하며 일요일이면 자주 찾아와서 추억에 잠긴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녀 역시 매일 밤 그날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때 옆에서 그녀의 남편이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더니 이제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 발췌 문헌 : 〈기 드 모파상〉, 모파상 저, 방곤 역, 현대문학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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