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by 글섬

다행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한국이 싫어서.

그 정도 정신 건강이라면 뭐든 괜찮다. 다 할 수 있다.


제목이 이미 모든 걸 대변하는 영화는 쉽지 않다. 게다가 평점도 높지 않은 영화라 굳이? 하며 넘어갈 법했지만, 고아성. 게다가 독립영화.


나는 고아성이 좋다. 그 배우의 고집이 맘에 든다. 고집스런 작품 선택 기준 때문에 늘 비슷비슷한 배역에 갇히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등장해도 배역보단 그저 고아성이라 배우로선 한계점이 여실하지만, 자기만의 색이 또렷해 늘 시선을 끈다. 그 꼿꼿함이 싱그럽다. 협찬 의상 따위가 아닌 배우 자체의 시선과 자태에 힘이 있다. 아직 젊은 배우가 그만한 자기 색을 잃지 않는다는 건 역시 그만의 고집 덕분이리라 짐작된다. 그의 고집까지 응원해 마지않으며 어떻게 늙어갈지 기대가 되는 보기 드문 배우이다.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만의 정서가 있다. 나는 이걸 애정한다. 거칠고 어설픈데 아픈, 그래서 꼬옥 껴안아주고 싶은 정서다.

저예산이 기본값인 덕분에 온갖 질문과 대답 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기성 영화들과 달리 작은 소재로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독립영화만의 서사가 있다. 프로는 흉내낼 수 없는 아마추어만의 빛나는 영역이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는 독립영화답게 우툴두툴 작은 이야기를 엮어 커다란 그물로 거대한 생각들을 낚는다. 말하자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냅다 내래이션이 쏟아진다. 초반부 내래이션은 간만이라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어느 순간 뜨금, 한다. 내 일기장을 읽어대는 줄.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간에 생존 문제 앞에선 다 부질없는 이야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 하고, 물려받은 건 개뿔도 없는데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 경쟁력 없는 인간, 멸종되어야 할 동물" 등등.

빵 터진다.

하지만 '멸종되어야 할 동물'이라면 오히려 희귀템이 아닐까.


한국이 싫어서든, 지는 게 싫어서든, 그런 나 자신이 싫어서든, 뭔가 저지르기로 결단할 수 있다면 그냥 하면 된다. 반대로, 뭐가 어떻든 그냥 그대로 남아 버티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의 선택에 결연히 책임지는 자세뿐이다.


닥치는 대로 방향을 전환하며 마구잡이로 사는 듯한 영화 속 청춘들은 무모하거나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지만, 청춘이든 노년이든 깎이고 충돌하고 아슬아슬한 게 사는 거다. 그러니 다 괜찮다. 그보다는,


맨날 술 먹고 늦잠 자느라 어학원에 지각하는 줄 알았던 친구가 실은 빌딩 청소하느라 열차 시간을 놓쳐 늦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장면이 오히려 열쇠 같다.

돈 말고 행복을 모으라고 강연하는 행복 전도사를 향해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며 비난했지만 실은 그가 폐암 말기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이 사망 후에야 밝혀진다.

우린 대체로 나만 옳거나 나만 열심히 산다고 착각한다. 이 피해의식 때문에 정작 소중한 걸 보지 못하고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열쇠는 늘 내 머릿속에 있다.


주인공 계나는 스스로가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이라고 여긴다. 추위가 싫으니 하와이로 가면 된다고 믿는다. 부디 계나가 싫었던 게 한국이거나 추위였길 바란다.

사실 객관적으로 계나보다 계나 동생이 더 한국이 싫을 만한 진정한 비주류인데 정작 본인 스스로는 주류라고 믿는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 따위는 없다. 이 정도 정신 승리라면 어디 가도 잘 산다. 한국의 상대적 박탈감이 싫어 도주하는 계나를 정말로 못 견디게 했던 건 한국이 아니라 혹시 그 자신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행복이란 말 있잖아.

왠지 너무 과대평가된 단어 같아."


좋은 대사다.

하지만 그보단 일상의 행복이 과소평가된 거다.

평범함이 과소평가된 거다.


영화 초반부 내래이션에 표범에 잡아 먹히는 아프리카 가젤 얘기가 나온다. 표범이 올 때 꼭 이상한 데로 뛰다가 잡히는 애들 하나씩 있다,라고.

문제는 내가 가젤이라서가 아니다. 가젤을 선택했거나 태생이 가젤일 따름인데 왜 표범일 수 없는지 절망할 때가 문제다. 그래서 일찍이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천명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고.


떠나도 좋고 남아도 좋다.

다만 이건 면밀히 물어야 한다.

한국이 싫은 건지, 내가 싫은 건지.


원작 소설의 문장들을 그대로 읊어댈 거면 뭐하러 굳이 영상화했을까 싶은 아쉬움 속에서도 굵직한 질문들로 머릿속이 풍성해지는 영화다. 그게 뭐든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며칠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고대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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