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 글섬 옮김
작품 배경
〈크리스마스 이야기(Conte de Noël)〉는 1882년 12월 25일자 《르 골루아(Le Gaulois)》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듬해에 출판된 단편집 〈달빛(Clair de lune)〉에 수록되었다.
모임에서 의사 보낭팡(Bonenfant)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가 문득 오래 전 크리스마스 밤에 목격했던 기적이 떠올랐다.
보낭팡이 노르망디(Normandie)의 롤빌(Rolleville)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의사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해 겨울은 끔찍했다. 11월말부터 한 주 동안 서리가 내리더니 눈이 오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커다란 구름이 몰려오더니 아래로 낮아졌다.
온 마을이 눈 속에 파묻혔다. 농가들은 하얗게 눈이 덮인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쳐진 채 마을 광장 안에 고립되어 두텁게 쌓인 이끼 속에 잠들어 있는 듯이 보였다. 마을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무도 마을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이따금 까마귀들만 먹이를 찾아 부질없이 여기저기 밭이나 나무를 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8일 동안 쏟아지던 눈이 이윽고 멈췄다. 8일 동안 내린 눈은 사람의 키 높이만큼 두텁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3주 동안 하늘은 수정처럼 맑았다. 밤이면 별들이 쏟아져 거대하게 쌓인 눈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산도 평원도 울타리도 모두 추위로 얼어붙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시골집들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실연기만이 숨겨진 생명의 흔적을 드러냈다.
때때로 쌓인 눈의 무게와 냉기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껍질이 부서지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결국 큰 가지가 뚝뚝 부러져 내리기도 했다. 듬성듬성 흩어져 위치한 시골집들은 서로 천 리 길이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가능한 만큼만 활동하며 살아냈다. 보낭팡도 인접해서 사는 환자들만 왕진하러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보낭팡은 마을에 기묘한 공포감이 조장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기류였다. 사람들은 밤이면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밤마다 들렸다고 주장하는 그 소리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소리였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고립된 생활로 인해 사람들의 영혼은 두려움에 잠식되었고, 이러한 심리 상태는 그 어떤 기이한 사건을 기대하는 심리로 번졌다.
대장장이 바티넬(Vatinel) 영감의 대장간은 마을 끝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여러 날 고립된 생활로 인해 빵이 떨어지자 바티넬 영감은 마을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 여섯 채의 집을 방문해 빵도 얻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영감은 마을에 퍼져 있던 기괴한 밤소리에 대한 소문도 그제야 접했다.
그리고 그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울타리를 따라 걷던 그의 눈에 갑자기 눈 속에서 계란 하나가 보인 것 같았다. 놀랍게도 정말로 계란이 맞았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인 그곳에 정말로 계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온 계란일까? 도대체 어느 닭이 닭장에서 빠져나와 이곳에다 알을 낳았단 말인가? 심지어 얼지도 않고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는 계란이었다. 대장장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란의 출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일단 그 계란을 집어 들고 아내에게 가져갔다.
아내는 눈 쌓인 길 위에서 발견한 계란이라는 그의 말에 혹시 계란을 발견할 때 취해 있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믿을 수 없어 했다. 아내가 수프를 끓이며 그 계란을 냄비에 넣고 삶는 동안 대장장이는 마을에 퍼져 있던 흉흉한 소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자기도 분명 어느 밤에 그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굴뚝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식탁에 앉아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남편이 빵에 버터를 바르는 사이, 아내는 계란을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혹시 이 계란 속에 뭔가 들어 있으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먹기나 하라고 일축했다. 그녀는 계란을 까보았다. 여느 계란과 똑같았고, 무척 신선했다. 그녀는 주저하면서 계란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이 맛이 어떠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아무 대답 없이 계란을 모두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눈이 커지면서 얼이 빠진 듯이 미칠 것 같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더니, 다음 순간 팔을 비비 꼬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구르면서 끔찍한 비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내내 그녀는 끔찍한 경련에 시달렸다. 온몸이 지독하게 떨리며 참혹하게 비틀렸다. 경련이 어찌나 극심했던지 대장장이는 혼자 힘으로는 아내를 붙잡아 경련을 저지할 수가 없어서 그녀를 침대에다 묶어야만 했다.
아내는 격한 소리로 자신의 몸 안에 그게 있다고 끊임없이 부르짖었다. 다음날 대장장이는 의사를 찾아가 왕진을 청했다. 보낭팡은 처방 가능한 모든 진정제와 진통제를 투약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미쳐버렸다.
온 마을에 산처럼 높이 쌓인 눈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소식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사람들은 “대장장이 마누라가 귀신에 씌었대!”라고 말했고, 도저히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마을의 사제도 이 소식을 듣고 대장간을 방문했다. 그는 늙고 고지식한 사제였다. 사제는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종부성사를 행할 때처럼 사제복을 갖춰 입고 달려와 양팔을 벌리며 구마식을 집행했다. 사제가 구마식을 행하는 동안 연신 입에 거품을 물며 몸이 뒤틀리는 대장장이의 아내를 네 명의 남자가 침대에다 붙잡아 고정시켰다.
그러나 악마를 쫓아내진 못했다.
그리고 아무런 변화 없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혹독한 추위도 여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에 사제가 보낭팡을 찾아왔다. 사제는 대장장이의 아내를 오늘밤 열리는 성탄 미사에 참석시킬 생각이라며 의사의 승인을 구했다. 사제는 하느님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신 바로 그 시각에 기적을 행해주실 거라고 믿었다. 보낭팡은 신성한 의식으로 인해 그녀의 의식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어쩌면 다른 치료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기꺼이 승인했다. 그러자 사제는 보낭팡에게 신자가 아니라 의사로서 도와달라며 그녀를 교회로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보낭팡은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다.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하얗게 얼어붙은 눈더미 위로 적막한 대기를 가르며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무리를 지은 검은 존재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하늘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생생한 빛으로 수평선을 환하게 비춰 창백한 들판의 황폐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보낭팡은 건장한 남자 네 명을 데리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귀신이 들린 여인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 묶여 있었다. 그녀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교회로 옮겼다.
밝은 조명 아래 냉기가 흐르는 교회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성가대의 단조로운 성가곡이 흐르는 가운데, 요령을 흔드는 아이가 신자들의 움직임에 맞춰 나지막이 요령을 울렸다.
보낭팡은 네 명의 남자들과 함께 대장장이의 아내를 사제관의 주방으로 옮긴 뒤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때를 기다렸다. 그는 영성체를 마치는 순간이 적시라고 판단했다.
영성체가 거행되었다. 모든 농부들과 남녀노소가 무릎을 꿇은 채 성체를 받았다. 사제가 영성체를 마치는 순간 거대한 침묵이 감돌았다. 보낭팡의 지시에 따라 문이 열리고 네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광채에 휩싸인 교회 안에 무릎을 꿇은 군중,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성가대와 제단의 황금빛 휘장을 보자마자 그 자리를 빠져 나가려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녀가 내지르는 비명이 너무나 끔찍했던 나머지, 교회 안에는 격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전율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여인의 형상이 아니었다. 남자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비틀던 그녀는 얼굴이 심하게 뒤틀렸고, 눈에는 광기가 서렸다. 남자들은 그녀를 성가대 계단까지 끌고 가서 바닥에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사제가 일어났다. 그리고 기다렸다. 사제는 그녀가 바닥에 무릎이 꿇리자 곧바로, 한가운데 성체 빵이 놓여 있는 황금빛 성체 현시대를 손에 들고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악마가 씌어 초점을 잃은 그녀의 눈에 성체 현시대가 보이도록 그녀의 머리 위쪽으로 성체 현시대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빛나는 성체 현시대에 눈을 고정한 채 여전히 비명을 질러댔다. 사제는 마치 동상이 되어버린 듯,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갔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여전히 성체 현시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끔찍한 경련으로 몸이 흔들렸고,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 소리의 날카로움은 한결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긴긴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제 의지로는 다른 곳을 향할 수 없는 것처럼, 오로지 성체 빵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경직되었던 그녀의 몸이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힘이 풀리며 바닥에 무너졌다.
그 순간,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그녀는 마치 하느님의 시선을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거리며 들었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비명소리가 멎었다. 그녀는 침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감았다. 마침내 그녀는 황금빛 성체 현시대와의 집요한 눈싸움에서 패배하고, 승리의 그리스도에 압도당해 정신이 몽롱해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남자들이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제단으로 옮겼다. 사제가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기적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한 사람들은 라틴어 찬송가 테데움(Te Deum)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의 아내는 무려 40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 〈Conte de Noël〉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