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조현철 감독

by 글섬

너와 나는 얼마나 다른지.

다름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내 마음은 얼마나 크고,

그로 인해 네 마음은 얼마나 덧없기만 한지.

소중해서 벅찬 너는 얼마나 크고,

그로 인한 나의 작음은 또 얼마나 무거운지.


영화는 무수한 너와 나의 무리에서 한둘의 너와 나로 좁혀지는가 싶더니 하나의 너와 나로 다시 좁혀지는 과정에서 거울 속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이미 근사하다. 거울 속 뒷모습은 결코 곧이 곧대로는 건너갈 수 없는 너와 나의 마음을 투영한다.


세미의 뜬금없는 꿈 타령과 하은이 걱정을 들으며 같이 걷던 친구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학교 화단에서 세미가 죽은 새를 발견해 거두는 동안 친구들의 목소리가 심드렁하게 이어진다.

옛날에 병아리가 죽어서 놀이터에 묻어주고 싶어 놀이터 바닥을 팠는데 시멘트 바닥이라 묻지 못하고 집으로 도로 가져 가 크레파스 통 안에 넣어 두었다고.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소중한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줄도 몰랐다고 말하는 친구들의 클로즈업된 얼굴 뒤로, 방금 전에 거두었던 새의 주검을 나무둥치 아래 소중히 묻어주는 세미의 모습이 스치듯 나타났다 이내 사라진다. 세미의 마음은 그들과는 다르다. 시작부터 주제의식을 던지며 시선을 강탈한다.


세미가 집착하는 훔바바는 감당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어긋나는 마음의 이름이다. 사랑도 인간의 일이라 사랑 자체로는 완전치 못해 주는 만큼 받기를 갈망한다. 더 사랑해서 고통스런 마음은 독물처럼 진심을 해친다. 사랑이 진심이라면 사랑 자체로 충분해야 할 텐데 진심이 진심이긴 한데 진심이라 그 진심은 또 아니다.


집근처 뒷산에서 우연히 만난, 그저 떠돌이 개만 같던 진식이는 개주인의 잃어버린 소중한 마음이다.

진식이를 찾다 촉발된 세미의 질식할 것 같은 사랑은 하은이 마음에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되고, 진식이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하은이의 마음이 드러난다.


진식이가 주인과 재회하는 장면은 두 소녀의 엇갈린 마음처럼 장력이 존재한다.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주인과 달리 진식이는 선뜻 달려 나오지 않는다. 여러 차례 울먹이듯 토해지는 자신의 이름을 낯선 듯 듣고만 있다가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진식이의 모습은 벅찬 사랑이 감당해야 하는 장력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크던 작던,

사랑이 너와 나를 가르던 말던,

그건 살아 있음의 호사다.


진식이를 되찾은 주인과 두 소녀가 마주앉은 장면을 전환점으로 영화는 예정되어 있던 세월호를 향해 내달린다. 개주인과 세미의 처연한 고백을 배경으로 세월호 사고 전날과 다음날을 교차로 오간다.


혼자 남은 하은이가 책상에서 몸을 일으키는 장면이 첫 화면의 세미와 맞닿으며 잃어버린 아이들과 그 마음들을 연결한다. 떠나기 전 세미의 마지막 고백이 사후 하은이의 마음과 맞닿으며 엇갈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의 어여쁜 마음을 대변하듯 오열하는 하은이를 끌어안은 세미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한다.

현실과 죽음의 경계인 냥 장례식장을 가로질러 걸어왔던 세미와 하은이는 키링을 달아주고 입을 맞춘 뒤 아쉬움에 몇 번을 돌아보며 긴긴 이별을 한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아이들의 귀가길 담벼락은 길기만 하고, 아파트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랫집 여인은 제사를 마친 지방(紙榜)을 태우며 죽음을 예고한다.


그리고 아프고 아픈 엔딩씬.

부모님과 사소하게 투닥거리는 흔하디 흔한 일상의 마지막 저녁 시간을 보낸 세미가 애완조 조이를 향해 반복하던 "사랑해"가 BGM처럼 흐르다가 꿈속 초록의 풀밭에 죽어 있는 세미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수많은 목소리가 끝없이 사랑해를 외친다. 그대로 암전이 올 것 같은 바로 직전에 실눈을 살짝 뜬 세미가 슬핏 웃는 듯하더니 카메라가 꺼진다. 까만 화면 위로 세미가 말한다. 갔다 올게.


잘 만든 영화는 멋을 부린 대사나 화면이 터질 듯한 음악 없이도 오로지 꽉 짜인 시나리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다행히 나는 이 영화가 세월호 사고에서 착안했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 봤다. 그렇기에 소녀들 마음의 크기에 더욱 집중했고, 세련되게도 후반부 버스 안 라디오 소리로 잠시 잠깐만 내비친 세월호에 깜짝 놀랐다. 그러자 말 그대로 멘붕. 왜, 왜지? 왜 이게 세월호지? 깨달음은 한참 뒤에야 왔다.


그 날 바다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은 바로 이런 마음의 이런 모습이었을 게다. 놀랍게도 감독은 세월호 자체는 딱 한 번 배경으로 흘려 버리고, 영화 전체를 오직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마치 숲을 제대로 보기 위해 그 안의 나무들로 시선을 내리듯이.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마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 마음을 포함해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아이들의 부재에 더 큰 아픔을 느껴야 했다.


마음에도 관계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나무 사이 간격이 너무 빽빽하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듯이 너무 큰 마음은 사랑을 해친다. 너와 나는 꼭 너와 나여야만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로 영화에도 여백이 아쉽다. 메타포도 너무 많다. 탁자 위 물잔, 멈춰버린 시계, 뜯겨지는 키링, 발뒤꿈치 각질, 사라진 새와 흩날리는 깃털들.

이 정도 시나리오와 연출 감각이라면 굳이 2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긴장과 이완을 압축했을 때 메시지가 더 강렬했을 것이다. 명색이 독립영화인데 무슨 필름을 이렇게 시원하게 소비했는지.

하지만 입봉작이니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담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테니 감독의 절제는 차기작에서 기대해보기로 하고, 지금은 그저 입이 떡 벌어진 채 무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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